우주 저편 기이한 ‘냉점’은 빈공간 효과? 우주충돌 흔적?
우주배경복사 지도에 나타난 ‘냉점’ 설명하려는 여러 시도들
기존 '빈 공간 효과'설을 뒤집는 새로운 관측 결과 등장 눈길
» 플랑크 위성이 정밀 관측해 만들어진 우주배경복사(CMB) 지도. 우주의 온도분포는 놀라울 정도로 균일한데, 지구에서 바라보는 시선 방향에서는 기이하게도 냉점(Cold Spot)이라 물리는 지점에서는 평균 온도보다 두드러지게 더 낮은 온도가 나타난다. 이 냉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려는 여러 관측과 해석 연구가 이어져 왔다. 출처/ 영국 왕립천문학회 보도자료, 더럼대학교
유럽우주국(ESA)이 쏘아올린 우주 관측위성 플랑크는 2014년에 천문학과 천체물리학 연구자들 사이에 탄성을 자아내게 할 만한 멋진 우주 지도 한 장을 세상에 내놓았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우주 공간에서 우주대폭발(빅뱅) 이후에 우주가 팽창하며 식으면서 남긴 우주 초기 빛의 흔적, 즉 우주배경복사(CMB)를 정밀 관측해 만든 지도였다. 우주의 탄생과 진화를 엿보게 하는 가장 정밀한 우주배경복사 지도이다.
[관련기사]
플랑크위성 관측결산: ‘138억년 우주진화’ 재확인 (2014. 12. 09)
http://scienceon.hani.co.kr/221068
» 우주배경복사 지도의 변천. 1960년대에 처음 관측됐을 때에는 전 우주에서 절대온도 2.7도가 균일하게 관측됐으나, 이후에 관측 단위를 작게 하면서 국지적으로 다른 미세한 온도 차이(요동)들이 관찰되었다. 맨 위는 1965년에 이뤄진 지상 관측이며, 그 아래로는 코비 위성, 더블유맵 위성, 그리고 플랑크 위성이 관측한 것이다. 출처/ NASA, ESA. Nature에서 재인용(재구성, 변형)
그런데 지도의 한쪽에서 기이한 지점이 발견됐다.
우주배경복사 지도는 우주의 온도가 평균 절대온도 2.73도, 즉 섭씨 영하 270도가량으로 놀라울 정도로 균일하게 퍼져 있으며 매우 작은 온도요동만이 나타남을 보여준다. 그런데 유독 이 지점만은 0.00007도의 두드러진 온도 차이를 보여주었다. 사실 0.00007도는 너무도 작은 수치이지만 주변의 평균 온도요동과 비교하면 4배나 될 정도로 '두드러진' 차이로 연구자들에게는 받아들여졌다.
온도분포에서 아주 작은 요동만 나타나며 놀라울 정도로 평탄한 우주에서 단 한 곳, 이곳만이 다른 곳에 비해 ‘두드러지게’ 더 차가운 이유는 뭘까?
‘차가운 지점’이라는 뜻에서 ‘냉점(Cold Spot)’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지점은 대체 어떤 구조를 말해주며 왜 고른 우주에서 이처럼 두드러지게 차가운 지점이 생겨났을까, 이런 물음을 설명하려는 관측과 분석 연구가 그동안 이어져왔다.
“거대한 빈공간이 냉점 효과 만들어” -기존 관측과 학설

설득력 있는 설명으로 그동안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거대한 빈 공간(giant void)’ 설이었다. 플랑크 관측위성은 우주 사방에서 날아오는 우주배경복사(마이크로파)를 관측하는데, 이때에 우주배경복사 빛(photon)이 물질 밀도가 매우 낮은 ‘빈 공간’을 거쳐 날아온다면 에너지를 잃는 효과 때문에 더 낮은 에너지, 더 낮은 온도를 나타내게 된다. 이렇게 보면 냉점 방향의 우주 공간에 유독 거대한 빈 공간들이 있어 플랑크 위성에 다른 곳보다 두드러지게 차가운 우주배경복사가 포착되었으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 하와이대학의 천문학자(Istvan Szapudi) 연구진은 지구에서 냉점을 바라보는 시선 방향의 우주 공간에서 초거대 빈 공간(supervoid)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천문학 매체인 <스카이 앤드 텔레스코프(Sky & Telescope)>에 의하면, 그 빈 공간은 무려 18억 광년 거리에 이를 정도여서 지금까지 발견된 빈 공간 구조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이었다. 이런 발견은 우주배경복사 빛이 지구 쪽으로 날아올 때 이 초거대 빈 공간을 거치면서 에너지를 잃어 낮은 온도를 나타내게 되었다는 자연스러운 설명의 근거가 되었다. 지구와 냉점 사이엔 초거대 빈 공간이 있어 ‘냉점 효과’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빈 공간이 냉점 존재 설명 못해” -새로운 관측과 해석
그런데 최근 ‘빈 공간의 냉점 효과’ 학설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관측 결과와 해석이 나왔다. 영국 더럼대학 천문학자들(Ruari Mackenzie 등)을 중심으로 한 국제 공동연구진은 영국 <왕립학회 천문학 월보(Monthly Notices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nty)>에 낸 논문에서 냉점 시선 방향의 우주 공간에 있는 빈 공간들만으로는 냉점이 왜 다른 곳보다 더 두드러지게 차가운지를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관측과 해석의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2014년의 초거대 빈 공간을 발견했을 때에 썼던 관측 기법보다 더 정밀한 방법을 써서 냉점 시선 방향의 우주 공간에서 3개의 빈 공간 구조를 찾아냈다. 그런데 빈 공간의 냉점 효과로 계산해볼 대에 이런 3개의 빈 공간이 일으킬수 있는 우주배경복사 냉각 효과의 크기는 실제 냉점 지역에서 관측되는 온도 요동인 0,00007도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또 다른 근거도 제시됐다. 연구진은 냉점 시선 방향의 우주와 비교하기 위해 다른 시선 방향의 우주를 관측했는데 거기에서도 비슷한 규모와 크기의 빈 공간들이 관측됐다. 그런데도 그곳에서는 냉점 같은 차가운 온도요동의 구조가 따로 발견되지는 않았다. 이런 비교 관측의 결과는 빈 공간들은 다른 곳에서도 비슷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또한 빈 공간 구조들이 있다 해도 반드시 ‘냉점’과 같은 더 차가운 우주 공간 구조가 존재하지는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는 빈 공간이 반드시 냉점의 존재를 설명해주는 냉점의 원인이 될 수는 없음을 뜻했다.
» 우주배경복사 지도에 담긴 우주 공간 내의 3차원 은하 분포. 연구진은 '냉점' 시선 방향의 우주 공간(아래쪽)과 다른 시선 방향의 우주 공간(위쪽)에 나타난 은하와 빈 공간의 분포를 관측해 비교했다. 두 곳에서는 은하 밀도가 낮은 지역들이 비슷한 규모와 숫자로 관찰되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출처/ 영국 더럼대학교
대안의 설명들…“어쩌면 다른 우주와 충돌한 흔적?”
‘빈 공간’ 학설이 힘을 잃는다면, 현재 관측되는 기이한 ‘냉점’의 존재는 어떻게 달리 설명될 수 있을까?
천문학 전문매체인 <스카이 앤드 텔레스코프>의 보도를 보면, 대안의 설명으로 초기 우주에서 일종의 상전이(phase transition)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물 액체상태가 얼음 고체상태로 변할 때 일부 결점(defect) 구조가 생성되는 상전이 현상과 비슷하게, 초기 우주에서도 이런 상전이가 일어나면서 ‘냉점’ 같은 결점 구조가 우주에도 생겼으리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가설은 만일 그런 결점 구조가 생겼다 해도 표준우주론에서 받아들이는 우주 급팽창(inflation) 과정에서는 사라졌으리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또 다른 가설은 아예 현대물리학 표준모형과 현대우주론의 틀에서 벗어나 어찌 보면 기괴할 수 있는 설명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번 연구진은 빈 공간 효과 가설을 부정하고서 대안의 설명을 찾으면서, 만일 다중우주론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우주가 다른 우주와 충돌을 했으며 그때에 충돌의 흔적으로 남은 것이 냉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중우주론은 우리 우주가 유일하지 않으며 엄청난 수의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고 보는 학설로, 아직은 뚜렷한 증거 없이 이론적이고 공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한 연구자는 영국 왕립천문학회에 게시된 보도자료에서 “[표준우주론으로 쉽게 설명하기 힘든 냉각 구조를 설명하는 데에는] 더욱 기괴한 설명들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 “아마도 이런 설명들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한 것은 냉점이 우리 우주와 다른 우주의 충돌로 일어났다는 설명일 것”이라고 말했다. <스카이 앤드 텔레스코프>는 냉점을 둘러싼 여러 가설의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런 가설들이 검증되는 데에는 더 많은 관측과 해석,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참조]
[책] ‘또다른 우주 있다’ 물리·수학의 아홉가지 추론 (2012. 04. 25)
http://scienceon.hani.co.kr/36373
[책] “만물 이론은 없었다” 호주머니 우주들의 풍경 (2011. 06. 10)
http://scienceon.hani.co.kr/36037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사이언스온의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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