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눈에 보이는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

robotAI2.jpg 미디어에 비친 첨단테크

첨단의 최신 기술은 미디어에서 대중적 관심사로 다뤄집니다. 기계공학, 특히 로봇공학을 전공하는 필자가 과학/기술, 특히 로봇공학을 전하는 미디어와 우리 사회의 담론을 비평합니다.


[1] 연재를 시작하며


00AI_pixabaycom.jpg » 출처 / pixabay.com


장면1.

1811년 영국 노팅엄 주의 아널드 시. 늦은 밤에 한 무리의 남자들이 손에 망치, 몽둥이를 들고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은 거칠었고 옷에는 양털 보풀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들은 한창 잘 나가던 방직공장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제지하는 경비원을 한쪽으로 거칠게 밀치고는 당시 최신 기술의 총아인 방직기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비록 당시 노동환경은 하루 15시간을 우습게 넘기는 노동시간을 자랑했지만, 그 늦은 시간에는 아무도 일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공장주에게는 불행하게도 63대의 방직기가 파괴되었다. 방직기 발명으로 실업자가 된 방직공들은 방직기 파괴뿐 아니라 방직공장주들의 납치와 암살마저 저질렀다. 결국 군대가 투입되었고 체포된 방직공들에게 배후를 묻자 그들은 ‘우리는 러드 장군(General Ludd)의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1]


장면2.

2016년 3월 10일 오후 2시 경기도 화성의 한 유치원. 어린이 20명이 책상 앞에 앉아 태블릿 피시(PC)를 만지작거렸다. 태블릿 피시 화면엔 ‘위로 이동’ ‘오른쪽으로 이동’ 같은 이동 명령어 블록과 이런 명령어를 실행한 결과를 보여주는 창이 떠 있었다. 교사 박아무개(26)씨가 “올챙이 캐릭터가 오른쪽 끝으로 움직이도록 명령어를 조합해보자”고 하자, 아이들이 화면에서 손가락을 움직여 명령어들을 이리저리 늘어놓기 시작했다. 얼마 뒤 곳곳에서 “올챙이가 안 움직여요” “성공했어요” 하는 외침이 들렸다. 박씨는 아이들에게 “여러분이 방금 배운 게 ‘코딩’ 기술”이라고 했다.[2]


나의 유령이 세상을 배회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과 집단, 즉 정부, 정당, 기업, 언론, 노동자. 학부모, 사교육업계가 이것을 연일 외치고 있다. 정당의 대선 후보들치고 제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지 않는 후보가 어디 있는가? 제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지 않는 언론이 어디 있는가?[3] 이 사실에서 두 가지 결론이 나온다. 제4차 산업혁명은 표가 된다.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은 돈이 된다.[4]



“제4차 산업혁명은 첨단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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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은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설립자이자 총회장인 클라우스 슈밥 박사[5]가 제안한 산업혁명이다. 그는 최초의 산업혁명이 생산을 기계화 하기 위해 물과 증기를 사용했고(1784년), 제2차 산업혁명은 대량생산을 위해 전력을 사용했으며(1870년) 제3차 산업혁명은 전자제품과 정보기술을 사용하여 생산을 자동화했다고(1969년) 보았다. 그는 이제 제4차 산업혁명이 지난 세기 중반 이래 발생한 디지털혁명인 제3차 산업혁명 내에서 구축되었으며 물리적, 디지털, 생물학적 영역 사이의 선을 모호하게 만드는 ‘기술의 융합’을 특징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한 그는 모바일 장치에 의한 전례 없는 데이터의 처리 능력, 저장 용량. 그리고 지식에 대한 접근으로 연결된 수십억 명 사람들의 가능성이 무제한이고, 이런 가능성은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차량, 3차원(3D) 프린팅, 나노기술, 생명공학, 재료과학, 에너지 저장과 양자컴퓨팅과 같은 융합기술에 의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6][7]


그동안 기술의 발전은 눈부셨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방향과 속도를 항상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인텔의 공동설립자인 고든 무어는 1965년 집적회로당 부품 숫자는 매년 2배씩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다음 10년 간 이 속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8] 그리고 1975년 그는 다음 10년을 예측하면서 집적회로당 부품 숫자는 2년마다 2배씩 증가할 것이라고 수정했다.[9]


‘무어의 법칙’은 이후 수십 년 간 맞았지만 2005년에 결국 집적회로의 발전이 무어의 예측을 따라가지 못하였고 그해를 기점으로 적용되지 못했다.[10] 엄밀하게 말하면 무어는 매 10년 단위로 예측했으므로 1975~85년 구간을 맞게 예측했지만, 2005년을 기점으로는 틀린 것이 되었다. 결국 고든 무어도 2015년에 앞으로는 무어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11]


pic1_3.jpg » 연도별 집적회로당 트랜지스터의 수. 출처/ 주 [12]


비슷한 것으로 ‘황의 법칙’이 있다. 황의 법칙이란, 황창규 당시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이 2002년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반도체회로 학술회의(ISSCC)에서 밝힌 이론으로,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가 1년에 2배씩 늘어난다는 것이었다.[13] 그동안 삼성전자는 이 법칙을 만족시켜 오다가 2008년에 삼성이 128기가바이트(GB)짜리 ‘낸드(NAND) 플래시’ 메모리를 발표하지 않음에 따라 이 법칙이 사실상 깨졌다.


사실 무어의 법칙도, 황의 법칙도 법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목표이다. 둘 다 인텔과 삼성전자가 앞으로 어떻게 기술을 발전시킬지를 천명한 것이다. 결국 둘 다 미세공정의 한계점에 다다르면서 깨졌다.



예측은 선형모델, 현실은 비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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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파고들어 보자. 고든 무어 인텔 명예회장과 황창규 당시 삼정전자 기술총괄 사장은 모두 ‘현재’에 기반하여 ‘미래’를 예측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따른다. 바로 미래는 예측가능한 ‘선형’이라는 것이다 (물론 두 법칙은 지수함수로 표현할 수 있지만, 넘어가자).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런데 고든 무어 명예회장과 황창규 사장은 모두 대학 학부생 2학년 공업수학 시간에 얼마나 세상을 구성하는 방정식이 복잡한지 배운 공학박사들이다. 그러면 이 두 사람은 왜 이런 발표를 했던 것일까?


우선은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두 회사는 해당 분야의 기술을 선도하는 회사들이었다. 두 번째는 회사의 미래 가치이다. 두 사람은 모두 기업의 최고책임자였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투자자들은 회사의 현재 가치도 중요하게 보지만, 미래 가치도 중요하게 본다. 그런데 지금 해당 분야의 최고 기술 수준을 자랑하는 회사의 개발 최고 책임자가 미래에 대해 자신만만한 장밋빛 전망을 한다면 어느 투자자가 넘어가지 않을까?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 <은하영웅전설>에서 바그닷슈 중령은 새로운 부임지로 떠나는 율리안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세상에 돌아다니는 모든 정보에는 반드시 벡터가 걸려 있다. 즉 유도하려고 한다든가, 바람이 포함되어 있다든가, 그 정보의 발신자의 이익을 잴 수 있는 방향성이 부과되어 있지. 그걸 잘 빼어 보면 더 정확한 사실관계에 가까운 게 보이지.“


제4차 산업혁명에서 이야기하는 기술들, 즉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 인터넷, 자율주행 차량, 3D 프린팅, 나노기술, 생명공학, 재료과학, 에너지 저장 및 양자 컴퓨팅은 그동안 저마다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문제는 그 과정을 보지 않고 언론에 비춰진 모습만을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에서 띄엄띄엄 비춰주는 기사만 보다 보면, 기술의 발전을 바르게 따라 잡을 수 없고 오히려 그 과장된 예측에 넘어가게 된다.



기획된 프레임 바깥은 보여주지 않는 홍보용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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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기사가 언론에 나오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 번째로 학술지 등에 실리는 대학이나 국책연구소의 연구결과이다. 두번째는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기사이다. 세 번째는 대기업의 신제품 기사이다.


학이나 국책연구소에서 이뤄지는 연구의 경우, 극히 제한적인 조건에서 수행된다. 실제 상업적으로 완성되어 우리 삶에 영향을 주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원자력 발전의 기본이 되는 양자역학은 1900년 막스 플랑크가 흑체복사론을 발표하여 이론적으로 시작되었고,[14] 실험적으로도 1939년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핵분열을 발견하고 나서도,[15] 1956년에서야 영국 셀라필드 원자력 단지에서 콜더 홀이 최초의 상업 발전을 시작했다. 그것도 세계 2차대전과 맨해튼 계획을 통한 원자력 공학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스타트업 기업이 발표하는 기술들도 대체로 마찬가지이다. 무한동력이야[16] 너무 황당하니 차지하고서라도, 실외기에 풍력발전기를 달겠다는 생각이 혁신이라며 언론에 보도되는 것이 현실이다.[17] 혹은 아래 동영상처럼 홍보용 비디오가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는 비디오 프레임 밖을 보지 못한다. 기획되고 편집된 영상 속에서 사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기업의 신제품 발표를 전하는 국내 뉴스는 어떨까? 국내 보도를 비평하는 기사 하나를 아래 각주에 남기며[18]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유투브 동영상 https://youtu.be/pNpH4G-hoIY ]


어쩌면 아래 그림처럼 우리가 보고 예측하는 기술(붉은 선)은 실제 기술의 발전(푸른 선)과 만나는 점에서 계속 이대로 갈 거라고 분명한 근거 없이 가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본다면, 우리가 기술 발전에서 한 점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정확한 판단이 가능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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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에 인용한 장면1장면2에서 산업혁명기의 공장형 수공업으로 직물을 만들던 방직공들의 행동과, 지난해 이른바 ‘알파고 쇼크’ 이래 바뀐 사교육계의 분위기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발전의 ‘과정’을 보려 하지 않고 갑자기 나타난 ‘결과’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일을 마주치면 마치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인 ‘부인-분노-협상-우울-수용’을 겪는다.[17] 다만 방직공들에게는 실업으로 그 변화를 맞이하였으므로 분노가 있고, 학부모들에게선 인공지능→컴퓨터→코딩이라는 의식의 흐름을 기반으로 엄청난 속도의 수용이 나타난다는 차이만 있다. 물론 이 의식의 흐름이 맞는 것인지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앞으로 연재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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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항상 공전 궤도에 있다. 그러나 지구가 자전하기에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한다. 달은 항상 둥글다. 그러나 공전하고 있는 위치에 따라 그믐달부터 보름달까지 다르게 보인다.


술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그 속도가 일정하지 않아도 기술은 꾸준히, 연속적으로 발달한다. 다만 우리는 항상 그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누가 전해주는 것만을 통해 바라보다 보니 어느 순간에 발전해 있는 기술만 보고서 놀라 자신의 판단을 다른 곳에 맡겨 버리는 것뿐이다. 이 글을 시작으로 언론에서 과대 포장된 기술이 왜 우리의 삶을 금방 바꾸지 못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주]


[1] John Brckeet, "The Luddites," The Nottinghamshire Heritage Gateway,

  http://www.nottsheritagegateway.org.uk/people/luddites.htm

[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16/2016031600245.html

[3] http://bit.ly/2q1yDea (네이버 뉴스 검색 결과)

[4]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2008).

[5] https://www.weforum.org/agenda/authors/klaus-schwab

[6] https://www.weforum.org/agenda/2016/01/what-is-the-fourth-industrial-revolution/

[7] https://www.weforum.org/agenda/2016/01/the-fourth-industrial-revolution-what-it-means-and-how-to-respond/

[8] Gordon E. Moore, “Cramming more components onto integrated circuits,” Electronics, Vol.38, No.8, 1965

[9] Gordon E. Moore, “Progress In Digital Integrated Electronics,” IEEE Text Speech (1975)

[10] http://www.nature.com/news/the-chips-are-down-for-moore-s-law-1.19338

[11] http://spectrum.ieee.org/computing/hardware/gordon-moore-the-man-whose-name-means-progress

[12] Wikimedia, http://bit.ly/2qczkxv

[13] http://ieeexplore.ieee.org/document/992086/

[14] M. Planck, "Ueber eine Verbesserung der Wien'schen Spectralgleichung," Verhandlungen der Deutschen Physikalischen Gesellschaft 2 (1900), 163-180. 임경순, 물리학의 선구자 (한국물리학회. 2001), http://conf.kps.or.kr/Contents/page.asp?pageCode=0401 에서 재인용

[15] O. Hahn and F. Strassmann, Naturwiss, 27, 11-15 (1939). O. Hahn and F. Strassmann, Naturwiss, 27, 89-95 (1939) ; 임경순  물리학의 선구자 (한국물리학회, 2001), http://conf.kps.or.kr/Contents/page.asp?pageCode=0401 에서 재인용

[16]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812_0013104770&cID=10406&pID=10400

[17]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26384

[18]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9389

[19] Elisabeth Kübler-Ross, On Death and Dying, The Macmillan Company (1969).


이충한 미국 네바다주립대학 석사과정(기계공학)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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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한 미국 네바다주립대학(라스베거스) 기계공학과 석사과정
고등학교-대학을 거치며 황우석 사태를 보고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학부와 대학원을 거치며 가방 끈이 길어질수록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만 더 깊게 배웠다.
이메일 : lee.choongh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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