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대체시험 연구, 이젠 우리도 진지하게 논의할 때다

animaltest.jpg 동물대체시험: 과학과 나란히 걷는 윤리

국제 동물보호 단체에서 활동하는 서보라미 님이 과학과 윤리를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동물실험 대안에 관해 국내외에 나타나는 최근 쟁점과 논의, 그리고 시도와 노력을 전한다.


[1] 연재를 시작하며


animaltest2.jpg » 대표적인 실험동물인 래트. 동물실험과 관련해서는, 동물 사용을 대체할 대안의 방법을 찾고(replacement), 그게 어렵다면 실험동물 수를 줄이며(reduction)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refinement)을 찾도록 권장하는 '3아르(R) 원칙'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물 실험을 대신하는 실험 연구를 뜻하는 ‘동물 대체시험 연구’를 이야기하면, 국내에서는 우선 동물을 불쌍하게 여겨 감정에 호소한다는 인식이 많이 퍼져 있다. 하지만 대체시험이라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을 뿐이지, 날로 발전하는 기술을 이용하여 더 과학적이고 인간에 대한 반응을 더 정확히 예측하기 위한 연구는 생명공학, 독성 연구, 컴퓨터 엔지니어링 등 분야에서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말을 꺼내느냐 또는 과학을 전공하는 학자가 말을 꺼내느냐에 따라, 이 주제와 관련해 이야기하는 분위기는 영 달라지는데, 이는 동물 대체시험에 관한 논의에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국내에서는 대체 연구에 대한 국민의 전체적인 이해도가 대중적으로 높지 않고, 그렇기에 소모적인 논쟁으로 변할 수도 있는 ‘동물을 대체하는 과학 연구’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여기에서 시작해보려 한다. 그래도 이것이 동물과 인간 모든 생명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1959년 ‘3R 원칙’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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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발달하고, 인공지능, 3차원(3D) 프린팅이라는 새로운 말들이 등장하는 지금과는 달리, 1900년대 초에는 동물을 이용한 실험이 과학적인, 윤리적인 고찰 없이 수행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처럼 컴퓨터나 휴대전화 등 각종 산업 기술이 전무하던 시기에,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지 않는 한 동물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멀쩡한 사람을 데려다가 생체 실험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러 실험 분야에서 실험용 동물 사용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극심한 고통과 괴로움을 겪을 동물에 대한 윤리적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1959년 러셀(W. M. S. Russell: 1925-1996)과 버치(R. L. Burch: 1926-1996)는 ‘3아르(3R)’라는 새로운 실험윤리의 원칙을 제안했다. 즉, (1) 동물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힘들다면 그 수를 줄이는 시험 방식을 찾고(Reduction, 감소), (2) 아니면 최소 실험이 이뤄지는 동안 기본적인 복지라도 잘 마련하도록 환경을 개선하고(Refinement, 개선), (3) 더 나아가 대체하거나 피할 수 있는 방안이 있으면 대안의 방법을 사용하자는(Replacement, 대체) 것이다. 이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과학적이고 품질 높은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 그 중요성이 많이 알려져 있다.


3R_2.jpg » 렉스 레오나드 버치(Rex Leonard Burch)와 윌리엄 모이 스트레튼 러셀(William Moy Stratton Russell) 출처: http://3rs.ccac.ca/en/about/three-rs.html렉스 레오나드 버치(Rex Leonard Burch)와 윌리엄 모이 스트레튼 러셀(William Moy Stratton Russell) 출처: http://3rs.ccac.ca/en/about/three-rs.html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는 대략 60년 전에 만들어진 이 ‘3R 원칙’이 이제는 ‘1R 원칙’, 즉 ‘대체(Replacement)’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근래에는 컴퓨터를 이용해 초고속으로 화학물질의 성질을 파악해 그 물질의 독성 또는 위해성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오고, 후각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그러니 이런 와중에 굳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동물시험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가 과학자들과 해외 정부 기관들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독성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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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xicityreport.jpg » ‘21세기 독성연구 비전과 전략’ 보고서(Toxicity Testing in the 21st Century: A vision and a Strategy. 2007) 2007년 미국 국립연구위원회(National Research Council)는 ‘21세기 독성연구 비전과 전략’ 보고서를 발표했다. 더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기술 연구를 고심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펴낸 이 보고서는 환경보호청(EPA)과 국립환경보건과학원(NIEHS)이 기존에 쓰던 시험 방법을 완전히 또는 일부 대체하면서 더 효율 높은 방법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2007년 보고서의 발간은 그 이후에 미국 국립보건원(NIH), 국립독성프로그램(NTP), 식품의약청(FDA), 국립인간유전체연구소(NHGRI) 등 관련 기관들이 모여 새롭고 혁신적인 시험 방법의 개발, 검증, 연구를 위해 정부 기관들이 협력하자는 양해각서를 맺는 계기가 되었다.


때에 생겨난 “21세기 독성 연구”라는 새로운 용어는, 과학계에서도 “톡스21(Tox21)”, “21세기 독성학(21st century toxicology)”과 같은 표현이 고유명사처럼 쓰이기 시작하면서, 북미 지역뿐 아니라 유럽 과학계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계기가 되었다.


‘2013년 화장품에 대한 동물실험 전면금지’를 앞두고 있던 유럽연합에서는, 2011년에 70곳 넘는 사설·공공 기관이 함께 참여해 ‘궁극적으로 동물시험을 대체하는 안전 평가’라는 이름의 연구사업(SEURAT-1: Safety Evaluation Ultimately Replacing Animal Testing)을 시작했다. 5년에 걸쳐 5000만 유로의 비용을 들여 반복 독성 시험에서 ‘비동물(non-animal) 시험’의 접근법을 개발하려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2016년에는 SEURAT-1의 연장선으로 6년 기간에 걸쳐 3000만 유로의 비용을 들여 “톡스리스크(ToxRisk)”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해 반복투여, 생식독성, 발달독성 분야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한마디: 프란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 현재 미국립보건원 디렉터

collins.jpg » 사진 출처/ https://www.nih.gov/about-nih/who-we-are/nih-director 000quotation3.jpg

“나는 10년 안에 [인간의] 심장, 간, 콩팥, 근육, 뇌와 그밖에 조직들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세포로 만들어진 ‘휴먼바이오칩(human biochips)’이 안전성 시험에 이용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이 접근 방법은 동물실험을 대부분 대체할 것이고 더 적은 비용과 높은 효율로 더 정확한 예측을 하는 결과를 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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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국립보건원(NIH) 예산청문회에서


청문회 영상 https://www.appropriations.senate.gov/hearings/hearing-on-fy2017-national-institutes-of-health-budget-request



국내 현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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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에서 2013년 화장품에 대한 동물실험을 전면 금지하자, 유럽연합에 화장품을 수출하는 국내 화장품 업계와 정부도 이런 흐름에 주의를 기울여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화장품 연구 및 개발과 관련한 동물 대체시험의 현황을 파악하고 산업계를 대상으로 이런 흐름을 알리기 위한 세미나를 여러 차례 열었다. 또한 2016년엔 유사한 법안이 발의되어, 화장품 연구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제한하는 법이 2017년 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화장품 규제를 담당하는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동물대체시험법검증센터(KoCVAM)는 국제적으로 인증된 동물대체시험법을 국내에 소개하고 또한 독성 평가의 과학적 시험 방법을 널리 알리며 인프라 확산을 지원하는 것과 같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만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방안이 적극 논의되어야 하는 또 다른 분야인 화학독성 규제 쪽에서는, 담당 부처인 환경부의 대응이 너무 느렸다. 각종 화학 안전사고로 안타까운 인명피해가 발생하면서 선진국 수준의 엄격한 화학 관리 제도를 도입하고자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일명 ‘화평법’이 2015년에 시행되었으나, 수많은 화학물질 등록에서 필요한 시험 자료 준비, 생산에 대한 비용적, 시간적 부담은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다.


국내의 ‘화평법’이 모델로 삼은 유럽의 화학물질규정 ‘리치(REACH) 법안’에 대해 유럽화학협회는 1조 6000억 원의 비용 소요와 900만 마리의 동물이 시험에 이용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화학 독성시험에 이용되는 동물 수는 별도로 정식 집계된 적이 없지만. 농림축산검역본부가 해마다 발표하는 동물실험 실태조사에 따르면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 수는 해마다 늘어나 2014년에는 241만 2000 마리, 2015년에는 250만 7000 마리, 2016년에는 287만 9000 마리에 달했다.


화평법에 따라 등록해야 하는 화학물질 수가 늘어나면서 실험동물 수도 앞으로 기하급수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수많은 화학물질에 대한 독성시험을 수많은 동물을 사용해 등록기간 안에 모두 마치려면 엄청난 비용과 자원이 소비될 것이다. 그동안 각종 화학 안전사고로 인해 화학물질 규제를 더욱 체계화하려는 법안까지 마련됐지만. 수천 가지 화학물질 독성평가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시스템의 마련에는 정부가 너무 안일했던 게 아닌가 한다.


앞으로 연재할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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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연재할 내용에서는 동물대체시험 연구 분야의 국내외 정책과 기술 개발 동향에 대해 다루고, 또한 국내 관련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려고 한다. ’대한민국’ 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잘 먹고 잘 사는 나라, 기술도 굉장히 발전한 나라이다. 이왕이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의 소중함도 함께 고민하며 더불어 생명 연구도 더 발전할 수 있다면 이게 바로 선진국이 아닐까.


mouse.jpg » 영국에 있는 필자의 친구는 구조된 쥐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며 칠리(왼쪽)와 픽시(오른쪽)를 입양했다. 동물실험실에서나 볼 듯한 큰 쥐(래트)들을 입양하고 쥐들에게 줄 장난감과 맛있는 간식거리를 찾느라 바쁜 친구나 자기 집인 것을 아는 듯 편해 보이는 큰 쥐들이 처음엔 낯설었다. 사진/ 크리스티나 도드킨


서보라미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 한국정책국장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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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라미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 독성연구국 한국정책국장
동물들이 생명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자, 나부터 동물에 대해 알아야 하겠다는 결심으로 동물행동학을 전공했다.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면 내가 아닌 다른 생명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이것을 과학으로 풀어나가기 위해 고민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있다.
이메일 : bseo@hs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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