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위한 행진’ 목소리, 지구촌에 울려퍼지다

트럼프의 반환경·반과학 정책 비판

국내 광화문에서도 800여 명 모여


※ 이 글은 미국 워싱턴 집회를 중심으로 보도된 한겨레 4월24일치 기사에다 국내에서 열린 과학행진 소식을 추가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sciencemarch.jpg » ‘지구의 날’을 맞은 22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벌어진 ‘과학을 위한 행진’에 참가한 과학자 등이 팻말과 대형 펼침막을 들고 환경보호청 건물 앞을 지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지구의 날’을 맞은 4월22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과 로스앤젤레스, 영국 런던 등 세계 600여곳에서 ‘과학을 위한 행진’(March for Science)이 벌어졌다. 이날 행진에는 과학자 수만명이 참가해, 과학에 대한 정치의 간섭을 막고 과학계를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다. 기후변화 현실 등을 부인하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과학정책을 우려하는 과학자들이 이례적으로 거리로 나선 것이다.


미국 워싱턴에서는 이날 비가 내리는 가운데 많은 과학자들과 지지자들이 행진을 하며 “환경보호청(EPA)을 구하자” “국립보건원(NIH)을 구하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예산 제안서에서 환경보호청의 예산을 31%나 깎고, 인력도 25%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립보건원의 예산도 18%나 삭감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기후변화는 “속임수”라는 반환경적 주장이나, ‘백신 예방접종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등 반백신 진영의 주장을 옮기며 관련 과학연구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과학계는 트럼프의 이런 발언이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사실조차 의심하게끔 만든다고 우려해 왔다.


이번 과학을 위한 행진은 47번째 지구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였지만, 트럼프의 반환경·반과학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됐다. <뉴욕 타임스>는 정치와는 거리를 두려는 전통이 있었던 과학계가 대중들의 지지를 호소하며 거리로 나선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했다. 워싱턴에서 열린 행진에 참가한 캘리포니아 과학아카데미의 조너선 폴리 박사는 <비비시>(BBC) 방송에 “과학 연구에 대한 정치인들의 공격이 억압에 가까운 수준이며 비이성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정치인들)은 우리의 건강과 안전, 환경을 보호하는 과학을 특정해 표적으로 삼고 있다. 과학은 우리들 중 가장 취약한 이들을 보호한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과 오스트리아 빈 등에서도 과학을 위한 행진이 벌어졌다. 런던에서는 과학자들이 과학박물관에서 의회광장으로 행진을 하며, 과학 연구를 폄훼하는 정치인들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지구의 날을 맞아 낸 성명에서 과학은 경제성장과 환경보호에 매우 중요하다며 “나의 행정부는 우리의 환경과 환경 위험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과학 연구를 진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신종합=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march_1.jpg »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함께하는 과학행진'. 출처/ 오철우


서울 800여명 모여 과학정책 토론 뒤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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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도 과학 연구자들과 시민들 800여 명이 모여 과학 연구 환경과 과학 정책을 토론하고 광화문 광장에서 행진을 벌였다.


march_01.jpg ‘2017 함께하는 과학행진’ 행사를 연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과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올해 50주년이 되는 과학의 달 4월을 맞이 과학의 가치와 위상을 바로 세우고 시민들의 삶과 함께하는 과학을 보여주고자 한걸음 더 가깝게 다가갑니다”라며 이번 행진의 의미를 밝혔다.


이날 광장에서 자유발언에 나선 교수, 엔지니어, 학생, 저술가 등 참석자들은 과학과 기술이 지니는 가치를 사회와 나누며 연구자가 주도하는 자율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또한 과학기술계 안의 여성, 장애인, 외국인 등 소수자들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일 수 있는 과학과 기술의 연구환경을 바라는 여러 갈래의 목소리를 냈다.


과학서점 ‘갈다’의 대표인 이은희(필명 하리하라)씨는 과학과 사회의 소통 문화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현숙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는 정부 주도 연구기획의 틀에서 벗어나 연구자가 주도하는 ‘자율적인 연구 기획’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휠체어를 타고서 연단에 선 정현희 숭실대 교수(물리학)는 장애인으로서 늘 혼자서 연구자의 삶을 헤쳐왔던 그가 우리사회와 ‘함께하는 삶’에 관심을 갖게 된 과정을 담담히 전해 관심을 모았다. 발언에 나선 대학생과 대학원생은 과학 연구자를 바라는 젊은이들의 꿈이 꺾이지 않도록 과학기술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장에 나온 정우성 포스텍 교수(물리학)는 “워싱턴 행진이 발의되고 확산되면서 이를 지지하는 과학행진이 국내에서도 열리게 되었는데 직접적인 정치적 요구가 강한 미국의 행진과 달리 우리 행진에는 순수한 학자들이 많이 참여했다”면서 “이는 정치 문제를 떠나 국내 과학 연구자들 사이에 다양한 고민이 있음을 말해주고 또한 그동안 과학기술계 안에 쌓인 그런 에너지가 분출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행사장에는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기상과학관, 걸스로봇×페미로봇 등 여러 기관과 단체들이 나서 일반 시민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과학을 나누다’라는 다양한 현장 이벤트 행사를 벌였다. 참가자들은 자유발언과 토론 이후에 인도를 따라 광화문 광장을 한 바퀴 도는 ‘함께하는 과학행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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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행진 참석에 앞서 참가자들은 과학행진의 공식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공간에서 “과학은 ____이다”라는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 전하는 릴레이 행사도 벌였는데, 공식 홈페이지에 기록된 참가자들의 한마디를 보면 과학에 관한 다양한 기대와 요구를 읽을 수 있다.


“과학은 미래이다.”

“과학은 꿈이다.”

“과학은 다양성이다.”

“과학은 변화이다.”

“과학은 소통이다.”

“과학은 사람이다.”

“과학은 합리성이다.”

“과학은 함께하는 사회이다.”

“과학은 행복한 삶이다.”

“과학은 희망이다.”


세계 각지에서 열린 과학행진은 미국 연구자와 시민의 워싱턴 행진을 지지하면서도 또한 지역마다 다른 현안과 관심사를 담았는데, 그러면서도 연구자들이 주체적인 목소리를 광장에서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과학과 사회, 과학자와 시민의 열린 소통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는 점 등은 대체로 지구촌 공통의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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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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