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령의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

인간의 과학과 기술인 뇌과학과 인공지능은 다시 ‘나, 너,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뇌과학 박사과정 송민령 님이 생명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의 모습을 전하면서 나, 너,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의 이야기를 독자와 나눈다.

감각을 확장·전송하며, 생명들 기계를 맞이하다

[12] 생명과 기계의 경계 ②: 흐려지는 경계  (①편에서 이어짐)


0011_2_1.jpg » 흐려지는 생명과 기계의 경계. 출처/http://www.thepressroom.gr/tehnologia/


난번 연재 글(“모방하며 진화하며, 기계들 생명에 다가서다”)에서는 기계가 생명을 모방하며 얼마나 생명에 가까워졌는지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생명이 어떻게 기계와 가까워지고 있으며, 이것은 인간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보자.


독자들이 변화를 실감할 수 있도록 여러 동영상을 링크했다. 제법 공 들여서 골랐으니, 여유가 있으면 보시기를 권한다. 강연 영상은 한글 자막이 있는 것들로만 골랐다.



생명에서 기계로 : 생명의 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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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에 맞춰 기계를 만들어내듯이, 목적에 맞춰 생명을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특히 유전자 가위 기술(크리스퍼; CRISPR) 덕분에 특정한 유전자를 수정하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더 수월해졌다.[1] 유전자 가위 기술로 유전자를 편집해서 만든 식품들은 이미 미국과 스웨덴의 식탁에 올라오기 시작했다.[2]


마 전에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사용하여 인간-돼지의 잡종 배아가 만들어졌으며, 이 배아는 인체에 필요한 장기를 생산하는 데 사용될 수 있으리라고 전망된다고 한다.[3] 중국에서는 2015년부터 인간 배아의 유전자 조작을 시도했으며, 윤리적인 문제로 망설이던 미국도 얼마 전 생식세포 연구의 빗장을 풀었다.[4]


또, 배아를 거치지 않고 실험실에서 장기를 만드는 기술(조직 공학; tissue engineering)이 발전하고 있다. 2015년에는 쥐의 다리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졌으며, 인간의 후두와 심장 등 다른 장기들의 생산도 연구되고 있다.[5] 필요에 맞는 생명 또는 생명 기관을 생산하는 기술의 발전은, 생명을 마치 기계처럼 느껴지게 한다.



생명에서 기계로 ⑵: 인공 의수(Prosth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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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생명이 어떻게 기계로 확장되는지 살펴보자. 뇌는 어떤 정보가 어떻게 뇌로 전해졌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어떤 정보든 들어오기만 하면 패턴과 쓸모를 찾아낸다. 인공 신경망이 수많은 개와 고양이 사진을 입력 받다 보면 개와 고양이를 구별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참조: 지난 연재 글 "인공지능과 우리뇌에서, 구별하기와 표상하기")


래서 혀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기이한 일도 가능하다 (아래 동영상). 브레인포트(BrainPort)라는 장치는 카메라로 촬영한 시각 정보를 약한 전기 자극으로 바꾸고, 우표 크기의 칩을 통해 혀로 전해준다. 그러면 뇌는 혀로 전해진 전기 자극을 시각 정보로 해석하는 방법을 점차 터득해 간다. 그래서 이 장치는 시각 장애인들이 세상을 볼 수 있게 도와준다. 심지어 이 장치를 사용해서 암벽 등반을 하는 시각 장애인도 있었다고 한다.


[ 유투브 https://youtu.be/HtBruklSNZk ]


좀 더 창의력을 발휘하면, 화성의 날씨나 주가 변동을 뇌에 전달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오랜 진화를 거쳐 새로운 감각 기관을 추가하지 않고도, 완전히 새로운 감각을 추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트위터에 오가는 감정 단어나, 드론의 비행 상태를 조끼의 진동을 통해 느낄 수 있도록 한 경우를 보여준다.


[ 유투브 https://youtu.be/4c1lqFXHvqI ]


어온 정보의 출처를 가리지 않고 쓸모를 찾아내는 뇌의 특징은 수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손발의 감각을 돌려주는 데 쓰일 수 있다.[6] 아래 동영상에서는 촉감에 관련된 뇌 부위에 로봇 손가락에 설치된 센서의 신호를 전달하는 전자칩을 이식한 경우를 보여준다. 훈련을 통해 뇌가 이 전기 신호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면, 로봇 손가락을 건드려도 피험자는 자기 손가락이 건드려진 듯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 유투브 https://youtu.be/A4BR4Iqfy7w ]


뇌는 가소성(구조와 기능이 유연하게 변하는 성질; plasticity)이 뛰어나므로, 신경세포와 무선으로 연결된 로봇 팔을 내 팔처럼 움직이는 법도 배울 수 있다.[7] 아래 동영상은 절단된 팔을 움직이는 데 쓰이던 신경세포의 전기 신호를 읽어들이고, 이 신호를 로봇 팔에 보내는 경우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서툰 환자들도 로봇 팔에 연결된 신경세포의 활동을 조절하여 로봇 팔을 다루는 방법을 점차 익히게 된다. 뇌 속 신경세포의 활동을 읽어들이고, 이 신호를 무선으로 외부 장치에 보내서 생각만으로 청소기나 화성 탐사선을 조종하는 날이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유투브 https://youtu.be/CDsNZJTWw0w ]


경세포가 어떻게 정보를 표상하는지(신경 부호화; neural encoding)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고, 신경세포의 활동을 읽고 해석하는 (신경 해독; neural decoding) 기술이 발전하면, 뇌와 외부 장치의 상호작용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특히 자기공명영상(MRI) 기기처럼 크지 않고, 전자 칩처럼 수술로 이식할 필요도 없는, 헤드폰처럼 쓰고 벗을 있는 신경 해독 장치는 게임과 치료 등 여러 분야에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 유투브 https://youtu.be/bposG6XHXvU ]



생명에서 기계로 ⑶: 뇌와 인공지능의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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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테슬라의 최고 경영자인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인공지능과 인간의 뇌를 연결하는 사업에 대해 발표했다.[8] 에스에프(SF) 영화 <공각기동대> 같은 이야기지만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 신경의 부호화와 해석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축적되고 있고, 인공지능이 이미 신경망의 활동을 모방하고 있으며, 신경망을 모방한 칩이 나오는 등,[9][10] 뇌와 인공지능의 호환이 수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11]


[ 유투브 https://youtu.be/-D_XrRo0h20 ]


스크의 주장처럼 뇌와 인공지능의 연결은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뒤쳐지지 않게 도와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극심한 빈부 격차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 악의를 가진 타인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국가에 뇌가 해킹 당할 위험도 생겨난다. 사회경제적 지위, 성별, 문화, 전공만 달라도 힘들어지는 사람 간의 소통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 종이기에 공유되던 감각 경험이 어떤 인공 장치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뇌에 전하는 정보의 양이 과도하면, ‘행위의 주체가 누구인지’, ‘나는 누구인지’ 가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다. 이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경계의 작동 양식을 바꾸는 약물, 정신 질환, 주변 환경은 인간의 행동 패턴에 영향을 끼친다. 이 때문에 행위의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법적 논란과, 자유의지와 자아에 대한 철학적 논란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참조: 지난 연재글 "맥락을 놓치기 쉬운, 만들어진 '자유의지 논란'"). 이 논란들은 뇌가 인공지능에 연결되는 상황에 이르면 훨씬 더 첨예해질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영역의 최고 전문가들은 로봇과 인공지능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이 기술의 혜택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받을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들의 열정에 끌려가기만 할 게 아니라 미리부터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기계와 생명을 혼동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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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인간이 아닌 것들도 거의 자동적으로 의인화한다. 오래 타던 자가용을 처분할 때면 웬지 모를 헛헛함을 느낀다. 로봇 청소기가 문턱에 걸려서 낑낑거리는 걸 보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그만 웃어버린다. 동물의 표정에 공감하기도 하고, 화분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동적인 의인화는 스크린 너머의 깡통 로봇조차 비껴가지 않는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본 사람이라면 과격한 농담을 하던 로봇 타스가 우주 저편으로 사라질 때, 등장인물이 사라지는 듯한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끄러운 로봇이 영화 말미에 다시 등장했을 때, 죽은 줄로만 알았던 등장인물과 재회한 듯한 반가움을 느꼈을 것이다.


하물며 인간과 교감하도록 만들어진 로봇은 말해 무엇하랴. 애완동물 로봇은 사용자의 어떤 행동에 대해서는 기쁜 반응을 흉내내고, 다른 어떤 행동에 대해서는 괴로운 반응을 흉내내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안다. 그런데도 대부분 사람들은 로봇의 괴로운 반응을 이끌어내는 행동을 하다보면 미안해져 버린다.


부실한 동물 로봇도 의인화 해버리는 사람들은 이제 인간인지 아닌지 구별하기도 힘든 로봇과 인공지능과 어울려 살아가게 되었다. 작년에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던 학생들은 질 왓슨이라는 조교가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몇 달 동안이나 알아차리지 못했다.[12] 작년에 중국에서 개발된 인간형 로봇 지아-지아(Jia-Jia)의 외모와 눈동자의 움직임은 제법 사람에 가깝다 (아래 동영상). 로봇이 이 정도로 사람과 비슷해지면, 로봇을 대하는 태도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 유투브 https://youtu.be/Tlv0iBLUWLA ]



로봇이 공감에 끼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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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게 아니라 로봇을 대하는 태도는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바꾼다. 자폐증 환자들은 애플의 가상 비서 쉬리와의 대화를 통해 일반인들과의 대화에도 능숙해진다고 한다. 아이들은 아마존의 가상 비서 알렉사와 놀다보면 버릇이 나빠진다고 한다. 알렉사에게는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고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핏 사소해 보이는 이 문제는, 공감이라는 중요한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 사람들은 움직이는 로봇을 망치로 부숴달라는 요청을 불편해한다. 하지만 공감 능력이 낮은 사람들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부순다고 한다. 로봇에 대한 폭력이 인간의 공감 능력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갈수록 인간을 닮아가는 로봇은 인간의 무의식에서 거의 자동적으로 의인화 됨에도 불구하고, 사유재산이다. 소유자의 마음대로 때려도 되고, 핸드폰 기종을 바꾸듯 폐기해도 되는 것이다. 버려진 마네킹만 봐도 마음이 불편한데, 사람을 닮은 로봇을 때리거나 폐기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반복하다 보면 인간에 대한 공감도 무뎌지지 않을까?


[ 유투브 https://youtu.be/k7NNK-nQquo ]


사이코패스의 범죄, 나치의 인종청소, 르완다 사태처럼 경악스러운 폭력은 공감 부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상대방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여기지 못하면 (비인간화)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다.[13][14] 로봇을 향한 태도가 인간에 대한 공감에 영향을 끼친다면, 로봇에게 의식이 없더라도 로봇의 권리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유럽연합에서는 로봇을 전기 인간으로 보고, 로봇의 권리와 세금, 윤리를 고려한 법규를 마련하자는 이야기가 작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15]



인간의 가치,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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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권리를 고려해야 하는 것과는 반대로 인간의 가치는 절하될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노인 요양원이나 보육원의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로봇을 고용하면 어떨까? 서비스 직원들을 내보내고 로봇을 고용하는 건 어떨까? 비용-편익 면에서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선택의 이면에는 인간을 정성이 아닌 효율로 관리해도 괜찮다는 생각, 인간은 대체 가능한 존재라는 생각, 어떤 면에서는 인간이 로봇보다 가치가 덜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런 생각이 사회 곳곳을 바꾸며 번져가면, 로봇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인간이 인간이 아니기를 강요받는 세상이 진짜로 올 수도 있다. 마침내 갈라테이아를 만들었는데 그 갈라테이아가 피그말리온 따위는 상대하지 않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진보의 추구는 현재에 대한 불만에서 출발한다. 신화 속의 피그말리온도 자기 주변의 여자들이 싫었기 때문에 갈라테이아를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보다 ‘진보한’ 존재의 기준에서 보면, 현재에 머물러 있는 존재가 부족하지 않겠나.


0011_1.jpg » 인간은 왜 인형을 만들까? 왼쪽부터 장 제롬이 그린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1890년). 미켈란젤로의 모세상(16세기), 글쓰는 자동인형(18세기), 중국의 최신 인간형 로봇 지아-지아(Jia-Jia, 21세기). 그리스 신화 속의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인을 조각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극한 정성으로 이 여인상을 갈라테이아라는 여인으로 변모시켰다. 미켈란젤로도 피그말리온처럼 혼을 바쳐 모세상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미켈란젤로가 “너는 왜 말하지 않느냐”라고 한탄하며 모세상의 발을 끌로 찍은 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만드는 공학자들의 마음도 미켈란젤로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출처/ wikimedia, youtube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 부족과 인공지능에 대한 통제 불능 상황을 우려한다.[15]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이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business as usual) 그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상이변, 인구 증가, 물과 식량의 부족, 새로운 전염병의 등장 등 지구 단위의 문제들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심해지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16][17] 더 넓은 맥락에서 다르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근대 사회는 인간과 여타 생물을 구분하여 인간을 우위에 놓고,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여 생물을 우위에 두었다. 그리고 우위에 선 자가 아래쪽에 있는 자를 지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기후 변화를 초래하고, 제3세계에 가난과 분쟁의 씨앗을 심은 제국주의와 자유주의에 이런 사고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우열을 가르고 적자생존에 따르는 사고는 숨가쁘게 질주하는 기술 경쟁의 엔진이기도 하다.[4]


런데 이렇게 계속 질주하다보니, 무생물이었던 로봇이 인간을 능가하면서 대다수 인간들이 졸지에 먹이사슬의 최상위에서 무생물보다 못한 위치로 내려가게 되었다. 일론 머스크처럼 기술로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대응 방법의 하나다. 하지만 여기쯤에서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우열을 매기고 경쟁하기보다는 공존하는 방법을. 가장 낮은 곳에 있던 무생물을 존중함으로써 모든 인간을 존중하고, 생태계도 존중하고, 존재하는 것들을 소중히 대하는 방법을. 그래서 다양한 생명과 무생물이 공존하는 지구에서 지속가능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출처와 각주]


[1] Doudna JA & Charpentier E (2014) Genome editing. The new frontier of genome engineering with CRISPR-Cas9. Science 346:1258096.

[2] 유전자 가위 편집 작물 안전성, GMO와 다를까. (한겨레 2017.01.25)

[3] Sara Reardon. Hybrid zoo: Introducing pig–human embryos and a rat–mouse (Nature 2017.01.26)

[4] '윤리 논란'은 옛말...美도 인간 생식세포 연구 빗장 풀었다 (서울경제 2017.02.16)

[5] World’s first biolimb: Rat forelimb grown in the lab. (New Scientist 2015.06.03)

[6] Anikeeva P & Koppes RA (2015) Restoring the sense of touch. Science 350:274-276.

[7] Reardon S (2015) The military-bioscience complex. Nature 522:142-144.

[8] Elon Musk wants to merge man and machine with Neuralink (Wired 2017.03.28)

[9] https://www.youtube.com/watch?v=nyLYQYHGbvI

  신경망을 모방한 칩(Neuromorphic chip)을 개발하는 보아헨(Boahen) 박사는 아프리카 출신이다. 정보를 융통성 없이 일렬로 처리하는 중앙처리장치를 보며, 컴퓨터에는 아프리카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는 부분이 아주 인상깊었다. 흑인들이 음악에 재즈를 도입하는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컴퓨터는 이성을 중시하고 직선적으로 사고하던 근대 유럽인의 인식을 반영하여 만들어졌다. 당연히 유럽과는 다른 세계관과 문화적 토양을 가진 아프리카인의 시각에는 컴퓨터가 어색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에 '아프리카를 추가하여' 더 우수한 칩을 개발했다.

  이런 이유에서 선진국인 유럽과 미국의 세계관만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서아시아와 인도의 과학도 발전하고 있다. 북미와 서유럽과는 다른 세계관이 과학에 들어올 때, 과학이 얼마나 풍성하고 다채로워질지 기대된다. 우리 문화도 그들 중의 하나이기를 바란다.

[10] Xu W et al. (2016) Organic core-sheath nanowire artificial synapses with femtojoule energy consumption. Sci Adv. 2:e1501326.

[11] Pennisi E (2016) Robotic stingray powered by light-activated muscle cells. (Science 2016.07.07)
http://www.sciencemag.org/news/2016/07/robotic-stingray-powered-light-activated-muscle-cells

[12] 조지아텍 조교 '질 왓슨' 신분 들통나 (로봇신문 2016.05.10)

[13] 필립 짐바르도. 루시퍼 이펙트: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웅진 지식하우스 (2007)

[14] David Eagleman. The brain: the story of you (2015)

[15] Robots could become 'electronic persons' with rights, obligations under draft EU plan (CNBC 2016.06.21) ; 아마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과 기계와의 전쟁, http://www.ttimes.co.kr/view.html?no=2017020914317733793

[16] 선제적인 기후변화 대응이 곧 국가안보다 (중앙선데이 2017.02.12)

[17] 월드워치연구소. 지속가능성의 숨은 위협들: 2015 지구환경보고서. 도요새 (2015)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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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빗소리를 좋아하고, 푸름이 터져나오는 여름을 좋아합니다. 도파민과 학습 및 감정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뇌과학이 나를 이해하고, 너를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 되기를, 우리가 이런 존재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문이기를 바랍니다.
이메일 : ryung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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