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연의 "우리 과학관 문화. 지나온 길과 갈 길"

과학자 아닌 보통 사람들이 과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이 시대에 ‘과학 하기’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과학관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 국립과천과학관 학예연구사인 필자는 과학관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관람 필수품 연필과 수첩’은 옛말…과학관은 변화중

[1] ‘과학관은 어떤 곳인가’ 그 생각의 시작


00sciMuseum2.jpg » 국립과천과학관의 자연사관에 마련된 '생동하는 지구 SOS' 전시물. 출처/ 국립과천과학관, http://www.sciencecenter.go.kr/scipia/



“무슨 일 하세요?”

“저는 과학관에서 일해요.”

“아, 과학관이… 뭐하는 곳이죠?”


내가 과학관에서 일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뉜다. 대부분은 어릴 적 과학관에 한두 번 갔던 기억으로 대화를 이어나가지만, 과학관을 아예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과학관’을 전공했던 나로서는 처음에는 이런 상황이 조금 충격이었다. 하지만 곧 내가 그동안 너무 좁은 세상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과학관은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곳이 아니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고 말하는 편이 오히려 더 맞을 것이다. 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조차 과학관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경우도 많았고, 아예 과학관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었다.


반면 과학관에 익숙한 그룹은 정해져 있었다. 집에 아이가 있는 부모님들,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아이들. 다행히 대다수의 학교에서 과학관 체험 활동이 정례화 되고 있고, 학교 밖 교육 장소로 과학관의 효용성이 알려지면서 부모님과 함께 정기적으로 과학관을 찾는 아이들이 꽤 생겨났기 때문이다.



어린이 과학 공부 위한 공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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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과학관을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학관을 ‘어린이들의 과학 공부를 위한 공간’ 쯤으로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관을 아이들 때문에 혹은 본인의 어린 시절에 경험했기 때문이다.


연 그럴까? 과학관은 영어로 “사이언스 뮤지엄(science museum)”으로, 뮤지엄의 여러 유형 중 하나이다. 미술관(art museum), 역사박물관(history museum)처럼, 과학관은 과학을 소재로 한 박물관일 뿐 어린이 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심지어 어린이를 위한 박물관은 “칠드런스 뮤지엄(children’s museum)”이라 하여 별도 기관으로 존재하며, 우리나라에는 삼성어린이박물관(1995년~2013년), 경기도어린이박물관(2011년 개관) 등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과학관을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이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20세기 과학관의 미션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20세기 과학관은 기본적으로 어린이의 학교 밖 과학교육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최근 10년 간 미국과 유럽 과학관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학관을 즐기는 성인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학에 관심을 갖는, 혹은 가져 보려는 중장년층뿐 아니라 노인층의 참여도 점차 늘고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커플이 손을 꼭 붙잡고 전시물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모습은 이제 더이상 새로운 풍경이 아니다.


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런 변화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서구에 비해 과학관의 역사가 매우 짧다. 미국이나 유럽은 100년이 넘는 과학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데 비해[1] 우리나라에서는 그 역사가 겨우 약 45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2] 심지어 그 짧은 역사에서 약 20년 동안에는 우리나라에 오로지 단 하나의 국립과학관만 존재했다. 창경궁 옆, 3000여 평에 불과한 국립(서울)과학관(1972년~2015년, 1990년 국립과학관에서 국립서울과학관으로 명칭 변경)이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다수가 경험한 유일한 과학관인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종합과학관(국립중앙과학관, 대전 소재)은 그로부터 약 20년 뒤 1990년에, 세 번째 종합과학관(국립과천과학관, 경기 소재)은 그로부터 또 약 20년 뒤인 2008년에 생겨났다. 물론 1980년대부터 크고 작은 과학관들도 조금씩 생겨났고, 특히 2010년 전후로는 전국적으로 과학관 수가 크게 늘어나 종합과학관이 감당해야 할 역할과 무게가 조금씩 분산되기 시작했지만, 우리나라에 과학관이 들어온 이후 꽤 오랜 동안 많은 사람들이 한두 개의 과학관에 의존해왔음은 자명한 일이다.[3]


그렇다보니 우리나라는 과학관이 어떤 곳인지 생각해볼 시간도, 우리 사회에 이를 받아들일 시간도,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게 흡수시킬 시간도 매우 적었다.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이 쌓여 서서히 단단해진 미국과 유럽의 과학관 문화에 비해, 우리는 이들의 문화를 표면적으로 가져오는 데 급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대 거듭하며 점차 달라지는 관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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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과학관 역사에서 큰 축을 담당한 국립과학관 세 곳이 이렇게 약 20년의 간격을 두고 생겨나다보니, 재미있는 현상도 있다. 사람들을 만나보면 세대에 따라 기억하는 과학관이 현저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00sciMuseum.jpg 경궁 옆 국립(서울)과학관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장년층이다. 반면 대다수의 20~30대 청년층은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 대한 기억이 강하다. 상대방이 말하는 과학관의 이름만 듣고도 대충 그 사람의 나이대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20년이라는 기간은 세대 간 경험을 구분해주기에 매우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국립(서울)과학관을 기억하던, 국립중앙과학관을 기억하던, 사람들의 경험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과학관을 관람하던 방식이다. 당시 과학관을 방문할 때 필수 준비물은 연필과 수첩이었다. 그리고 공부를 좀 잘 한다 하는 학생은 수첩에 참 많은 내용을 적어왔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은, 학생들이 전시물에 따닥따닥 붙어 서 있던 장면이다. 당시 학생들은 전시물보다 전시물에 붙은 패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고, 과학관에서 많은 시간을 패널에 쓰인 글을 열심히 베껴적는 데 썼다. 이들에게 과학관은 열심히 공부하는 곳이었다. 그것도 당시의 주입식 학습 방식대로, 최대한 많은 양의 정보를 가져와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과학관을 관람하는 방식이자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금의 대다수 부모 세대들이 가졌던 우리나라의 1세대 과학관 문화인 것이다.


금의 어린이, 청소년 세대는 이때와는 매우 다르게 과학관을 대하고 있다. 대부분 전시장 안에서 자기가 원하는 전시물을 찾느라 바삐 돌아다니고, 전시물이 담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전시물과 씨름을 한다. 물론 과학관에 얼마나 자주 왔는지에 따라 이런 관람 방식에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패널을 베껴쓰는 아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어디부터 이런 변화가 생겨났을까? 가장 큰 요인은 2000년대 이후 과학관이 양적으로 증가했다는 데 있다. 과학관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과학관에 대한 경험도, 과학관을 만드는 사람들의 생각도 조금씩 다양해진 것이다. 그런 다양한 생각과 경험들이 쌓이면서 우리의 과학관 문화도 조금씩 성숙해지고 무르익어가고 있다.



‘일반인이 과학을 안다는 것’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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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우리는 더 큰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2010년 이후 인천, 대구, 광주, 부산 등 대규모 종합과학관이 갑자기 대거 생겨났고, 서울 또한 당장 서울시립과학관과 국립어린이과학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는 등 과학관의 양적 변화가 더욱 확연하게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4] 그리고 어느샌가 우리 사회에서 더욱 더 적극적인 과학 대중화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급변하는 과학기술사회를 살아나가기 위해, 대중이 과학을 알아야 할 이유가 계속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래서 이 연재를 시작하려고 한다. 앞으로 다가올, 그리고 더욱 중요해질 과학관 문화를 잘 형성하기 위해, 우리는 과학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일반 사람들이 과학을 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한 번쯤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연재가 과학관을 만드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과학관을 즐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한번쯤 생각을 정리해볼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주]


00sciMuseum3.jpg [1] 서구의 과학관 역사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뮤제이온(museon)’에서 출발한다. 이때부터 조금씩 형태를 달리하여 발전해온 것이 지금의 과학관들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왕실이나 귀족의 수장고 형태가 아닌, 대중을 상대로 한 공공 과학관이 등장한 19세기를 기준으로 잡았다. (대표적인 근대 과학관으로 1857년에 설립된 영국 런던과학관, 1864년에 설립된 미국의 보스톤과학관 등이 있다.)

[2]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의 과학관 역사를 국립과학관이 정식 개관한 1972년을 기준으로 잡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과학관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일제시대 때이다. 1925년 일본 천황이 자신의 결혼 25주년을 기념하여 조선총독부에 은사금 17만 원을 내렸는데, 당시 조선총독이었던 사이토 마코토가 이 은사금으로 옛 조선총독부 건물(현재의 중구 예장동)을 활용하여 ‘은사기념과학관(1927년~1945년)’을 개관한 것이 우리나라 국립과학관의 모태이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이를 그대로 이어받아 ‘국립과학박물관(1945년~1950년)’이 재개관 하였으나, 이를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관으로 볼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개관 5년 만에 한국전쟁으로 모든 시설물이 불에 타버려 과학관 자체의 역사가 매우 짧은 데다, 식민지 시대 과학관인 은사기념과학관을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국립과학관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선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전쟁으로 자료가 거의 모두 소실되어 이후 건립된 국립과학관에 이관된 자료도 거의 없기 때문에, 이를 국립과학관이 아니라 은사기념과학관이 명칭만 바꾼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이후 국립과학관은 창경궁 옆(현재의 종로구 와룡동)으로 터를 옮겨 1962년 약 200여 평의 작은 규모로 문을 열었고 이후 10년이 지난 1972년 약 3000여 평 규모의 본관 건물이 들어서면서 정식으로 개관하였다. 참고자료: 정인경, 2005, 은사기념과학관과 식민지 과학기술, 과학기술학연구 5(2) pp.69-95 ; 국성하, 2013, 국립박물관 체제 형성과 박물관 내 교육의 변화, 한국교육사학 35(4) pp.1-32.

  이러한 역사를 놓고 우리나라 과학관 역사의 시작을 언제로 봐야 할지는 아직 논쟁 중에 있다. 국립서울과학관(국립과학관은 1990년 국립중앙과학관이 개관하면서 국립서울과학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은 스스로 194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공표하고 있으나, 혹자는 와룡동 시대가 시작한 1962년을, 또 다른 혹자는 정식으로 상설전시관이 들어선 1972년을 공식 개관 시점으로 봐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우리나라 과학관 역사의 정확한 시점에 대해 논의한다기보다 거시적인 의미에서 과학관 문화가 형성된 시점, 즉 사람들이 과학관을 본격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시점에 집중하였기 때문에, 국립과학관이 제대로 대중에게 선뵌 1972년을 그 기준으로 판단하였다.

[3] 1990년에 개관한 국립중앙과학관보다 앞서 농업과학관(1983, 전주), 국립등대박물관(1985, 포항), LG사이언스홀(1987, 서울), 국립수목원(1987, 포천) 등이 개관하였고, 국립과천과학관이 개관하기 전까지 국립수산과학관(1997, 부산), 서대문자연사박물관(2003, 서울), 서울시과학전시관(2004, 서울), 국립생물자원관(2007, 인천) 등 크고작은 과학관들이 대거 설립되면서, 1980년에는 국립과학관 1곳에 불과했던 국내 과학관 수가 2008년에는 총 72개로 증가하였다. 그렇지만 전시와 교육, 연구 기능을 갖춘 종합과학관은 이 중 국립(서울)과학관, 국립중앙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 세 곳에 불과하다.참고자료 송성수, 2010, 과학관의 사례와 발전방향,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정책자료 pp.1-54.

[4] 국립광주과학관과 국립대구과학관은 2013년에, 국립부산과학관은 2015년에 개관하였으며, 서울시립과학관과 국립어린이과학관은 2017년 개관을 앞두고 있다.


윤아연 국립과천과학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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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연 국립과천과학관 학예연구사
우리 사회에서 과학관은 생각보다 꽤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과학관의 의미와 가치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느끼길 소망한다. KAIST에서 과학커뮤니케이션을, 그중에서도 과학관과 과학전시를 전공했다. 현재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으며, 국립과천과학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있다.
이메일 : anastar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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