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숱한 과제에 시달리고 퀴즈에 쫓기고 실험실에서 죽치는 생활엔 힘겨움과 고민도 숨어 있지만 이공계의 젊음은 여전히 팔팔하고 꿈도 많다. 다양한 갈래의 이공학도들이 그 희노애락의 이야기를 전한다.

“한편으론 억울했다, 왜 이공계에선 인문학을 배울 수 없었나”

윤기성의 “이공계 대학생, 우리 삶의 이야기”

 고등학교 이과를 졸업하고 대학 화공과에 들어와 어느덧 졸업학년을 맞이한 윤기성 님이 이공계 대학생들이 흔히 겪는 삶의 경험과 고민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 이공계 대학생. 우리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gettyimagebank.jpg » 출처 / gettyimagebank.com, iStock










“이공계 대학생”이라는 말을 들을 때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흔히 컴퓨터를 잘 다룰 것만 같은 공대생을 떠올리지는 않았나요. 만일 그렇다면 이공계 대학생들은 난감해질 겁니다. 자연계열은 공대와 거리가 멀고, 공대생이라고 다들 컴퓨터를 잘 다루는 것도 아닙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통상적으로 “고등학교 이과를 나와서 공학, 이학, 통신, 생명 계열 등에 진학한 대학생”을 말하겠지만, 그렇게 분류하기에는 폭이 참 넓습니다. 진로도 대학원 진학부터 취업, 창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문계 대학생”과 비교해보면 뭔가 알듯알듯한 공통점이 보입니다. 바로 이 “이공계 대학생”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이공계의 대학 생활…새로움과 답답함

저는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나와 공과대 화공학과로 진학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정시’ 모집 인원이 ‘수시’보다 많을 때였고 “수리 과목의 한 문제만 더 맞추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수리영역과 과학탐구영역만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은 신세계였습니다. 동기라고 나이가 꼭 같지 않을 수 있고, 선생님 아닌 교수님이 계시고, 사람 간의 관계가 굉장히 다양해졌습니다. 많은 것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 어렵지만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신기함은 주로 관계의 영역이었고, 수업은 기대보다 식상했습니다. 18학점 중에 물리, 화학, 미적분, 대학영어, 글쓰기 등 전공 관련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15학점을 신청해야 했습니다. 교양은 남은 3학점 중에서도 시간대에 맞는 것 하나를 간신히 듣는 수준이었네요.


그것조차도 나중에는 공부보다는 학점을 목적으로 소위 “꿀교양”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뿐인가요, 학점은 1학점에 불과하지만 리포트 작성 시간을 합치면 이수시간이 주 10시간은 훌쩍 넘는 실험 과목을 이수하고, 수업 외에 조교수업, 문제풀이를 하다 보면 정말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내가 정말 이런 공부를 하려고 대학에 온 걸까? 전공이 자기랑 잘 맞다는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습니다.


캠퍼스의 낭만, 듣고 싶은 교양, 대학 축제. 그러한 것들은 주로 인문계 친구들의 몫인 듯했습니다. 저희 학교는 심지어 인문계 캠퍼스랑 이공계 캠퍼스가 분리되어 있었고, 축제 기간에도 시험을 적어도 2과목이나 치러야 했던 기억이 나니, 축제와 낭만은 먼일처럼 여겨졌습니다. 학과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시험을 중간 기말이 아닌 3차 혹은 4차로 보는 전공이 2-3개만 돼버리면 3월 이후에는 종강때까지 매주 시험을 보기도 합니다.


photo1.jpg »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을 얘기한 C.P.스노우의 책 <두 문화>. 내게는 인문계와 이공계로 이해되었다. 그런 와중에 문득 생각해보니 대학에 들어와서 1년 동안 수업 관련 서적을 빼고는 다른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저 나름 대로 도서부에서도 활동하고 책도 열심히 읽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그다지 특이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이공계 대학생” 친구들의 삶이 저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요.


이런 대학 생활에서 동아리는 제가 숨 쉴 곳이 되어주었습니다. ‘인문학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저는 생각의 울타리를 넓힐 수 있는 이공계 학술동아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과학기술학을 공부하면서, 대학교에 들어올 때 기대했던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인문학이 사람을 공부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저를 둘러싼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은 왜 일어날까?’ ‘대학과 과학기술의 상업화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누구를 위한 과학기술인가?’ 이런 질문과 토론들이 참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 억울했습니다. 왜 나는 동아리에서 개인적으로 공부하기 전에는 이런 것들을 알 수 없었을까? 나름 교과과정을 열심히 따라왔는데, 이러한 것들을 왜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때의 관심은 그저 ‘어떻게 하면 수능 점수를, 특히 수학 점수를 조금 더 잘 받을 수 있을까’였고, 대학에 와서는 수능 점수가 학점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렇게 진학이나 취업을 하고 나면, 나중에는 그러한 기회가 있었을까? 사회와 정치에 무관심한 외눈박이가 되지는 않았을까. 그제야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왔던 학과의 공부를 즐겁게 하는 것이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공계 대학생의 삶을 이야기해 봅시다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이하 과정남, http://www.podbbang.com/ch/7549)’라는 팟캐스트가 있습니다. 운영자이신 두 분께서 인터뷰 형식으로 과학기술계 종사자 분들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몇몇 인터뷰를 정리해서 책자도 펴냈습니다 (http://www.esckorea.org/article/data_view/275). 앞서 말씀드렸던 이공계 학술동아리에서 새내기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과 멘토링 등의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 팟캐스트의 운영진 한 분을 모시고 강연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대학원생들의 삶과, 대학원 이후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이후에 든 생각은 ‘그렇다면 이공계 대학생, 즉 학부생들의 삶은 어떠할까?’였습니다. 뉴스에서는 흔히 ‘이공계 기피’ ‘이공계 인재유출’ ‘의치학 편입’ 등을 이야기합니다. 이를 이공계 ‘위기’라고 정의하여 ‘도전’하라며 여러 대책들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의 위기’이며 ‘누구를 위한 대책’인가요? 논의 과정에서도 주로 대학원 이후의 이야기가 많이 보이고, 학부생들의 이야기나 시선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이공계 대학생의 눈으로 보면, 고등학교 때는 수학, 과학만, 대학에 와서는 전공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몰아세우는 분위기에서, 이에 더해 ‘창의성’ 이나 ‘도전정신’ 까지 갖추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인문·사회과학 공부를 할 기회를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볼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이공계 대학생이 과연 사회에 나가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어제까지만 해도 “그게 성적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 해놓고, 오늘에 와서 “이 정도 교양은 있어야지”라고 말한다면 부당하게 느껴집니다.


photo2.jpg » 한때 스티브 잡스를 예로 들며 이공계에 인문학 붐이 일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수학과 과학 공부, 대학교 때에는 전공 공부에 허덕이다 보면, 인간과 사회에 무관심한 외눈박이가 되기 십상입니다. 취직을 하고 사회에 나가서는 기업 이윤 추구의 도구로서, 하나의 작은 톱니바퀴 같은 부품처럼 살지도 모릅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연구원의 길을 걷는것도 쉽지는 않아보입니다. 전공을 살리고 싶다면 석사로도 부족하고 박사는 기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박사를 수료한 이후에는 어디로 가야하나요? 해마다 시장으로 나오는 인원은 늘어나는데, 이들이 취직할 자리는 충분할까요. 일자리 문제, 비정규직 문제가 이공계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박사까지 적어도 10년은 넘게 걸릴텐데 미래는 불투명하게만 보입니다.


마냥 암울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불투명한 미래이지만, 이공계 대학생들은 정말 열정이 많은 친구들이라 생각합니다. 수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공부를 하고, 어려운 공부와 과제를 묵묵히 해내는, 스스로 쌓아온 공부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공계 대학생들의 삶이 마냥 힘들다, 어렵다가 아닌 실제로 어떠한지, 왜 그러한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러한 질문과 이야기들이 많아지고 공론화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저는 이공계 대학생들의 삶의 이야기, 그들만의 특징, 그들을 둘러싼 환경, 나아가 이공계 대학생이 바라본 과학기술과 사회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때로는 주관적인 경험이 담기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인터뷰가 될 수도 있으며, 과학기술학, 과학사, 과학철학 등을 학부생의 시선으로 바라본 내용도 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졸업 학년인 올해, 마지막 남은 학창 시절을 정리해보며 이공계 대학생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목소리에 대해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윤기성 고려대 학부생(화공생명공학과)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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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성 고려대 학부생 (화공생명공학과)
졸업을 앞둔 학부생입니다. 이공계 대학생 학술동아리를 해왔습니다. 이공계 대학생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목소리를 나누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메일 : paranhanl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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