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의 "여덟 갈래 정책 산책"

과학기술정책은 과학기술인의 더 나은 연구환경에 중요하며 또한 우리 사회의 더 나은 발전에 중요합니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 있는 여덟 명 필자들이 과학기술을 위한 정책, 더 나은 사회 정책을 위한 과학기술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과학기술을 위한 정책, 정책을 위한 과학기술

[1]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는 왜 ‘정책’을 이야기하나


IMG_0599-2.jpg » 여덟 갈래 정책 산책을 연재할 여덟 명의 필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윤기준, 강연실, 박준혁, 선인경, 조승희, 신희선, 김규리, 김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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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술정책을 연구한다고 내 소개를 하고 나면, 그래서 어떤 연구를 하냐고 되묻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시민들은 물론이고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에게도 과학기술정책 연구가 낯선 영역에 머물러 있다는 하나의 증거일 것입니다.



과학기술정책, 그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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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책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기 전에 ‘정책’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국립국어원은 정책을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방책”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의가 정책이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것임을 강조한다면, 정책을 뜻하는 영어 단어 ‘policy’의 사전적 정의는 ‘행동’과 ‘원칙’을 강조합니다.


<옥스포드 사전>은 ‘policy’를 개인 혹은 단체가 채택하거나 제안한 일련의 행동(course of action)이나 행동의 원칙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미리엄-웹스터 사전>은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여 여러 선택지 중에서 내려진 결정이라는 점, 그리고 많은 경우에 정부의 계획을 일컫는다는 점을 덧붙여 ‘정책’을 정의합니다. 사전적 의미가 사전마다, 그리고 한국어일 때와 영어일 때 조금씩 다른 뉘앙스를 갖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brooks2.jpg » 하비 브룩스(Harvey Brooks, 1915-2004). 출처/ http://www.nasonline.org/publications/biographical-memoirs/memoir-pdfs/brooks-harvey.pdf ‘정책’의 사전적 의미에 비추어 볼 때, 과학기술정책은 과학 지식과 기술의 생산과 이용에 관해 정부가 계획한 행동이라고 넓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과학기술정책 연구자였던 하비 브룩스(Harvey Brooks, 1915-2004)는 과학기술정책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한 가지는 과학을 위한 정책(policy for science)입니다. 과학과 기술 연구를 촉진시키는 전략과 연구지원체계에 대한 정책들로, 각종 연구비 지원정책이나 과학기술 인력정책, 혹은 행정조직 체계 개편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다른 하나는 정책을 위한 과학(science for policy)입니다.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정책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과학기술의 지식이 필수적으로 활용되는 측면을 뜻합니다. 보건정책이나 환경규제가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겠습니다. 나아가, 과학기술을 활용한 사회문제 해결,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변화에 대한 예측과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법적, 사회적, 윤리적 규제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절반에 그친 과학기술정책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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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스의 범주로 나누어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논의는 ‘과학을 위한 정책’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을 이끌 주요 도구로서 과학기술 개발을 촉진하고자 하는 정책들이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간 한국사회에서 중요했던 과학기술정책을 ‘경제를 위한 과학’을 위한 정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을 명시적인 목표로 하는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고 있지만, 대통령 선거를 맞아 과학계 안팎에서 활발해진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연구개발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가지 사례를 살펴볼까요? 지난 3월 공학한림원은 차기 정부를 위한 정책제안을 담은 정책 총서를 발간하였습니다.  이 총서를 통해서 공학한림원은 세계경제와 한국경제가 공히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측면에서 변곡점을 맞이”한 위기 상황이며, 한국은 과학기술, 법과 제도, 기업가의 “공진화”를 통해 이 위기를 “기회의 창”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수단으로 공학한림원은 과학기술 관련 행정 조직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정부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여 “관료형 정부”에서 “파트너형 정부”로 정부가 탈바꿈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청와대 직속 기관으로 국가미래전략실을 설치하고,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행정자치부, 교육부 등의 기능을 재편하여 가칭 산업혁신부, 미래연구부, 고용학습부 등을 신설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공학한림원이 외부의 위험 요인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책들을 제안했다면,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단체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내부의 위험 요인, 즉 과학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에 더 집중합니다. ESC는 지난 2월 과학기술인과 시민이 참여하는 “과학기술 지원정책 타운미팅”을 갖고 대선 주자들에게 던지는 열 가지 질문을 도출하였습니다. 이 질문들은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대선 주자들의 기본 철학과, 정부 출연연이나 기업과 같이 그간 과학기술계의 주요 행위자로 여겨졌던 이들 외에도 청년과학기술자, 신진과학기술자, 과학기술소수자와 같이 다양한 과학기술인을 지원하기 위해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공학한림원의 정책 제안과 ESC의 질문들은 공통적으로 과학기술 연구개발이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는 정책들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브룩스가 이야기 한 ‘과학을 위한 정책’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과학기술계 안팎의 문제점이 무엇이며, 과학기술 연구가 “더 잘”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르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과학을 위한 정책’은 우리 미래의 모습을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절반의 과학기술정책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은 자칫 과학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는 주장을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은 객관성을 무기로 정치적 이념과 관계 없이 지원을 받고 있으며, 정치적 중립은 역설적이게도 과학기술계가 내건 '정치적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실제로 가치중립적인가에 대해서는 따져봐야 할 문제입니다. ‘정책을 위한 과학’이 중요한 이유는 주장된 중립성과 객관성의 이면에 과학기술이 품고 있는 가치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로 과학기술이 어떤 정책적 결정을 위해 어떻게 쓰이고 있으며, 어떤 가치를 구현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policy.jpg » 출처 / (왼쪽) 공학한림원 홈페이지 https://www.naek.or.kr/home_kr/content.asp?page_no=050101&Lang_type=K&VIDX=5381, (오른쪽) ESC 홈페이지 http://www.esckorea.org/about/notice/321



과학, 기술과 사회의 가치를 이야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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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여덟 갈래 정책 산책”의 필자들은 독자 여러분과 함께 다양한 과학기술정책의 갈래들을 산책하려고 합니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인 필자 여덟 명의 연구 관심사도, 연구 방법도 저마다 다릅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은 모두 과학의 진흥과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는 정책만큼이나, 과학기술이 초래하는 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과 과학 지식에 기반하여 내린 정책도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또, 과학기술과 정책의 다양한 접점들을 함께 살펴볼 때, 과학기술이 우리사회에서 갖는 가치와 과학기술을 통해서 우리사회가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희가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에 함께 글을 기고하기로 한 가장 큰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희는 앞으로 연재할 글 속에서 과학기술정책의 두 측면을 모두 들여다 보려고 합니다. 각 글의 주제는 주로 필진의 연구 관심사를 바탕으로 선택하였고, 그중 일부는 필자들의 학위 논문 연구의 일부를 재구성하여 연재할 예정입니다. 열심히 자료를 읽고, 분석하고, 토론하고, 때로는 직접 발로 뛰어 엮어 낸 생생한 과학기술정책의 면면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독자들에게 조금은 낯설고 새로운 과학기술정책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학술적 언어에 머물러 있던 연구를 다양한 독자들과 나누는 경험은 젊은 연구자인 저희에게도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함께 과학, 기술과 사회의 가치를 고민하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자료]


Harvey Brooks, “The Scientific Advisor,” in Robert Gilpin and Christopher Wright eds., Scientists and National Policy Making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64), pp. 73-96.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은 “과학기술 헌법 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라는 제목으로 2017년 2월 22일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 내용에 대해서는 변지민, “헌법에서 ‘과학기술’이 ‘국민경제’와 헤어질 수 있을까?”, 동아사이언스(2017.3.3.) 참조, http://www.dongascience.com/news.php?idx=16928

한국공학한림원, “기회의 창을 여는 대한민국: 기업가형 개방국가, 학습하는 혁신사회”,

 https://www.naek.or.kr/home_kr/content.asp?page_no=050101&Lang_type=K&VIDX=5381

“과학기술지원정책 타운미팅”에 대해서는, 오철우, “‘수평토론’ 트이니 다양하고 생생한 과기정책 목소리들이…” 사이언스온(2017년 2월 27일) 참조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79&page=2&document_srl=495671 . ESC의 타운미팅에서 도출된 질문과 이에 대한 대선 주자의 답변은 ESC 홈페이지 참조, http://www.esckorea.org/about/notice/325


강연실 카이스트 박사후연구원 (과학기술사회정책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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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실 강연실 가톨릭대학교 박사후연구원(과학기술정책)
과학기술학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정책을 연구합니다. 박사학위논문에서는 석면을 둘러싼 환경보건운동과 보상정책의 양 측면에서 과학지식의 생산과 활용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연구자로서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메일 : fmlm66@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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