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공학 배움의 길에서 마주친, ‘나’에 관한 물음들
이상엽의 “로봇공학도, 대학원 입시 앞에서”
로봇공학자를 꿈꾸는 이상엽 님이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며 겪는 경험과 고민을 독자들과 나눈다. 도움 되는 진학 정보와 더불어, 자신을 돌아보며 삶의 길을 선택하는 문제, 학문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 같은 생각거리도 던져준다.
[1] 질문의 시작
» 길과 이정표. 출처/ Wikimedia Commons
대학교를 다니다보면 자연스럽게 박사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 고민을 시작하니 지금까지 품었던 막연한 생각과 현실의 괴리는 엄청났다. 대학원은 쉬운 곳이 아니었고, 대학원생 선배들은 평범한 형·누나들이 아니었고, 대학원을 진학하겠다는 결심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대학원이 나의 길인지 고민이 되었다.
대학교 3학년 ‘로봇학입문’ 수업에서 로봇이 골대와 공의 색을 인식해 슛을 넣도록 하는 과제가 주어진 적이 있었다. 며칠 동안 머릿속에는 코딩만 떠다녔고 틈틈이 보충 시간 때마다 테스트를 했다. 로봇이 슛을 성공한 순간! 그때 어렴풋이 느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대학원에 진학해야 하겠구나. 그리고 그때에서야 비로소 구체적인 생각이 이어졌다. 그런데… 대학원이 뭐하는 곳이지?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지?
» '로봇학입문' 수업에서 수행한 실험. 로봇이 주황색 공과 연두색 골대를 인식하고 슛을 시도하고 있다.
문제 속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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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답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구자는 새로운 질문을 이끌어내야 하는 사람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대학원이 자격 있는 연구자로 나아가는 그 첫걸음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대학 학부생들에게는 대학원 진학에 관해 고민하는 시간과 기회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입시 때 수많은 입시 정보를 찾아봤던 노력을 생각하면, 대학보다 더 중요한 진로가 될 대학원 입시에 필요한 정보의 책임과 영향력은 분명히 거대하다.
대학원 생활을 알려주는 ‘대선배님들’의 조언과 정보는 우리 주변에서 많아진 편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다보면, 대표적으로 엄태웅 연구원님, 최윤섭 교수님, 권창현 박사님께서 운영하시는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같은 유익한 곳도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http://gradschoolstory.net/ ). 이밖에도 포털 사이트들의 카페에서 정보를 찾아보거나 한겨레 사이언스온, 동아사이언스 등에 올라오는 글들을 통해 직간접으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진학을 원하는 분야의 에스엔에스(SNS) 그룹에 가입해서 분위기를 살피거나 직접 질문을 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보를 찾으면서도 나의 갈증은 충족되지 않았다. 답이 보이지만 주변에서 맴돌고만 있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누구도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러 유익한 도움말은 ‘지도’가 되어줄 수는 있었지만 ‘이정표’가 되어주지는 않았다. 특히 특정 연구실에 관해 알아보려고 할 때에는 알려진 정보가 너무 적었기 때문에 답답함이 더했다. 결국 최고의 방법은 직접 부딪쳐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라는 기둥을 세워야지만 대학원에 가서도 후회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질문은 질문 던지는 이가 스스로 문제라고 인식하기 전까지는 질문이 될 수 없다. 문제는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체적으로 인식해내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애써 답을 찾으려 하는 어리석음에 빠지면 안 된다.’ 인터넷에서 본 글귀가 요즘 마음에 와 닿는다.(1) 그렇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문제 속에 답이 있다. ‘대학원’이 무엇인지 모르고서는 어떤 대답도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한 자기성찰도 필수불가결 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학원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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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공부를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것, 그리고 이전 지식과 새로운 지식이 섞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재밌다. 공부와 별개로 시험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원 진학을 생각한 면도 있다.
이공계 학부생 커리큘럼의 많은 내용은 오랜 동안 달라진 것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프로그래밍을 제외하면 기본 수학과 뉴턴 역학을 배경으로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 완성된 것이어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얘기였다. 생물과 관련된 과목의 내용이 그나마 가장 최신의 이론을 담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고 생각한 대학교에서 내가 배우고 있는 내용이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은 내게 충격을 주었다. 여기서 배움을 멈추기 싫었던 것인지 남들과는 다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쌓여 있는 지식의 끝이 궁금하기도 하다. 대학원에서는 무엇을 배울까?
대학원에서 배우는 과목은 학부생 수강편람을 찾아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 연구실마다, 지도교수님마다 선택하게 되는 수업은 다를 것이다. 대학원에 어떤 수업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만으로 최소한 앞으로 로드맵을 그려볼 수 있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공부가 전부는 아니다.
대학원 생활의 대부분은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며 지도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직접 연구를 하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작성하는 것이 졸업에 이르는 큰 흐름일 것이다. 그런데 연구란 과연 무엇일까? 연구 경험이 없는 학부생에게 연구에 대한 생각은 막연함뿐이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한다, 이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상상하기로는 연구란 이른바 ‘맨땅에 헤딩’을 10번 해서 1번 성공하는 것 아닐까 한다.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연구가 아니다’는 얘기도 기억에 남는다.
한 지인은 개발과 연구의 차이를 깨달으며 힘겨운 석사 기간을 보냈다는 말을 내게 전해주었다. 연구개발(R&D)라고 부르는 걸 보면 연구(Research)와 개발(Develop)이 무언가 다르기는 한 것 같지만 둘 다 경험한 적 없는 내가 둘을 구별하기란 어려웠다. 지인의 설명은 이랬다. ‘공부는 이미 길이 다 알려진 산의 정상을 올라가는 것. 개발은 어떤 알려진 길 위에 누구나 산 정상에 다다를 수 있도록 고속도로를 까는 것. 연구란 누구도 가보지 않은 산의 정상으로 처음 길을 만들며 가는 것.’ 그 지인은 졸업 후에 개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개발’과 ‘연구’에 대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실용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것을 깊게 파고 들어가는 형식인 개발을 ‘긍정의 과학’이라고 본다면, 기존의 생각들과 다른 어떤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인 연구는 ‘부정의 과학’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반대일수도 있겠다. 기존 연구들에 대한 모든 긍정을 떠안고 차이점을 찾아 새로운 것을 발견하여 다양성을 늘리는 연구가 ‘긍정의 과학’, 새로운 기술을 부정하고 현 기술을 개선시키는 개발이 ‘부정의 과학’인 것은 아닌지.
지인은 개발을 생각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그런 생각과 현실이 많이 달라서 고민을 했다고 했다. 연구실에 따라서 연구보다는 개발에 가까운 곳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원에서는 연구를 통해 연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같다. 그리고 논문을 쓰며 논리적으로 내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는 것 같다. 대학원의 큰 맥락은 어떤 연구실을 가도 비슷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개발이나 연구 중에서 무엇을 더 좋아할지 혹은 둘 다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개발과 연구는 다른 것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부딪쳐야 한다는 것 아닐까.
[ 로봇 의족으로, 장애인들의 새 삶을 여는 휴 허 교수(Hugh Herr, MIT) ]
[ 유투브 동영상 https://youtu.be/CDsNZJTWw0w ]
나는 대학원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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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진학하는 이의 마음에는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각자의 기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특별 직종 취업, 성취감, 기대 충족 등 대학원 졸업을 통해 얻고 싶은 방향은 학생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를 것이다. 나는 사회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로봇공학자가 되고 싶다는 기대를 품고 있다.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은 다양할 것이다. 내게 그 방법으로는 로봇공학자로서 사회에 쓰이는 로봇을 만들거나, 장애인의 팔다리가 되어줄 로봇을 만드는 것이 있다. 또한 내 생각을 담은 칼럼이나 책을 쓰거나, 과학 정책을 만들 때 자문위원이 되는 것도 있겠다. 하지만 아직은 내게 아무것도 정해진 바가 없다. 무엇이 긍정적인 변화이냐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하고 배우고 경험해야 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나의 이런 미래상을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취업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반드시 대학원을 졸업해야 가능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연구원 직책인 로봇공학자가 될 확률은 아무래도 대학원 학위가 있을 때 더 높다고 보았다. 그리고 사회에서 내가 생각하는 나의 미래상이신 분들도 대학원생으로서 연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대학원을 졸업한다고 꼭 모두가 돈을 더 잘 버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특정 분야로 선택의 폭이 좁아지면서 취업이 힘든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은 취업한 친구들에 비해 수입 없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대학원 진학은 분명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왜 돈을 벌고 싶은지 생각했을 때, 그 이유는 원하는 것을 하면서 더 편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였다.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였고 행복하려면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결과가 될지는 몰라도 대학원은 내가 원하는 미래상에 가까워지는 길로 보였고 행복에 더 가까웠다.
결국 대학원은 나에게 하나의 중간과정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연구하고 싶고 대학원에서 배우고 싶은 것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대학원이 종착역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조금 더 시야가 넓어지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 수명이 점점 길어져 100세 시대가 되었다는 소식이 위안이 되기도 하다. 지식의 지평선에 한 번 다다라봐야지 하는 배짱이 들기도 하다.
이어지는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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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연구 분야로 진학해야 할까?’, ‘연구실 인턴을 경험해야 할까?’, ‘대학원은 해외 대학으로 가야 할까?’, ‘석박사통합 과정이 더 좋을까?’, ‘논문을 좀 읽어봐야 할까?’, ‘교수님께 면담 요청을 할까?’ 등등 대학원에 대한 고민은 많다. 각자가 다다르는 답은 다를 것이고 나 또한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학부생이기 때문에 답을 제시하는 글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질문과 경험을 공유하다보면 서로 생각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생각의 가지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 속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주]
[1] MUCHOS의 글 ‘수학, 철학에 미치다’에서 인용. https://brunch.co.kr/@muchos88/6
이상엽 연세대 학부생(기계공학과)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사이언스온의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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