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우의 "과학과 우리, 과학소통의 길을 찾아서"

막연하게 생명과학자를 장래희망으로 꿈꾸던 청소년이 이공계 대학과 대학원 실험실 생활을 거치고 직장인으로 살면서 점차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담히 얘기합니다. 그가 찾아나선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나는 왜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꿈꾸게 되었나

[1] 연재를 시작하며


00people.jpg » 출처 / iStock via Nature, 변형


이 들 무렵부터 20년 가까운 삶에서,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늘 ‘진로’였다.

나는 무엇을 하며 먹고살 것인가?

내가 가장 잘 하는 일, 또는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

물론 나는 이 물음에 정답이나 마침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상황에 놓인 선택지 중에 나름의 길을 ‘정하고’, 그에 따르는 것일 뿐.

그리고 지금 나는 당분간의 여정에서 참고할 이정표를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정한 상태이다.

앞으로 과학소통, 또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첫 번째 글에서는 나의 지난한 진로 고민의 흔적과 함께

왜 ‘과학 소통’이라는 주제가 나를 사로잡았는지 얘기하고자 한다.



“생명과학자 되어 난치병 치료법 찾을 거예요”

밥상머리에서 “너는 커서 뭐가 될 거냐?’ 하고 물으시는 아버지께 나는 대뜸 ‘생명과학자가 되어서 난치병의 치료법을 개발하겠다’고 답했다(정말로 저렇게 말했다).


00scientistimage.jpg » ‘그 당시 내게 생명과학자의 이미지는 이 정도쯤 됐다.’ 출처/ pixabay.com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런 물음에 아직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당황한 와중에 지금 생각하면 낯부끄러울 정도로 상투적인 대답을 내뱉고 말았다. 이유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마침 ‘생명공학 붐’이 일어, 신문에서 ‘아이티’(IT, 정보기술) 다음은 ‘비티’(BT, 생명공학)의 시대가 올 것이다’ 따위의 이야기를 많이 보았던 참이었다. 또, 하얀 가운을 입고 피펫을 만지작거리는 과학자의 모습이 왠지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대로 주워섬긴 대답에, 아버지는 포부가 크다며 아주 큰 칭찬을 해주셨다. 역시 강씨 집안 사람이라면 이 정도 꿈은 꿔야지, 하시면서. 귀가 얇고 칭찬에 휘둘리는 나는 ‘어, 이거 왠지 괜찮은 꿈인가보다’ 하는 생각에 장래 희망을 ‘생명과학자’로 정하고 말았다.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8년 동안 끝없이 의문을 품으면서도(“이 길이 정말 맞는 길인가?”), 결국 ‘생명과학자’라는 꿈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결국 생명과학 전공의 대학원에 진학해 ‘암흑기’를 맞이하게 된다. 과학자의 삶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때문은 아니었다. 이미 고등학교 연구교육(R&E)[1]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진짜 연구와 실험에서는 예상한 결과가 뚝딱 나오는 게 아니구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내 손이 나쁠 줄이야.[2] 나는 실험이 의도한 대로 되지 않는 이유를 밝혀내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인 ‘트러블 슈팅(문제점 교정)’으로 몇 달을 허비해야 했고(물론 지도교수님께서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주신 덕분이다), 그러고 나서도 결국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실험실 생활의 난관…“내게 맞는 길인가”

돌이켜 보면 결국 내 앞에 닥친 장애물을 넘어설 만한 집중력과 열정, 그리고 신뢰성 있는 연구결과를 얻어내는 방법론에 대한 지식과 훈련이 부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 실험의 ‘재현 불가능성’ 문제에 직면하고, 재현성 있는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변인을 제어해야 함을 목도하면서, 그동안 ‘진리’라고 여겨왔던 과학이 너무나 불확실하고 모호하고 난해한 것처럼 다가왔다.


예를 들어, ‘우리’ 실험실의 환경에서, ‘내’가 실험해야만 특정 결과가 나오는 실험이 있다고 하자. 오보카타 하루코의 ‘스태프(STAP) 세포 실험’[3] 정도의 센세이셔널한 연구가 아니라면 다른 실험실에서 똑같은 실험을 해보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재현이 안 되더라도 ‘내가 실험을 잘못했겠지’라고 생각할망정, 동료심사(peer review)를 거쳐 발표된 논문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가 참고하는 논문들이 모두 엄격한 재현성의 자기검열을 거쳤다고 믿을 수 있을까? 그 논문들이 참고한 논문들은 어떨까? 어딘가 한 군데에서라도 구멍이 있었다면, 결국 우리는 사상누각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닐까?[4]


문제는 또 있었다. 내가 하는 연구가 ‘응용’에서 거리가 먼 ‘기초연구’라는 것이다. 나의 연구는 동물세포가 어떻게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넓게 퍼지는 동작을 하는지, 어떤 분자가 이런 움직임을 조절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던 중, 우연히 참석한 세미나에서 ‘세포가 춤을 추는’ 동영상을 보고서 ‘완전 귀엽다!’고 생각했다. 기초에 가까운 연구라는 것도 진작 알았지만, ‘흥미’가 있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 연구실에 진학을 결심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흥미’란 ‘써먹을 수 있는 요소’와 연결되어 있었고, 결국에는 괜찮지가 않았던 것이다. 연구에 대한 나의 의욕은 꾸준히 떨어졌다. 물론 응용에 가까운 연구라고 해도 상용화까지는 수없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그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연구주제를 바꾼다고 해서 많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 재현성 없는 실험을 반복하는 상황과 겹쳐지면서 내가 과연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난치병’의 치료법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싶은 걸까?



“진로 고민과 해결도 우연의 연속이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일단 나의 전공(생명과학과 컴퓨터공학 복수 전공)을 살리고 싶었으므로 ‘과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연구직’이 아니면서 과학과 관련된 직업에 무엇이 있는지는 들어본 적이 없었고, 선배 중에서도 그런 직종에 종사하는 분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결국 웹서핑과 뉴스 스크랩을 하면서 공중보건, 생물정보학 등 다른 학문 분야나 임상연구원(CRA), 변리사, 과학 일러스트레이터, 과학 기자 등의 직종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모두 흥미로워 보였지만 막상 하나를 선택하려니 두려움이 앞섰다. 어쨌든 일단 대학원을 나가서 계속 탐색해보자, 이런 나의 결심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신 교수님 덕분에 나는 석박사 통합과정 포기원을 제출하고 그동안 한 일을 정리해 석사 학위와 함께 졸업할 수 있었다.


인생의 중요한 국면이 대부분 그렇듯이, 나의 진로 고민과 해결의 과정도 우연의 연속이었다. 그즈음 마침 우리 대학의 교직원을 뽑는 공고가 대학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학원에 입학했기 때문에 일반 ‘회사’의 일상에 동경과 호기심을 갖고 있었던 참이었다. 또 익숙한 환경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교직원 채용에 지원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입사 동기 중 내가 가장 초라한 스펙을 갖고 있었다. 모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높이 평가해 주신 덕분인지 가까스로 합격할 수 있었다.


신입직원 연수를 마치고는 ‘연구기획팀’으로 발령을 받았다. 대형 연구 프로젝트의 기획, 연구 관련 제도의 확충 등 연구와 관련된 업무를 폭넓게 하는 부서였다. 입사할 때, 이 학교 졸업생인 만큼 내가 학생 때 느꼈던 점들을 바탕으로 나의 후배, 동기, 선배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정말 운이 좋게도, 신입의 풋내 나는 아이디어도 무시하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주는 팀 동료, 선배들 덕분에 기존의 업무 외에 내가 직접 새로 기획한 일도 추진할 수 있었다.



연구와 세상 사이의 연결고리 찾을 수 있을까?

그러던 중,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유영하다가 사연을 하나 읽게 되었다. 요즘 대학마다 있는 ‘대나무숲’ 같은 페이지에 익명의 제보자가 올린 고민이었는데, 요약하자면 연구하는 생활이 참 외롭다는 것이었다. 의대에 다니는 친구에게 자신의 증상을 얘기했더니 나름 병명과 대처법을 진단해 주는 것을 보고, ‘실생활에 응용이 가능한 지식’을 배울 수 있음에 부러워했다는 것. 그렇다고 의학을 공부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자신이 하는 일을 주변 친구나 부모님이 알아주고 이해해준다면 덜 외로울 것 같다는 한숨 섞인 고백이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제보자가 ’내가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지‘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해시키기가 어려워서 더 고독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추측이 맞든 아니든, 나의 짧은 대학원 생활 경험에 미루어보아 꽤 많은 대학원생/연구자들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그랬지만, 내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부모님에게 설명하다가 실패한 경험, 또는 아예 설명을 포기하고 얼버무린 경험이 얼마나 많을까?


때마침 영국 챌튼엄 과학축제에서 시작한 ’페임랩‘이라는 ’3분 과학 토크 대회‘가 우리나라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보았다. 우리 학교에서도 이런 대회를 작게 해본다면, 대학원생들이 내 연구 내용을 일반인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직접 고안하고 연습해 본다면 어떨까? 그리고 나의 연구 주제를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가볍게 소개하고, 그들이 관심 있게 들어주고, 서로 소통하는 ‘경험’을 해본다면 어떨까? 비록 나는 내 연구와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실감하지 못하고 연구를 포기했지만, 내 후배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점을 이어보니 연장선에 놓인 과학 커뮤니케이션”

꽤 긴 이야기였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하나의 출발점을 이루어 나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연한 계기로 생명과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대학원에서는 내가 하는 연구와 실험에 의문을 품었고, 좀 더 삶에 밀접한 일(이라고 실감할 수 있는)을 하고싶다는 열망을 가졌으며, 교직원으로 근무하며 연구자들을 바라보다가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주제에 맞닥뜨린 것이다.


00steveJobs.jpg » "당신은 앞날을 내다보며 점들을 연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뒤돌아보며 점들을 연결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당신 미래에 점들이 어떻게든 연결되리라는 그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 -스티브 잡스. 출처/ goodreade.com에서 갈무리


그때만 해도 이 분야를 나의 진로로 삼을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그 이후에 이어진 우연한 기회들과 경험들이 징검다리가 되어 또다시 나를 이끌어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 걸 하기 싫어하는 ’반골 기질‘이 있는 나는, 유명인의 말을 인용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스티브 잡스의 표현인 ‘점들을 연결하기(Connecting the dots)‘는 매우 통찰력 있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각 점(경험)들이, 나중에는 결국 연결해서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는 거다.


00famelab2.jpg » 2016년 제2회 '내 연구를 소개합니다' 에서, 필자가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 출처/ 포스텍 유투브 갈무리 우선 페임랩을 모델로 독자적으로 기획한 “내 연구를 소개합니다”라는 3분 과학토크대회를 우리 대학에서 개최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대회에 대한 반응은 호의적이어서 지난해 2회 대회도 성공리에 진행할 수 있었다. 세계 과학기자 대회, 한국 과학창의 연례 컨퍼런스에 참가해서는 ’과학‘으로 ’소통‘하는 다양한 분야와 각 분야의 고민을 접할 수 있었다.


컨퍼런스에서 얻은 인연으로 일본의 국립과학관 ’미라이칸(미래관)‘에서 10일 간 인턴 연수를 할 기회를 얻었는데, 우리보다 근대 과학의 역사가 오래된 일본에서 ’과학 소통‘이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를 경험하고 고민할 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이었다. 한편으로는 우리 대학에서 열린 ’과학 커뮤니케이션‘ 수업을 청강하고, 과학철학/과학기술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인 스터디 그룹 ’생각모임‘에서 활동하면서 부족했던 이론적 배경과 다양한 관점을 배웠다. 또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 가입하고, 과학기술 정책 타운미팅을 경험하면서 과학 정책을 매개로 한 과학과 사회의 연결을 체험할 수 있었다.



앞으로 채워나갈 연재에서는…

앞으로 채워나갈 연재에서, 나는 이 각각의 ‘점‘에서 어떤 것을 보고, 배우고, 느꼈는지를 얘기하고자 한다. 사실 ’과학 커뮤니케이션(과학 소통)‘이라는 단어가 등장해서 많이 쓰이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과학 커뮤니케이션 전공‘을 찾아보기도 힘들고, 대부분 ’과학 저널리즘‘ 이나 ’과학 대중화‘ 정도로 수렴되는 듯하다.


이렇게 독립적인 존재감이 약한 상황에서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나의 여정이 오히려 독자들에게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더 흥미롭고 구체적인 설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해본다. 그리고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히 ’과학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서 어디를 지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조금씩 풀어가고자 한다.


[주]


[1] Research and Education의 약자로, 고등학생들이 대학 실험실에서 작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실제 연구를 경험해 보는 프로그램, 당시 필자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1학년, 2학년 때 각 1년씩 서로 다른 주제의 연구를 경험해볼 수 있었다.

[2] 흔히 실험을 잘 못하거나 많이 실패하는 사람을 “마이너스의 손”을 가졌다고 놀리기도 하는데, 사실 정말로 손놀림이 미숙하다기 보다는, 트러블슈팅 과정에서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또는 정말로 운이 계속 안 좋은 경우도 있기는 할 것이다.

[3] 2014년에 발생한 희대의 연구부정 사건.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오보카타 하루코 주임이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게재했다. 그동안 너무 복잡하고 수율(성공률)이 낮은 방법으로 만들어왔던 전분화능 세포(어떤 종류의 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는 세포)를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줄기세포 연구를 진일보시킨 연구로 평가받았으나, 세계 여러 실험실에서 실험해 본 결과 재현이 전혀 되지 않았고, 결국 연구부정이 밝혀져 논문은 철회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사를 참고할 것, http://scienceon.hani.co.kr/225917

[4] 후에 과학철학, 과학기술학 등을 배우면서 과학의 본질주의, 구성주의, 그리고 허무주의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나의 이런 생각은 결국 극단적 허무주의에 가까운 발상이었던 듯하다. 물론 기존의 연구 결과들을 비판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은 필요하고, 인간의 관점이 개입하는 한 과학이 완전무결한 진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학을 ’과학 답게‘ 하는 것이 기존의 ’상식‘에 의문을 품는 비판적 사고인 만큼, 과학의 상호감시 체계는 내가 멋대로 생각했던 것 만큼 허술하지 않았다. 과학의 본질주의와 구성주의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훌륭한 텍스트가 있지만, 앞으로 연재에서도 한 번 다루어 볼 계획이다.


강지우 포스텍 교직원/연구기획팀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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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우 포스텍 연구기획팀 교직원
포스텍 생명과학과를 졸업.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세포동역학 연구로 석사학위. 포스텍 연구기획팀에 재직 중. 과학의 멋짐과 한계를 성찰하며 세상에 전하고 싶은 과학 커뮤니케이터 지망생
이메일 : feel88fr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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