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크기 ‘가상 망원경’, 블랙홀 ‘실물’ 잡아낼까

※ 이 글은 한겨레 3월8일치 ‘사이언스온’ 지면에 실렸습니다. 온라인 사이언스온에도 옮겨 싣습니다. 지면 편집 과정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습니다.




지구 크기 ‘가상 망원경’
블랙홀 ‘실물’ 잡아낼까


지금까지 낯익은 블랙홀 영상은

검은 구멍, 빛기둥, 빛고리…


직접 볼 수 없는 작고 검은 천체인데

과학과 예술이 그려낸 ‘상상도’


실제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다음달 초 열흘간 실체 포착 나서


하와이 북미 남미 유럽 남극 등

지구촌 8곳 12개 대형 전파망원경


2만8000광년·5500만광년 거리 2곳

동시에 일제히 전파 신호 관측


신호 모아 ‘가상 망원경 초점’에서 종합

사실상 지구만한 전파망원경 효과


여름쯤 1차 분석 끝나면 ‘윤곽’ 기대

한-일 학자들 따로 협력연구도


new00Sag.jpg » 블랙홀에서 빛나는 고리 또는 초승달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사건지평선 망원경’(EHT)에서 얻을 블랙홀 모습이 어떠할지를 미리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한 여러 영상들 가운데 한 가지다. 현재 기술 수준에선 블랙홀과 윤곽이 구분되지 않지만(가운데), 새로운 알고리즘으로 관측 데이터를 분석한다면 훨씬 선명한 블랙홀 윤곽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오른쪽). 왼쪽은 이상적인 해상도에서 얻을 수 있는 영상이다. 윗줄 셋은 정지해 있는 블랙홀일 때, 아랫줄 셋은 회전 블랙홀일 때의 영상들이다. 혼마 마레키 교수(일본 국립천문대) 제공


랙홀. 지금까지 인류가 지닌 어떤 망원경으로도 직접 볼 수 없는 작고 검은 천체다. 매우 작으면서도 엄청난 중력으로 빛조차 집어삼키는 블랙홀 자체는 어떤 전자기파 신호도 방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한테 낯익은 블랙홀 영상들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보이지 않는’ 블랙홀 영상들은 천문학자들이 블랙홀 중력이 주변 천체들에 끼치는 ‘보이는’ 영향을 관측하고 여기에 이론적 해석을 더해 만들 수 있었다. 블랙홀 영상들에는 ‘과학’과 ‘예술’을 바탕으로 제작한 그림이라는 설명이 붙곤 하는데, 이마저도 관측 자료가 많이 쌓이지 않은 탓에 아직은 ‘과학적 상상’을 많이 담고 있다.


이제 실물 블랙홀에 좀 더 가까운 영상을 얻을 수 있을까?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연구원과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등이 중심이 되어 지구촌 전파천문학자들이 다음달 5~14일 열흘 동안 지상 8곳의 12개 대형 전파망원경을 동원해 실제 블랙홀의 윤곽을 보려는 ‘사건지평선 망원경’(EHT) 관측 프로젝트에 나선다. ‘사건지평선’은 블랙홀의 안과 밖을 잇는 넓은 경계지대를 말하는데, 물질이 사건지평선을 거쳐 블랙홀로 빨려들어갈 때 그 일부는 에너지로 방출되기에 높은 해상도의 관측 장비를 동원한다면 사건지평선 언저리를 볼 수 있다.


new00EHTmap.jpg » 한겨레 자료그림



‘지구관측망 슈퍼컴 알고리즘’ 총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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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와 북미, 남미, 유럽과 남극 등지의 내로라하는 대형 전파망원경들이 동시에 향하는 관측 대상은 두 블랙홀이다. 하나는 2만8000광년 떨어져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에이스타)’ 블랙홀, 다른 하나는 5500만 광년이나 떨어진 은하 ‘엠87’의 중심에 있는 ‘처녀자리 A*’ 블랙홀이다. 어떤 별자리 방향의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전파원이란 뜻에서 ‘A’ 기호가 붙었으며, ‘*(스타)’는 그것이 블랙홀임을 뜻한다.


국제 협력관측에 참여하는 한국천문연구원의 손봉원 연구원은 “여러 대의 전파망원경이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전파 신호를 더 증폭할 수 있고 그래서 더 높은 해상도를 얻을 수 있다”며 “12개 전파망원경이 각자 전파 신호를 포착하고 이 신호들을 한데 모아 ‘가상의 망원경 초점’에서 종합하면 사실상 지구만한 전파망원경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연구진은 공동운영 시설인 하와이 전파망원경(JCMT)의 관측 활동에도 직접 참여한다. 관측 기간에 이곳에 머물 정태현 천문연 연구원은 “처음으로 블랙홀의 실측 영상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현실적인 기대를 갖게 하는 관측”이라며 “기대와 예측대로 새로운 블랙홀 모습과 물리 현상을 볼 수 있을지 설레고 긴장된다”고 말했다.


12개 망원경의 열흘간 관측 데이터가 한곳에 모이면, 이후엔 슈퍼컴퓨터와 분석 알고리즘이 각자 수집된 흩어진 데이터를 거대한 가상 망원경의 초점에 모인 데이터로 변환하고서 본격적인 해석과 분석 작업을 벌인다. 손 연구원은 “여름쯤 1차 분석을 마치면 이번 관측이 성공적인지 판단할 수 있을 테고 겨울쯤엔 분석 결과와 영상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번 관측과는 별개로, 한국과 일본 천문학자들은 한·일 전파관측망(KaVA)을 따로 가동해 다른 전파 파장대에서 두 블랙홀 사건지평선의 근처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분출(제트) 사건을 집중 관측한다는 협력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15~50년 사이 100여 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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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을 보려는 관측 시도는 천문학에서 오랫동안 계속돼 왔다.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블랙홀의 병합 현상을 관측했던 우종학 서울대 교수(천문학)는 “지난 15~20년 동안 우리은하 근처에서 블랙홀을 지니는 은하들이 100여 개나 잇따라 발견될 정도로 큰 진전이 이뤄졌다”며 “이제 많은 은하 중심에 거대 블랙홀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동안의 오랜 관측 연구 덕분”이라고 말했다.


블랙홀의 존재를 보여주는 천체가 처음 발견된 건 1960년대였다. 항성들은 ‘핵융합’으로 별빛을 내는데, 이런 핵융합 작용으론 도무지 해명할 길 없을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특이한 천체 ‘퀘이사’가 발견된 이래, 블랙홀의 실체는 천문학의 큰 관심사가 됐다. 퀘이사는 나중에 거대 블랙홀인 것으로 밝혀졌다.


new00blackholeillustrations.jpg » 블랙홀을 보여주는 여러 영상들. 과학 이론과 관측에 바탕을 두면서 예술적 상상을 가미한 그림들이다. 맨아래는 지상 12개 전파망원경을 통해 관측될 것으로 예측되는 블랙홀의 시뮬레이션 영상들 중 하나. NASA, MIT 제공 여러 분명한 증거들이 블랙홀 주변의 천체들에 나타나는 중력과 역학 현상에서 발견됐다. 1990년대 중반부터 우리은하 중심부에 거대 블랙홀이 있을 가능성이 여러 관측에서 잇따라 보고됐다. 우 교수는 “우리은하 중심에 태양계 2배만한 공간에 태양 질량의 400만배나 되는 거대 중력이 있고 여러 항성들이 그 둘레를 공전하는 현상이 발견됐는데, 이처럼 작은 공간에 이처럼 큰 중력을 지닌 천체는 블랙홀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블랙홀은 천문학에서 실재하는 관측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하 중심부에 거대 블랙홀이 있다는 발견은 이제 은하 연구에서 커다란 패러다임 전환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러 관측을 통해 주변 물질을 빨아들이며 고에너지의 빛을 내는 활동성 블랙홀도 발견됐으며 이와 달리 활동을 멈춘 블랙홀도 존재한다는 게 밝혀져 왔다.


블랙홀 실체에 더 접근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블랙홀 자체를 볼 순 없더라도 블랙홀의 윤곽을 드러내는 그 ‘그림자’를 보려는 구상이다. 손 연구원은 “거대 블랙홀의 주변에선 고에너지 입자와 거대 자기장이 격동을 일으키는데 이때 에너지 발산의 전파 신호를 높은 해상도로 포착할 수 있다면 그 ‘그림자’를 통해 블랙홀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블랙홀의 그림자’는 이번 국제 협력관측에서 관측의 목표이자 최대 관심사다.



예측 영상들도 이미 잇달아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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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대중적인 관심은 처음 실측되는 블랙홀의 영상이 어떤 모습일지에 쏠리는 듯하다. 그동안 가장 낯익은 블랙홀의 모습은 ‘검은 구멍’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그림으로 표현됐다. 블랙홀의 엄청난 중력은 빛조차 휘게 하는 효과를 일으키고, 그래서 블랙홀은 ‘중력 렌즈’와 같은 구실을 할 수 있는데, 그림①은 이런 중력 렌즈 현상을 단순화해 보여준다. 블랙홀 뒤쪽에 있는 천체의 빛이 블랙홀 주변에서 두 갈래로 휘는 바람에 둘로 보이는 현상을 표현한 것이다. 블랙홀의 사건지평선과 그 주변 공간에 나타나는 시공간의 일그러짐을 강조해 보여주는 그림도 쉽게 볼 수 있는 블랙홀 영상이다(②).


블랙홀에는 주변 물질이 빨려들어가며 때로는 행성이나 항성 같은 천체도 빨려들어간다. 이때에 대부분 물질은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지만 일부는 사건지평선 지대에서 강한 마찰과 격동을 겪는데, 이로 인해 고에너지 입자와 거대 자기장의 역동으로 매우 강력한 에너지가 분출된다. 일부 물질이 사건지평선에서 에너지가 되어 분출되는 셈이다. 가운데 그림(③)은 이런 에너지 분출, 즉 ‘제트’ 현상을 보여주며 그 아래 그림(④)은 쌍성 중 하나가 붕괴해 작은 블랙홀이 된 뒤에 짝을 이뤘던 항성을 빨아들이며 에너지를 내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사건지평선 관측 프로젝트에선 이런 상상도와 달리 실제 관측된 데이터에서 직접 블랙홀 영상을 얻으려는 작업이 처음 시도된다. 정태현 연구원은 “여러 연구자들이 새로운 알고리즘과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이번 관측에서 얻을 블랙홀의 예측 영상들을 제시하고 있다”며 “이번 관측이 성공한다면 어느 과학자의 예측 영상이 실제에 가까운지도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 ⑤는 그런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한 영상들 중 하나이다.


블랙홀 사건지평선에서 날아오는 전파 신호들에서 직접 영상을 얻을 수 있다면, ‘블랙홀의 그림자’를 통해 블랙홀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까?



‘우주 진화 열쇠’ 블랙홀 상식과 수수께끼



블랙홀이 은하 진화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 중 하나로 여겨지면서 최근 많은 관측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밝혀야 할 많은 수수께끼를 지니고 있다.


태양질량의 100억 배까지

블랙홀은 엄청나게 강한 중력 때문에 어떠한 것도 빠져나올 수 없는 시공간이다. 흔히 거대한 별(항성)이 자기 중력을 견디지 못해 급속히 붕괴해 생성되는데, 우주 초기엔 이와 다른 경로로 생성됐을 수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거대한 블랙홀은 태양 질량의 100만~100억 배에 달한다. 물질이 탈출할 수 없는 블랙홀의 경계지대를 ‘사건지평선’이라 부른다. 사건지평선에선 대부분의 물질이 블랙홀에 빠져들지만 일부는 에너지로 변환해 ‘제트’로 분출된다. 블랙홀에서 분출되는 물질과 에너지는 은하 전반에 영향을 주는데, 초대형 블랙홀의 경우엔 그 영향이 백만 광년 넘게도 전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빛의 속도로 회전하기도

“블랙홀은 매우 빠르게, 때로는 빛의 속도로 회전을 하기도 합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회전할 때 팔을 오므리면 속도가 빨라지듯이, 회전하던 거대 천체가 매우 작은 공간으로 급속 붕괴할 때 엄청나게 빠른 회전력을 얻습니다. 이런 회전 블랙홀 주변에서는 광자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회전하는데 이때에 독특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물론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도 있어요.”(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은하 전체 질량의 0.2%

“그동안의 블랙홀 관측 데이터를 종합하면 은하 중심 블랙홀의 질량은 은하 전체 질량의 0.2%로 늘 일정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은하 규모가 크건 작건 블랙홀 질량과 그 비율이 ‘1000 대 2’로 대체로 유지된다는 거죠. 특히 은하의 형성과 진화 과정에서 0.2%라는 숫자는 어떤 의미일까요? 흥미로운 숫자입니다.”(우종학 서울대 교수·천문학)


가장 어둡지만 가장 밝기도

“블랙홀은 빛조차 빨아들이는 우주에서 가장 어두운 천체로 꼽힙니다. 그렇지만 우주에서 가장 강력하고 밝게 에너지를 내뿜는 천체도 또한 블랙홀입니다. 블랙홀로 물질이 빨려들어갈 때 사건지평선 지대에서는 엄청난 물질 마찰과 격동이 있고 블랙홀의 회전 에너지까지 더해져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은하 전체에서 나오는 빛보다 더 밝은 빛이 은하 중심 블랙홀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빛나는 블랙홀’이란 표현도 사실 맞는 셈이지요.”(손봉원 연구원)


언제나 배가 고프다

“흔히 블랙홀은 언제나 배고프다,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현재로서는 블랙홀의 질량에 한계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계속 물질을 빨아들이죠. 흥미로운 건 현재 우리은하 근처에서 가장 큰 블랙홀이 태양 질량의 100억배 규모라는 겁니다. 블랙홀 질량이 2배 되는 데 걸리는 긴 시간을 역산하면 이 블랙홀은 우주 초기에도 존재했다고 계산되지요. 그렇다면 우주 최초의 블랙홀은 거대 항성의 붕괴에서 비롯한 게 아닐 수도 있지요.”(우종학 교수)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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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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