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인의 ‘대화’와 정치활동

- 과학기술 지원정책 타운미팅 참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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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정치활동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행사가 끝난 뒤 나에게 남은 질문이다.

많은 이들은 과학계가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

그리고 아주 최근에 각광받는 ‘4차 산업혁명’과 같은 담론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보태 키우는 것이 과학자의 정치활동이라고 믿는 듯하다.

더러는 더 많은 과학자가 정치인과 관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정치활동은

과학기술계가 권력 관계에 놓인 서로 다른 사람들의 집합임을 인정하고,

누군가가 이 관계에서 부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은지 살펴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결코 더 중요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타운미팅은 과학자(그리고 시민)의 정치활동인 동시에,

그 자체로 과학기술계에 수평적이고 합리적이며 열린 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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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townmeeting21.jpg » 25일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과학기술인 60여 명이 참가해 열린 '과학기술 지원정책 토론 타운미팅'. 사진/ ESC 준비팀

 
난 토요일(3월 25일)에 ‘과학기술 지원정책 타운미팅’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가 주최한 이 행사의 목적은 대통령 후보들에게 무엇을 묻고 요구할 것인지 그 목소리를 모아 전달하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주최쪽은 소수의 발제자와 토론자가 말하고 다수의 청중이 듣는 흔한 토론회가 아니라, 참석자들이 동등한 발언 기회를 가지는 타운미팅의 형식을 택했다. 행사를 안내하는 어느 문구에도 참석자를 과학자에 한정하지는 않았으니, 관심 있는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행사장에서 만난 참석자들은 현업 과학자를 포함하여 고등학생, 기업인, 언론인까지 다양했다.


이번 타운미팅에 참석한 나 또한 과학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과학기술학을 공부하고 과학기술 정책과 환경보건 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자이므로 ‘범 과학기술계’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동시에 최근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이 내어놓은 과학기술 정책과 타운미팅이라는 민주주의의 의견수렴 방식에 관심을 갖고 있는 시민이다. 또, 나는 여성이자 청년이고 이제 막 독립한 연구자로, 최근 중요하게 여겨지는 과학기술 정책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번 타운미팅에 참석한 것은 연구자로서 호기심과, 시민으로서 정치 참여 욕구, 그리고 정책의 대상으로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려는 의지, 셋 모두가 어우러진 결정이었다. (주최쪽의 행사 준비팀에 있는 친구의 꼬임도 한몫 했음을 솔직히 고백하겠다.)



우리는 대화할수록 같음과 다름을 더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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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미팅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각자 별명(혹은 실명)이 적힌 명찰을 목에 건 참석자들은 행사 준비팀이 미리 선정한 7가지 분과로 나뉘어 토론하였다. 각자 관심 있는 한 분과에 계속 머무를 수도 있었고, 옮겨 다니며 두세 분과에 참석할 수도 있었는데, 나는 과학기술 소수자 정책, 과학기술 지원체계, 그리고 신진 과학기술자 정책 분과에 참석하였다.


본격적인 타운미팅이 시작하고 포스트잇이 여덟 장 붙은 종이가 한 장 씩 참석자들에게 주어졌다. 가장 먼저 여기에 분과 주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키워드를 하나 적은 다음에 이것을 오른쪽에 앉은 사람에게 전달하였다. 다시 왼쪽에 앉은 사람에게 받은 종이에다 다른 키워드를 적고 또 다시 오른쪽에 앉은 사람에게 전달하기를 반복하니 마지막에는 같은 분과에 참석한 사람들이 적은 키워드를 모두 읽어볼 수 있었다.


모든 포스트잇이 채워진 뒤에는 참석자들이 함께 그것들을 큰 백지 위에 늘어놓고 비슷한 주제끼리 묶어냈다. 몇 가지 축으로 키워드들을 나누고 나니 참석자들이 어디에 주로 관심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상대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점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가령, 과학기술 소수자 정책 분과에서는 두 가지 축으로 키워드를 묶었다. 하나는 서로 다른 소수자 집단별로 묶는 방법이다. 대체로 여성과 외국인에 관한 의견이 주를 이루었고, 장애인과 성소수자, 노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참석자는 적었다. 다른 하나는 과학기술 연구자와 과학기술 사용자로 나눈 축이다. 참석자들은 소수자를 위한 과학기술 지원보다는 소수자인 과학기술자에 대한 지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워드 묶음들을 바탕으로 참석자들은 더 깊은 토론을 이어나갔다. 나에게는 서로 경험을 공유하고, 생각의 같음과, 특히, 다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신진 과학기술자 분과에서도 토론했는데, 이들에게 필요한 것, 혹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참석자들 사이에 큰 인식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몇몇 참석자들은 신진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지속하고 새로운 연구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중요하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나를 비롯하여 실제 신진 연구자에 속하는 참석자들은 연구 기회보다는 더 현실적인 문제인 취업과 일자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절반의 참석자는 신진 연구자들이 취업의 문제를 이렇게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데 놀라고, 나머지 절반의 참석자는 과학계 사람들이 신진 연구자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 놀랐다. 우리는 모두 같은 문제로 고민을 했지만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토론한 내용을 대선주자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이 가장 어려웠는데 우리의 주장과 요구를 전달하는 동시에 듣고 싶은 내용을 이끌어내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거나 뻔하고 쉬운 대답(예를 들어, 앞선 정권에서 시도되었으나 실패한 정책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해결 방안 같은)을 듣지 않으려면 답변까지 미리 예측해봐야 했다. 네 시간 반의 토론 끝에 각 분과에서 모아진 질문들은 묵직하기도, 재기발랄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대선 주자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는 쉬이 답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00townmeeting22_dongaS.jpg » 25일 열린 ‘과학기술지원정책 타운미팅’ 중 과학대중화 정책 분과의 참가자들이 포스트잇에 각자 의견을 적어 전지에 붙이는 모습. 출처/ 동아사이언스(변지민 기자) 제공

 


타운미팅 그 자체가 ‘수평적인 열린 대화 필요하다’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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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동안 내가 경험한 타운미팅의 핵심은 ‘대화’였다. 별명으로 서로를 불렀던 이 대화에서는 누군가의 말이 더 중요하지도, 덜 중요하지도 않았다. ‘우리 때’의 경험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지도 않았고, 권력 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니 지레 겁을 먹고 의견을 숨기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다른 이의 생각을 들으며 같음과 다름을 확인해 나갔다.


이날의 대화를 통해 나는 여러 참석자들과 생각을 ‘나누었다.’ 그 결과, 참석자들은 대선 주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을 통해 부유하고 강한 나라를 만들 과학기술이 무엇인지 모색하는 것보다, 과학은 무엇이고 누가 어떻게 하는지, 거기에 어려움은 없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스타 과학자들의 목소리보다, 그동안 존재하지 않는 듯 했던 과학 하는 소수자, 과학 하는 청년, 그리고 막 독립한 과학기술자와 같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앞으로 더 중요한 정치적 과제라고 주장했다.


학자의 정치활동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행사가 끝난 뒤 나에게 남은 질문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과학계가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 그리고 아주 최근에 각광받는 ‘4차 산업혁명’과 같은 담론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보태 키우는 것이 과학자의 정치활동이라고 믿는 듯하다. 또, 더러는 더 많은 과학자가 정치인과 관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자의 일과 고충을 더 잘 이해한다면, 과학자에게 더 유리한 정책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정치활동은 과학기술계가 권력 관계에 놓인 서로 다른 사람들의 집합임을 인정하고, 누군가가 이 관계에서 부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결코 더 중요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타운미팅은 과학자(그리고 시민들)의 정치활동인 동시에, 그 자체로 과학기술계에 수평적이고 합리적이며 열린 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타운미팅에서 도출 된 질문들은 참석자의 투표를 통해 추려진 다음에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곧 과학기술에 대한 후보들의 철학과 구체적인 정책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내가 더 바라는 것은 더 작은 규모의 타운미팅이 더 자주 열리는 것이다. 대덕의 연구소에서, 대학의 교정에서, 그리고 여느 학회장에서 과학기술계가 함께, 그리고 과학기술계의 서로 다른 구성원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위아래 없고, 내외빈 없는” 대화가 이뤄지기를 꿈꾼다. 그것이 과학자가 정치가가 되는 것보다, 유행이 될 만한 담론을 좇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과학자의 정치활동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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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강연실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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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실 카이스트 박사후연구원 (과학기술사회정책연구센터)
과학기술학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정책을 연구합니다. 박사학위논문에서는 석면을 둘러싼 환경보건운동과 보상정책의 양 측면에서 과학지식의 생산과 활용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연구자로서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메일 : fmlm66@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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