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토론’ 트이니 다양하고 생생한 과기정책 목소리들이…

25일 타운미팅 고교생부터 연구원, 교수등 60명 유쾌한 토론

“연구환경과 삶의 질 개선, 과학 문화 풍성화 기대” 두드러져

주관단체, 대선후보에 던질 질문 선정해 후보초청토론회 계획


00townmeeting11.jpg » 타운미팅에선 발표자의 연단과 참가자들의 청중석이 따로 없이 모든 참석자들이 토론자로 참여한다. 25일 타운미팅 토론 행사에서 과학기술 정책 분과별로 자유로운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사진/ ESC 타운미팅 준비팀


“수평적인 소통과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중요합니다. 오늘 타운미팅에서 이런 토론을 합시다.”


토요일인 25일 낮 2시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과학기술 지원정책 타운미팅’에서 이 토론행사를 준비해온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내 준비팀의 ‘재규어’(토론 별명)는 타운미팅 행사를 열며 행사의 의미를 이렇게 간명하게 밝혔다. 참가자들이 직함을 내려놓고 평등한 1인 참가자로서 ‘별명’을 주로 쓰고, 상대 의견을 존중하는 토론 규칙에 맞게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타운미팅 토론회는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타운미팅(타운홀미팅)은 서로 다른 관심과 이해를 지닌 많은 사람들이 모여 평등하고 수평적인 소통을 통해 의사결정을 이뤄가는 방식의 토론 행사를 일컫는데, 지난 2012년에도 정책의 ‘대상’이 되는 많은 현장의 과학기술인들이 모여 비슷하게 과학기술 정책 제안 타운미팅을 연 바 있다.



각지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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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townmeeting12.jpg » 4시간 반가량 열린 타운미팅 토론의 여러 장면들. 사진/ 오철우 이날 행사에는 멀리서는 포항, 대구, 대전 등지에서 아침일찍 출발해 행사장에 온 이들을 비롯해 모두 60여 명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이 목에 건 이름표의 갖가지 토론 별명들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재규어’ ‘푸른바다’ ‘마라도나’ ‘펭귄’ ‘또바기’, 심지어 ‘재활용쓰레기’까지 다양한 별명들이 참가자들의 본래 이름과 직함을 대신했다.


참석자들은 이공계 대학생, 대학원생부터 고등학생, 교수, 연구기관 연구원, 회사원, 입법기관 관계자, 교육자, 박사 구직자까지 다양한 경험과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4시간 반가량 이어진 토론은 △청년 과학기술자 정책 △신진 과학기술자 정책 △과학기술 소수자 정책 △정부투자 연구소 정책 △과학기술 기업 정책 △과학기술 지원체계 △과학대중화 정책 분과별로 진행됐는데, 1부와 2부에선 참석자들이 과학기술 정책에 던지는 바람이나 제안을 담은 갖가지 ‘생각 조각’을 포스트잇에 적어 한데 모으고 또 분류하면서 생각의 갈래들을 모아 나갔다. 3부와 4부에선 이렇게 모인 주제를 바탕으로 참석자들이 발언하는 집중토론이 이뤄지고, 5부에선 ‘대통령 후보들에게 던질 제안과 질문들’을 도축하는 토론이 이어졌다.



‘생각조각’ 모아보니 문제들이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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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의 ‘도구’가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1부와 2부에서 등장한 포스트잇과 사인펜, 그리고 커다란 백지는 참석자들의 생각 조각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아~, 이렇게 모아보니 흩어져 있던 문제들이 사실 다 연결된 문제들이었네요!’


신진 과학기술자 정책 분과의 진행도우미(퍼실리테이터)인 ‘아리’(박사후연구원)는 후보에게 제안하거나 물을 것들을 포스트잇들에 쓰고서 이것을 모아 다시 커다란 백지 위에다 붙여 이리저리 분류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일자리 부족은 곧 일자리 불안정과 비정규직 양산의 문제에도 닿아 있는 것이었으며, “열정으로 포장된 무리한 삶”이 강요되는 “저녁이 없는 삶”과 열악한 처우에도 닿아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연구 환경에도 관련돼 있다. “신진 연구자는 자신의 본격 연구를 막 시작하는 때라 짧은 연구기간에 연구업적이 많지 않은데 곧바로 정량평가의 대상이 되면서 실적을 내느라 허닥일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도 나왔다. 신진 연구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목소리나, 인기가 낮은 다양한 주제의 기초연구들에도 신진 연구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관심이 더욱 높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참석자들의 눈길을 모은 색다른 목소리들도 나왔다. 과학기술계에서 차별을 받기 쉬운 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과학기술 소수자 정책 분과에서는 육아 부담, 경력 단절과 같은 여성 과학기술인 차별 문제와 외국인 연구생, 장애인 과학기술자 등의 문제가 주로 다루어졌는데, 일부에선 “사실 기초과학 연구자도 이젠 소수자 아니냐”라는 자조적인 의견도 나왔다. 또 과학대중화 정책 분과에선 ‘유사과학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의견도 나왔다. 그동안 주로 정부출연구소 정책이 많이 다뤄졌는데, 이날 토론에서는 이밖에도 공공연구를 수행하는 ‘국가(국립)연구소의 기초연구 역량을 높일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 잠깐! 한마디

    타운미팅 참가자 ‘아리’(박사후연구원)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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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온: 타운미팅 참여는 처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토론에 참여하고서 느낀 전체 분위기는 어떠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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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타운미팅, 유쾌한 잔치. 참석한 모두가 각 분과의 과학기술지원 정책 이슈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경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왁자지껄하고 유쾌한 소통의 장. 나이가 많든 적든 어떤 일을 하고 있든 상관없이 각자 스스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말하고 듣는 밀도 높은 경험을 통해 참여자 모두가 '관찰자', '방관자'가 아닌 '주도적인 참여자',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타운미팅을 통해 발굴된 새로운 질문과 문제의식들이 새로운 과학기술 체계를 수립하는 데에 반영될 수 있으면 좋겠고, 정책을 짜시는 분들이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선정된 질문에 대해 각각의 대선 주자들이 어떻게 답변을 할지, 그들과 우리의 인식차는 어느 정도일지, 그 답변이 궁금하네요.”


000Q.jpg사이언스온: 자기 목소리를 내고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토론마당에 참가해서 무엇을 경험하셨는지요?

000A.jpg아리: “저는 '신진과학기술자 정책' 분과 테이블에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또래 과학기술인들과 그런 과학기술인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오신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 정책 분과 테이블에서는 굉장히 빠르게 각자의 생각들이 한 장 한 장의 포스트잇에 쓰여졌어요. 아마도 이것은 그만큼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매우 분명하다는 반증일 겁니다. 핵심에는 역시나 신진 과학기술자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 일자리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중요 안건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서 이것을 어디에서부터 풀어나가는 것이 좋을까 막막하기도 했지만, 하나의 문제가 풀리기 시작하면 다른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테이블에 둘러앉은 우리는 그런 기대감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돌아가면서 얻은 발언 기회를 통해 새로운 시각도 갖게 되었고, 비슷한 생각에는 공감을 하기도 하고, 또 신진과학기술자의 문제에 대한 인식차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신진과학기술자가 처한 상황은 구체적인 지표와 자료로 뒷받침이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진과학기술자의 비율을 어느 정도이고, 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타운미팅을 통해 담긴 소중한 개별의 목소리들이 큰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시작이 되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과학 정책과 소신을 논증하는 논문을 작성할 수 있을 만한, 그런 철학을 가진 대통령을 만나는 꿈을 꿔보았습니다.”



현장 목소리의 다양함과 생생함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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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올 봄에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여러 과학기술단체와 국회의원들이 주관하는 여러 과학기술 정책 토론회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평가하고 다음 정부에서 실현할 제대로 된 정책 방향을 모색하려는 시도들이다.


타운미팅의 수평적인 소통이 곧바로 실행할 수 있는 훌륭한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정책 입안 절차의 효율성만 따진다면 여러 결점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연구와 교육, 기업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내놓은 의견들은 ‘현장의 눈으로 보는’ 시선이며 소망이자 기대이기에, 현실 문제를 다루는 정책을 제대로 세우고자 할 때 과학기술 현실 삶의 공간에서 우러나는 다양하고도 생생한 현장 목소리들이 더 자주 더 크게 들려야 함을 이날 행사는 보여주었다.


다음은 2012년과 올해 타운미팅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준비팀에서 일한 과학기술인 ‘재규어’(별명)과 이강수 브릭(BRIC) 실장의 평가이다.


공청회 등의 행사가 요식 행위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번 타운미팅은 현장의 목소리를 실제로 정책에 반영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합의니 협치니 얘기하면서도 제대로 해보려고 하면 삐그덕거리는 경우가 많은데 타운미팅과 같은 수평적인 토론에 익숙해지는 것이야말로 숙의민주주의를 앞당기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과학기술인 ‘재규어’(별명))


“타운미팅의 진행 방식이 다른 토론 행사들(포럼, 공청회 등)과 비교해 나름대로 장점을 갖는다면, 그건 아마도 진행 과정과 결과에 대한 참가자들의 공감력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서로 의견과 주장을 테이블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며 나누면 공감도는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이렇게 만들어진 과학정책 제안 내용에 대한 참석자들의 공감력도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또 하나의 장점은 나 자신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장인이 만든 제품 또는 공장의 대량생산품과 달리, 요즘 유행하는 DIY(Do it yourself)로 만든 물건은 어설프지만 자신의 취향과 개성은 물론 자신의 환경에 맞게 실용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타운미팅도 그런 측면에서 현장에서 만들 수 있는 'DIY 과학정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생각한 과학정책을 이야기함으로써, 거대한 정책적 담론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요구되는 체감도 높은 과학정책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강수 BRIC 실장)


타운미팅 준비팀은 이날 토론에서 나온 목소리들을 모아 자료집으로 펴내고, 또한 온라인 투표를 거쳐 ‘대통령 후보에게 던질 질문이나 제안’을 선정할 예정이다. 과학기술인단체 ESC는 이후에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에 대통령 후보들을 초청해 과학기술 정책 토론회를 열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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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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