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장 환경에 놓아두니 ‘자성체 된 바퀴벌레’

싱가포르 연구진, 곤충의 자기 감지 능력 연구


“외부자기장에 반응해 몸속 자성입자들 정렬 때문”
점성도 높은 죽은것에선 자성체 성질 50시간 지속

00cockroach.jpg » 바퀴벌레. 3억 5000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큰 형태 변화 없이 환경에 적응해 살고 있는 곤충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새들은 지구 자기장을 몸으로 감지해 철새여행을 할 때에 방향 길잡이의 도우미로 삼는다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져 있다. 많은 곤충들도 그렇다. 곤충의 자기장 감지 능력에 담긴 비밀을 캐내려는 여러 연구들이 그동안 이뤄져 왔는데, 그중에 바퀴벌레를 대상으로 삼은 연구도 생각보다 여럿 있었다.


과학기술 매체 <와이어드>를 보면, 지난 2009년엔 체코 연구진이 <실험생물학 저널(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에 발표한 연구사례를 보면, 바퀴벌레들한테 자기장 감지 능력을 방해할 수 있는 전파를 쏘자 바퀴벌레들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퀴벌레 몸에는 지구 자기장에 반응할 수 있는 자성 입자들을 간직한 이른바 ‘나침반’ 세포(compass cells)들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연구진은 이런 나침반 세포들의 기능을 교란할 수 있는 전파를 사용해 바퀴벌레들의 자기장 감지 능력을 시험했다.


<와이어드>는 3억5000만 년 동안 존재해온 바퀴벌레들이 자기 감지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은 이런 능력이 곤충계에 널리 퍼져 있을 것임을 말해준다며, “곤충들도 새들과 마찬가지로 자기장 감지 능력을 지니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진의 말을 전했다.


이번에는 싱가포르 난양공대의 연구진은 자체 개발한 정밀측정 기법과 분석 모형을 이용해, 아메리카 바퀴벌레(Periplaneta americana, 미국바퀴)가 냉장고용 자석보다 자성이 100배 센 1킬로가우스 정도의 강한 자기장 환경에 놓일 때 그 자신이 자극을 지니는 자성체가 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바퀴벌레들은 강한 자기장 환경에서 벗어난 뒤에도 한동안 자성체 성질을 띠었는데, 연구진은 산것과 죽은것 간에 자성 지속 시간이 뚜렷히 다르다는 색다른 현상을 찾아냈다.


산 바퀴벌레가 자기장에 놓여 자성체 성질을 띠게 된 경우에는 그 몸체의 자성이 사라지는 데엔 대략 50분(50±28분)이 걸렸으나, 죽은 바퀴벨레의 자성은 대략 50시간(47.5±28.9시간)이나 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보고했다. 이런 연구결과는 물리학 분야의 공개형 학술 데이터베이스인 ‘아카이브(arXiv.org)’에 논문으로 실렸다.


논문과 매체의 관련 보도를 보면, 연구진은 정밀측정 장비와 기법을 사용해 바퀴벌레 몸에 수십~수백 나노미터 지름의 자성 물질(magnetic material)들이 존재함을 밝혀냈다.


00cockroach2.jpg » 강한 자기장 환경에 놓인 바퀴벌레(왼쪽)와 쌍극자를 지닌 자성체 바퀴벌레를 보여주는 그림. 출처/ https://arxiv.org/abs/1702.00538, Ling-Jung Kong et al.(2017) 바퀴벌레 산것과 죽은것에서 자성체 성질의 지속 시간이 다른 이유는 이런 자성 물질, 또는 자성 입자들이 바퀴벌레의 세포 안에서 처한 환경 때문인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자성 입자들은 유리질 환경(glassy environment) 안에 놓여 있는데, 이런 환경의 점성도는 산 바퀴벌레와 죽은 바퀴벌레 간에 102 규모로 증가한다”고 밝혔다.


즉, 죽은 바퀴벌레 몸에서는 자성 입자들이 자유로운 무작위 운동을 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기 때문에, 자기장 환경에 반응해 일정하게 정렬했던 입자들이 자기장 환경 밖에서도 오랜 동안 그 정렬 방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에 살아 있는 바퀴벌레 몸에서 자성 입자들은 강한 자기장 환경에 반응해 정렬했다가 자기장 환경에서 벗어나면 무작위 자유 운동을 하면서 바퀴벌레의 자성체 성질은 흐트러진다는 것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매체 <테크놀로지리뷰>가 운영하는, ‘아카이브(arXiv)’ 논문 전문보도 매체 ‘아카이브 블로그(arXivblog)’는 이번 바퀴벌레 자성체 특성 연구 이후에도 여전히 여러 수수께끼들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보도를 보면, 직접 검출되지는 않은 바퀴벌레 자성 입자들의 성분과 특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바퀴벌레 몸의 어디에서 어떻게 생성되는지, 즉 자연환경에서 섭취되어 바퀴벌레 몸으로 들어온 것인지 또는 바퀴벌레 몸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진 것인지 등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바퀴벌레 자성체 연구는 자연의 신비를 좀 더 이해하게 해주면서 또한 인공 자기센서의 기능을 향상하는 데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기초연구이다.


  ■ 논문의 도입부(Introduction)

많은 생물종들은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감각을 통해 세상을 인식할 수 있다. 해양 생물의 편광 감지 시각 또는 철새의 자기장 탐지 능력은 잘 알려진 두 가지 예이다. 자기장 민감성(sensitivity)은 사실 박테리아부터 상위 척추동물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의 생물들에 공통적이며 양자 결맞음(quantum coherence)을 활용하는 섬세한 감각 시스템으로 진화해왔다. 자성 인식 메커니즘과 생물자성체(biomagnetism, 생물계 내에서 생기는 자기장)에 대한 통찰을 얻는다면, 우리는 세계를 시각화하는 더 나은 다른 방법을 이해하게 될 뿐 아니라 그것을 다른 생물들에서 영감을 얻어 인공 센서를 향상하는 데 응용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 연구진은 원자 수준 자기력계의 고정밀도를 이용해 연속적인 자기장 측정을 할 수 있는 생체 비파괴의 비침습적(non-invasive) 방법을 보여준다. 이 방법은 아메리카 바퀴벌레(Periplaneta americana)가 만들어내는 자기장을 연구하는 데 쓰였다. 우리 연구는 이들의 몸 안에 자성 물질(magentic material)이 존재함을 드러내며, 또한 산것과 죽은것에 나타나는 서로 다른 다이내믹스를 보여준다. 우리는 산 곤충을 자성화 한 이후에 그 자기장이 잔류값까지 지수함수적으로 붕괴함을 관찰했는데, 그 붕괴 시간은 50±28분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죽은 바퀴벌레에서 평균적인 탈자기화는 훨씬 더 긴 47.5 ± 28.9시간의 붕괴를 보여주었다.
 자기장 붕괴에 나타나는 이런 명료한 차이는, 점성도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일어나는 자성 물질의 브라운운동 식 회전으로 설명된다. 모형과 측정값이 들어맞는다는 것은 곧 수십~수백 나노미터 지름의 자성 입자들이 존재함을 드러내어준다. 이 입자들은 유리질 환경(glassy environment) 안에 내재해 있는데, 유리질 환경은 산 바퀴벌레와 죽은 바퀴벌레 사이에서 102 규모의 점성도 증가를 겪는다. […]
 그동안 바퀴벌레와 다른 곤충들이 자기 감지(magneto-reception) 능력을 지닌다는 것을 보여주는 몇 건의 행동 실험들이 있었다. 이와 다른 실험들은 죽은 곤충 몸에서 자성 물질을 찾아내고 그 특성을 규명했다. 우리 연구의 데이터와 모형은 이런 (죽은 곤충에 있는) 자성 입자들이 자기 감지 능력에서 역할을 하지 않음(not responsible)을 보여준다. 점성도가 높은 환경에 있는 자성 물질은 생물학적으로 유용하게 쓰이기에는 그 운동이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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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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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한겨레 8월7치 <한겨레>의 “미래&과학” 지면에 실렸습니다. 취재 중에 이뤄진 이메일 일문일답들 중 일부를 덧붙여서 웹진용 기사로 사이언스온에도 옮겨 싣습니다. 지면 편집 과정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습니다. 전문성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