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가위 편집 작물, 신육종인가 GMO2.0인가

※ 이 글은 한겨레 1월25일치 ‘사이언스온’ 지면에 실렸습니다. 온라인 사이언스온에도 옮겨 싣습니다. 지면 편집 과정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습니다.


00foodcrop3.jpg » 유전자 가위라는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한 작물의 품종 개량 연구가 활발하다. 사진은 풍성한 먹을거리가 되는 자연의 작물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유전자 가위 편집 작물

안전성, GMO와 다를까


2013년 본격 등장한 새 유전공학 기법

콩 감자 등 신품종 잇달아 선보여


기본은 ‘빼기’의 방식

표적이 된 유전자 기능 잘라내

 

미국에선 “GMO 아닌 유망한 기술”

유럽연합 규제 대상에 둘지 심의 중


“작은 투자로 신품종 개량

GMO 수준의 규제 갇혀선 안 돼”

 

“전문가 소비자 농민 참여해 논의

새로운 규제와 절차 틀 필요”

 

GMO보다 더 정교하게 ‘넣기’도 가능

기술 활용 범위 넓을수록 논란 커져




‘이 음식들은 유전자 변형이 아닙니다, 유전자 편집입니다.’

색다른 제목이 달린 이 글은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가 최근 유전자 변형 작물, 즉 지엠오(GMO)와는 다른 새로운 유전공학 작물의 이야기를 담아 보도한 기사이다. 기사는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열린 이색 만찬에서 시작한다. 명사들이 함께한 식탁에는 ‘유전자 가위’라는, 요즘 주목받는 유전공학 기법으로 개량한 콩·감자 요리들이 풍성하게 올랐다. 생명공학 식품기업이 연 행사였다.


이 행사는 18세기의 어느 만찬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당시 유럽인은 남미에서 건너온 낯선 감자를 꺼려 심지어 재배가 금지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한 프랑스 과학자가 명사들을 불러 감자 요리 만찬을 열어 감자를 널리 알렸다고 한다. 감자는 점차 유럽에 정착했다.


감자의 운명처럼 지금 낯설게 등장하는 새로운 유전공학 작물들도 미래의 우리 식탁에 익숙하게 오를 수 있을까? ‘지엠오’라는 유전공학 작물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가 여전히 큰 분위기에서, 유전자 가위 작물은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뿔 없는 소, 털 많은 양 등 동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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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사실 유전자 가위 작물은 아주 낯설지 않다. 최근엔 국내 생명공학기업 툴젠이 국제 공동연구로 곰팡이병에 강한 포도와 사과 품종을 유전자 가위 기술로 만들어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품종 개발 과정을 연구자인 구옥재 툴젠 동식물사업부장한테 물어봤다.


00croptech.jpg 기본은 ‘빼기’의 방식이다. “먼저, 곰팡이병 균의 침입 통로를 열어주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습니다. 그 유전자 기능을 없애면 곰팡이병에 잘 걸리지 않는 작물을 만들 수 있겠죠. 이제, 그 표적이 되는 유전자를 정확히 찾아가는 길잡이인 ‘아르엔에이(RNA)-가이드’ 분자와 거기에서 유전자를 자르는 절단효소 ‘카스9’ 분자를 결합해서 세포에 넣어줍니다. 그러면 표적이 된 유전자의 기능을 없앨 수 있죠.”


비슷한 방식으로, 버섯에서 갈색으로 색깔을 바꾸는 효소의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로 없애면 변색 없이 오래 보존되는 버섯 품종을 만들 수 있다.


2013년에 ‘크리스퍼/카스9’이라는 유전자 가위 기술이 본격 등장한 이래 여러 작물과 가축 품종이 이런 유전공학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국내 연구진도 최근 몇 년 새 근육을 늘린 돼지나 실험실 수준에서 만든 유전자 가위 상추·벼의 품종 개발에 참여한 바 있다. 미국·중국 등에서 더욱 활발해 기업과 연구소들은 다양한 유전자 가위 품종 개량에 나서고 있다. 뿔이 없는 소나 근육이 발달한 개, 털이 풍성한 양 같은 동물이 만들어졌다. 김상규 유전체교정연구단 식물연구팀장은 “지금까지는 논문 형식으로 보고됐는데 이제는 상품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으리라 예상한다”며 “식물 외에 소나 돼지, 연어 같은 동물에서도 성장 속도나 근육량을 바꾸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 관심은 유전자 가위 작물이 지엠오와 같은 극심한 찬반의 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안전한 유전공학 작물로 인정받을 것인지로 쏠리고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유전자 가위 작물이 지엠오와 확연히 다르다며 ‘선 긋기’를 강조하고 있다. 김석중 툴젠 연구소장은 “지엠오는 다른 생물종의 유전자를 집어넣어 품종을 개량하는 방식이지만, 유전자 가위는 작물 고유의 유전체 일부를 약간 편집하는 수준”이라며 유전자 가위 작물이 지엠오 작물의 안전성 규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시장 반응은 유동적이고 불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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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가위 품종 개량이 잇따르면서 이미 미국과 유럽에선 이런 새로운 유전공학 품종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관한 논의가 더디지만 한창 진행되고 있다. 특히 식탁에 오를 품종은 민감한 관심사가 된다.


대체로 과학계는 큰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미국과학아카데미(NAS)는 지난해 유전공학 작물의 기술 현황을 종합한 보고서를 내어, 유전자 가위 기술이 유전공학의 정밀도를 높여 지엠오를 넘어서는 유망한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4월엔 미국 농무부(USDA)가 유전자 가위 기술로 만든 변색 예방 버섯이 지엠오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려 주목을 받았다. 외래 유전자의 안전성을 다루는 지엠오의 안전성 규제 대상에서 유전자 가위 기술은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논란이 정리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시장과 소비자의 반응은 유동적이어서 유전자 가위 작물이 시장에 들어서는 데엔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지엠오 반대 여론이 높은 소비자나 농민·환경단체, 그리고 유럽 지역의 분위기는 더욱 그렇다. 미국 농무부에 속한 유기농 분야 자문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유기농법을 지켜 생산했더라도 유전자 가위 작물이라면 ‘유기농’이란 표시를 해선 안 된다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최준호 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국내에선 아직 많은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국제사회의 소비자, 환경, 농민 분야 단체들은 유전자 가위 기술을 지엠오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여기진 않고 있다”고 전했다.


품종 개량의 과정을 중시하는 유럽연합도 유전자 가위 작물을 지엠오 규제 대상으로 둘지를 지난해부터 심의를 계속하고 있다.


“정책적 투명성 서둘러 확립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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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유전자 가위 작물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관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진수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결과물로 보면) 기존 육종의 산물과 구별되지 않는 유전자 가위 작물은 (지엠오 규제가 아니라) 현재처럼 품종 등록으로 규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그러나 논의 과정에 소비자, 농민, 개발자, 회사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석중 툴젠 연구소장은 “유전자 가위는 대자본이라야 가능한 지엠오 개발과 달리 작은 투자로도 토종 콩을 개량해 국제적인 식품으로 만들 수도 있는 기술”이라며 유전자 가위 기술이 지엠오와 같은 수준 규제에 갇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신중론도 많다. 지엠오 논란을 오래 연구해온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는 “새로운 규제와 절차의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안전성 심사나 규제와 관련한 실제 전문가들이 참여해 본격적인 과학 논의가 이뤄지고, 이후에 소비자와 농민을 포함해 넓은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해 논의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내 대학의 한 독성학 교수는 “유전자를 넣는 게 아니라 뺀다 해도 그 과정에서 주변 유전자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유전자 가위 작물의 안전성에 아무 문제가 없음을 입증하거나 반박할 독성학적 근거가 현재 없기에 어떤 방식이건 심사 절차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지금처럼 특정 유전자를 ‘빼는’ 방식에 머물지 않고 외래 유전자를 넣어 ‘더하는’ 방식도 유전자 가위 기술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이 기술의 활용 범위가 넓어질수록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펴낸 ‘글로벌 유전자교정 기술동향 보고서’에서 전문가 필자들은 유전자 가위 작물에 어떤 규제 절차를 둘지 정책의 투명성을 서둘러 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의 책임필자인 나도선 울산의대 명예교수는 “보고서는 결론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해야 할 논의의 시작”이라며 “더 넓고 깊은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전자 편집-유전자 교정, 용어도 논란


부정적-긍정적 시각 차이

‘지엠오2.0’이라 부르기도



‘유전자 가위’ 기술을 다루는 연구자들은 새로운 유전공학 기술이 이전의 유전자 변형 기술과 완전히 다른 방식임을 강조하는 용어를 선호하고 있다. 특히 연구자들은 표적이 된 유전자를 정확히 찾아가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유전자를 변형한다는 의미를 강조해 국제 공용어인 ‘게놈/진 에디팅’(genome/gene editing)을 유전체/유전자 ‘편집’ 대신에 ‘교정’이라고 번역해 쓴다.


연구자들은 “유전자 편집이라는 용어는 일반인들에게 불필요한 오해와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여러 글감을 가져다가 편집하는 게 아니라 책 중 일부만을 수정한다는 뜻에서 ‘교정’으로 풀이하는 것이 “연구 목적과 일치하는 용어”라는 의견을 모아 밝히기도 했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유전자 ‘편집’으로 오역되는 문제에 대해 국내 관련 학자들이 논의해 의견서를 언론과 정부에 제출했다”며 “지난달 개최한 학회의 공식 명칭도 한국유전자교정학회로 합의한 바 있다”고 말했다.


‘신육종’이란 표현도 자주 쓰인다. 연구자들은 유전자 가위로 만든 품종이 예컨대 방사선으로 무작위 돌연변이를 만들고서 품종을 선발하는 기존 육종 방식과 결과적으로 다를 바 없다며 유전공학 작물이 ‘새로운 육종 기술’(NBT)의 하나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교정’이라는 번역어가 과학 용어로 적절한지에 대한 반론은 있다. 전방욱 강릉원주대 교수(생물학)는 “편집이라는 말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사용하지 말자는 주장만큼이나 교정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떤 언어를 쓰느냐는 논의의 초기 단계에서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염기서열 몇 개부터 대규모 염색체까지 다루어 여러 가능성을 포괄한다는 점에서도 편집이란 번역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엠오(GMO)에 반대해온 소비자·환경·농민단체들은 유전자 가위 기술도 근본적으로 유전자 변형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며 유전자 가위 작물을 ‘지엠오 2.0’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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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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