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나는 실험에 집중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고로…

한정규의 “자연과학 공부의 안과 밖”(5)


[안] 실험실에서 실험에 집중하기

 



‘부우웅~부부웅~’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아침 6시55분. 5분 뒤에 다시 ‘부우웅~부부웅~’, 진동이 이불 속으로, 귀로 전달된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 가기 전과 후가 확연하게 다른 모습으로 집을 나선다. 아침 7시25분, 지하철과 버스 안의 사람들은 자는 사람과 자지 않는 사람 두 부류로 나뉘어 있는 듯하다. 대중교통 탈거리 안에 머무는 시간은 환승 시간을 포함해 1시간 남짓 걸린다. 나는 대개 자는 사람들 쪽에 편입된 채 목적지에 내릴 때까지 잠에 몸을 맡긴다. 오전 8시30분, 실험실에 도착하고 이제 또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


위의 이야기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어지는 나의 아침 일상이다. 모든 대학원생이 꽉 짜인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는 일정한 시간 패턴으로 매주를 비슷하게 보낸다. 틀에 박힌 생활을 하다보니, 어떤 때에는 내가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한 생각도 든다.



’실험연구에 집중할 시간’ 찾아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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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sketchH4.jpg » 바쁘게 출근하다보면 출근하면 아침을 대개 못 먹는데 가끔씩은 빵으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사진/ 한정규 실험실 출근으로 시작하는 실험실 생활의 하루를 여러 관점에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다. 누군가는 빈틈없이 짜둔 실험 스케줄에 맞춰 바쁘게 자신의 하루를 보내며 실험 일정이 비어 있을 때에도 늘 자기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하루를 보낼 수도 있겠고, 달리 보면 누군가는 마치 중세 유럽의 수도사처럼 상아탑 안에서 평안함을 느끼며 나날이 되풀이되는 수행을 하는 듯이 하루를 보낼 수도 있겠다.


어떤 하루가 좋은지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이 만족하는 선에서 나태함의 고삐를 죄는 규칙을 정해놓는 것이 중요하겠다. 한국의 대학원에서는 학생들이 대개 밤늦게까지 실험실에 머물며 생활한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열정적으로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의 실제 사례도 전해들은 적이 있다. 이런 생활에 익숙한 사람은 주변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스타일대로 일하기를 즐기며 또한 그런 생활에서 만족감을 얻는 사람일 것이다. 과거에 미국 대학 또는 연구소에서 밤에 불이 안 꺼진 실험실이나 연구실에는 십중팔구 한국인 연구자가 있더라는 이야기도 있었지 않은가. 반대로 유럽이나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박사급 연구원들은 대개 밤새워 일하지 않는다. 미국 유명 대학에서 공부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연구뿐만 아니라 다른 개인적인 활동에도 적극 참여한다.

00sketchH1.jpg » 미국국립보건원(NIH) 연구소의 밤풍경. '지금 이 시간에도 적의 페이지는 넘어가고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출처/ http://nems.nih.gov/programs/Pages/energy) 

문제는 앞에서 말한 두 가지의 일하는 방식에서 어떤 다른 결과가 나오느냐 하는 것인데, 내 생각에는 상관관계가 별로 없어 보인다. 첫째, 외국 실험실의 성과가 한국 실험실의 성과보다 더 뛰어난 점이 많다고 하더라도, 사실 그런 성과는 기반 시설이나 물적 자원, 인적 자원 등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것들이다. 둘째로, 개인 연구의 우수한 성과가 어떤 요인에서 나왔는지 입증하기에는 관련된 요소가 너무나 많다. 연구에 투자한 시간으로 연구자의 우수성을 설명할 수는 없다. 머리가 매우 영리한 것이 먼저인지, 시간 투자를 많이 하고 노력해서 영리해진 것인지 쉽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또한 시간과 일의 결과 사이에서 ’절대적 시간’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상대적으로’ 얼마나 일에 집중했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연구 활동에서는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실하게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실험실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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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래왔지만 요즘은 논문을 써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실험실에서 보내고 있다. 나와 주변의 경우를 대략 계산해보면, 하루에 14시간 정도는 실험실에 머무는 것 같다. 오랜 시간을 한 장소에서 보내는 까닭은 많은 실험을 하고 겪게 될 시행착오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역효과도 있는데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긴장감이 약해지는 경우도 많다. 어느덧 환경에 잘 적응하고 익숙해져 긴장감이 풀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일상에 익숙해질 때 필요한 것이 자극이다. 그런데 그런 자극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 외부에서 오는 자극으로는, 나보다 연구 업적이 뛰어난 이의 모습을 보며 내가 뒤쳐지고 있음을 불현듯 자각하는 일일 수도 있고, 다른 소소한 현실적 문제들 때문에 또는 실험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외부가 아니라 나 자신의 내부에서 스스로 자극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사실 의문이다. 타인에게 냉정해도 자신에게는 관대한 것이 인간이 아닌가.

00sketchH2_2.jpg » 간단한 실험들에 소소하게 사용되는 것들. 사진은 시약장, 완충용액, 현미경 렌즈. 사진/ 한정규

나는 적절한 자극을 받으며 오랫동안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적인 난점도 있다. 실험실은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공동체’라는 말을 쓰니, 마치 국가나 단체 같은 강제와 규율이 존재하는, 개인을 속박하는 집단 같은 이미지로 실험실 생활이 이해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공동체라는 말을 쓴 이유는 이 말이 실험실의 특성을 어떤 면에서는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약과 장비를 공공의 물건으로 여겨 다른 이들이 쓸 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서 써야 하고, 실험실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행동과 말을 생각해야만 소소한 언쟁을 비롯해 다툼을 막을 수 있다. 자신의 실험이 소중하고 데이터가 잘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그것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공동체라는 특성을 잘 이해했을 때, 실험실에서 공동체적 삶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지 않은 예로서, 공동체 생활을 강요하면서 실험실에서 선배와 후배의 관계를 확인하려 한다거나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은 실험실 공동체의 참된 의미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기희생, 솔선수범, 화해와 결집 없이 공동체는 성립할 수 없을 테니까.


어느 실험실을 표본으로 추출해 보아도 실험실 구성원 개인들 간에 마찰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나는 상대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말을 건넸어도 상대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실험실에서 무언가 잘못된 점이 생겼을 때, 그것을 고쳐야 할 때에 문제가 불거지곤 한다. ‘말하기에도 기술(테크닉)이 필요하다’는 말의 의미를 이때에서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는데, 예컨대 상대방 개인을 주어로 삼아서 잘못된 일에 관해 말하면 안 된다. 예를 들면 “네가 사용한 다음에 이 장비에 이상이 생겼다” 같은 말은 사람 관계를 틀어지게 만들기에 딱 좋다. 상대방은 은연중에 자신한테 책임을 지우게 하려 한다고 지레 생각하게 마련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상대방과 내가 함께 연루되어 있는 경우에는 책임보다는 상황을 중심으로 하여 사실관계를 말해야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 문제를 바로잡는 일을 별 탈 없이 진행할 수 있다. 이렇게 말 한마디를 내뱉을 때 한 단계를 더 생각하는 것이 공동체적 삶 안에서 내 개인의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실천 가능한 방법이다.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인지적 결함’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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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가 잘 안 되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자신이 하는 일의 성격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해 오랜 동안 집중하고 싶지만, 사실 실험실에서 대부분 사람들에게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실험실에서 하는 여러 일들이 그런 어려움을 만들어낸다.


생물학 실험실은 기본적으로 대장균을 배양하거나 세포, DNA, RNA, 단백질 등을 다룬다. 그리고 이들을 다루는 실험 방법들(assay)이 있다. 무엇보다 생물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겪는 난점 중 하나가 실험 대상물을 100% 제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험 결과로 나온 불규칙한 데이터의 패턴을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실험하는 중에도 실험자의 스케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연구 대상물에 스케줄을 맞춰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00sketchH3.jpg » 살아있는 세포를 관찰하는 현미경과 전기 자극을 주기 위한 장치. 사진/ 한정규

실험 대상물에 맞추는 스케줄의 시간은 분 단위도 있지만 12시간 단위가 되기도 하여 밤샘 작업도 가끔 필요해진다. 주말에도 실험실을 나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물 연구자는 생물의 시간표에 맞춰 살아간다. 그래서 실험자가 늘 고민하고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실험 스케줄이다. 물론 결과를 빨리 보기 위해서 무리하는 때도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간단한 실험 과정(assay)를 단 하루 동안에 톱니바퀴처럼 8개 스케줄을 동시에 짜 넣어 진행한 적이 있었다.


심지어는 실험 중에 생길 수 있는 실수를 대비해, 일종의 ‘백업용’으로 2차 실험까지 약간의 시간차를 두어 동시에 진행했다. 아예 다른 종류의 시약을 쓰는 실험이라면 모를까, 똑같은 프로토콜로 진행되는 실험을 약간 다른 시간대에 맞춰서 하는 것은 그야말로 실험자의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했다. 우선 각 실험을 능숙하게 할 수 있어야 하고, 실수를 했을 때의 대비책도 마련해 두어야 한다. 2차 실험이 믿음직하다고 해서, 그동안 들인 시간과 돈, 나의 인적 자원을 한방에 날릴 수는 없으니까. 여기에서 잠깐 생물전공자가 아닌 분들에게 말씀을 더 드리자면, 생물 실험에서 실수는 짧게 하루, 길게 일주일의 시간을 날려버린다. 세포를 배양해 실험 처리해서 놓아두는 시간이나 대장균을 이용하는 실험처럼 하루를 꼬박 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지니고 있던 자신의 ‘인지적 결함’(이런 말이 학술용어로 있는지는 모르겠다)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내가 갖고 있는 인지적 결함은 필요한 시약을 준비할 때 실험 테이블 위에다 한 번에 다 준비하지 못하고, 좋게 말하면 차례차례, 하나하나씩 찾아서 가져오는 습관과 관련이 있다. 분명 다 생각해두고서 목록까지 적어놓고서 시약장이나 냉장고에 가서 필요한 물품을 찾아 들고 와서 보면 꼭 하나둘씩은 빠져 있다. 물론 지금에야 이런 나의 몇 가지 인지적 결함에 대해서는 스스로 파악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만의 대응책도 세워두었지만, 나의 인지적 결함에 대해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했을 때에는 실험을 진행하는 데 여러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이런 것이 실험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어려운 점이다. 그리고 사실 이런 특징은 누구에게나 있다. 마치 누구나 실수하는 것처럼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인지적 실수는 신경과학을 공부하는 나에게 또 하나 생각할 거리였다.



컴퓨터 종료 ‘로그 오프’
실험실에서 허무하게 혼자 작동하는 기계가 있는지 순찰을 한 번 돈다. 세포는 잘 있는지, 현미경은 그대로 켜져 있지는 않은지. 밤 10시, 심신이 피로해진 채로 가방을 챙긴 채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바깥세상을 구경하며 집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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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규 서울대학교 대학원 뇌인지과학과, 신경과학 전공
인간의 의식이 궁금하던 차에 우연히 사람 뇌를 만져보다가 뇌와 신경에 매료되어 공부하게 된 Ab혈액형의 소유자. 생물학을 공부했으나 큰 틀로 마음, 의식을 공부하기 위해 MEG를 이용한 이미징을 하다가 다시 현미경에 빠져 작디작은 시냅스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의식의 생물학적 기반을 찾는 것을 평생과업으로 삼고 있다.
이메일 : jkhan97@naver.com       트위터 : @jayhan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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