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들도 서로 소통..“상황에 따라 감염방식 결정”

이스라엘 연구진 “아르비트리움 시스템” 명명


박테리아 감염 파지 바이러스에서 ‘소통용’ 단백질 조각 발견

“인체감염 바이러스도 그렇다면, 감염 조절 약물개발도 기대”


00bacteria_phage.jpg » 박테리아의 표면에 달라붙어 감염공격 하고 있는 수많은 박테리오파지 바이러스들. 출처/ Wikimedia Commons


테리아들이 물질을 분비해 주변의 다른 박테리아들과 소통하는 ‘미생물 커뮤니케이션’은 이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박테리아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간소한 유전체를 지닌 바이러스들도 특정 분자 신호에다 어떤 정보를 담아서 자기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새로운 발견 소식이 전해졌다.


박테리아를 감염하는 바이러스(박테리오파지 또는 파지)가 동료 바이러스들이 남긴 특정 분자를 통해 주변의 감염 상황을 감지하고서, 숙주 박테리아를 바이러스 복제에 이용하고서 파괴할지, 숙주 박테리아를 살려둔 채로 자신은 잠복할지 그 감염 공격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이스라엘 연구진이 밝혔다.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의 미생물유전체학 연구진(책임저자 로템 소렉, Rotem Sorek)은 몇 년에 걸친 이런 연구의 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에 1월18일 발표했다. <네이처>는 뉴스 보도에서 “연구자들은 다른 많은 바이러스들도 그들만의 분자 언어를 통해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면서 “만일 그렇다면 바이러스의 공격을 교란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발견된 것”이라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네이처> 뉴스는 애초에 연구진은 박테리아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다가 예측하지 못한 이런 새로운 현상을 찾아냈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바실루스 수브틸리스(Bacillus Subtilis)라는 박테리아가 파지 바이러스(phi3T)의 감염 공격을 받을 때 특정 물질을 분비해 주변의 다른 박테리아들에게 어떻게 경고 신호를 보내어 소통하는지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던 중에 이상한 현상을 보았다.


00bacterophage3.jpg » 박테리아를 감염하는 박테리오파지의 전자현미경 영상(왼쪽)과 박테리오파지의 기본 구조 그림. 출처/ Wikimedia Commons 바실루스 박테리아들이 있는 플라스크 안에다 파지 바이러스를 집어넣자 처음에 이 바이러스들은 박테리아를 감염하고서 박테리아가 사멸할 때까지 자신을 복제 증식했다. 그런데 같은 플라스크에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깨끗이 없앤 다음에(그러나 실제로는 바이러스의 일부 단백질 조각[펩타이드]은 남아 있었던 것이 나중에 확인됐다), 다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그 안에집어넣았다.


그랬더니 이번엔 파지 바이러스가 박테리아를 감염하는 방식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파지 바이러스들은 박테리아를 감염하고서 그 생명시스템을 장악해 자신을 폭발적으로 복제 증식시키고 그러다가 박테리아를 죽이는 대신에, 이번에는 조용히 박테리아 안에 잠복 또는 휴면하는 감염공격의 전략을 취했다.


연구진은 플라스크에 미량으로 남아 있다가 바이러스의 박테리아 감염공격 방식을 바꾸게 한 물질을 찾아냈고, 이들은 이런 “신비한 분자”들에다 ‘아르비트리움(’결정/판단‘이란 뜻의 라틴어, arbitriu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네이처>는 연구진이 이후 2년 반에 걸친 후속 연구를 통해 신비한 ‘아르바티움’의 비밀이 다름 아니라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멸한 박테리아에서 나온 바이러스의 조각 단백질(펩티드)임을 확인했다. 이들은 바이러스들끼리 소통 수단으로 쓰이는 분자로 3종의 아르바티움 펩타이드를 찾아냈다.


이번 연구는 미생물인 박테리아뿐 아니라 생명체의 기본 시스템을 다 갖추지 못해 기생적으로 번식하는 바이러스조차도 이른바 자신들만의 ‘분자 언어’를 이용해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게다가 이처럼 바이러스들이 특정 분자 신호를 감지할 때 숙주 감염공격의 방식을 바꿀 수 있음을 처음 보여주었다는 점은 생물학뿐 아니라 의학 분야에서도 새로운 연구 분야가 창출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네이처> 뉴스에서 사람처럼 훨씬 복잡한 생명체를 감염하는 바이러스들에서도 이런 바이러스 소통 방식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만일 그렇다면, 그래서 바이러스를 완벽한 휴면 상태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어떤 분자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훌륭한 약물이 될 수 있다”고 연구진은 기대했다.


  논문 초록

온건한 바이러스(temperate viruses)는 숙주 세포에서 휴면(잠복, dormant) 상태로 있을 수 있다. 모든 감염에서, 이런 바이러스들은 [숙주 세포를 파괴하는] 용균성 생활사(lytic cycles)로 나아갈지, [숙주 세포 파괴 없이 자기 유전자를 복제하는] 용원성 생활사(lysogenic cycles)를 나아갈지 결정한다. 즉, 자신을 복제하고 숙주를 용해할지 또는 용원 작용으로 숙주를 살려둘지를 결정한다 [참조: 위키백과의 용균성/용원성 생활사 설명자료]. 이 연구에서 우리는 SP베타(SPbeta) 그룹에 속하는 바이러스(박테리오파지)가 저분자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사용해 용균-용원 결정(lysis–lysogeny decisions)을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숙주인 바실루스(Bacillus) 박테리아 세포를 감염하는 동안에 파지는 6개 아미노산 길이의 커뮤니케이션 펩타이드를 생산하며 이것들은 배지(medium)로 방출된다. 뒤이은 감염에서, 후행 파지들은 이 펩타이드 농도를 측정하고서 그 농도가 충분히 높을 때에는 용원성을 나타낸다(lysogenize). 우리는 서로 다른 파지들이 서로 다른 커뮤니케이션 펩타이드를 만들어내며, 용원성 결정(lysogeny decisions)에 필요한 파지-특이적[파지마다 서로 다른] 커뮤니케이션 코드가 있음을 발견했다. 우리는 이런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아르비트리움(arbitrium)’ 시스템이라 명명하며, 더 나아가 그것이 3개의 파지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짐을 보여준다. 즉 펩타이드를 생산하는 aimP 유전자, 세포간 펩타이드 수용체 유전자인 aimR 유전자, 그리고 용원성 억제 조절자(negative regulator)인 aimX 유전자가 그것들이다. 아르비트리움 시스템 덕분에 후행 파지들은 선행 파지들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다. 즉, 조금 전에 이뤄진 감염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추산하고서(estimate) 용균성 생활사로 갈지, 용원성 생활사로 갈지 결정할 수 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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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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