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의 "남극의 과학자, 남극의 동물"

까치를 연구하던 젊은 동물행동학자가 우연한 기회에 찾아간 새로운 생태계 연구 현장인 남극. 극지연구소의 이원영 박사가 남극에서 겪은 연구자의 삶, 그리고 거기에서 경험한 다양한 동물과 자연 생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펭귄의 ‘사랑과 전쟁’

[11] 짝짓기와 이혼에 관하여


00P1_Chinstrap.jpg » 짝이 있는 암컷에게 구애를 하다가 그 짝에게 걸려 싸움에 지고 피를 흘린 떠돌이 수컷 펭귄. 출처/ 이원영


귄마을에서 떠돌이로 사는 수컷 턱끈펭귄 한 마리가 번식지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다른 펭귄들은 벌써 새끼를 낳아 키우고 있는데, 이 녀석은 아직 짝을 구하지 못한 것 같다. 이 둥지 저 둥지 돌아다니는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조금은 처량해보여,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계속 지켜보았다.


수컷 펭귄은 이내 걸음을 멈추고 호기롭게 번식지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한 암컷에게 다가가 고개를 앞으로 내밀면서 구애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멀지 않은 곳에 암컷의 짝이 있었다. 짝은 재빨리 다가와 둘 사이를 갈라놓고선 싸움을 벌인다. 두툼한 부리로 상대의 머리와 가슴을 사정없이 물어 뜯는다. 떠돌이 펭귄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몇 차례 공격적으로 상대의 머리를 노리지만 힘에서 밀리는 모양이다.


그렇게 암컷 한 마리를 사이에 두고 수컷 두 마리가 다투기 시작하니 주변은 아수라장이 된다. 다른 펭귄들은 행여나 자기 새끼가 다칠세라 싸움이 벌어지는 곳을 등진 채 몸을 웅크리고 새끼를 감싼다. 5분 정도 지속된 싸움은 결국 한 쪽이 피를 보고서야 마무리됐다. 떠돌이 펭귄이 졌다. 입 주위에 상처를 입었는지 부리 끝으로 피가 뚝뚝 떨어진다. 몸 여기저기 흙과 피가 뒤섞여 범벅이 된 채, 번식지 가장자리로 밀려나 서서 간신히 정신을 차린다. 한편 암컷을 지킨 짝은 제법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둥지 앞에 섰다.


피를 흘리는 펭귄의 모습이 걱정되어 가까이 다가가니 외려 나에게 화풀이를 하듯 내 바지를 물어 뜯는다. 아무래도 그냥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멀리 떨어져서 지켜봤다.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었는지 피는 멎었고, 펭귄도 안정을 되찾았다.



펭귄의 짝?- 상대의 선택을 받는 펭귄의 특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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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턱끈펭귄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짝을 찾는 일은 어렵다. 좋은 짝을 만나는 것은 더욱 그렇다. 따라서 상대가 좋은 짝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며 내가 좋은 짝임을 상대에게 잘 보여주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그리고 자기 짝을 지키기 위해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찍이 찰스 다윈은 1871년 출간한 <인간의 유래와 성에 관한 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라는 책을 통해 공작의 꼬리깃이 왜 그렇게 화려한지, 숫사슴의 뿔은 왜 그렇게 커다란지에 대해 설명했다. 다윈의 성선택(Sexual selection) 이론에 따르면, 암컷의 선택을 받고 경쟁자들을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생존에 불필요해 보이는 특징도 발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펭귄들은 어떻게 짝을 선택할까? 공작새처럼 수컷이 극히 화려한 깃을 갖는 경우도 있지만, 이와 달리 펭귄은 겉보기에 암컷과 수컷이 비슷해 구분이 힘들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앞선 연구결과들을 보면, 사람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색 차이가 있어서 이것이 짝을 선택하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임금펭귄(King Penguin)은 부리 아랫부분과 귀 부분에 선명한 오렌지색 빛이 나타난다. 프랑스 연구진이 인도양 아남극권의 포세션 섬(Possession Island)에서 임금펭귄의 부리 색깔을 나이에 따라 구분해보니, 나이에 따라 부리와 귀의 색깔이 다르게 나타났다. 특히 수컷의 부리색을 나타내는 ‘자외선(UV) 반사도’가 높은 개체들이 번식을 빨리 시작했고 몸무게도 많이 나갔다.


번식을 빨리 한다는 것은 새끼를 잘 키워낼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능력 있는 부모의 지표가 되며, 몸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건강 상태도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컷 부리의 ‘UV 반사도’는 상대에게 자신의 능력과 몸 상태를 알릴 수 있는 신호가 된다. 실제 연구진이 인위적으로 수컷의 반사도를 30% 줄였을 때 수컷들은 짝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00P2_Falkland_Islands.jpg » 포클랜드 섬에서 번식하는 임금펭귄. 출처/ 위키커먼스(By Ben Tubby)


란눈펭귄(Yellow-eyed Penguin)은 이름 그대로 눈 주위에 노란 띠를 지니는데, 이것이 펭귄의 건강 정도와 나이를 나타내는 하나의 신호로 작용한다. 뉴질랜드 연구진이 오타고 반도(Otago Peninsula)에서 번식하는 펭귄들의 눈과 눈 주변을 지나는 띠의 색에 주목했다. 얼굴 사진을 찍어 분석한 결과, 암컷의 눈 색깔은 나이가 들수록 더 진한 노란색이 되고 수컷은 점점 붉은 빛을 나타냈다. 또한 건강 상태가 좋은 펭귄일수록 눈 주변 노란 띠의 채도(Satuation)가 높았다. 펭귄 부부 40쌍을 놓고 살펴보니, 눈과 눈 주변 띠의 채도와 색상(Hue)의 수치가 높은 개체들끼리 서로 짝을 지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눈의 채도가 높은 부부일수록 새끼도 잘 키워냈다.


이런 결과들을 토대로 보면, 노란눈펭귄들은 짝을 고를 때 상대의 눈을 보고서 ‘어리고 연약해서 안 되겠어’ 혹은 ‘나이도 있고 건강해서 괜찮겠어’라고 판단할 수 있다.(물론 펭귄이 정말 이렇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린다는 말은 아니다. 눈과 주변의 색깔이 간접적인 기준이 되어 짝을 고르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00P3_Yelloweyed_Penguin.jpg » 뉴질랜드 오타고 반도에 사는 노란눈펭귄. 출처/ 위키커먼스(originally posted to Flickr.com by Attis1979 on 26 Aug 2009)


귄마을에서 볼 수 있는 젠투펭귄(Gentoo Penguin)의 부리에도  붉은 빛이 도는데 개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세종기지가 있는 남극 킹조지 섬에서 스페인 연구진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수컷 젠투펭귄의 부리 색깔이 더 붉고 진할수록 몸 상태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리 색에 따라 암컷의 선택을 더 많이 받는지에 대한 보고는 아직 없지만, 임금펭귄이나 노란눈펭귄의 경우를 떠올리면 젠투펭귄의 부리 색도 역시 암컷에게 작용하는 성적인 신호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00P4_Gentoo.jpg » 펭귄마을의 수컷 젠투펭귄. 출처/ 이원영



펭귄의 이혼- ‘짝을 유지할 것인가, 새 짝을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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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의 90% 이상은 ‘일부일처제(Monogamy)’를 유지하며, 펭귄들도 그렇다. 하지만 여기에서 새들의 일부일처제는 번식하는 계절 동안만 그렇다는 뜻이지 해마다 계속 같은 짝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들이 사는 세상에서도 짝을 바꾸는 일, 즉 이혼이 흔하게 관찰된다.(이혼(‘Divorce’)이란 용어가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동물학 분야 연구논문에서도 사용되는 단어다.)


이혼하는지에 대해, ‘불화합 가설(Incompatibility hypothesis)’은 번식기에 부부 간의 화합이 잘 맞지 않으면 합의 하에 갈라설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실제 세가락갈매기(Black-legged Kittiwake, Rissa tridactyla) 부부가 키운 알이 잘 부화했을 때엔 이듬해 이혼율이 17%에 불과했지만, 제대로 부화하지 못해 번식에 실패한 쌍은 이혼할 확률이 52%로 높게 나타났다. 열심히 짝을 골랐지만 알을 품고 교대하는 데 서로 호흡이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으며, 상대가 불임일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혼하고 새로운 짝을 찾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이혼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은 ‘더 좋은 짝 가설(Better pairing option hypothesis)’이다. 수명이 긴 새들은 평생에 걸쳐 번식을 여러 번 하기 때문에, 더 좋은 짝이 나타나면 굳이 기존에 있던 짝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두 가설은 공통적으로 이혼이 번식을 더 잘하기 위한 ‘적응 전략(Adaptive strategy)’이라고 바라본다.


종에 따라서 이혼율도 달라진다. 알바트로스(Albatross, Diomedea irrorata)는 짝이 살아 있는 한 이혼하지 않고 평생 같은 짝과 다닌다. 반면 플라밍고(Greater flamingo, Phoenicopterus ruber)는 항상 번식 때마다 짝을 바꾼다. 펭귄의 이혼율도 종에 따라 차이가 있다. 현장 연구에 따르면 마카로니펭귄(Macaroni Penguin)의 이혼율은 9%밖에 되지 않지만 황제펭귄(Emperor Penguin)은 85%, 임금펭귄은 81%로 꽤 높은 편이다. 종마다 수명과 생활사가 다르기 때문인데, 참고로 몸집이 큰 편에 속하는 황제펭귄은 평균 20년 정도 사는데 그 중 일부는 50살까지 살 거라고 추정되고, 크기가 작은 리틀펭귄(Little Penguin)은 26년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가 연구하는 젠투펭귄과 턱끈펭귄(Chinstrap Penguin)의 이혼율은 각각 27%, 18% 정도로 그리 높지 않은 편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과연 펭귄마을에 사는 부부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지난해 젠투펭귄 부부 12쌍의 몸에 개체를 확인할 수 있는 칩을 삽입했다. 올해에도 같은 개체가 부부를 맺는지 확인해보았더니, 불과 3쌍 정도만 짝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머지 9쌍 가운데 4쌍은 다른 개체와 ‘재혼’한 것을 확인했고, 5쌍은 짝을 다시 찾지 못했다.


조사한 개체 수가 적긴 하지만, 이혼율이 최소 30%가 넘고 최대 75%까지 될 수도 있다. 처음 펭귄들에게 개체인식 칩을 부착하면서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일부일처제니까 당연히 같은 짝이랑 다니겠지. 설마 힘들게 매년 짝을 바꾸겠어?’ 하는 생각이었는데, 결과를 놓고 보니 매번 같은 짝이랑 같은 번식지로 오는 일은 꽤나 드문 것 같다. 왜 이혼을 하는지 그 이유는 아직 모르지만, 전에 짝을 맺은 개체와 올해 새로 결합한 개체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조사중이다.


00P5.jpg » 젠투펭귄에게 삽입한 정보을 이용한 개체 확인. 출처/ 김한규


음부터 펭귄의 이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은 펭귄의 계절별 이동경로에 관심이 있어서 추적장치를 달아놓고 연구를 시작했는데, 이듬해에 회수할 확률이 너무 낮았다. 부부에게 붙였는데 그 중 한 마리에만 장치가 있고 짝이 바뀌어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선행연구들만 보고 으레 이혼율이 낮을 거라 생각하고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펭귄들이 짝을 바꿨다.


요즘은 펭귄을 볼 때마다 ‘이 암컷은 수컷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짝을 지었을까? 이 부부는 내년에도 헤어지지 않고 다시 올까?’ 하는 생각을 하며 관찰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다 똑같이 생긴 펭귄인데 자기들끼리는 서로 알아보고, 누가 좋은 짝일지 저울질하며, 짝을 자주 바꾸는 것을 보면 참으로 놀랍다. 펭귄의 세계에서도 그들만의 ‘사랑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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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극지연구소 생태과학연구실 선임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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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극지연구소 생태과학연구실 선임연구원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연구자입니다. 지금은 남극에서 펭귄을 비롯한 극지의 해양조류들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원영의 새, 동물, 생태 이야기’라는 과학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메일 : wonyounglee@kop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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