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덫, 생명공학의 상업화

    …서평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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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로서의 생명 Life As Surplus
멜린다 쿠퍼 지음, 안성우 옮김 | 갈무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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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퍼가 말하는 잉여로서의 생명이란 DNA 재조합 기술과 같은 생명공학기술을 통해 미래에 탄생할 생명으로부터 추가적으로 얻게 될 잉여가치로, 이때 잉여가치는 순전히 자본주의적 가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잉여로서의 생명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생명 그 자체의 고유한 가치를 강조하는 생명윤리 관점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자 가치이다. … 생명공학의 고수익은 결정론적 운명론에 수긍하지 않고 생명공학 기술을 적극 활용한 생물학적 재생산을 통해 유기적 공간과 시간의 제한을 벗어나 실험적 생명 형태가 잉여가치를 영구적으로 재생할 것이라는 생물학적 ‘약속’을 통해 창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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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갈무리 출판사가 투고한 전문가 서평입니다. 제3자 비평과 책 정보를 담고 있는 서평을 이곳에 공유합니다. 사이언스온은 출판사와 관계가 없습니다. -사이언스온]




00book4.jpg » 출처 / https://goo.gl/JuYmub

 

신자유주의 시대 생명공학에 대한 기대와 망상으로 빚어진 잉여 생명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우리 사회는 그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잊고 살았던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과 국민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동시에 2005년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또 하나의 사건, ‘황우석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 속에서 불임클리닉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차병원 그룹의 건강관리 전문병원인 차움병원의 줄기세포 치료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05년 황우석 사건 당시 화두가 됐던 줄기세포 연구의 효과, 안전성, 생명윤리 등의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여전히 논쟁적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일까?



생명공학시대 ‘생명가치 재구성’에 대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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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린다 쿠퍼(Melinda Cooper)는 <잉여로서의 생명>에서 이렇듯 식지 않는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관심이 생명공학에 대한 투자(혹은 투기)를 통해 산업사회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쿠퍼가 말하는 잉여로서의 생명이란 DNA 재조합 기술과 같은 생명공학기술을 통해 미래에 탄생할 생명으로부터 추가적으로 얻게 될 잉여가치로, 이때 잉여가치는 순전히 자본주의적 가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잉여로서의 생명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생명 그 자체의 고유한 가치를 강조하는 생명윤리 관점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자 가치이다.


간게놈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2000년 이후, 푸코의 ‘생명정치(biopolitics)’ 개념에 토대를 둔 생의료화(biomedicalization)나 생명공학의 상업화(commercialization)에 대한 사회학적 논의는 지속적으로 있었다.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학기술학(STS)에서는 생명공학과 관련된 다양한 행위자들의 이해관계, 법률적,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 이슈들을 밝혀 왔다. 이를 통해 생명공학을 인류에 장밋빛 미래를 선사하는 “요술 지팡이”로 바라보는 인식에 대한 견제도 강화됐다. 따라서 언뜻 생명공학에 대한 쿠퍼의 논의가 새삼 새롭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책에서 분석 대상으로 삼은 재조합 디엔에이(DNA), 세포기반 치료, 재생의학, 줄기세포 과학 등의 사례들 또한 우리가 전혀 모르던 분야도 아니다.


그럼에도 쿠퍼의 논의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쿠퍼는 정치경제학적 관점을 토대로, 노동, 가치에 대한 마르크스의 개념과 푸코의 <말과 사물>의 근대 생명과학과 고전 정치경제학의 발전 간의 상호구성, <생명정치의 탄생>의 신자유주의를 통한 생명의 가치의 재구성에 대한 분석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를 토대로 안전성, 생명윤리 문제를 양산하며 그 결과가 확실하지 않은 생명공학에 열광하고 이에 대한 “망상”을 포기하지 않는 데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불확실한 가치, 잉여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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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에 대한 열광과 망상은 어디에서 기원하고 있는가? 쿠퍼는 그 해답을 1980년대 미국의 포드주의식 산업사회의 위기에서 찾고 있다.


대량생산을 통해 경제 호황을 누렸던 미국은 1980년대 레이건 시대에 포드주의식 축적 체제를 통한 경제 성장이 한계에 봉착하자, 이를 돌파할 새로운 수단으로 신자유주의 방식의 생명공학에 대한 투자에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쿠퍼는 신자유주의와 포드주의의 중요한 차이점으로,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연구, 신기술 시장, 금융자본 간에 강고한 동맹 관계가 구축되어 생산과 재생산, 노동과 생명, 시장과 생체조직 영역 간의 경계가 지워진다는 점을 꼽는다. 여러 학자들이 이미 지적했던 생명과 사회적, 생물학적 재생산을 자본화하는 생명공학의 상업화는 신자유주의의 이러한 특징을 토대로 진행된다.


자유주의 시대에는 분자생물학을 통해 생물 개체가 아닌 생물체의 생성 원리를 분석하고, 지적 재산권을 적극 활용해 미래 생명 형태에 대한 소유권을 획득하고, 여기에서 발생할 수익을 추산하여 생명공학에 거액의 자금을 투자해 고수익 사업을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생명공학의 고수익 투자처는 실질적인 육체적 노동을 통해 생산된 물질화된 상품과 이에 대한 실물 거래가 아니다. 생명공학의 고수익은 결정론적 운명론에 수긍하지 않고 생명공학 기술을 적극 활용한 생물학적 재생산을 통해 유기적 공간과 시간의 제한을 벗어나 실험적 생명 형태가 잉여가치를 영구적으로 재생할 것이라는, 실질적 사실이 아닌 생물학적 ‘약속’을 통해 창출된다.


생명공학 분야의 고수익 투자처는 생명 그 자체가 아닌, 아직 실현되지 않아 미리 재단하거나 계산할 수 없는 자기 과잉의 ‘잉여로서의 생명’이 미래에 가져다 줄 무한정한, 그러나 불확실한 가치의 생산과 축적에 대한 ‘기대’인 것이다. 이에 쿠퍼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생명공학에 대한 투자는 엄격히 말해 투자라기보다 금융 투기에 가깝다고 본다.


00book_ESc.jpg » 인간 배아줄기세포. 출처/ Wikimedia Commons

 


배아줄기세포 열풍현상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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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아줄기세포주는 생명공학에 대한 투자(혹은 투기)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배아줄기세포주의 출발이자 핵심인 배아는 불임을 치료하기 위해 체외에서 생성된 잔여 수정체이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불임 연구는 배아를 중요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의 생명공학 투자에서 이 둘은 다른 가치를 지닌다.


불임시술에서 배아의 결과물은 온전한 하나의 생명체이자 잠재적 인격체가 될 태아라는 점에서 상품화가 쉽지 않다. 생존을 위한 자기 착취에 기댄 상업적인 대리모 시장이 이미 형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제도적, 사회적 저항은 크다.


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 배아는 일정한 제도적 보호 속에서 무한히 자신의 잠재력을 재생할 수 있는 “세포”로 개조, 해체, 배양된다. 새롭게 생성된 세포뿐 아니라 관련 지식은 배타적 소유의 대상이 되며, 세포의 무한한 잠재력에 대한 약속은 막대한 상업적 이익을 가져다 줄 투자 대상이 된다.


실제로 배아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에 대한 기대로 제론사 주식의 시가 총액은 한때 7000억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제론이 배아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 중단을 발표하면서, 제론사의 주식 가치는 급락했다. 제론사를 통해 기대했던 배아줄기세포 성장의 미래 가능성이 꺾였기 때문이다. 쿠퍼는 배아줄기세포 이외에도 남아프리카의 에이즈(AIDS) 문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과 생물학적 안보의 관계, 미국의 부 창출에 대한 복음주의적 교리와 생명 문화의 특징 등을 흥미롭게 분석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언가’…여전히 열린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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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로서의 생명>의 가장 큰 장점은 마르크스와 푸코를 두 축으로 다양한 정치사회학적 이론과 개념을 가로지르며,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본주의와 생명공학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데에 있다.


런데 저자의 관점이 하나의 완결된 형태가 아닌 다양한 개념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렵다. 다소 파편화되어 있는 저자의 생각들을 연결해 정교한 하나의 프레임으로 완성해 갈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례들은 모두 미국적인 맥락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에 생명공학 분야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동아시아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시대에 한국에서의 생명공학 투자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특징은 무엇일까? 이는 저자가 아닌 우리가 앞으로 분석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묻고 싶다. 현 상황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 이 책이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생명공학의 문제와 그 영향을 인식했다면, 우리는 그로부터 발생되는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에 독자로서 결론에서 그 해결 방안과 관련된 저자의 생각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쿠퍼는 사례 분석만으로 책을 마무리했다. 이에 잉여로서의 생명에 대한 약속과 망상 속에서 이뤄지는 생명공학에 대한 투기와 그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좀 더 듣고 싶다.


00book_JAR.jpg 서평 필자

조아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박사후연구원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 과학기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기술사회학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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