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운명이 필요해”, 그런데… 그 운명은 나의 거울이지
[21] 점괘, 미신을 믿는 심리
» 운명은 '운명을 믿는 사람'에게 힘을 발휘한다. 출처/ http://pixabay.com
어김없이 시간이 흘러 또 한 해가 간다. 사는 일이 모두 계획대로 되면 좋으련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예상치 못한 시간들이 흘러갔듯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이다. 그래서 괜히 ‘토정비결’이나 ‘신년운세’에 기웃거려본다.
미래를 예언하는 직업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라고 한다.[1] 과학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사주를 보거나 점을 치는 산업은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비과학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건 비합리적인 이유라 하더라도 분명 어떤 오래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두뇌는 자신이 생각한 ‘나’와 외부에서 보는 ‘나’, 이 둘이 일치하는지 끊임없이 알고 싶어 한다. ‘나’라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다. 주변에 정보가 넘쳐나지만 스스로 성찰하고 삶을 계획하는 일은 쉽지 않다. 현실로 풀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현실을 넘어서는 힘에 의존하고 싶어 한다. 사주나 운명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주를 보고 운명을 믿으려 하는 이유는 이 세상이 나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묻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힘겨운 삶을 사는 우리는 끊임없는 위로가 필요하다.
키에르케고르:
“삶은 앞을 향해 나아가지만, 삶의 이해는 뒤로 진행된다.”
세상 일은 아무리 많은 정보가 있어도 판단하기 어렵다. 통계학에서 말하는 예측방법론도 지난 데이터의 패턴을 분석하여 아주 제한적인 확률적 가능성을 이야기할 뿐이다. 고로 많은 경우에 전문가라고 해봐야 사건이 일어나고 난 뒤에 결과를 설명하는 정도다. 사람들은 이미 나타난 결과에 대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후견편향(hindsight biases)이라고 한다.[2]
경제 위기가 닥치면 그 후에 사람들은 필연적이었다고 말한다. 경기가 끝난 뒤에, 이긴 경기에서는 감독의 뚝심을 승리의 비결로 꼽아 찬사를 보내고 경기에서 졌다면 어리석은 작전이 초래한 실패라고 비난한다. 전쟁이나 선거가 끝난 후에는 일반적으로 그 결과가 자명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일련의 필연적 사건들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800여 편 이상의 학술논문들에 따르면 전 세계 어디서나 남녀노소 모두 후견편향을 보인다.[3] 사람들은 항상 결과를 합리화하는 쪽으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끼워 맞추는 것이다. 합리적 사고가 발달할수록 예측에 대한 갈증은 크다. 오늘날에도 사주나 점괘가 흥미로운 콘텐츠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예언을 믿지는 않지만, 정답에 가까운 예측은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외로움을 감당하기 힘들 때 신비한 힘을 바란다. 출처/ 영화, <청담보살>(2009)
점괘는 무의식의 거울
앞날에 대한 예측은 의식의 역할 중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대뇌(cerebrum)는 기억, 감정, 판단과 같은 정신적인 활동을 한다. 의식적 사고를 담당하는 것이 대뇌이며 이런 대뇌는 외부의 자극에 적극 반응한다.[4] 앞일을 예측하는 일은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인간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를 해석하고 앞의 일을 예측한다.[5] 그렇기 때문에 앞날에 대한 자신의 예측이 외부의 정보와 일치하지 않으면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는 생존에 대한 위협을 받을 때 발생하는 생리적 반응이다. ‘불행하다’는 감정은 바로 이럴 때에 드는 마음이다. 불행은 세상과 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이다.
세상과 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느낌 탓에 힘들어지면 인간은 으레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과 세상이 바뀌길 바란다. 내가 변화할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내가 변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도, 세상도 변화하지 않는 것이 상식인데도 말이다. 괴로움과 갈등의 본질은 여기 있다. 갈등이 생기면 인간은 외로워진다. 외로움은 생존의 위협이다. 우리는 외로움을 감당하기 힘들 때 신비한 힘을 바란다.
세상과 나의 불일치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치시키는 방법을 찾기 위해 사주나 점괘를 보는 것이다. 불길한 운수나 나쁜 점괘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이미 나의 대뇌에서 부정적인 예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의 정보와 자신의 예측이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주나 점괘가 나빠 절망한다기보다 스스로 이미 절망했기 때문에 절망적인 이야기로 해석된다. 반면에 희망적인 메시지가 받아들여진다면 이는 대뇌의 미래 예측이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미신에 대한 반응은 내가 가진 무의식의 반영이다.[1]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을 아는가? 그들은 한결같이 운이 좋았다는 말을 한다. 운이 좋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공통된 특성이 있다. 매사 신중하고 들뜨지 않는다. 좋은 일과 나쁜 일에 대한 태도가 비슷하다. 세상 일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힘이 있다. 나쁜 일이 생겨도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쁜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대안을 찾는 것이 이들의 태도이다. 이런 사람들은 점을 쳐보면 대체로 좋은 운수가 나온다고 한다.[1] 반면에 매사에 운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주변 사람들의 평가로는 고집이 말도 못하게 세다.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있다. 나쁜 상황을 변화시키기보다는 남 탓을 자주 한다. 성장한 배경이, 부모가, 받은 교육이 나빴다고 말한다. 자신을 성찰할 힘은 없다. 어떤 점괘가 나와도 나쁘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점괘는 자신의 마음과 무의식의 거울이다.
» 힘겨운 삶을 사는 우리는 끊임없는 위로가 필요하다. 출처/ http://pixabay.com
운명은 모두에게 필요하거나, 아무에게도 필요 없거나
사주나 점괘를 보는 것은 특이한 사람들이나 하는 이상한 행동일까? 대체로 의지가 약해 보이거나 의존성이 강한 성격일수록 미신을 잘 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미신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심약하고 독립성이 부족할 것이라 짐작한다.
사주를 보거나 점괘를 보는 경험이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본 국내 연구가 있다.[6] 212명의 참가자 중 사주나 점괘를 보는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약 40%이고, 그중에 최근 5년 동안 사주나 점괘를 4회에 10회까지 본 사람은 전체의 10% 정도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삶이 위기에 빠졌다고 느낄 때에 사주나 점을 보는 일이 절실해진다고 했고, 그밖에 승진이나 합격의 유무가 궁금해서, 또는 궁합을 보거나 작명이 필요할 때에 도움을 받고 싶어 찾는다고 대답했다.
사주나 점괘에 대한 태도는 ‘얼마나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는가?’,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가?’, ‘만약 사주나 점괘를 접한다면 이후에 다시 찾을 의향이 있는가?’의 기준으로 평가했다.
연구 결과는 우리의 생각이 편견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에서 측정한 심리적 특성에 해당하는 변인들은 의존성과 독립성, 긍정적 문제 지향성과 부정적 문제 지향성, 합리적 문제 해결 성향과 충동 부주의 문제 해결 성향 그리고 회피 문제 해결 성향 등이다. 이러한 심리적 성향을 살펴볼 수 있는 사회적 문제 해결의 모든 하위 요인들과 사주나 점괘에 대한 태도에서는 단 하나의 상관성도 나타난 것이 없었다. 그 어떤 유의한 상관도 없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다.
사주나 점괘에 대한 태도는 한 번 이상의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주나 점괘를 보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다른 특성, 특히 의존성이 강하거나 문제 해결력이 결여된 사람들일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되었을 수 있다. 더구나 남성과 여성 간의 차이를 분석해 보았지만, 마찬가지로 사주나 점괘에 대한 태도에서는 남녀 간의 차이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게 운수와 운명에 관한 한 성별에 따른 인식 차이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7]
삶에 의미 부여하기
사람들은 사주나 점을 보는 일이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자신이 당면한 문제의 해결,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예측, 의사결정을 위한 참고자료나 선택 상황의 갈등 해소와 같은, 하나의 방법일 뿐이라 생각한다. 특별하지도 않은 그저 보편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연구결과는 보여준다. 즉각적인 문제 해결 방식에 사주나 점괘의 정보가 의사결정과 심리적 위안, 혹은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태도와 결부되어 삶의 희망과 용기를 가지는 데에는 누구에게나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주팔자의 기본 배경이 되는 주역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보려 시도한 학자의 말에 의하면, 좋거나 나쁜 사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1] 인간은 필히 어딘가 부족하거나 넘치는 존재이기에 불완전하다고 한다. 더구나 주역은 그 내용 자체가 모호해서 전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기에 오류 그 자체라 했다.
어찌보면, 나와 관련된 이야기는 내용이 막연할수록 신뢰를 받는다. 세상을 의미 있는 것으로 이해하려는 자연스러운 욕구로 인해 우리는 특별함을 지각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달에서 얼굴을 보고, 음악에서 악마의 메시지를 듣고, 치즈 샌드위치에서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를 본다. 심지어 무선 데이터 속에서도 규칙을 찾아낸다. 연속하는 무선 배열이 무선으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8]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자신에 대한 의미 부여와 해석은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할 수 있다. 인간은 의미를 먹고사는 동물이다.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심리학자 빅터 플랭클(Viktor Frankl) 박사는 “고통스러운 삶은 참을 수 있지만 무의미한 삶은 못 참는다”고 했다.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내는 과정이 곧 삶이다. 사주를 보거나 점괘를 보는 일이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이유의 중심에는 내가 태어난 시점에 필연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일관되게 설명하고, 이를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이다.
» 우연을 다루는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내는 미래,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운명이다. 출처/ http://pixabay.com
우연을 다루는 우리 의지가 만들어내는 미래
사주나 점괘의 원리가 나름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상식으로도 그것이 오류임을 부정할 수 없다. 풀이하는 사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신뢰도나 타당성의 잣대는 들이대지도 못한다. 극단적인 과학과 합리의 시선으로 읽으면 일고에 가치가 없는, 어쩌면 없어져야 마땅할 잡술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무조건 폄하할 수만은 없다. 수천 년간 존재했다면 그 세월의 존재 자체가 ‘가치’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할까 말까를 망설일 때에,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실행하고 뒷면이 나오면 포기하기로 정했다면 그것이 바로 점을 치는 행위다. 앞선 연구에서 보듯이 우리는 사주나 점괘를 심리적인 위로와 안정을 얻는 방법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불가능한 변화나 가능성이 없는 소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순리대로 도리에 맞게 흐르는 세상을 바랄 뿐이다.
결국 사주나 점괘는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부다. 답은 나에게 있다는 것이고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사람도 나뿐임을 말해준다. 나 자신을 바꾸어 세상에 맞추어 갈지, 아니면 내가 세상을 바꿀지 고민할 때 우리에게 주는 힌트와 용기가 바로 점괘다. 답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순리에 맞는 길한 운명을 믿고 싶은 그 마음을 이해한다면 비난도 숭배도 사라질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새해에는 아마 또 많은 일들이 당신과 마주칠 것이다. <도덕경>에 ‘화는 복이 의지하는 곳이며, 복은 화가 숨은 곳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든 의미를 부여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당신이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우연을 다루는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내는 미래,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운명이다.◑
[주]
[1] 고진석 (2013).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웅진서가.
[2] Myers, D. & DeWall, N. (2016). 마아어스의 심리학 (신현정, 김비아 역). 시그마프레스.
[3] Roese, N. J., & Vohs, K. D. (2012). Hindsight bias.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7, 411-426.
[4] Sternberg, R. J. & Sternberg, K. (2016). 인지심리학 (신현정 역). 박학사.
[5] Lang, F. R., & Carstensen, L. L. (2002). Time counts: future time perspective, goals, and social relationships. Psychology and aging, 17(1), 125.
[6] 김미라, 백용매 (2010). 사주경험과 사회적 문제해결, 의존성 및 독립성과의 관계에 관한 연구. 한국동서정신과학회지, 13(2), 33-45.
[7] 강경리 (2011). 사이비과학에 대한 대학생들의 의식 조사: 성별과 종교 유형을 중심으로.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11(4), 1-29.
[8] Falk, R., Falk, R., & Ayton, P. (2009). Subjective patterns of randomness and choice: some consequences of collective responses.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Human Perception and Performance, 35(1), 203.
이고은 부산대 인지심리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사이언스온의 길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