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개 들리면 ‘적어야 산다’, 적자생존이 7년 만평 비결”
정민석 교수
‘꽉 선생 일기’ 358회로 마무리 ‘만화 그리는 해부학자’
만화도, 해부학자료도, 교재도 웹공개 “뽐내고 싶어서”
"만화 그리는 과학인 늘어 이젠 과학만화연구회도 활동"
» '꽉 선생의 일기' 만평 작가인 정민석 교수가 마지막 연재를 앞둔 인터뷰에서 "꽉 선생을 연재하는 동안에 나도 많이 배웠다", "여건이 되면 다시 연재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오철우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에 7년 가까이 매주 실린 만평 ‘꽉 선생의 일기’의 연재가 12월 30일치 제358회 “연재를 마무리하면서”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지난 2010년 2월9일 제1화 “과학인용색인(SCI)이 뭐기에”를 시작으로 연재된 꽉 선생의 일기는 그동안 과학을 소재로 한 농담과 진담, 그리고 정담을 작은 4컷 만화 358편에 담아 전해왔다.
7년 가까이 본업인 해부학 연구를 하면서도 짬짬이 시간을 내어 수많은 소재를 모으고 그것을 익살스런 만화에 담으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꽉 선생의 일기를 그린 정 교수의 생각은 꽉 선생의 일기 속에 담겼다.
100화 “꽉 선생의 일기를 그린 까닭”에서 그는 “과학의 속내“를 알리고 “과학인의 기쁨과 슬픔”을 이해시키는 그런 만평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느 분야이든지 속내가 있으며, 속내를 알면 그 분야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된다. 따라서 나는 많은 사람한테 과학의 속내를 알려서 과학을 이해시키고 싶었다. 나아가 청소년한테 과학인의 기쁨과 슬픔을 알려서 과학인이 되려는 꿈을 다지게 하고 싶었다. 이것을 위한 도구로 과학 만화를 고른 것이다. 만화가가 과학백과사전을 보고 이런 과학 만화를 그릴 수는 없지 않은가?”
200화 “논문 쓰는 달, 만화 그리는 달”은 그가 해부학 연구와 만화 취미활동을 함께하면서 느낄 법한 고민, 그러니까 “만화 같이 쓴 논문”이나 “논문 같이 그린 만화”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하는, ‘만화 그리는 해부학자’ 나름의 고민을 살짝 드러내 보인다.
300화 “만화를 300편 그리니까”은 2000년 이래 이어온 만화 그리는 해부학자의 얼굴표정이 환해졌음을 살짝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 “이 만화를 처음 그릴 때에는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그 탓에 펴낸 만화책이 쫄딱 망했고,/ 만화를 영작하거나 영어 논문으로 알릴 엄두를 안냈다./ 만화를 그리는 것이 취미였다.// 300편 그리니까 누리소통망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꽤 생겼고,/ 그 덕에 펴낸 만화책이 꽤 팔렸고,/ 만화를 영작하고 영어 논문으로 알리고 있다./ 만화를 그리는 것이 직업인 듯하다.”
정 교수는 “내가 만화를 처음 그릴 때에는 한심하게 보는 사람이 많았다. 교수가 할 일이 없어서 만화를 그리냐고 꾸짖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 누군가 알아 줄 것이라 기대하고 꾸준히 그렸다”고 말한다.
358회로 ‘꽉 선생의 일기’ 그림작업을 마치는 정민석 교수는 “연재 종결이 아니라 잠정중단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도 만평의 소재를 모으고 있으니 그림작업을 할 여건이 되는 2-3년 뒤쯤에 다시 꽉 선생의 일기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정 교수를 지난 12월 14일 수원 아주대학교 연구실과 학교 인근의 식당에서 만나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꽉 선생 일기’ 연재가 360회 가까이 되었네요. 2010년 2월에 사이언스온 웹진 창간과 더불어 시작해 매주 1회씩 실렸으니 거의 7년입니다. 7년 동안 정기적으로 실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연재를 마감한다고 하니 작가의 마음은 어떠한지 여쭙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고맙죠. 저한테는 최고의 무대였습니다. 꽉 선생 일기 덕분에 그동안 제가 쌓아놓은 소재를 막 방출할 수 있었거든요. 해랑 선생의 일기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소재를 꽉 선생의 일기로는 퍼뜨릴 수 있었거든요. 저한테는, 소중한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좋은 반응도 있었잖아요. 트위터를 통해 널리 알려져 인기도 누렸고, 트위터 팔로어가 2만 명이나 됐어요. 아직도 저를 “꽉 선생”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리고 알다시피 사이언스온에 연재를 하면서 신문 지면에 칼럼을 연재할 기회도 생겼고, 또 그 덕분에 책도 펴냈으니…. 저를 키워준 사이언스온, 독자들께 진심으로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연재는 오래 했는데 어느날 트위터에서도 널리 알려지셨지요? 당시에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 정 교수의 4칸 만화는 학술지 표지에 실리기도 했다. 네, 기억나죠. 가장 크게 영향을 끼쳤던 게, “학술대회에서 즐기는 빙고”(제61회, http://scienceon.hani.co.kr/38347)였죠. 학술대회에서 따분함을 달래려고 빙고 게임을 하는 내용을 담은 만화를 사람들이 재미있게 본 거 같아요. 이 만화를 패러디한 여러 가지 트윗과 빙고 게임도 생겨나고 그랬지요. 트위터에서 사이언스온에 꽉 선생의 일기가 연재된다고 알려지면서 “정주행 한다”는 독자들도 간혹 나타났는데, 그때 처음으로 “정주행 한다”는 말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하나 말씀드리면 연재가 마무리되면 트위터에 1회부터 다시 올릴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토요일마다 하나씩 트위터에 올려 독자들과 계속 대화하고 싶습니다.
고마운 점이 또 하나 있네요. 꽉 선생을 영작했잖습니까, ‘닥터 사이펀(Sci-Fun)’. 그것을 학술지(Science Editing)에다 연재하고 있습니다. 4-5편씩 묶어서 풀이도 싣고요. 그런데 학술지 쪽에서는 사이언스 카툰도 논문처럼 취급해 인정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별 어려움 없이 논문을 쓰고 있는 셈입니다(웃음).
연재를 마쳐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연재를 완전히 끝내는 게 아니고 임시중단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임시중단 하는 것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만, 제가 다른 만화를 그리고 있거든요. 제게 만화 그리는 시간이 딱 정해져 있어서 도저히 꽉 선생 일기를 더 그리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게 해결되면 다시 그려야죠. 요즘에도 꽉 선생 일기의 만평 소재를 모으고 있어요. 그걸 써먹기 위해서라도 다시 그릴 겁니다. 물론 사이언스온에서 허락해주면, 2~3년 뒤쯤에는 다시 꽉 선생 만화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또 생각난 건데요, 꽉 선생의 일기가 한겨레신문이나 사이언스온과는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어떤 사람은 왜 연재를 사이언스온에다 하느냐고 물어보기도 해요. 저는 이렇게 대답해요. 내가 사이언스온을 찾아간 게 아니고 사이언스온이 찾아온 거라고. 어떻게 보면 사이언스온에서 기획한 거라, 내가 고르고 말고 할 게 없었다고. 그리고 또 이렇게 얘기하죠. 뭐, 사이언스온이 늘 그렇게 심각할 필요가 있느냐고(웃음).
저도 매체에 실리는 모든 내용이 다 비슷한 성격을 띠기보다는 성격이 안 어울릴 듯하면서도 한 울타리에서 어울리는 그런 게 좋아 보입니다. 어찌보면 그게 꽉 선생 일기의 묘미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다 비슷비슷하면 그 정체성과 색깔이 강할지는 모르겠는데 재미는 덜할 수 있잖아요.
좋게 해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해부하다 생긴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재미를 위주로 한 얘기인데, 어떻게 보면 한겨레신문에 실려서 더 많이 읽혔던 거 같아요. 정말 그 얘기하니까 생각나는데 처음 사이언스온에 과학 만평을 연재할 수 있느냐고 제안했을 때 사실 막막했거든요. 내가 과학 만화를 그릴 자격이 있나, 나는 해부학 밖에 아는 게 없는데 어떻게 과학인을 대표해 만화를 그릴 수 있을까…. 근데 해결됐죠. 내가 못 그리면 다른 사람도 못그린다(웃음). 그리고 공통분모를 찾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용기를 내서 시작했고요.
그리고 저는 내용보다는 방법을 다루었거든요. 논문은 어떤 각오로 써야 한다, 일할 때나 놀 때 어떻게 해야 한다, 이런 거를 다루고자 했지요. 저는 다른 과학인들과도 공통분모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과학인도 있겠지만.
그리고 제 자랑을 하자면…, 질보다 양입니다. 저는 사이언스온에서 다른 만화 연재가 일찍 끊긴 게 아쉬웠거든요. 여러 사정이야 있겠지만, 그분들이 오래 연재했으면 나보다 더 좋은 영향을 끼쳤을텐데 하는 그런 아쉬움이 있거든요. 아무튼 (제가 그린 만평의) 양이 많으니까 저는 행복해요. 글 쓸 때도 고르면 되거든요. 괜찮은 거만 골라서 쓰면 되는 거죠. 과학관에 전시할 때도 골라서 하면 되고요. 그러니까 제게 꽉 선생의 일기는 ‘양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질보다는 양.
그렇더라도 360건이나 되는 이야기의 소재를 찾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358회라는 그 양이 놀랍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그랬어요. 매주 다른 소재를 어떻게 담으며 연재 만화를 그릴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본래 노는 걸 좋아 하다보니(웃음). 놀다보면 옆에서 막 소재를 얘기해줘요. 그것을 그냥 놓치지만 않으면 된다, 적어두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적자, 그래야 산다’, 즉 적자생존이지요(웃음). 이를테면 제가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들은 교수들이거든요. 의대 교수만이 아니라 자연대 교수도 있습니다. 등산하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만나다보면 심각하지 않거든요. 특히 전공이 다르면 가벼운 얘기를 많이 해요. 그 자리에서 제목만 메모해두면 나중에 기억하고서 정리해둘 수 있죠. 기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누가 얘기할 때 그게 기사거리인지 아닌지 아는 기자가 있고 모르는 기자가 있잖습니까. 이야기 소재는 소진되는 만큼 새로 생깁니다. 처음에는 1주 한번이 무서웠는데 해보니까 1주 한번쯤이야(웃음). 게다가 저의 작업 방식이 연재 만화들을 한꺼번에 그려두잖아요.
아까도 잠깐 말씀하셨는데 꽉 선생 만평이 사이언스온 다른 필진의 글과는 좀 다른 분위기이잖아요. 만화는 농담도 하고 가볍게 얘기하는 식인데, 다른 필진의 글은 무겁고 진지한 것들이 많아서. 이런 분위기와 이질감 같은 걸 느끼시지는 않았는지요. 물론 다른 필진들과 모임에서 만나기도 해서 잘 아시겠지만요.
다른 필자들, 존경하죠. 이렇게 깊게 들여다보려면 투자를 해야 하거든요. 다른 분들이 어떤 주제에 관해 글을 쓰면서 깊게 들어가는 걸 보면. 어휴…. 물론 저도 논문 쓸 때에는 그렇게 하죠.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만…, 사실 만화 그리기는 취미처럼 하고 있는데. 다른 필진들은 사이언스온에 글을 쓰는 취미를 저렇게 직업처럼 하고 있구나, 그렇게 순수하게 하고 있구나. 그래서 존경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문지식을 일반 독자한테 전달하는 필자들의 그런 활동이) 순수한 봉사라고 생각해요.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하는 마음이니 존경스럽습니다. 재능 기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필자들이 보내오는 글을 보면서, 대체 이 정도의 글을 쓰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 들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다들 대단한 열정가들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사이언스온은 어찌보면 필자들이 서툴더라도 독자들과 마주하면서 글을 쓰며 여러 경험을 쌓고, 그러면서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거치는 그런 무대라고도 생각돼요.
물론 더 큰 무대를 생각해야 하지요. 책도 내야죠. 다 성공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지 그 중에서 인기도 끌고 대중적인 영향도 얻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이언스온이 그런 무대의 역할을 할 수 있고, 그런 활동의 바탕이 된다고 생각되어 고마웠습니다.
꽉 선생 만화를 연재하면서 “나는 뭘까” 하는 생각도 자주 했습니다. 이것도 며칠 전에 만든 말인데, 웬디 워홀이 자신을 팝아티스트라고 하던데요, 그걸 보면서 저는 팝사이언티스트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별로 재미없어 보이지만 만화로 그리면 과학도 재미있게 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람이죠. 웬디 워홀과 저를 비교하면, 이것도 만평으로 재미있게 그릴 수 있는 소재가 돼요(웃음).
‘4칸 만화’ 형식이 유지되는데, 다른 형식을 고민해보진 않으셨어요? 그리고 4칸에도 첫째 칸, 둘째 칸, 세째 칸, 넷째 칸이 저마다 역할이 다를 것도 같은데, 어떻게 다루셨어요?
저는 여러 칸이 싫어요, 4칸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원칙이 ‘기승전결’이죠. ‘전’이 한바퀴 바꾸는 거잖아요. 그 기본 구조가 4칸 중에서 1칸-2칸과 3칸-4칸이 맞먹는 거에요. 그러니까 1-2칸이 ‘팝아티스트’ 얘기라면 3-4칸에서는 ‘팝사이언티스트’ 얘기를 하는 식이죠. 그리고 또 1칸과 3칸이 비슷하고, 2칸과 4칸이 비슷하고. 그리고 일부러 글을 똑같이 쓰는 거에요. 팝아티스트, 팝사이언티스트, 이름도 비슷한데 글도 비슷하게 쓰면서도 다른 점을 찌르는 것, 그러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 같아요. 통일과 변화 중에서 저는 통일에 더 신경을 쓰지요. 그래야 변화가 돋보이니까요. 물론 모든 만화가 다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기승전결은 저에게 공식 같은 겁니다, 공식. 기사 쓸 때도 공식이 있잖습니까? 논문 쓸때도 공식이 있고. 자기 나름의 공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다음부터는 그리기가 쉬워져요. 기자도 처음 기사 쓸 때 어렵잖아요. 혼나면서 배우잖습니까?
언제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셨지요?
제가 2000년에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해부학 학습만화를 그렸고, 그게 재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어 해부학 명랑만화를 그렸고, 이어서 꽉 선생의 일기라는 과학 명랑만화를 그리게 되었지요. 코믹한 건 꽉 선생 그리면서 많아졌죠. 또 꽉 선생을 그리면서 4칸 만화의 공식을 내것으로 만들었던 거 같아요(웃음).
만화를 그린 지가 거의 17년이 되었네요.
그렇죠. 그리고 제가 정교수가 된 게 2006년인데, 부교수 때에도 만화를 그리긴 했지만 정교수 되고 그 이후부터 맘놓고 그렸던 거 같습니다. 정교수의 권력을 누린 셈이죠(웃음). 논문으로 이바지하듯이 저는 만화로 이바지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본업은 해부학자인데요, 해부학 연구 분야에서는 요즘 어떤 일을 하시는지 좀 소개해주시면?
첫째는 논문 쓰는 일이죠. 해부학 교수가 하는 일이 교육과 연구인데, 교육은 뻔하거든요. 연구, 그러니까 논문 쓰는 게 쉽잖은 일인데. 제가 주로 해온 연구는 주검의 연속절단면 영상을 이용해 인체의 3차원 영상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절단해부학’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연속절단면을 영상화해 인체의 3차원 영상 데이터베이스(비저블 코리안, Visible Korean)를 만들었지요. 그리고 앞으로는, 이번 겨울은 늦었고 다음 겨울에 원숭이의 연속절단면 3차원 영상을 만들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어요. 원숭이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들한테 도움을 주려는 게 목표입니다. 저희 연구를 한마디로 하면, 해부학 교육과 연구를 위한 연구입니다. 3차원 영상도 데이터베이스로 교육이나 연구에 도움을 주자는 것이지요.
저는 유명해지고 싶거든요. 특히 미국에서 유명해지고 싶어요. 그런데 한국 과학자들은 미국에서 하는 거를 좇아 뒷북을 치곤 해요. 미국 사람이 큰 돌을 쌓으면 그 사이에 작은 돌맹이를 끼어넣는 식이지요. 그런 일도 의미가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 유명해질 수는 없어요. 제가 가수 싸이 얘기를 자주 합니다. 미국에서 싸이가 인기를 얻은 건 미국 가수들이 하지 않는 걸 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우리도 미국 과학이 하지 않는 걸 해야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거죠. ‘비저블 코리안’과 같은 인체 3차원 영상은 미국에서 이미 한 건데 우리는 좀더 잘 만들어 미국에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화를 그립니다. 해부학 만화도 미국에서 하지 않는 거라, 해부학 학술저널의 표지에도 실릴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걸 만화로 그렸고 또 실제로 도움이 되고 그래서 인정을 받은 거거든요. 그러니까 작은 분야의 일을 하더라도 정말 ‘아주 다른 것, 섬싱 콰이트 디퍼런트(something quite different)를 해야 하는 거죠. 미국 사람이 상상도 못한 거 그런 걸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유명해지고 싶어서, 제가 한 작업을 모두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 https://youtu.be/CPFNAHtZEoM ]
무엇을 공개하고 있는지요?
한국인의 3차원 해부영상 데이터베이스인 ‘비저블 코리안’의 소프트웨어를 공짜로 퍼뜨리고 있습니다. 2차원, 3차원 영상을 공짜로 볼 수 있습니다. 나랏돈을 받아 연구한 결과물인데, 공개 여부는 제가 결정할 수 있고, 그래서 공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과학기술을 뽐내는 것이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걸 퍼뜨리는데도 유명해지지 않았어요, 또 만화로도 유명해지지 않았아요. 그래서 제가 얼마 전에 승부수를 던졌습니다(웃음). 이게 ‘해부학 교과서’예요. 해부학의 단순한 그림이 있고, 만화도 있어요. 물론 영작한 거고요. 책입니다. 이 책은 해부학을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전세계에서 해부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많거든요. 학생들이 이걸 내려받아 피디에프(pdf) 파일로 보면 해부학을 쉽게 외울 수 있어요. 안 보면 자기 손해니까, 이건 많은 사람들이 볼 걸로 확신하고 있고요. 해부학을 공부하는 데에는 필수적인 교과서니까 많은 사람들한테 실제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화나 3차원 인체 영상 자료나 해부학 교재나 모두 다 웹에서 다 거저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해두었습닏다.
☞ http://anatomy.co.kr
만화와 연구물을 비롯해 많은 것들을 공개하려고 애쓰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 정 교수의 해부학 실습실 곳곳에 만화들이 걸려 있다. 제가 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보다는 뽐내는 게 훨씬 더 좋습니다. 그건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뽐내는 게 참 좋습니다. 미국에 있는 의대 학생들이 모두 나를 알게 하는 게 목표이고요, 그런 꿈이 이뤄질 걸로 생각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홍콩에서 열린 국제해부학회에서 가서 그걸 발표했습니다. 책 나온지가 얼마 안 됐는데,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 프로모션 할 겁니다. 돈 되는 것도 아니지만, 뽐내는 게 제 꿈입니다. 사이언스온을 통해 그 꿈을 다진 거 같아요. 7년 동안 논 게 아니고 내공을 쌓았고요, 여러 아이디어도 쌓았고 트위터 통해 경험도 했고 연재 덕분에 책까지 내게 되었으니까요.
사이언스온에서 꽉 선생 만평은 농담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이제 연재도 끝나니 어쩌죠?
사이언스온이 복덕방 역할을 하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연재하지 않는 동안에 저보다 더 훌륭한 분들이 그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좋겠어요. 취미 만화가도 참여하시고 과학교사도 참여하시고…, 그러면 좋겠어요. 저처럼 그림솜씨 뛰어나지 않은 분들도 많이 참여하고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놀이터, 복덕방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저도 자극받아서 일찍 복귀하기를 바랍니다.
2000년 이래 만화를 그리면서 17년 가까운 시간으 흘렀네요. 요새 유행어로 ‘내가 이러려고 만화를 그렸나’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슬럼프에 빠진 어려운 시기는 없었나요?
아, 있죠. 하나 얘기하면 댓글들…. 신경 쓰이죠. 차라리 직업만화가들은 악플을 신경 안 썼을 것도 같아요. 그런데 저는 아마추어이다보니, 보게 되더라고요. 가장 아픈 건 과학적 근거를 대면서 너는 틀렸다, 잘못했다 하면 같은 과학인으로서 미안하죠, 부끄럽고. 위안이 되는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그중에서 제게 위안을 준 건 역사학과 사극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위안의 말을 또 소재로 삼아서 언젠가는 만화로 그릴 겁니다(웃음). 사실 많이 배웠습니다. 욕 먹는 걸 너무 무서워하지는 말자고도 생각하게 됐고요. 물론 정도의 문제이지만요.
만화 소재가 고갈돼 찾아오는 슬럼프는 없었는지요?
요즘에는 저의 만화가 예전보다 재미가 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독자들께 미안합니다. 4칸 만화의 공식에 대한 의존도 커진 거 같고요. 배우로 치면 화장발, 조명발로 버티는 듯한 느낌도 들어요. 미안한데 어쩔 수가 없어요. 재미있는 걸 먼저 다 써먹었거든요. 그걸 아껴둘 수 없잖아요. 그래도 저는 생애에 걸쳐 롱텀(long term)으로, 길게 보려고 애쓰고 있어요. 제가 만화를 컴퓨터로 그리잖아요. 컴퓨터로 그리는 제 만화 솜씨는 사실 만화가가 보면 만화가 아니에요. 짐작하시겠지만 많은 그림을 복사해서 다시 써요. 그런데 그런 작업의 장점은 통일성을 지킬 수 있다는 거예요. 처음에 그린 만화가 마음에 안 들면 금방 바꿀 수 있죠. 그래서 한결같은 그림으로 만들고 있어요. 나중에는 책으로 펴내고 싶거든요. 꽉 선생 일기도 초기 작품과 후기 작품에서 그림체가 다르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지금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싶은 얘기는, 그림 그리는 방법은 많은데 어떤 방법이건 다 장단점이 있다는 겁니다. 컴퓨터에 의존하는 만화는 그런 장점이 있어요.
그러고 보니, 만화에서 등장인물의 몇 가지 표정은 반복해서 쓰였네요. 결국에 꽉 선생의 일기에서는 이야기 구성과 대사가 중요했네요. 그런데 이런 얘기도 들으실 텐데요. 많은 대사들이 사실 말장난, 언어유희이잖아요. 그러면서도 정 교수님이 만화 댓글에 쓰는 글을 보면 또 매우 엄격하게 띄어쓰기나 맞춤법을 중시하고 또 대화 예절도 중요하게 여기시고.
규칙 안에서 맘껏 뛰노는 거죠. 술 먹는 데에도 규칙이 있잖아요. 그런 규칙, 도덕 테두리 안에서 실컷 노는 거거든요. 만화를 그릴 때 맞춤법은 말할 거 없고 나름대로 규칙을 따라야 해요. 그 안에서는 미친 듯이 놀아야죠. 그게 아니라면 만화가 아니죠. 테두리 안에서 얌전히 있으면 만화가 아니죠.
‘아재개그’라는 얘기도 많이 들으실텐데.
다 인정하는데…, 그래요, 일종의 아재개그죠(웃음). 그런데 아재개그가 좋은 점이 있는데요, 그건 7년 전의 만화를 지금 꺼내어 봐도 문제가 안 되는 게, 제 만화에서는 유행어를 절대 안 써요. 왜냐? 유행어를 많이 쓰다 보면, 앞으로 7년 뒤에 ‘이 만화가 왜 웃겨?’ 하는 소리를 듣는 그런 만화가 될 수 있어요. 저는 멀리 보거든요. 아재개그는 시대를 뛰어넘어요(웃음). 또 아재개그는 유머코드도 단순해서 영작하기도 쉬워요. 많은 경우에 아재개그 식의 반전 유머코드가 이해하기 쉽거든요. 그런데 유행어는 영작하기가 어려워요. 젊은 세대들이 아재개그라고 말하는 건 저도 이해해요. 그런데 아재개그라는 유행어도 사실 10년 뒤에는 없어지겠죠. 그런 유행어에 왜 신경써야 해요(웃음)? 유행어는 유행어일 뿐이에요. 하지만 진짜 웃긴 거 그런 거는…, 아…(웃음).
앞으로 계획을 잠깐 말씀해주신다면?
» 아주대 근처 고깃집으로 자리를 옮겨 인터뷰했다. 인터뷰 자리에는 정 교수의 아들이자 조교인 대학원생 정범선(오른쪽)씨도 함께했다. 간단해요. 저는 꽉 선생 일기 연재를 여기에서 마무리 한다고 해서 끝낸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만화를 계속 다듬고 있고요, 앞으로도 계속 그릴 거고요, 또 영작도 할 거고요. 또 글로도 쓰고 연재도 하고 책도 펴내고, 또 그 책도 영작할 겁니다. 그리고 꽉 선생 일기가 저한테 큰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부는 아니에요. 요즘에는 해부학 책에 힘을 쓰고 있는데. 한마디로, 저는 유명해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꽉 선생 일기를 그리면서 ‘내가 뭘 알면 만화로 그릴 수 있구나’ 하는 만화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어요. 그래서 해부학도, 과학도 만화로 그렸고, 이제는… 저의 부전공이 의사거든요, 그거 때문에 요즘 바빠요. 꽉 선생 일기 연재를 마치게 된 데에도 그런 이유가 커요. 의대 교수라는 점을 살려서 ‘튼튼 선생의 일기’ 같은 걸 그려보려고요. 의학 상식, 건강 문제를 다루는 거죠. 글도 쓰고. 이를 테면 건강상식 만화라고 할까요? 그리고 저의 취미가 등산하고 여행이잖아요. 제목도 정했어요. 등산 만화는 ‘오르막 선생’, 여행 만화는 ‘뚜벅이 선생’. 그런데 캐릭터는 똑같아요, 미안합니다(웃음). 당장은 아니지만 여유가 생기면, 그런 여러 가지 만화를 그릴 겁니다. 한마디로 꽉 선생 일기를 통해 저의 인생이 많이 결정됐어요. 7년 동안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살 건지. 사이언스온에 고맙다는 말 다시 드립니다.
과학만화 그리는 분들도 많이 늘어났는데 그분들과도 자주 만나시는지요.
이제는 과학만화를 그리는 과학인도 꽤 많아져서 ‘의생명과학만화 연구회’라는 모임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2월에 모이거든요. 아주대학교에서요. 여러 분들이 참여하고 계세요. 모임에서는 발표도 해요. 아마 오시면 재미있을 겁니다(웃음).
긴 시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지난 7년 동안 사이언스온과 함께해주셔서 정 교수님과 꽉 선생 두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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