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이야기체 과학논문’이 인용지수도 높을까

730여편 논문의 내러티브 문체와 인용지수 상관성 비교


시공간 배경, 화자 노출, 감각적 언어, 문장연결성, 호소 등 계량분석

“인용지수 높은 저널 이야기체 특성 높아…스토리텔링의 영향력일까”


00paper1.jpg



‘이야기하듯이 말하기 또는 쓰기’를 뜻하는 스토리텔링 또는 내러티브는 전문연구자와 일반청중 간에 이뤄지는 의사소통(커뮤니케이션)의 양식으로 최근 부쩍 주목받고 있다. 이야기의 시공간 배경이 있고 시간의 흐름이 있으며, 이야기의 주인공이나 원인-결과 연속 사건이 등장하곤 하는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체(narrative style)는 사실, 개념, 원리, 논리 같은 딱딱한 요소들이 나열되는 설명체(expository style)와 달리, 전문가와 일반인의 의사소통에서 여러 장점을 지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여러 뉴미디어 수단들이 많아지고 댜양해진 덕분에 이야기체의 의사소통은 더욱 주목받는 친절한 양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하다.


스토리텔링 또는 내러티브는 전문연구자들의 과학 학술논문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까?


미국 워싱턴대학의 환경 분야 연구진이 최근 과학저널 <플로스 원(PLoS ONE)>에 실은 논문(‘기후변화 과학에서 내러티브 문체가 인용빈도에 끼치는 영향’)을 보면, 이야기체의 요소를 많이 갖춘 논문이 인용되는 빈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 둘 간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이 연구에서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논문 732편의 초록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내러티브 또는 스토리텔링’과 ’과학 논문의 인용지수’라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둘 간의 관계를 살피게 된 연구 동기와 관련해, 논문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심리학과 문학이론은 청중이 설명체 글에 비해 이야기체 글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기억함을 보여준다. 신경과학에서는 이야기로 인해 활성화하는 뇌의 특정 영역이 있다는 새로운 증거도 제시된다. 이야기체 글은 연관된 사건들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비해, 설명체 글은 상당한 사회적 맥락을 빼놓고서 사실들만을 연관지어 제시한다. 같은 정보를 좀더 이야기의 문체로 제시할 때 그것이 이해될 가능성을 높여주며, 따라서 이야기체는 커뮤니케이션의 유력한 도구로 폭넓게 인식된다.
 그렇지만 전문가적인 과학 글은 이야기체보다는 설명체에 더 가까우며, 연구자들의 객관적 관찰을 우선시하고 논리적인 명제들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이야기체 글은 일반적으로 대중적인 과학 글에서 좋은 효과를 내는 데 쓰인다. 명료한 이야기체나 묵시론적인 기후 이야기체는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고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져 왔다. 더욱이 이야기체는 대중의 기후위험 지각과 정책 선호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이야기체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지식, 정책, 행동 문제를 다루는 연구자들한테 유력한 수단으로 제시되어 왔다. 우리 연구진은 기후변화 과학의 전문가 의사소통에서 이야기체가 지니는 영향에 관해 탐구하고자 한다.” (논문에서)


연구진은 732편 논문의 초록들에 이야기체 요소가 얼마나 담겨 있는지를 정량적으로 파악하고자 이야기체의 특징을 보여주는 여섯 요소를 선별했다. 논문 초록에서,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하는 시공간 배경이 제시되었는지(setting), 논문저자들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화자로 노출돼 있는지(narrative perspective), 독자의 감각이나 감정을 불러일으킬 민한 감각적인 언어가 얼마나 사용되는지(sensory language), 이야기를 이어주는 접속사가 얼마나 쓰였는지(conjunctions), 앞에서 얘기한 단어나 구절이 뒤에 얼마나 반복돼 하나의 이야기로서 논리적 연결성을 이루는지지(connectivity), 독자한테 명시적인 호소나 권유를 하고 있는지(appeal), 이런 여섯 지표를 기준으로 732편 논문 초록을 다중이 참여해 평가하도록 했다. 이런 평가는 다중이 돈을 받고서 자료를 분담해 처리하는 다중참여 자료분석기업 사이트(http://www.crowdflower.com)에서 155명 유급 참여자에 의해 이뤄졌다고 한다.


연구진은 이렇게 논문 초록이 각각 이야기체의 요소를 얼마나 지니고 있는지 평가하고서 각 논문의 피인용 빈도와 비교해, 이야기체 특성과 인용지수 간의 관계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분석결과에서는 적어도 동료심사를 거쳐 발표된 기후변화 논문들에서, 이야기체 글쓰기의 특징을 더 많이 지닌 논문이 더 많이 인용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우리가 발견한 바는 여러 분야에서 지배적인 해석, 즉 청중은 다른 방식으로 제시되는 정보와 비교해 내러티브 또는 스토리를 들을 때에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회상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배적인 해석과 일치한다. 그렇지만 이런 결과를 전문가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에서 보면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전문가들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설명체가 출판물을 지배하고 원고량은 편집정책에 의해 엄격히 제한되며 결과를 담은 그래픽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피인용 빈도가 우선적으로, 주로 과학의 강건성(strength of science)에 의해 달라진다고 자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관례와 제약으로 인해 전문가적인 과학 글쓰기에서 이야기체 요소가 행하는 역할은 제거된다. 그런데 우리 연구는 이와는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논문에서)

00narrativeStyle1.jpg


연구진은 학술저널의 인용지수 또는 영향력지수(IF)와 논문의 이야기체 특성(narrativity) 간의 관계도 살펴보았다. 이들은 논문에서 “이야기체 특성과 학술저널의 인용지수 간에 예상하지 못한 강한 상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더 자주 인용되는 학술저널은 이야기체의 글쓰기 특성을 더 많이 띠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경향성은 어떻게 설명될까?


“다음과 같은 추론을 제시할 수 있다. 먼저 이런 효과가 은연중에 이야기 문체를 장려하거나 억제하는 편집정책의 차이에서 비롯했을 수 있다. 특히나 <네이처>와 <사이언스>의 경우에는 서로 아주 다른 분야들의 학제간 청중과 효과적으로 의사소통 하려다 보니 더 많은 이야기체가 필요해졌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영향력이 더 큰 학술저널에 더 자주 논문을 발표할 만한 시니어 논문저자들이 이야기 문체로 글을 쓰는 데 더 큰 자유로움을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저자들에게 보여주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어느 정도는 이야기체의 글쓰기가 더 많을수록 연구결과물은 이해도를 더 높이고 결국에 더 자주 눈에 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논문에서)

00narrativeStyle2.jpg


다음은 이 논문의 말미에서 밝힌 연구진의 견해이다.


“동료심사를 거친 과학 언술은 인간이 본래 연관되는 네러티브의 특징에서 벗어나 있는, 특별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종종 여겨진다. 그렇지만 우리의 분석결과는 대안의 해석을 지지해준다. 즉 과학자들은 자신의 글쓰기 문체에 내러티브의 특성을 담음으로써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검증한 여러 변수들 가운데 문장들이 논리적으로 연관성을 맺는 정도, 즉 연결성 정도(connectedness)는 가장 크게 긍정적 영향을 준다. 이에 더해 가치평가적인 견해(evalutative commentary)의 표명은 긍정적 효과에 이용될 수 있다. 자신의 글쓰기에 그런 특징을 담음으로써,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좀더 가깝게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논문에서)


이야기체 글쓰기가 학술논문에 줄 수 있는 긍정적 효과에 주목한 이 논문의 결론은 앞으로 과학 논문의 문체에 나타날 변화의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결론과 해석은 이 논문이 다룬 기후변화 과학 논문에 한정해서 이해해야 하는 걸까, 또는 이 논문이 이야기체 글쓰기의 영향을 평가하면서 조사분석에서 고려해야 했으나 빠뜨린 다른 중요한 변수들이 더 있는 건 아닐까? 논문의 문체가 중요하다지만 논문 내용에 앞서지는 못할 터이니, 그렇다면 문체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나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 지금의 과학 논문 문체가 17세기와 매우 다르듯이, 앞으로 과학 논문의 문체가 겪게 될 장기적인 변화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과학계의 흥미로운 관심주제가 될 만함을 이 논문이 보여준다.
 
  논문 초록

동료심사를 거쳐 발표되는 기후변화 주제의 출판물이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으나 개별 논문의 수용과 영향력은 천차만별이다. 우리 연구진은 이야기체 특성(narrativity)을 측정할 수 있는 척도 지표들을 심리학과 문학이론에서 도출했으며 이 척도들을 사용해 ‘이야기체를 많이 지닌 기후변화 글일수록 영향력을 끼칠 가능성도 높아진다’라는 가설을 세워 검증해보았다. 기후변화 주제의 문헌들에서 뽑은 과학 논문 732편의 초록들을 살펴본 결과에서는 이야기체 특성이 많은 초록의 논문이 더 자주 인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효과는 학술저널의 성격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즉, 인용지수가 높은 저널들에 이야기체 특성이 더 많은 논문들이 실리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이런 논문들은 더 자주 인용되었다. 이 조사결과는 이야기체 특성이 많은 문체로 글을 쓰는 것이 기후연구 문헌들에서 논문의 이해도와 영향력을 높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후과학 논문만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과학 문헌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사이언스온의 길목]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scienceon

트위터   https://twitter.com/SciON_hani

한겨레 스페셜 http://special.hani.co.kr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미생물이 지닌 유전자가위, 생명현상 보는 또다른 ‘창’미생물이 지닌 유전자가위, 생명현상 보는 또다른 ‘창’

    뉴스오철우 | 2017. 05. 24

    ※ 이 글은 한겨레 5월24일치 ‘사이언스온’ 지면에 실렸습니다. 온라인 사이언스온에도 옮겨 싣습니다. 이 기사는 몇몇 해외매체들에 실린 자료들과 국내 연구자들의 도움말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미생물이 지닌 유전자가위생명현상 보는 ...

  • “연구현장 소수자 보호하고 사회논란 합리적 의사소통을”“연구현장 소수자 보호하고 사회논란 합리적 의사소통을”

    뉴스오철우 | 2017. 05. 11

    과학기술단체 ESC ‘새정부에 바란다’ 성명“4차 산업혁명 구호의 환상과 과장은 경계” 새 정부에서 과학기술정책의 합리적인 변화가 이뤄지길 바라는 과학기술인들의 기대도 자못 큰 듯하다.과학기술인단체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

  • “간은 바쁘다, 날마다 커졌다 작아졌다” -쥐에서 관찰“간은 바쁘다, 날마다 커졌다 작아졌다” -쥐에서 관찰

    뉴스오철우 | 2017. 05. 10

    스위스 제네바대학 연구진, 야행성 쥐의 하루주기 변화 관찰활동시간대 음식 먹으니 간 크기 1.5배 커져 왕성한 간 기능“우리 몸 안에서 가장 큰 장기, 바로 간입니다. 무게 약 1.2kg의 간은 커다란 생김새만큼이나 하는 일도 참 많습니다. ‘인...

  • 스스로 빛 내는 버섯의 ‘자체발광 매커니즘’ 밝혀스스로 빛 내는 버섯의 ‘자체발광 매커니즘’ 밝혀

    뉴스오철우 | 2017. 05. 02

    ‘루시퍼라제’ 효소가 생물발광 과정 출발점 역할효소 변형하면 파란색-오렌지색 등 여러 빛 발광  어둠이 깔린 숲속에서도 저홀로 빛을 내기에, 일명 ‘귀신버섯’이라는 무시무시한 대중적인 별명을 얻었을까? 어둠 속에서 연한 녹색 빛을 내는 생...

  • “면역세포는 심장박동의 숨은 도우미”“면역세포는 심장박동의 숨은 도우미”

    뉴스오철우 | 2017. 04. 28

    미국 연구진 ‘심장 수축 일으키는 전기전도에 중요역할’ 밝혀심장박동 불규칙 치료에 쓰는 ‘면역세포 조절’ 약물 등장할까  “면역세포와 심장 박동은 깊은 연관이 있다.”몸에 침입한 세균이나 손상된 세포들을 잡아먹어 몸의 건강을 지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