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들, ‘반물질’의 스펙트럼 정밀측정 첫 성공
CERN의 알파2 연구단 ‘반수소’ 원자 생성해 관측
“수소와 반수소 에너지 특성 동일” 표준모형 확인
+ 전문가 도움말: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 교수
[ 높은 정밀도로 반수소 스펙트럼을 측정하는 기술은 물질이 반물질과는 다르게 거동하는지 그 여부를 검증하고, 더 나아가 입자물리학 표준모형의 얼마나 견고한지를 검증할 수 있는 매우 새로운 도구가 된다. 글과 사진 출처/ CERN ]
다루기가 매우 까다로운 반물질(antimatter)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유지하면서, 그 에너지의 특성을 처음으로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여전히 수수께끼로 존재하는 반물질의 특성을 심층 연구할 수 있는 높은 정밀도의 관측실험 기법을 갖추게 됐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12월 19일(현지시각) 연구소 내 ‘알파(ALPHA)-2 연구단’이 수소 원자 물질에 대응하는 반물질인 반수소(antihydrogen) 원자를 측정하는 데 성공했으며, 반물질 원자를 들뜬 에너지 준위로 만드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보통 수소 원자의 경우와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반물질에 대한 첫 번째 관측실험의 결과는 과학저널 <네이처>에 보고됐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는 설명자료를 내어 “알파 연구단이 반물질 원자의 광학적 스펙트럼을 처음으로 측정했다”면서 “이런 성과는 반물질의 정밀 연구에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술적 진전”이라며 그 의미를 평했다.
물질-반물질, 수소-반수소
물리학에서 반물질(antimatter)은 보통 세계를 이루는 물질(matter)과는 질량과 에너지가 같지만 전기 성질이 정반대인 물질을 가리킨다. 예컨대 음전하를 띠는 ‘전자’의 반물질은 전자와 질량과 에너지가 같지만 양전하를 띠는 ‘반전자’ 또는 ‘양전자’다.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빛의 형태로 많은 에너지를 내며 둘은 쌍소멸 하기에, 보통 세상은 물질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좀더 친절한 설명을 보자. 다음은 물질과 반물질, 그리고 이번 관측실험의 의미를 설명하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설명자료 일부다.
“원자는 핵과 그 둘레 궤도를 도는 전자로 구성된다. 전자들은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이동할 때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하는데, 이로써 원자의 스펙트럼을 생성한다. 각 원소들은 저마다 고유한 스펙트럼을 지닌다. 그래서 분광학(spectroscopy)은 물리학, 천문학, 화학 등 여러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도구가 되었다. 분광학은 원자와 분자, 그리고 그 내부 상태의 특성을 살피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천체물리학에서는 먼 항성의 빛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그 별을 구성하는 원소들을 식별할 수 있다.
하나의 양성자와 하나의 전자로 이루어진 원소인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단순하고도 가장 잘 규명된 원자이다. 수소의 스펙트럼은 지금까지 매우 높은 정밀도로 측정되어 왔다. 이와 달리, 반수소 원자는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다. 겉보기 우주는 물질로만 이뤄져 있기에 반수소 원자의 구성요소들(즉 반양성자와 양전자)은 일부러 생성해야 하며 반수소 스펙트럼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반양성자와 양전자를 결합해 반수소 원자를 생성해야 한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그러나 수소와 반수소의 스펙트럼들 간에 측정 가능한 어떤 차이가 발견된다면 물리학의 기본 원리을 깰 수도 있고 그리하여 우주 내의 물질-반물질 불균형이라는 수수께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도 있기에 그런 연구 시도는 가치 있는 일이다.
이번 알파 연구단의 결과물은 반수소 원자 안에 있는 스펙트럼 선을 최초로 관측해 얻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물질과 반물질의 빛 스펙트럼을 처음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실험 자체의 한계 내에서 보면, 이 반물질의 스펙트럼 결과에서는 수소 원자의 등가 스펙트럼 선과 비교할 때 아무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결과는 기본입자와 힘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이론인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과도 일치한다. 표준모형에 의하면, 수소와 반수소는 동일한 스펙트럼 특성을 지닐 것으로 예측돼 왔다.” (CERN의 설명자료에서)
매우 까다로운 반물질 생산하고 제어하고 관측하기
문제는 반물질을 생성하기도 어렵고 관측할 수 있도록 상태를 유지시키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알파 연구진은 어떻게 실험을 수행했을까?
보통 물질인 수소 원자는 양성자 핵 하나와 그 둘레를 도는 전자 하나로 이뤄져 있는 데 비해, 반물질 수소 원자는 반양성자(양성자의 반물질)와 양전자(전자의 반물질)로 이뤄져 있다. 연구진은 반물질이 생성된 뒤에 곧바로 물질을 만나 쌍소멸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반물질을 격리해 자기장 안에다 극초저온 상태로 가두는 특별한 ‘자기장 트랩(magnetic trap)’ 장치를 이용했다. 이 자기장 트랩 안에서 반양성자(반양성자 감속기에서 생성된다)와 양전자(방사능 방출로 생성된다)들이 서로 결합해 반수소 원자가 생성되도록 했다. 연구진은 대략 15분마다 2만5000개의 반수소를 생성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었다고 한다.
연구진은 반수소 원자의 에너지 준위가 바닥에 있다가 들뜬 상태로 바뀔 때 흡수되거나 방출하는 빛 에너지의 스펙트럼을 관측하기 위해, 반수소 원자들이 갇혀 있는 전기장 트랩에다 정밀하게 조절해 맞춘 특정 주파수의 레이저 빔을 쏘며 빛 스펙트럼을 측정했다.
다음은 <네이처> 뉴스에 실린 관측실험 과정의 설명 대목이다.
“제네바 부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연구진은 수소의 반물질인 반수소 원자들에다 자외선 파장의 레이저 빛을 쏘며 반물질 원자들을 다루었다. 연구진은 반수소를 이루는 양전자가 최저 에너지 준위(1s, 1층)에서 그 다음 준위(2s, 2층)으로 도약하게 하는 데 들어가는 빛의 주파수를 측정했으며, 이런 실험을 통해 보통 물질인 수소 원자의 에너지 전이(energy transition)와 비교해 차이가 없음을 알아냈다.
이런 결과는 수십년 동안 반물질이 어떻게빛을 흡수하며 방출하는지를 연구해온 ‘반물질 분광학’(antimatter spectiroscopy) 분야의 연구자들에게는 놀라운 것이다. 이 연구 분야가 이른바 CPT 대칭(전하-반전성-시간 대칭, Charge-Parity-Time Symmetry)으로 불리는 물리학 법칙이 말해주는 근본적 대칭(fundamental symmetry)를 검증하는 새로운 수단이 되리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CPT 대칭의 예측에 의하면, 반물질과 물질의 에너지 준위는 동일해야 한다. 이 규칙이 조금이라도 위반된다면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은 심각하게 재검토 해야 한다.” (<네이처> 뉴스 보도에서)
[ 유투브 동영상 https://youtu.be/AxG_dYEfF5g]
표준모형 원리 ‘CPT 대칭’ 검증의 의미
여러 과학전문 매체들의 보도를 보면, 연구진은 이런 관측실험을 통해 반수소 원자의 반전자를 들뜨게 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보통 수소 원자의 전자를 들뜨게 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와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네이처> 뉴스는 이런 관측결과가 입자물리학 표준모형을 지지해주는 대전제인 ‘CPT 대칭’ 원리가 유효함을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CPT 대칭이라는 개념은 매우 난해해 약간의 설명이 더 필요하다. 다음은 이와 관련해 이번 실험의 의미를 풀이해준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물리학)의 도움말이다.
[전문가 도움말]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입자물리학)
![]()
이번 연구 소식을 접하면서, 여러 가지로 난해한 개념들이 많은데 특히나 CPT 대칭 원리라는 말이 가장 이해하기 힘드네요.
▶ 우선 개념부터 설명해볼게요. CPT 대칭이란 C, 즉 전하(charge), P, 즉 반전성(parity), T, 즉 시간(Time)이 대칭이라는 것이죠. C, 즉 전하 대칭이란 쉽게 말하면 음양조화처럼 전자와 양전자, 양성자와 반양성자처럼 모든 입자들이 전하가 반대인 반입자를 지니고, 물리가 전하를 바꾸어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P, 즉 반전성 대칭이란 거울대칭성을 말하는데, 왼쪽으로 회전하는 입자가 있다면 거울속에서는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입자로 보이는데, 이런 거울속 현상도 완벽하게 대칭이어서 거울속인지 거울밖의 물리현상인지 구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T, 즉 시간 대칭성은 그네나 진자운동을 담은 동영상을 거꾸로 돌려도 동일하고 그래서 구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적으로 대칭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반전성 대칭은 오래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왔는데 1950년대에 반전성 대칭이 깨질 수 있음이 입증됐습니다. 예를 들어 뉴트리노(중성미자)를 보면 왼쪽 스핀의 중성미자만이 존재하며 오른쪽 스핀의 중성미자의 존재를 보여주는 반응식은 없습니다. 자연계에는 좌우대칭성이 언제나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CP대칭성은 지켜지리라 믿어졌지만 CP대칭성 마저도 깨지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받아들여지는 것이, C와 P와 T의 대칭을 모두 만족하는 적용한 CPT 대칭은 유효하리라는 것입니다.
이번 관측실험 결과의 의미를 CPT 대칭과 관련해 살펴본다면.
▶ 수소 원자에서 전자가 1층(1s)의 에너지 준위에 있다가 빛을 흡수해 2층(2s)의 에너지 준위로 도약하거나 반대로 빛을 방출하면서 에너지 준위가 1층으로 내려오는 것은 보어 원자모형이나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다 설명됩니다. 수소의 특성에 관해서는 많이 연구되었고 충분히 설명되지요. 그런데 과연 수소의 반물질인 반수소도 똑같을까 하는 게 이번 관측실험의 주요한 물음이었지요. 이번에 그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CPT가 바뀐 뒤집힌 세상에서도 물리는 동일하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한 것이죠. 만일 반수소가 수소와는 다르게 거동했다면, 현재 물리학 이론으로 예견할 수 없던 일일 테니까, 아마도 세상이 뒤집힐 만한 뉴스가 되었겠지만.
대칭성 깨짐으로 인해 우주대폭발(빅뱅) 때 생성된 물질과 반물질이 모두 쌍소멸 하지 않고서 지금 물질 우주가 만들어지고 반물질은 우주 어디엔게 몰려 있을 것이다 이런 얘기도 듣고는 하는데, 이때의 대칭성 깨짐은 CPT 대칭과 다른 것인가 보네요.
▶ CP 대칭성 깨짐입니다. CP 대칭이 깨지면 반입자가 입자의 세계로 넘어오고 그래서 지금 물질 우주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CPT 대칭은 현재에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CPT 대칭 깨짐이 발견된 적은 없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번 실험 결과는 CPT 대칭이 옳음을 입증했다기보다는 CPT 대칭을 위반하는 현상을 이번 정밀 관측에서도 역시 발견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즉, CPT 대칭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서 유효하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어찌보면 이번 측정실험은 다루기가 매우 어려운 반물질을 제어하면서 그 특성을 정밀하게 관측할 수 있는 첨단의 실험기술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는다고 볼 수 있겠군요.
▶ 수소와 반수소의 빛 스펙트럼들이 서로 동일하다는 것은 현재의 물리학 이론에서는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목받는 것은 실험 자체가 완전히 근본적인 초정밀 측정실험이라는 점 때문이지요. 비슷하게 양성자와 반양성자가 동일한 중력을 받느냐 하는 다른 실험도 진행되고 있는데, 이런 실험들 자체가 대단한 정밀관측 기술의 진보 덕분에 가능한 것입니다. 반물질을 생성하면 바로 없어집니다. 그런데도 반물질을 생성하고, 또 유지하면서, 그 빛의 스펙트럼을 정밀 관측했다는 것은 대단한 실험기술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반물질 ‘정밀측정 과학’을 위한 실험도구 구축
이번 반물질 관측 성과는 앞으로 반물질의 특성을 더 자세히 밝혀내고 표준모형의 기본원리인 ‘CPT 대칭’을 더욱 엄밀하게 검증할 수 있는, 전에 없던 새로운 실험 도구와 기술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런 점에서, 반물질을 본격 연구할 수 있는 시작점을 알린 결과라고도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 내 다른 반물질 연구단의 연구자는 알파 연구단의 실험결과를 “매우 중대한 이정표”라고 평했으며, 또 다른 연구자는 “반수소에 대한 정밀 분광학 측정 시대의 개막 축포”인 셈이라고 말했다 (물리학 전문매체 <피직스월드>). <네이처> 뉴스는 “후속 연구를 통해 물질-반물질 등가(equivalence)에 대해, CPT 대칭에 대해 더욱 엄밀하게 검증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네이처> 뉴스 보도를 보면, 이번 알파 연구단의 반수소 관측 성공은 여러 실험연구단들의 오랜 경쟁 연구들 속에서 나온 것이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안에는 같은 주제로 반물질을 정밀측정 하려는 실험들이 여럿 진행되고 있었는데, 다른 연구단의 실험보다 앞서 알파 연구단이 첫 관측 성공이라는 영예의 기록을 세우게 됐다. 다른 실험팀(ATRAP)의 대표인 미국 하버드대학 물리학자 제럴드 가브리엘스(Gerald Gabrielse)는 <네이처> 뉴스에서 자신이 30년 전 반물질 스펙트럼 측정 실험의 구상을 처음 제안하고 또 측정 실험도 10년 먼저 시작했는데 그 결과에 먼저 도착한 건 알파 연구단이라면서 “알파팀에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사이언스온의 길목]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