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물 육종하듯 박테리아 분자 길들여 실리콘화합물 생산

촉매 효소의 돌연변이→선택→돌연변이→선택 방식 육종

칼텍 연구진, 실리콘-탄소 화합물 합성 미생물 공장 개발


00icelandhotspring.jpg » 특정 조건에서 실리콘-탄소 결합 화합물을 만들어내는 박테리아 종이 발견된 아이슬란드 온천지대. 출처/ https://microbewiki.kenyon.edu


‘육종’. 농작물이나 가축의 품종을 개량할 때 무작위 돌연변이 중에서 원하는 형질을 잘 갖춘 것을 선별하고, 다시 선별된 품종의 돌연변이 중에서 더 나은 것을 선택하는, 이른바 인공선택의 과정을 거듭하며 품종을 개량하는 방법이다. 사람이 행하는 인공선택과 육종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자연선택과 진화와는 대비된다. 이런 전통적 육종처럼, 박테리아 안의 특정 생체분자를 육종해 원하는 분자를 얻는 방법도 쓰인다. 일종의 ‘분자 육종’이다.


00francesArnold.jpg » 프랜시스 아널드. 이런 방식으로 자연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화합물을 살아 있는 박테리아 안에서 합성하는 효소가 만들어졌다. 특히나 이 박테리아 효소가 만들어낸 화합물이 지상 생물체에선 만들어지지 않는 ‘실리콘(규소)-탄소 결합’ 화합물, 즉 유기실리콘(organosilicon, 유기규소)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이 화합물은 의약 외에 농업, 페인트, 반도체, 컴퓨터 등 여러 분야에 쓰이는 화합물인데 화학공정의 합성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1990년대에 특정 생체분자를 원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이끄는 ‘유도진화(directed evolution)’의 방법을 개발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프랜시스 아널드(Frances Arnold) 교수 연구진은 최근 지구에 풍성한 실리콘 원소를 탄소 화합물에 결합시킬 수 있는 박테리아의 효소를 분자육종과 유도진화의 방법으로 만들어냈다고 최근 밝혔다. 이 연구성과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탄소-실리콘 결합을 생성하는 시토크롬c 효소의 유도진화: 실리콘을 생명에 불어넣기”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최근 실렸다.


C-Si 결합 화합물 생물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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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저자들은 논문에서 “탄소와 실리콘 원소는 자연에 풍부한데도 탄소-실리콘 결합 화합물 생성을 촉매하는 자연의 효소는 알려진 게 없다”면서 “그런 효소가 있다면 그것은 생물학적 촉매의 목록을 확장할 것이고 생물시스템은 지금까지 합성화학(synthetic chemistry)에만 열려 있던 화학의 공간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살아 있는 박테리아 안에서 실제로 만들어낸 ‘탄소-실리콘 결합 화합물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연구진은 매우 풍부한 실리콘 원소와 탄소 원소를 결합하는 생물종이 자연에 존재할 가능성에 주목해 박테리아들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그 후보 유전자들을 찾아냈다. 이 가운데 유력한 후보로 꼽힌 박테리아 종이 아이슬란드 수중온천에 사는 박테리아 종인 로도테르무스 마리누스(Rhodothermus marinus)의 효소 시토크롬c(cytochrome c)였다.


연구진은 이 촉매 효소의 유전자를 집어넣은 대장균을 만들고서 이 대장균이 실리콘 담긴 먹이를 적정량으로 제공할 때 매우 낮은 효율이지만 탄소-실리콘 결합 화합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 뒤이어 연구진은 이 박테리아 효소의 ‘품종개량’ 연구를 벌였다. 일종의 분자육종이며 유도진화 방법이었다.


효소 유전자의 무작위 돌연변이들 중에서 효율이 더 높은 것을 인공선택 하고, 다시 이것의 돌연변이들 중에서 더 나은 것을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연구진은 육종 몇 세대만에 산업용 촉매 물질보다 효율이 15배 이상 높으며 또한 비용도 적게 들고 독성도 없이 친환경적인 생체분자 촉매 효소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실리콘과 생명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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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구결과는 분자육종과 유도진화 방법을 써서 산업용 촉매를 대신할 만한 고효율의 생물학적 박테리아 촉매를 만들어냈다는 실용적 측면에서 우선 주목받지만, 지구 생명과 진화의 수수께끼와 관련해 또 다른 의미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생명체는 왜 탄소와 더불어 지상에 풍부한 실리콘 원소를 생명체를 구성하는 데에 활용하지 않았을까? 생명체는 실리콘 원소를 활용할 수 없는 것일까?


다음은 이런 수수께끼를 정리한 과학저널 <네이처>의 뉴스 일부이다.


“실리콘은 우리 둘레 어디에나 있다. 산소 다음으로, 실리콘은 지각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이다. 그런데 왜 살아 있는 존재들은 실리콘을 자신의 생화학 안에 통합하지 않았을까? 이것이 오래된 수수께끼다.”


“자연은 수많은 일반 금속들을 생화학적으로 이용한다. 두드러진 사례들로는 적혈구 세포 안의 철과 염록소 안의 마그네슘이 있다. 그렇지만 실리콘(금속과 비금속 속성을 모두 다 지닌 원소)은 단세포 규조류의 규소 껍질 성분과 같은 생무기(bioinorganic) 화합물에서나 나타나는 듯하다. 실리콘은 유기 생명체의 탄소 기반 사슬에는 결코 들어오지 못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코넬대학교 로얼드 호프먼은 ’가련한 실리콘은 지구에 풍부한데도 지구 생명권에서는 거부되었다’고 말한다.”


이번 연구는 자연의 생물진화 시간을 대폭 압축하는 인공선택의 육종 과정을 통해서, 박테리아 내 효소가 특정한 조건에서 실리콘을 먹고서 실리콘-탄소 결합 화합물을 생성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결과는 달리 말하면 매우 긴 시간과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실리콘 원소도 지금의 지구 생명체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생명체의 생성과 진화에 참여할 수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매체에서는 이번 연구가 탄소에 기반을 둔 지구 생명체와는 달리 실리콘에 기반을 둔 외계 생명체도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도 받아들여졌다.


다음은 이번 연구의 책임자인 프랜시스 아널드 교수가 칼텍 보도자료에서 한 말이다.


“생명이 진화하여 나중에는 그 스스로 실리콘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인지의 물음에 대해서, 아널드는 그것은 자연에 달려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는 자연이 새로운 도전 환경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우리가 새로운 반응물을 제공하고 인공선택의 형태로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때, 박테리아 세포의 디엔에이(DNA)에 담긴 촉매 작용은 새로운 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법을 빠르게 배울 능력을 갖추고 있다. 자연이 여기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자연은 스스로 이런 일을 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 논문 소개문과 초록

[에디터의 논문 소개]
탄소-실리콘 결합을 생명에 불어넣기:
 실리콘을 함유한 유기화합물은 폴리머(중합체)부터 반도체까지 수많은 응용 분야에서 중요한 물질이다. 그러나 탄소-실리콘 결합을 생성하는 데 쓰이는 촉매를 쓰려면 종종 고가의 미량금속이 필요하거나 그 촉매의 수명은 제한적이다. 다른 희귀한 카빈(carbene, 중성 탄소 원자를 지닌 분자) 삽입 반응을 촉매하는 일부 금속-효소의 능력에서 빌려와, 칸(Kan) 등 연구진은 다양한 조건과 기질에 걸쳐 탄소-실리콘 결합을 생성하기 위해 헴 단백질을 사용했다. 로도테르무스 마리누스(Rhodothermus marinus) 박테리아 종에서 가져온 시토크롬c(cytochrome c)를 이용한 유도진화 실험들은 그 반응을 산업적 촉매 물질보다 15배 더 높은 효율로 향상했다.
 
[논문 초록]
 탄소와 실리콘은 자연에 풍부한데도, 탄소-실리콘 결합 화합물의 생성을 촉매하는 자연의 효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효소가 있다면 그것은 생물학의 촉매 물질 목록을 확장할 것이며, 생물시스템이 지금까지 합성화학(synthetic chemistry)에만 열려 있는 화학의 공간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헴(heme, 헤모글로빈의 색소 성분) 단백질들이 생리학적 조건에 놓일 때 실리콘-수소 결합 내 카빈(carbene) 삽입 과정을 통해 유기실리콘 화합물 생성을 촉매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 유도진화를 사용하여 우리는 로도테르무스 마리누스 박테리아 종에서 가져온 시토크롬c의 촉매 기능을 증진하여 최첨단 합성 촉매 물질들에 비해 15배 넘는 고효율의 전환(turnover)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이런 탄소-실리콘 결합 생성 생촉매는 유기실리콘 분자를 생산하는 데에 환경친화적이고 고효율의 길을 마련해준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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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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