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구의 힘: '세포 자가포식' 발견 이후, 새 연구분야 급속확장

※ 이 글은 한겨레 11월2일치 ‘사이언스온’ 지면에 실렸습니다. 온라인 사이언스온에도 옮겨 싣습니다. 지면 편집 과정에서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습니다.




세포 안 나쁜 물질 체포

극한상황 땐 ‘살신성인’


그물로 붙잡아 분해공장인 리소좀 넘겨

건강에 필요한 영양소로 재활용

 

영양소 공급 끊기거나 스트레스 오면

덜 필요한 것부터 분해해 자체생존

 

발암물질 막는 건강 지킴이지만

암 생기면 협력자로 돌변 ‘두 얼굴’


비만 알츠하이머 당뇨에도 관계

다른 조직엔 역할·활성 저마다 달라


암세포 안 자가포식 억제 약물이나

노화한 자가포식 기능 복원 등 관심


“세포 하나는 또 하나의 우주이고 세계

공장, 운전사, 경찰도 있고 도둑도…”

00cell.jpg » 세포 내의 여러 소기관들을 형상화한 예술 작품. 세포는 불필요하거나 망가진 세포 소기관들을 분해해 세포 건강을 유지하며, 영양소가 부족한 극한 상태에서는 제 몸을 구성하는 정상 소기관의 일부를 분해해 거기에서 세포 생존에 필요한 영양소를 얻기도 한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올해 노벨상 ‘세포 자가포식’ 연구 활기



“세포 하나는 또 하나의 우주이고 세계입니다. 인간 사회의 일이 세포 안에서도 일어난다고 보면 크게 틀리진 않을 겁니다. 공장, 운전사, 경찰도 있고 도둑, 갱단 같은 것도 있고…. 온갖 일이 일어나죠. 불필요한 물질이 생기면 찾아서 분해하는 ‘자가포식’ 현상은 일종의 청소꾼입니다.”


세포가 제 몸 일부를 분해해 영양소로 다시 활용하는 이른바 ‘자가포식’, 또는 ‘오토파지’(오토는 ‘자신’, 파지는 ‘먹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 현상을 연구하는 정용근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오토파지연구회장)는 “오토파지는 세포에서 일어나는 재활용이자 청소 활동”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세포의 자가포식’이라는 신기한 현상은 1990년대 초 일본의 오스미 요시노리(71) 교수(현 도쿄공과대학 명예교수) 연구진에 의해 관련 유전자들과 메커니즘이 처음 밝혀졌다. 2000년대 이후엔 세포를 연구하는 기초연구 분야뿐 아니라 사람의 질병과 치료술 연구에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오스미 교수는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세포에서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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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는 왜, 어떻게 제 몸 일부를 먹어치울까? 세포 안의 미시세계에서 펼쳐지는 이런 현상에 대한 호기심은 오스미 교수 실험실의 끈질긴 물음이었다.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기초과학의 연구 주제였지만 이들은 1992년 이후 잇따라 자가포식을 일으키는 여러 유전자를 찾아내어 발표했다. 오토파지 연구자인 정희선 국립암센터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후에 세포가 낡은 단백질이나 불필요한 소기관 같은 것을 분해해 세포 건강을 지키고, 게다가 거대 분자들을 분해해 영양소를 재활용하는 메커니즘이 더욱 자세히 밝혀져 왔다”고 말했다.


세포 안에서 청소와 재활용의 분해작업은 어떻게 벌어질까?

세포엔 분해공장 구실을 하는 소기관들이 있다. ‘리소좀’이라 불린다. 일종의 ‘재활용’ 공장이다. 예를 들어 세포 안엔 ‘에너지 공장’으로 불리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소기관들이 있는데, 이게 망가지면 활성산소 같은 나쁜 물질도 생성된다. 이뿐 아니라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망가진 단백질은 세포 사회의 건강을 해친다. 작디작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침입할 수도 있다. 이런 물질들을 붙잡아 분해하고서 거기에서 오히려 세포 건강에 필요한 아미노산, 포도당, 지방산 같은 영양소를 만들어내는 게 바로 리소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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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리소좀 분해공장에다 분해할 물질을 찾아서 붙잡아 가져다주는 구실은 누가 할까? 이런 물음을 풀어준 것이 바로 자가포식, 즉 오토파지이다. 인간 세포에서 분해할 물질이 생기면, 유전자 40여개가 연쇄로 작용해 그 주변을 감싸는 일종의 ‘주머니’(소포체)를 만든다. 포획하는 그물이다. 분해 대상을 포획한 주머니는 분해공장인 리소좀과 융합해 한 몸이 된다. 이어, 리소좀 안에 대기하던 여러 분해 효소들이 나서 물질을 영양소로 분해한다.


그런데 오토파지는 망가진 물질만을 분해하는 게 아니다. 세포 외부에서 영양소 공급이 끊기면 세포는 정상적인 제 몸의 일부마저 분해해 생존에 필요한 영양소로 사용한다. 정희선 선임연구원은 “영양소 결핍이나 스트레스 같은 신호가 오는 극한 상황에서 세포는 오토파지를 더욱 활성화해 꼭 필요하지 않은 것부터 제 몸 일부를 분해해 영양소를 얻는다”고 말했다.


예컨대, 사람 세포엔 미토콘드리아가 1500개가량 있는데 세포의 생존 환경이 나빠지면 세포는 수많은 미토콘드리아 중 일부를 분해해 영양소를 자체조달 한다는 것이다. 정용근 교수는 “우리가 단식을 해 영양소를 몸에 공급하지 않는데도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세포의 오토파지 작용 덕분”이라고 말했다.



실험실 발견의 '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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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세포인 효모를 대상으로 한 오스미 교수 실험실의 끈질긴 연구 결과는 2000년대 중반 이후에 세계 각지의 연구실로 퍼져 갖가지 의생물학 분야로 성장했다. 정용근 교수는 “오토파지가 암이나 알츠하이머, 당뇨 같은 질환이나 비만과도 연관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근래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암 질환과 관련해 자가포식은 ‘두 얼굴’을 지닌다. 발암물질인 활성산소를 만들어내는 망가진 미토콘드리아를 찾아내어 먹어치우는 오토파지는 미토콘드리아의 건강을 유지해 암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일단 암세포가 생긴 뒤엔 오히려 암세포 생존에 큰 도움을 주는 협력자가 된다. 암과 오토파지의 관계를 연구하는 정희선 선임연구원은 “암덩어리의 안쪽에 있는 암세포는 혈관에서 멀리 떨어져 영양소 결핍의 상태에 놓이는데, 이때 암세포 안의 오토파지 기능이 최대로 작동해 세포 안 물질을 효율적으로 재활용해 암세포의 생존을 돕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암세포 안의 자가포식 작용만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약물 개발이 이 분야에서 뜨거운 관심사이다.


퇴행성 신경질환 분야에서도 자가포식의 역할이 밝혀져왔다. 자가포식이 더 활발한 쥐가 더 오래 산다는 실험 결과를 냈던 정용근 교수는 요즘 신경질환과 자가포식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알츠하이머나 파킨슨 병을 일으키는 원인 단백질들의 덩어리만을 찾아내어 분해하는 오토파지가 있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며 “노화하며 오토파지 기능이 떨어질 때 이런 덩어리 물질이 더욱 쌓여 퇴행성 신경질환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노화한 자가포식 기능을 복원해 신경질환을 치료하려는 약물의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비만이나 다른 대사질환과 관련한 여러 연구도 제시되고 있다. 자가포식 기능이 활발한 실험동물에선 비만이 줄어들었다는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이명식 연세대 의대 교수(의생명과학부)는 “비만뿐 아니라 당뇨, 지방간, 동맥경화 같은 여러 대사질환이 오토파지와 연관된다고 알려지고 있다”며 “특히나 간, 췌장처럼 서로 다른 조직에서 오토파지의 역할이나 활성도 저마다 달라 그런 특성을 밝혀 치료에 활용하려는 연구들이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정희선 선임연구원은 “오토파지 연구분야는 별 주목을 받지 못하던 기초연구의 큰 성과가 전에 없던 새로운 분야를 창출한 대표적 사례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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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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