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섭의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질병의 원인을 인구집단 수준에서 찾는 학문을 역학(epidemiology)이라고 합니다. 이 분야 전문가인 김승섭 교수가 사회•공동체와 관련해 질병 원인을 추적하는 '사회역학'의 역사를 짚으며 흥미로운 연구 사례를 들려줍니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떻게 병들게 되는지, 어떻게 해야 더 건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오래 사는가?

[9] 사회적 관계망과 건강 연구의 역사


00SN_401.jpg » 사회적 관계 속에서 비만의 분포를 보여주는 그림. '프레밍햄 심장연구' 데이터로 분석. 글 아래 크리스타키스와 파울러의 연구결과 참조.[11]


학에서 하나의 가설이 어떻게 등장하고, 과학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시민권’을 얻고, 또한 그 내용이 어떻게 대중적 이해와 지지를 얻는지는 항상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물론 가설에 따라서 어떤 것은 첫 번째 단계에서 멈추기도 하고, 어떤 것은 두 번째에서 멈추는 경우도 있겠지요.


이 글에서는 개인이 맺는 사회적 유대관계를 뜻하는 ‘사회적 관계망(Social Network)’이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등장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964년, 1979년, 1997년, 2007년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 이야기에서, 제가 생각하는 주인공은 5명입니다.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레너드 사임 교수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도록 하지요. 그는 사회적 관계망에 대한 연구를 직접 주도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얘기할 3편의 연구가 진행되는 데 필요한 발판을 마련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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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레너드 사임:

 씨앗을 부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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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구결과로 뭘 하라는 건가? 사람들에게 이사를 가고 직장을 바꾸라는 거야? 자네는 사람들의 시선을 콜레스테롤, 혈압, 흡연, 이런 정말 중요한 것들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어. 부끄러운 줄 알고 이제 그만하게나.(What are we supposed to do with findings like this? Tell people not to move or change jobs? All you are doing is distracting people from the real issues which are cholesterol, blood pressure and smoking. You are doing shameful work and you should stop it!)[1]


1960년대 미국심장학회에서 레너드 사임 (Leonard Syme)이 발표한 논문에 대해 나중에 그를 찾아온 심장질환 분야 전문가가 했던 평가입니다. 모욕적인 코멘트입니다. 그의 논문은 ‘문화적 이동성(Cultural Mobility)’이 심장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1964년 <만성질환 저널(Journal of Chronic Disease)>에 출판한 논문에서, 그는 익숙한 동네를 떠나 낯선 곳에 적응해야 했던 사람들, 특히 시골에서 농부로 일하다가 도시로 나와 사무직에 종사했던 사람들에게서 흡연과 같은 다른 위험요인을 통제하고도 심장병이 높게 나타난다는 결과를 보고했습니다.[2]


2016년에 출판된다면, 질병의 사회적 원인에 대한 연구로 데이터와 통계적 방법론만 적절하다면 어렵지 않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1964년에는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뒤에서 더 설명하겠지만 ‘프래밍햄 심장연구(Framingham Heart Study, ☞ 글 아래 설명 참조)’라는 연구프로젝트 등을 통해서 흡연, 고혈압, 콜레스테롤 같은 심장질환의 위험요인이 하나씩 밝혀지던 때입니다.[3] 항생제 개발 덕분에 폐렴과 결핵 같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고, 1953년 왓슨과 크릭이 디엔에이(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면서 인간 몸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가 인류 역사상 유례 없이 빠르게 늘어나던 시기입니다. 생의학적(biomedicine) 관점에 기반한 의학 연구가 본격 시작되던 시기였지요.


그런 시대에 ‘문화적 이동성’이 심장병의 위험요인이라고 보고한 연구의 결론은 물론이고, 개별 연구의 타당성을 논하기 이전에, 그런 관점 자체도 받아들여질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레너드 사임은 이 연구를 계속 발전시켜 나갑니다. 1968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보건대학원의 교수가 된 그는 같은 대학 루얼 스톨룬(Reull Stallones) 교수와 일본인 이민자에 대한 연구를 시작합니다. 일본에 있는 일본인, 하와이로 이주한 일본인,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일본인, 이렇게 세 집단에서 심장병 발생을 비교합니다. 캘리포니아의 일본인은 본토의 일본인보다 5배, 하와이의 일본인은 3배 높은 심장병 발생을 보입니다. 식이, 흡연, 혈압, 콜레스테롤 요인을 통제하더라도 이 차이는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유전자나 식습관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심장병 발생의 차이가 나타난 것이지요.


00SN1.jpg » 그림 1. 일본, 하와이,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심장병 발생 비교 [4] 그는 이 연구를 영국에서 온 의사 출신의 박사과정 학생과 함께 진행합니다.[4] 훗날 영국 공무원의 건강에 대한 ‘화이트홀(Whitehall) 연구’를 진행하고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건학자 중 한명으로 성장하는 이 박사과정 학생은 이 차이를 일본인이 서양식 문화(Western Cultural Ways)를 얼마만큼 수용했는가에 따라 다르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합니다. 캘리포니아에 살더라도 전통 생활양식을 고수한 일본인들은 일본에 사는 일본인들과 비교했을 때, 심장병 발생에서 차이가 없다는 결과를 덧붙이면서요.


너드 사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심장병 발생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서양식 문화와 일본 전통문화는 어떻게 다르고, 그 구체적인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일본으로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다양한 책을 읽습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가 이 이야기의 두 번째 주인공인 그의 또다른 박사과정 학생을 만나면서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 중 하나로 이어집니다.


그 주인공은 2000년 출판된 사회역학 분야 첫 교과서의 편집자인 하버드대학 보건대학원의 리사 버크만(Lisa Berkman) 교수입니다. 그리고 레너드 사임은 자신의 제자가 편집한 그 첫 교과서의 서문을 씁니다. 그 서문은 40여 년 간 그가 걸었던 길이 이제 꽃을 피웠음을 알리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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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리사 버크만:

 최초의 코호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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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하버드대학 보건대학원에서 사회역학 프로그램을 만든 리사 버크만(Lisa Berkman)은 1975년 당시 버클리 보건대학원의 박사과정 학생이었습니다. 리사 버크만은 사회적 관계망(Social Network)이 인간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침 그때 일본에 갔던 레너드 사임 교수가 버클리로 돌아옵니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들을 인터뷰했습니다. 미국인과 일본인의 문화적 생활양식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고자 한 것이지요. 일본인의 대답은 ‘미국 사람들은 개인주의적이고 외롭잖아요’라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인이 외롭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던 레너드 사임 교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반복해서 묻습니다. ‘미국인들은 거리에서도 항상 혼자 걷잖아요’라는 일본인의 답에 대해 그런 행동과 외롭다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 되묻기도 했고요.[1] 홀로 사망하는 ‘고독사’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오늘날의 일본을 생각하면, 짐작하기 어려운 1970년대 일본인의 사고양식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외로움이나 사회적 관계에 대한 고민을 안고 미국으로 돌아온 레너드 사임 교수는 당시 박사과정 학생인 리사 버크만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알라미다 카운티(Alameda County)에서 1960년대부터 진행되어온 코호트 데이터를 분석합니다.


리사 버크만은 사회적 관계망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합니다. ‘버크만-사임 사회적 관계망 지표(The Berkman-Syme Network Index)’라고 이름 붙은 이 측정도구는 결혼 상태, 친구나 친척 관계를 나타내는 사회성, 교회에 다니는지, 지역사회에서 다른 조직활동을 하는지 등을 측정해 ‘사회적 연결(Social Connection)’의 정도를 등급화하고 그에 따라 사망률의 차이를 비교합니다. 그 결과 남성에서는 최대 2.3배, 여성에서는 최대 2.8배 사망률의 차이가 있다는 게 밝혀집니다. 더 많이 연결되어 있을수록, 더 오래 산다는 결과입니다.[5]


00SN2.jpg » 그림 2. 사회적 관계망의 수준에 따른 사망률의 차이 [5]


라미다 카운티에 거주하는 사람 중에서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는 무작위 추출로 선정된 6928명의 성인을 7년 동안 추적관찰 한 연구 결과를 담은 이 논문은 <미국역학회지>에 1979년 출판됩니다. 당시 기준으로 최고 수준의 내적 타당성을 지닌 역학 연구가, 사회적 관계망으로 측정된 사회적 연결 정도가 사망률에 영향을 끼친다는 결과물을 최초로 내놓은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이 불편했던 일부 임상 의사들조차도 부정하기 어려운 연구였습니다. 이 논문 이후, 수많은 후속 역학 연구들이 나타나 연구 결과를 다른 인구집단에서 재현하고 발전시켜 나가게 됩니다.[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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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셀던 코헨:

 최초의 실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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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관계망이 다양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관찰 연구의 결과가 쌓이던 1990년대 후반, 역사에 남는 또다른 형태의 연구가 등장합니다. 그 주인공은 카네기멜론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셀던 코헨(Sheldon Cohen)입니다.


는 1980년대에 이미 사회적 환경이 인간의 몸에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훌륭한 연구를 여러 차례 수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비행기 소음이 어린이들의 생리적, 인지적 상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검토했던 연구이지요.[9]


셀던 코헨 교수는 사회적 관계망이, 타인과 사회적으로 연결된 정도가 어떻게 인간의 몸을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실험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막연하게, 관계망이 적은 사람들이 사회적 지지도 받지 못하고 또 면역 능력이 떨어져 몸이 약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코헨 교수는 이 논쟁에 도전하고자, 방법론적으로 치밀하고 철저한 실험을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피츠버그에 거주하는 건강한 사람들을 실험 대상으로 모집합니다. 그들 모두에게 사전검사를 시행해서, 다른 이유로 면역 능력이 떨어질 수 있는 사람들, 예를 들어 후천적면역결핍 바이러스(HIV)에 감염된 경우나 임신한 여성을 제외합니다.


00SN3.jpg » 그림 3. 사회적 연결과 감기 취약성을 다룬 코헨 연구진의 논문 제목.[10]


그렇게 찾아낸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달여 뒤에 병원에서 피 검사를 통해 면역 세포(natural killer cell activity)와 항체(antibody to the challenge virus)를 측정하고, 설문지를 통해 그들의 성격을 측정합니다. 또한 그들의 콧물 배양 검사(nasal wash culture)를 통해 그들이 리노 바이러스(Rhinovirus)에 감염되었거나 지난 30일동안 상기도 감염 증상이 있었다고 보고한 사람들을 실험에서 제외합니다. 그렇게 선발한 실험 참여자들에게 감기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리노 바이러스를 콧속에 낮은 농도로 투여하고서 그들의 상태를 5일 동안 관찰하며 감기에 걸렸는지 여부를 여러 생체지표로 측정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외부활동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실험에 참여한 276명은 일주일가량 개별적으로 수용되어 격리된(quarantined) 상태로 지냅니다.


이런 조건에서 코헨 교수는 사전에 설문지로 측정한 사회적 관계망의 수준을 보며, 감기 발생의 차이를 연구합니다. 논문 제목에서 ‘사회적 연결(Social ties)’이라고 지칭한 부분은, 가족, 친구, 종교집단 등 다양한 12개 집단과의 관계를 측정하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사회적 관계망의 다양성(Social Network Diversity)에 대한 점수로 측정된 것입니다. 물론 사전에 당사자의 동의를 받았고 카네기멜론대학 연구윤리심의위원회의 허가를 받았지만, 저는 지금도 이 과감한 실험이 놀랍습니다.


구결과는 1997년 <미국의사협회지>에 “사회적 관계와 감기 취약성(Social Ties and Susceptibility to the Common Cold)”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출판됩니다.[10] 같은 조건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 때,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점액이 덜 만들어지고 코에 있는 섬모가 더 활발히 활동하고 바이러스를 외부에 덜 유포시킨다는 결과를, 즉 감기에 덜 걸린다는 실험 연구가 출판된 것입니다.


잠재적 교란인자인 흡연, 수면 부족, 음주, 비타민C 섭취, 교감신경계 호르몬, 내성적인 성격을 모두 측정하였지만 그것들로는 이 연구 결과에서 드러난 사회적 관계망과 감기의 관계성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연구는 사회적 이슈가 됩니다. 1997년 7월 <뉴욕타임즈>는 “사회적 관계가 감기 위험을 줄인다(Social Ties Reduce Risk of a Cold)”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내고(☞기사 링크: https://goo.gl/XS59SX), 이 연구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찬사를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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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크리스타키스와 파울러:

 “모든 인간은 관계망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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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을 거치며, 의학/보건학 연구는 급격히 변화했습니다. 인간 몸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는 비약적으로 발달했고, 인간의 몸과 질병에 대한 유례없이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데이터가 축적되기 시작했습니다. 통계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제의 발전은 과거에는 검토할 수 없었던 가설을 검토하고 그것을 대중에게 표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를 제공했습니다.


런 자료를 연구에 활용하여 사회적 관계망과 건강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등장합니다.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Nicholas A Christakis) 교수와 제임스 파울러(James Fowler) 교수가 2007년 출판한 논문입니다.[11] 사회적 관계망에 대한 연구로는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NEJM)>에 최초로 출판된 이 논문은 과거에는 진행하기 어려운 연구였습니다. 1만 2067명을 1971년부터 2003년까지 32년 동안 지속적으로 추적관찰 한 결과를 분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이 데이터는 앞서 언급했던 ‘프래밍햄 심장연구’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연구는 2차 대전 이후로 루즈벨트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가 미국 대통령이던 시기에 심장병, 뇌졸증을 비롯한 심혈관계 질환에 대한 의학적 이해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수준이었습니다. 대통령의 혈압이 188/105 mmHg로 나타났을 때에도, 주치의는 그 나이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혈압이 정상범주라고 진단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하던 시기였습니다. 결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5년 뇌혈관이 터져 사망합니다. 그의 사망 당시에 혈압은 300/190mmHg이었습니다.[12]


루즈벨트 대통령 이후 취임한 트루먼 대통령은 심혈관계 질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하고, 그 결과 매사추세츠 주의 프레밍햄 지역에 5000여 명의 코호트를 구축하고, 이후에 그들의 자손은 물론이고 그들의 자손의 자손까지 포함하는 연구를 60년 넘게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3]


프래밍햄 심장연구’에서는 1971년부터 연구참여자에게 가까운 사람이 누군지 조사하는 자료가 있었습니다. 친한 주변인을 통해 연구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3년에 한 번씩 수집했지만, 실제 연구에서는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자료이지요. 크리스타키스 교수와 파울러 교수는 이 자료를 이용해서, 5124명의 사회적 관계망 지도를 그려냅니다. 일촌에 해당하는 부모, 남편/아내, 형제/자매, 아이들에 대한 자료는 원래 조사에 포함되어 있으니, 수집된 가까운 친구에 대한 자료를 함께 이용해서 정리한 것이지요. 그렇게 사회적 관계망 지도를 그리고 나니, 3만 8000여 개의 사회적 관계망이 그려졌습니다.


그 자료를 이용해 연구팀은 비만을 체질량 지수(Body Mass Index)가 30 이상인 경우를 비만으로 규정하고, 비만 발생이 사회적 관계망에 의해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비만이 되었을 경우, 연구참여자가 비만이 될 가능성은 57%가 증가합니다. 형제/자매 중에 한 명이 비만이 되었을 경우, 연구참여자가 비만이 될 가능성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40%가 증가한다는 내용입니다. 가장 큰 영향은 상대방을 서로 가까운 친구로 인지하는 관계에서 나타났습니다. 그 관계에서는 한 명이 비만이 될 경우, 나머지 한 명이 비만이 될 가능성은 150% 넘게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을 주고 받을 때에 중요한 것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당사자가 인지하는 사회적 관계라는 점입니다. 연구자들은 이런 내용을 아래와 같은 그림으로 표현해내고, 상태의 변화를 그래픽으로 보여줍니다.


00SN4.jpg » 그림 4. 프레밍햄 심장연구 데이터로 분석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비만의 분포 [11]  


연구는 거대한 자료 분석, 직관적인 그래픽, 그리고 결과가 지닌 함의 때문에 세계적으로 주요한 화제가 됩니다. 연구자들은 우리 모두가 사회적 관계망 속에 놓여 있고, 그 속에서 이토록 지대한 영향을 주고 받는다면, 이걸 감안해서 진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개입 정책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논문 마지막에 합니다. 사회적 관계망속에서 비만에 대해 그렇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면 다른 것들, 예를 들어 금연이나 혹은 더 나아가 행복감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전파될 수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입니다.[13]


논쟁이 될 만한 연구였던 만큼, 논문이 출판되고 여러 지점에서 비판하는 이들이 생겨납니다. 그 중 유의미한 내용은 크게 2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이 연구에서 사회적 관계망의 대부분은 ‘선택’할 수 있는 친구가 아니라, 부모/형제/자녀 등의 일촌 관계인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개개인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관계로 인한 영향력을 논한다면, 개입(intervention)의 측면에서 그 연구의 함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물론 보건학적 개입의 핵심 내용은 사회적 관계를 끊고 맺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관계망과 그 영향력을 고려한 개입 정책이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겠지만요.


또 다른 질문은 비만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역사회 수준의 요인들에 대한 고려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개개인을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분석했다는 비판입니다.[14] 사회적 관계망에서 가까운 이들이 공유하는 지역사회 수준의 환경, 예를 들어 패스트푸드 식당의 숫자부터 교육환경, 보안, 실업률, 불평등 등의 내용에 대한 고려가 더 필요하다는 점이지요. 이런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하면, 비만을 전염된다고 표현했던 저자들의 관점이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더욱 중요해지는 사회적 관계망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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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관계망과 건강에 대한 연구의 발판을 만든 1964년의 레너드 사임과 이 분야에서 핵심적인 논문을 출판한 1979년의 리사 버크만, 1997년의 셀던 코헨, 2007년의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와 제임스 파울러 연구의 역사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제가 선정한 이 논문들 이외에도 보건학 분야에서 사회적 관계망과 관련되어 중요한 연구들이 많습니다. 특히 HIV와 같은 감염성 질환이 전파되는 과정을 어떻게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개입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적극 활용한 ‘네트워크 역학(Network Epidemiology)’은 2000년 이후로 다양한 통계적 기법과 함께 새로운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15][16]


분야의 연구는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관계망의 어떤 요소들이 인간 몸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여러 설명이 등장하고, 사회적 관계망과 유사한 사회자본(Social Capital) 같은 개념은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17] 그리고 그러한 관계망을 활용해서 사람들이 좀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계속 모색하고 있습니다.[18] 오늘날 오프라인은 물론이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포함한 온라인에서 사회적 관계망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력은 점점 커져가고 있으니까요.[19] 그 영향력은 때로는 긍정적이고 때로는 부정적이기도 합니다. 주변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청소년집단에서 ‘인터넷 왕따(Cyber-bullying)’ 같은 행동들은 정신건강을 악화하는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고요.[20]


한국사회가 양극화하는 가운데 사회적 관계망도 역시 양극화하고 있습니다. 관계망에서 좋은 자원들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경향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상황을 정확한 진단하는 것을 넘어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를 보여주는 연구가 향후에 진행되리라 기대해봅니다.

 

[참고문헌]


[1] Syme, S.L., Historical Perspective: The social determinants of disease - some roots of the movement. Epidemiol Perspect Innov, 2005. 2(1): p. 2.

[2] Syme, S.L., M.M. Hyman, and P.E. Enterline, Some social and cultural factors associated with the occurrence of coronary heart disease. Journal of chronic diseases, 1964. 17(3): p. 277-289.

[3] Mahmood, S.S., et al., The Framingham Heart Study and the epidemiology of cardiovascular disease: a historical perspective. The Lancet, 2014. 383(9921): p. 999-1008.

[4] Marmot, M.G. and S.L. Syme, Acculturation and coronary heart disease in Japanese-Americans. 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 1976. 104(3): p. 225-247.

[5] Berkman, L.F. and S.L. Syme, Social networks, host resistance, and mortality: a nine-year follow-up study of Alameda County residents. 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 1979. 109(2): p. 186-204.

[6] House, J.S., K.R. Landis, and D. Umberson, Social relationships and health. Science, 1988. 241(4865): p. 540-545.

[7] Vogt, T.M., et al., Social networks as predictors of ischemic heart disease, cancer, stroke and hypertension: incidence, survival and mortality. Journal of clinical epidemiology, 1992. 45(6): p. 659-666.

[8] House, J.S., C. Robbins, and H.L. Metzner, The association of social relationships and activities with mortality: prospective evidence from the Tecumseh Community Health Study. 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 1982. 116(1): p. 123-140.

[9] Cohen, S., et al., Physiological, motivational, and cognitive effects of aircraft noise on children: moving from the laboratory to the field. Am Psychol, 1980. 35(3): p. 2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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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hristakis, N.A. and J.H. Fowler, The spread of obesity in a large social network over 32 years.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07. 357(4): p. 370-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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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Fowler, J.H. and N.A. Christakis, Dynamic spread of happiness in a large social network: longitudinal analysis over 20 years in the Framingham Heart Study. Bmj, 2008. 337: p. a2338.

[14] Cohen-Cole, E. and J.M. Fletcher, Is obesity contagious? Social networks vs. environmental factors in the obesity epidemic. J Health Econ, 2008. 27(5): p. 1382-7.

[15] Morris, M., Network epidemiology: A handbook for survey design and data collection. 2004: Oxford University Press on Demand.

[16] Morris, M. and M. Kretzschmar, Concurrent partnerships and the spread of HIV. Aids, 1997. 11(5): p. 641-648.

[17] Berkman, L.F., et al., From social integration to health: Durkheim in the new millennium. Soc Sci Med, 2000. 51(6): p. 843-57.

[18] Valente, T.W., et al., Social network analysis for program implementation. PLoS One, 2015. 10(6): p. e0131712.

[19] Centola, D., The spread of behavior in an online social network experiment. Science, 2010. 329(5996): p. 1194-7.

[20] Schneider, S.K., et al., Cyberbullying, School Bullying, and Psychological Distress: A Regional Census of High School Students.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2011. 102(1): p. 171-177.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조교수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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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보건정책관리학부 조교수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큼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자기 삶에 긍지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경험과 고용불안 등의 사회적 요인이 비정규 노동자, 이민자,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 지에 대해 연구한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고,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메일 : ssk3@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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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김승섭 | 2016. 10. 13

    [8] 치료 효과와 그 검증 우리는 흔히 동양과 서양의 의학이 오래전부터 달랐던 것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근대 해부학과 생리학이 탄생하기 전까지, 이들이 인간 몸을 바라보는 관점은 많은 부분에서 유사했습니다. <황제내경>에서 음...

  • 말하지 못한 내 상처는 어디에 있을까말하지 못한 내 상처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김승섭 | 2016. 02. 07

    [7] 차별경험: ‘같은 응답, 다른 의미’를 아십니까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맺는 여러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 관계들은 상처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 ...

  • 모두 총기를 소지하면, 안전해질 수 있을까모두 총기를 소지하면, 안전해질 수 있을까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김승섭 | 2015. 10. 12

    [6] 근원처방 못하고 되풀이되는 사회적 위험들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한국보다 넉넉한 그 나라의 많은 것이 신기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에게 직접 배울 기회가 있다는 것, 그리고  대학 시스템이 학생 교육을 행정의 중심에 놓아 합리적...

  • PTSD, ‘설명없는 치료’의 딜레마에 빠지진 않았나요?PTSD, ‘설명없는 치료’의 딜레마에 빠지진 않았나요?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김승섭 | 2015. 09. 03

    [5] 사회적 고통과 개인적 치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의 원인과 치료에 대해최근 신문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는 질병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가깝게는 세월호 유가족이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 누가 폭염으로 인해 숨지는가누가 폭염으로 인해 숨지는가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김승섭 | 2015. 08. 17

    [4] 1995년 사카고 폭염재난의 교훈때는 1995년 7월입니다. 마가렛 오티즈(Margaret Ortiz)는 미국 시카고에서 작은 유아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무더위가 계속되던 날, 마가렛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극장으로 영화를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