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의 "뇌영상과 정신의학"

현직 정신과 의사인 필자가 최근 뇌영상과 정신의학 연구의 성과를 아우르며 뇌영상에 바탕을 둔 정신질환 해설에 나선다. 정신질환에 대해 여전히 큰 편견과 오해를 풀어주고자 한다.

힐링 주는 쇼핑도 ‘과유불급’, 지나치면 당신은 중독의 포로

[31] 정신과의사의 쇼핑 경험으로 되돌아보는 ‘쇼핑 중독’


00shopping7.jpg » 예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무제(나는 쇼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출처/WikiArt


취미 중 하나는 고전음악 듣기이다. 생김새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취미를 갖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의 음악 듣기 시험이었다. 평소 수업 때 들었던 여러 곡 중 한 곡을 1분 여씩 들은 뒤 얼마나 많은 곡의 제목을 맞추느냐로 평가하는 시험이었다. 한 문제라도 더 맞추는 것이 중요하던 시절 아니었던가. 시험 대비 목적으로 테이프를 사기 위해 시내에 있는 ‘비의 소리처럼’을 방문했다. 몇 천원을 주고 샛노란 배경에 안경 쓴 아저씨가 입을 앙 다물고 있는 표지의 테이프 하나를 건네 받았다. 성음에서 나온 칼 뵘 지휘의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이었다.


불순한(?) 목적으로 시작한 음악 감상이었지만 이내 곡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당시에는 음악 지식이 일천해 곡의 조성이 무엇인지, 칼 뵘이 누구인지,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어디에 있는지 등은 전혀 몰랐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워크맨’의 재생 단추를 누르고 눈을 감으면 바로 천상의 세계가 펼쳐졌다. 선율에 몸을 맡긴 뒤 하늘을 둥둥 떠 다니다 보면 25분 여가 훌쩍 지나갔다.


[칼 뵘이 빈 필과 연주한 모짜르트 교향곡 40번 중 1악장.

  https://youtu.be/sZHKJQdB_Ng ]


그렇게 시작된 고전음악 감상은 자연스럽게 음반 구매로 이어졌다. 이후 20여 년 동안 음반 가게 방문, 예약 구매, 중고 거래, 온라인 구매, 디지털 음원 다운, 해외 구매 등 다양한 형태로 음반 쇼핑이 이뤄졌다. 그 과정 중에 쇼핑은 내게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하게 했고,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엥겔 지수를 낮추기도 했으며, ‘지름신’의 강림으로 뼈저린 후회를 안겨주기도 했다. 쇼핑이 대체 뭐길래 이토록 오랫동안 많은 영향을 끼쳐온 것일까?



지친 영혼 달래주는 ‘쇼핑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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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에 다닐 때 시험이 참 많았다. 매번 시험이 끝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비슷했다. 당분간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틀린 문제에 대한 아쉬움과 준비 부족에 대한 후회, 겨우(?) 이거 하나 하려고 아둥바둥했나 싶은 허무감, 다른 과 친구들이 놀 때 같이 놀지 못해 생겨난 소외감처럼 부정적인 감정도 적지 않았다.


런 슬픈 감정이 들 때면 나는 힙합을 추는 대신[1] 주로 음반 가게를 방문했다. 당시 시청 근처에 있던 ‘세바스티안’이 주로 가던 곳이었다. 짧은 머리의 사장님과 잠시 근황을 나누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음반 탐색에 할애되었다. 장시간 선 채로 음반을 뒤적거리는 것이 피곤했지만 마음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고, 애타게 구하던 음반이라도 찾으면 보물을 찾은 양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시험을 마친 뒤 들른 음반 가게에서 지친 마음을 회복시키는 쇼핑 치료(retail therapy)를 받았던 것이다.


사실 쇼핑 치료란 용어는 정신과학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분이 우울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 쇼핑을 하면서 기분 전환을 한다. 미국의 한 쇼핑몰을 방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이런 사실이 확인된다.[2] 자신에게 한 턱 내려고 계획에 없던 물건을 구매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쇼핑을 하기 전에 기분이 더 나빴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쇼핑이 이들에게 일종의 기분 개선제 역할을 한 셈이다. “쇼핑이 정신과 상담보다 싸다(shopping is cheaper than a psychiatrist)”[3]란 말이 실없는 소리가 아닌 것이다.


쇼핑을 하면 왜 슬픔이 사라지는 것일까? 미국의 스콧 릭(Scott Rick)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쇼핑을 통해 통제력을 회복하기 때문일 수 있다.[4] 릭 교수 연구진은 100명의 참가자에게 한 영화의 주인공이 죽는 장면을 보여 주면서 이들에게 슬픈 감정을 유발했다. 이어서 연구진은 참가자를 두 집단으로 나눈 뒤에 12개 물건을 보여주었다. 한 집단은 ‘선택하는 사람(chooser)’들로 실제 온라인 쇼핑을 하듯이 여행용 물건 4개를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었다. 다른 집단은 ‘둘러보는 사람(browser)’들로 여행에 유용한 물건 4개를 ‘물품 목록’에 담을 수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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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가 실제 구매 혹은 둘러보기를 끝낸 뒤 이들의 감정을 다시 확인해 보니 선택하는 사람들이 둘러보는 사람들에 비해 약 세 배 차이로 슬픔을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상황에 대한 통제권’에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했다. 왜냐하면 두 집단에게 과제가 주어졌을 때 선택하는 사람들의 79퍼센트(%)가 둘러보는 사람들에 비해 상황에 대해 통제력을 더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둘러보는 사람들 중에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더 느낀 비율은 2퍼센트(%)에 불과했다.


정의 평가 이론(appraisal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주변 상황이 즐거운지, 예측 가능한지, 집중이나 노력이 필요한지, 자신 혹은 타인의 통제에 있는지를 인식하는 정도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5] 슬픔은 특히 자신이 주변 상황을 잘 통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나타나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무력감을 느끼면서 비통에 빠지는 것이 흔한 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슬플 때 쇼핑은 합리적인 대응 전략이다. 슬플 때, 다시 말해 주변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을 때 어디로 갈지, 무엇을 살지 결정하는 쇼핑 과정을 통해 상실했던 자율성을 회복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의과대학 시절 시험을 본 뒤 슬픔을 느꼈던 이유 역시 근본적으로는 시험이란 상황을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연필을 굴려가며 객관식 문제를 찍고, 말도 안 되는 내용을 짜깁기하면서 주관식 문제를 푸는 중에 무력감을 느끼면서 슬퍼졌던 것이다. 하지만 시험이 끝난 뒤 갈 수 있는 여러 곳 중 음반 가게를 콕 집어 선택하고, 어떤 음반을 살지 이리저리 재는 과정을 통해 주변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으면서 슬픔 또한 떨쳐버린 것이다.



과유불급, 쇼핑 중독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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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상경한 참새 같은 내게 새로운 방앗간이 된 곳은 삼성동 코엑스 지하에 있던 음반가게 ‘애반’이었다. 유리로 구분된 고전음악 구획에 가면 널찍한 공간에 음반들이 차곡차곡 꽂혀 있었고, 큼지막한 스피커에서는 선율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음악을 들으면서 음반을 고르다 보면 시간은 늘 ‘프레스토(presto; 매우 빠르게)’로 지나갔다. 쇼핑한 음반 중 하나를 ‘휴대용 시디플레이어’로 들으면서 집에 온 뒤에 나머지 음반의 비닐 포장을 조심스럽게 벗겨 진열장에 채워 넣으면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불렀다.


[조르주 치프라가 프레스토로 연주하는 리스트의 ‘반음계적 대갤럽’.

  https://youtu.be/a-fyNP7y680 ]


런데 얼마 뒤부터 쇼핑이 일상 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희귀 음반을 찾기 위해 인터넷 파도타기를 하다가 의무 기록 작성을 미루게 되고, 아직 듣지 않은 음반이 쌓여 있는데도 새로운 음반을 또 주문하고, 월급을 받자마자 신나게 음반 쇼핑을 하는 통에 금새 통장 잔고가 바닥나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내가 음악을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음반 쇼핑을 사랑하는 건지 구분되지 않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당시 내 모습은 병원에서 만나던 의존증 환자와 여러 부분에서 유사했다. 열일 제쳐두고 쇼핑만을 원하던 모습은 갈망(craving)이었고, 쇼핑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모습은 금단(withdrawal)이었으며, 학생 때보다 많은 양을 구매해야지만 만족하는 모습은 내성(tolerance)이었다. 2009년에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 <쇼퍼홀릭(원제: the confession of shopaholic)>의 주인공인 레베카의 이야기가 다름 아닌 내 고백이 되어버렸다.


00shopping3.jpg » 쇼핑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는 ‘쇼퍼홀릭’의 주인공 레베카의 방. 출처/씨네21


쇼퍼홀릭이란 단어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것에 비해 아직 그 임상적 실체는 명확하지 않다. 일단 명칭부터 연구자에 따라 병적 구매(oniomania), 충동적 구매, 과도한 소비, 쇼핑 중독(shopaholism), 강박적 구매/소비 등으로 다양하고, 연구 방법 및 검사 도구가 일정하지 않아 보고되는 유병률도 1-20%로 일정하지 않다.[6] 이는 쇼핑 중독의 핵심 병리를 충동 조절의 어려움으로 봐야 할지, 과도하게 집착하는 강박 증상으로 봐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근에는 과도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구매 행위를 중독(addiction)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논의가 활발하다. 과거에는 중독의 개념을 알코올, 니코틴, 카페인과 같은 물질(substance)에만 한정시켰지만, 2013년 발표된 새로운 진단 체계(DSM-5)에서는 행동 영역으로 적용 범위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7] 실례로 이전에 “충동조절장애”에 속했던 ‘도박 장애’가 “물질 관련 및 중독 장애“로 소속이 바뀌었고, ‘인터넷게임장애’가 추가 연구가 필요한 진단적 상태에 포함되었다.


새로운 관점에서 쇼핑 중독을 바라보면 어떤 특징이 있을까? 노르웨이의 세실 안드레아슨(Ceceil Andreassen) 교수의 2015년 연구[6]에 따르면, 쇼핑 중독은 여성에서 두드러지고, 청소년기 후반에 시작해 성인기에 본격적으로 나타났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차 감소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외향성(extroversion; 다른 사람과의 사교, 자극과 활력을 추구하는 성향)이나 신경증(neuroticism; 걱정이 많고 위험 지각이 빠르고 예민한 성향)이 쇼핑 중독과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외향성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대인 관계에서 자신의 매력을 고취시키거나 특정 사회 집단에 속하기 위해 과도한 쇼핑을 하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아울러 신경증이 높은 사람은 분노, 우울함, 불안감과 같은 불쾌한 정서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쇼핑을 하다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내 과거를 돌이켜보면 외향성이 높지 않지만 ‘고전음악 동호회’ 활동을 할 때 다른 회원들의 음반 보유고에 주눅이 들었던 것과, 신경증은 보통 수준이지만 힘든 병원 수련 기간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나름의 쇼핑 중독 원인이었던 것 같다.


연구 결과를 조금 더 살펴 보면 쇼핑 중독은 불안, 우울, 낮은 자존감과도 연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어디까지나 상관 관계이므로 불안하고, 우울하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쇼핑에 중독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어떤 사람이 쇼핑 중독 때문에 불안, 우울해지고, 자존감이 낮아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아직 쇼핑 중독이 공식적인 질환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지만[8] 자신의 쇼핑 활동이 혹 중독 수준은 아닐까 염려되는 사람들은 안드레아슨 교수가 만든 검사(The Bergen Shopping Addiction Scale; BSAS)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듯 싶다.


베르겐 쇼핑 중독 척도(BSAS)


다음 항목을 읽고 최근 12개월 동안의 생각, 느낌, 행동의 정도에 따라 완전히 불일치하면 0점, 불일치하면 1점, 일치하지도 불일치하지도 않으면 2점, 일치하면 3점, 완전이 일치하면 4점을 주시오.


· 나는 쇼핑/구매를 항상 생각한다.

· 나는 기분을 바꾸기 위해 쇼핑/구매를 한다.

· 나는 쇼핑/구매를 많이 해서 일상에서 해야 할 일(예, 학교, 일)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 나는 이전과 같은 만족을 얻기 위해 더욱 더 쇼핑/구매해야 할 것처럼 느낀다.

· 나는 덜 쇼핑/구매할 것을 결심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 나는 어떤 이유 때문에 쇼핑/구매를 못하게 되면 기분이 나쁘다.

· 나는 쇼핑/구매를 많이 해서 삶이 행복하지 않다.


평가 방법 : 7개의 항목 중 적어도 4개에서 ‘일치’ 혹은 ‘완전히 일치’가 있을 경우 쇼핑 중독을 의심할 수 있다.



“어머! 저건! 사야 해~”쇼핑에 중독된 사람의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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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쇼핑을 탐닉하던 시절에 가장 부러웠던 사람들은 가게에서 한 움큼 집은 음반 여러 장을 지체 없이 결제하던 나이 지긋한 노신사들이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음반을 여러 개 골랐다가도 주머니 사정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일부는 다시 진열장에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음반 가게를 방문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지만, “살 것이냐 말 것이냐(to buy or not to buy)” [9]읊조리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핑에 중독된 사람들이 자주 부딪히는 어려움은 원하는 물건을 사고 싶은 열망과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제적 능력 사이의 갈등이다. 쇼핑 중에 기쁨과 고뇌라는 양 극단의 감정을 경험하는 이들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실마리를 찾기 위해 독일의 게르하르트 랍(Gerhard Raab) 교수의 2011년 연구를 살펴보도록 하자.[10]


연구진은 과도한 쇼핑 때문에 치료를 받는 23명의 여성과 일반인 여성 26명의 뇌를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여성만을 연구 대상으로 정한 이유는 이전의 여러 연구에서 남성보다 여성에서 쇼핑 중독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연구진은 참가자에게 물건(100 종류)을 보여준 뒤 이어서 가격(1-50 유로)을 같이 보여주고 최종적으로 살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도록 했고, 일련의 과정 동안 뇌의 활성화 양상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살폈다.


00shopping4.jpg » 화면에서는 참가자에게 물건, 물건과 가격, 구매 여부 결정이 순서대로 제시되었다. 출처/ 주[10], 변형


먼저 물건만 봤을 때 쇼핑에 중독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뇌의 선조체(striatum)가 더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조체는 보상, 기쁨, 중독 등과 밀접하게 연관된 곳으로 쇼핑에 중독된 사람들이 물건을 볼 때 입가에 웃음이 생기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후끈 달아오르면서 “어머! 저건! 사야 해~”[11]하는 일련의 반응이 뇌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00shopping5.jpg » 물건을 볼 때 나타나는 선조체의 활성화가 쇼핑에 중독된 사람들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출처/ 주[10]


이어서 물건과 함께 가격이 제시되면 사람들은 갈등에 빠진다. 물건을 소유하는 즐거움을 갖기 위해서는 가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고 싶은 물건은 많지만 가격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은 그야말로 가슴 아프다. 이때 사람들의 뇌에서는 통증, 혐오와 같은 부정적 자극과 연관된 섬엽(insula)이 활성화한다. 섬엽의 활성화 정도는 일반인에 비해 쇼핑에 중독된 사람들에서 덜 나타난다. 이런 양상은 쇼핑에 중독된 사람들이 물건을 갖고 싶어할 때 가격에 대한 예민성이 둔해지면서 구매 행동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00shopping6.jpg » 물건과 가격을 볼 때 나타나는 섬엽의 활성화가 쇼핑에 중독된 사람들에서 더 약하게 나타난다. 출처/ 주[10]


종합하면 두 가지 기전, 즉 물건을 볼 때 나타나는 보상 영역의 활성화와 가격을 볼 때 구매 행위를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의 활동 저하가 쇼핑 중독의 기저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리 예산을 확인하고, 계획을 짜고, 마음을 다잡았더라도 막상 물건을 봤을 때 쇼핑에 중독된 사람들은 강한 희열을 느끼면서 쉽게 유혹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너무 뻔한 결론 아닌가란 생각에 검색을 더 해봤지만 마땅한 연구가 눈에 띄지 않았다. 향후 관련 연구가 활발해져 쇼핑 중독의 신경과학적 비밀이 더 밝혀지길 희망해 본다.



다시 출발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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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누가 취미를 물어보면 다소 민망하지만 꿋꿋이 고전음악 듣기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음악을 즐기는 모습은 조금 달라졌다. 예전처럼 특정 음반을 구매해 듣는 방식 대신 라디오나 인터넷 방송을 통해 그때그때 자유롭게 듣는 경우가 흔해졌다. 덕분에 음반 구매에 쏟는 돈이나 시간은 많이 줄었고, 음반 쇼핑 중독의 포로 신세는 가까스로 면하게 된 듯 싶다(물론 솔직히 고백하자면 좋아하는 연주자 혹은 지휘자의 음반은 여전히 구매한다).


화는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일부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인 내가 무슨 특효약을 먹은 것은 아닐까라고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관련 연구 자체가 드물고, 효과를 보고한 일부 연구도 방법상 제한점이 많기에 검증된 치료 약물이 있다고 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이다.[12] 대신 문제되는 쇼핑에 대한 인식을 바꿔 행동의 변화를 꾀하는 인지행동치료(CBT)나 스스로 변화를 꾀하는 노력(self help; 아래 표 참고)이 과도한 쇼핑 욕구와 구매 충동을 낮추는 데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3]


쇼핑 중독을 조절하기 위한 4단계[14]


1. 당신이 쇼핑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라.

2. 쇼핑을 쉽게 만드는 신용카드를 자르고, 수표를 없애라.

3. 가족 혹은 친구와 함께 쇼핑하라. 그들이 당신의 과소비를 억제할 것이다.

4. 쇼핑 말고 당신의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방법을 찾으라.


내 경우에도 인정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오랫동안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고 포장했지만, 실은 음반 쇼핑에 자체에 대한 “중독”이었노라고. 이후 한동안 금단 증상을 겪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 때처럼 다시 자연스럽게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주변 사람들과의 교제도 도움이 되었다. 음악을 멀리 떠나지 않으면서도 음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나누는 대화의 도란도란한 소리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음악이자 마음의 치료제였다.


[ 고전 음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후배 태영이 직접 연주하는

  모짜르트의 ‘아, 어머님께 말씀드리죠’ 주제의 의한 변주곡.
 https://youtu.be/5sJtwhyJ6xE ]


요즘 ‘코리아 세일 페스타’가 한창이다. 이름을 영어로 지은 것도 별로이고 표방했던 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박싱데이에 미치지도 못하지만 기분이 우울했다면 쇼핑이 도움될 수 있다. 주변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면서 슬픈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긍정적 효과가 있는 쇼핑도 너무 지나치면 중독이 된다. 혹 이미 선을 넘었다면 먼저 인정하고, 쇼핑이 아닌 것에서 기쁨을 찾는 노력을 통해 건강한 쇼핑의 세계로 돌아오길 바란다. 아시죠? 쇼핑은 사랑입니다.



[주]



[1] 천계영, 언플러그드 보이. 2004: 서울문화사. 그네를 타고 내려온 현겸이 슬픔에 잠겨 있는 지율에게 건넨 대사 “난 슬플 땐 힙합을 춰”가 1990년대 후반 크게 유행했다.

[2] Atalay, A.S. and M.G. Meloy, Retail therapy: A strategic effort to improve mood. Psychology and Marketing, 2011. 28(6): p. 638-659.

[3] http://www.brainyquote.com/quotes/quotes/t/tammyfayeb130797.html. 진한 화장으로 유명한 미국의 방송인 태미 페이 바커(Tammy Faye Bakker)가 남긴 말로 알려져 있다.

[4] Rick, S.I., B. Pereira, and K.A. Burson, The benefits of retail therapy: Making purchase decisions reduces residual sadness. Journal of Consumer Psychology, 2014. 24(3): p. 373-380.

[5] Smith, C.A. and P.C. Ellsworth, Patterns of cognitive appraisal in emotion. J Pers Soc Psychol, 1985. 48(4): p. 813-38.

[6] Andreassen, C.S., et al., The Bergen Shopping Addiction Scale: reliability and validity of a brief screening test. Front Psychol, 2015. 6: p. 1374.

[7] Association, A.P.,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5®). 2013: American Psychiatric Publishing.

[8] Piquet-Pessoa, M., et al., DSM-5 and the Decision Not to Include Sex, Shopping or Stealing as Addictions. Current Addiction Reports, 2014. 1(3): p. 172-176.

[9] Benson, A., To Buy or Not to Buy: Why We Overshop and How to Stop. 2008: Shambhala. 쇼핑 중독을 다룬 책의 제목. 고뇌하는 햄릿의 대사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를 패러디했다.

[10] Raab, G., et al., A Neurological Study of Compulsive Buying Behaviour. Journal of Consumer Policy, 2011. 34(4): p. 401.

[11] 이현세, 공포의 외인구단 1권. 2009: 학산문화사. 엄지가 놀란 표정으로 “아!!” 외치는 장면에서 대사를 “어머! 저건! 사야해~”를 바꾼 그림이 인터넷에서 충동 구매를 표현할 때 자주 쓰인다.

[12] Grant, J.E. and S.R. Chamberlain, Pharmacotherapy for Behavioral Addictions. Curr Behav Neurosci Rep, 2016. 3: p. 67-72.

[13] Murali, V., R. Ray, and M. Shaffiullha, Shopping addiction. Adv Psychiatr Treat, 2012. 18: p. 263-9.

[14] Kuzma, J.M. and D.W. Black, Compulsive shopping: When spending begins to consume the consumer. Current Psychiatry, 2006. 5(7): p. 27-40.

최강 의사, 르네스병원 정신과장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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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의사, 르네스병원 정신과 과장
우울하던 의과대학 시절에 운명처럼 찾아온 정신과학과 여전히 연애 중인 정신과 의사. 환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정신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줄이고자 늘 고민한다.
이메일 : ir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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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영상과 정신의학최강 | 2016. 05. 30

    [27] 후천적 공감각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① 나는 외국 노래를 즐겨 듣지 않는다. 노래 가사를 중요하게 여기기에 의미 파악이 어려운 외국어로 된 노래와 친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어느 외국 노래에 신기하게 꽂힌 적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