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억년전 달과 지구의 거대충돌을 추적한다

※ 이 글은 한겨레 10월12일치 ‘사이언스온’ 지면에 실렸습니다. 온라인 사이언스온에도 옮겨 싣습니다. 지면 편집 과정에서 약간 달라진 부분이 있습니다.


moonearth.jpg » 달의 기원을 설명하는 과학이론 가운데 현재 가장 유력한 것이 거대충돌설이다. 45억년 전 화성 크기의 천체(‘테이아’)가 원시 지구와 충돌한 사건을 묘사한 상상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45억년 전 대충돌

지구 형제로 탄생

 ‘달의 기원’ 최근 연구 흐름 


분리설, 포획설, 동시생성설…

여러 가설 중 2000년 이후 각광


물증은 산소 동위원소들의 비율

초정밀 시뮬레이션 뒤이어


원시 태양계 수많은 천체들 충돌-합병

지구와 화성 규모 테이아 생겼고


그 둘이 부딪친 뒤

산산이 흩어진 물질이 다시 뭉쳐 달


화석으로 과거 추적하듯 우주 고고학

지구 탐구의 중요한 열쇠


지구에서 38만㎞, 지구 지름 1/4 크기

“달은 지구의 역사 물음표에 달린 점”


 

하늘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달빛. 달은 그 아래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였고 신화와 예술, 생활에 담겨 인류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달은 과학 탐사의 흥미진진한 대상이기도 하다. 태양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큰 위성인 달(지구 지름의 약 4분의 1)은 어떻게 지구에서 38만여㎞ 떨어진 우주 공간에서 떡하니 위성으로 자리 잡았을까? 언제, 어떻게? ‘달의 기원’을 묻는 물음이다.


달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 큰 구실을 한 건 1969~1972년 미국 아폴로 우주선들이 지구로 가져온 월석 시료들이었다. 수십년 지나 원소 정밀측정이 발달하고 초고속 컴퓨터의 태양계 시뮬레이션이 진전하면서, 최근 몇 년 사이 달의 기원을 설명하는 새로운 연구가 잇따라 나와 눈길을 끈다.


사실, 달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설은 여럿 있었다. 원시 지구가 굳기 전에 떨어져 나간 물질에 모여 달이 됐다는 분리설, 떠돌던 행성이 원시 지구의 중력에 붙들렸다는 포획설, 태양계 초기에 작은 천체들이 뭉치면서 각각 지구와 달이 됐다는 동시생성설 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가장 큰 권위를 누리는 건 ‘거대충돌설’이다.


무대는 45억년 전 원시 태양계. 비슷한 궤도에 있던 수많은 작은 천체들이 충돌하고 합병하면서 원시 지구와 화성 규모 행성(이 가설의 천체는 ‘테이아’라 불린다)이 생겼고, 테이아가 원시 지구와 거대 충돌을 일으킨 뒤 산산이 흩어진 물질이 다시 뭉쳐 달이 됐다는 것이다.


moonearth3.jpg » 지구와 달의 크기 비교와 둘 간의 거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우주선 아폴로 달 착륙이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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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충돌설이 각별한 관심을 모은 건 2000년 이후였다. 대체로 두 논문이 큰 구실을 했다. 하나는, 미국의 행성과학자 로빈 캐노프(Canup)와 에릭 애스포그(Asphaug)가 지구 자전과 달 공전의 각운동량, 지구와 달의 질량, 달엔 무거운 원소인 철이 희박하다는 달의 지질학 특성 등을 만들어낸 옛 사건을 추적하면서 45억년 전 거대충돌 사건이 있었음을 보여준 시뮬레이션 결과로, 2001년 8월 <네이처>에 보고해 화제가 됐다.


뒷받침하는 물증도 제시됐다. 그해 10월 미국·스위스 연구진은 달 시료를 분석해보니 ‘산소 동위원소들 간의 비율’이 지구의 것과 거의 같았다고 <사이언스>에 밝혀, 지구와 달이 거대 충돌로 물질을 공유했을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었다. 한국의 달 탐사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최영준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렇게 보면 아폴로 달 탐사가 달의 기원 연구에서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45억년 달의 기원을 안다는 게 그리 쉬울까? 달 연구는 간단치 않았다. 현재 관측된 몇 가지 사실을 다 설명하는 가설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달의 기원 가설은 달과 지구의 동위원소 비가 왜 이토록 같은지를 설명해야 했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의 결합으로 이뤄지는데, 예컨대 일반적인 산소(O) 원자핵엔 양성자 8개, 중성자 8개가 있다. 그런데 개중엔 중성자가 9개, 10개나 든 것도 있는데, 이처럼 양성자 수는 같지만 중성자 수가 다른 경우를 ‘동위원소’라 한다. 자연에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산소의 동위원소들엔 산소-16, 산소-17, 산소-18이 있다.


동위원소들 간에는 고유한 비율이 있기 때문에, 우주 곳곳에서 날아온 운석들의 동위원소 비는 각기 다르고 또 지구의 것과도 다르다. 그런데 유독 달 시료에 있는 산소 동위원소들의 비가 지구의 것과 같은 것으로 분석됐고, 이후에 여러 연구에서 월석에 있는 텅스텐(W, 2007년), 티타늄(Ti, 2012년)과 같은 원소의 동위원소 비도 지구의 것과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위원소 비가 같다면, 그건 지구와 달이 먼 옛날에 같은 기원, 즉 거대 충돌 같은 사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됐다.


여기엔 다른 문제들이 더 있다. 지구와 달이 같은 물질을 공유하려면 둘이 뒤섞일 정도로 큰 충돌이 있었어야 하지만, 어떤 충돌이냐에 따라 지금 지구의 자전 속도 등 조건들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연구원은 “지구 자전과 달 공전에 화석처럼 남아 있는 각운동량 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가 당연히 설명되어야 하는데 여러 조건들을 다 만족시키는 설명이 생각처럼 쉬운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moonearth4.jpg » 지구와 충돌했을 충돌체의 여러 모형. 각 모형에서 오른쪽이 지구, 왼쪽이 충돌체(테이아)이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표준모형에서는 화성 크기의 충돌체를 다루지만, 훨씬 더 작거나 원시 지구와 비슷한 크기의 충돌체를 다루는 충돌가설들도 있다. 출처/ Science 2013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38/6110/1040?sid=789e6861-3bc1-4e7e-bf7e-77fba416b5ba


거대충돌설 연구자인 에릭 애스포그(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는 지난 2014년 거대충돌 가설의 의미와 한계를 검토하는 논문에서 갖가지 거대충돌설을 검토하면서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증거를 바탕으로 이 가설이 설명되고 있으며 실제 달의 기원을 알기까지는 많은 도전들이 남아 있음을 지적했다. 이처럼 지구와 달의 질량, 각운동량, 동일한 동위원소 비율을 비롯해 현재 관측되는 증거들을 모두 만족스럽게 설명해주는 달의 기원 가설을 제시하기는 쉽잖다는 것이다.


'무거운 칼륨'이 더 많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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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움츠러들었던 거대충돌설의 도전이 최근 다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4월 모처럼 새로운 거대충돌설이 <네이처>에 실렸다. 이스라엘·프랑스 연구진은 원시 태양계를 정교하게 모사한 시뮬레이션 연구를 통해, 원시 지구와 충돌했을 테이아가 지구와 비슷한 궤도에서 성장한 천체이며, 그래서 그 구성 성분도 지구의 것과 비슷해 충돌 이후 지구와 달이 지금처럼 같은 동위원소 비를 지닐 수 있었다고 해석했다.


수천 개의 작은 천체들이 비슷한 궤도에서 서로 병합하며 몸집을 키웠으며 개중에 몸집 큰 원시 지구와 테이아가 특정한 각도로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구와 달은 함께 성장한 형제이고 달은 애초 지구와 비슷한 천체였던 셈이다.


최근엔 충돌 규모가 훨씬 더 컸으리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하버드대학과 워싱턴대학의 연구진은 지난달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달 시료에 있는 칼륨(K) 동위원소를 훨씬 더 정밀한 기법으로 다시 분석한 결과를 자세히 다루었다. 새로 밝혀진 점은 칼륨 동위원소들 중에서 ‘무거운 동위원소(K-41)’가 미세한 차이이지만 달 시료에 더 많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거운 칼륨’이 달에 좀 더 많이 있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연구진은 ‘엄청난 규모의 충돌’ 가능성에서 답을 찾았다. 무거운 동위원소가 달까지 더 많이 날아가 섞이려면 지금까지 추정하던 충돌보다 훨씬 더 큰 ‘고에너지 충돌’이 있었을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확인한 결론을 보면, 화성 크기의 테이아가 원시 지구와 충돌할 때 지구 겉을 이룬 상층 맨틀이 테이아와 더불어 녹아 기체로 날아가고, 그렇게 날아간 물질이 지금 달의 궤도 영역까지 퍼져 ‘회전 원반’ 구조를 형성했다. 지구 핵의 영향이 작아지는 지점 너머에서 달 씨앗을 중심으로 물질이 다시 뭉쳤고, 거기까지 날아간 무거운 칼륨 동위원소가 달 중력에 이끌려 그곳에 좀 더 많이 분포하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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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하지만 아직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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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의 기원과 역사를 밝히려는 태양계 연구 분야가 대부분 그렇지만, 달의 기원을 연구하는 과학도 어찌 보면 과학수사대, 시에스아이(CSI)의 활동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지금 우리가 아는 지구와 달의 각운동량, 지구와 월석의 원소 성분 같은 여러 조건들에 다 들어맞는 45억년 전의 사건을 찾아가는 거니까.” 최 연구원의 설명이다. 달리 보면 화석을 통해 과거를 보려는 고고학과도 비슷하잖을까?


점점 더 주목받는 거대충돌설은 달의 기원을 밝히는 최종 이론이 될까? 현재로선 많은 연구자 사이에서 가장 유력한 가설로 꼽힌다. 그렇지만 연구자들한테선 ‘아직 알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최 연구원은 “전에 없던 관측·분석 자료가 더 모인다면 다른 설명도 나올 수 있고 다른 가설이 섞인 종합적인 설명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름난 거대충돌설 연구자인 에릭 애스포그는 거대충돌설의 여러 갈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2014년 논문에서 달의 기원이 곧 우리 지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며 운치 있는 말을 남겼다. “지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달은 그 물음표(?)에 달린 점(.)과 같다.” 작은 점 달은 지구 역사의 물음표를 이루는 데 없어선 안 될 부분이다.


 

한국 달탐사 궤도선의 7가지 과학장비
2020년 착륙선 앞서 2018년 발사

 
 
2018년 말 발사될 한국의 달 탐사 시험 궤도선(KPLO)에 실릴 과학장비들이 한창 개발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최기혁 달탐사연구단장은 “착륙선을 보내는 2020년 탐사에 앞서 시험 궤도선(인공위성)에는 대략 일곱 가지 과학장비가 실릴 예정”이라며 “내년 여름에 해외 발사업체를 선정하고서 2018년 말 해외 발사장에서 달 탐사 궤도선을 발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험 궤도선에 실릴 과학장비들은 지난 4월 확정됐는데, 여기엔 고해상도 카메라 외에, 편광 카메라, 자기장 측정기, 감마선 분광기 등이 실린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과학장비 한두 개와 우주 인터넷 기술(DTN)을 검증하는 장비도 함께 실린다.
 
편광 카메라는 달 표면 입자를 정밀 측정한다. 이 관측 장비를 개발 중인 최영준 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대기층이 없어 우주방사선에 그대로 노출돼 색과 반사도가 변하고 미세 운석들에 의해 부서진 달 표면 입자들이 어떤 특성을 지니며 거칠기는 어느 정도인지 안다면 ‘우주풍화’를 이해하는 데 값진 자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남북극이 있는 지구와 달리 달엔 큰 자기장이 없다. 하지만 곳곳에 얼룩처럼 작은 자기장들이 관측된다. 한국 궤도선은 이런 국지적인 자기장을 관측한다. 이 관측 장비를 개발하는 진호 경희대 교수(우주탐사학과)는 “달의 작은 자기장들이 먼 과거에 핵이 활발할 때 생겼다가 남은 것인지, 외부 충돌과 자극으로 생긴 것인지에 따라 달의 진화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달 표면의 원소와 지질자원을 탐사할 감마선 분광기는 지질자원연구원에서, 고해상도 카메라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개발되고 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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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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