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령의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

인간의 과학과 기술인 뇌과학과 인공지능은 다시 ‘나, 너,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뇌과학 박사과정 송민령 님이 생명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의 모습을 전하면서 나, 너,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의 이야기를 독자와 나눈다.

기계는 결코 알 수 없는… 나와 우리 뇌의 ‘지금’

[6] 기계화 된 마음 ①: ‘지금’의 변화무쌍


00now1.jpg » 줄을 서서 멍하니 기다리다가 자기 차례가 되어 음식을 주문할 때 뇌는 어떻게 동작할까? 출처/ flickr.com


도날드나 푸드코트에서 멍하니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자기 차례가 되어 주문을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멍하니 있던 당신은 번뜻 정신이 들어 메뉴판을 눈으로 훑고, 뭘 먹을지 결정한 뒤에, 돈을 내고 주문을 할 것이다. 이럴 때 뇌는 어떻게 동작할까?


멍하니 있는 동안 대기 상태에 있던 뇌에서, 메뉴판을 보는 동안 시각 관련 부위가 활성화되고, 뭘 먹을지 결정하는 동안 의사결정과 계획에서 중요한 것으로 알려진 전두엽이 활성화 되고, 돈을 내며 주문하는 동안에 말하기와 움직임에 관련된 영역들이 활성화되는 걸까?


의식적으로 별다른 작업을 하지 않는 동안 잠잠하던 뇌에 ‘자기 차례’라는 외부 입력이 주어지자 관련된 부위들이 순차적으로 활성화되는 이런 상상은 어째선지 기계의 작동 방식과 비슷하다. 실제로 뇌의 작동 원리를 설명할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인 메커니즘(mechanism)은 기계학을 뜻하는 단어인 메카닉스(mechanics)에서 왔다. 구글에서 “brain”으로 이미지 검색을 해 보면, 태엽이 들어간 뇌 이미지가 심심찮게 보인다. 특히 “brain gear”로 검색하면 뇌를 태엽 기계로 형상화한 그림이 엄청나게 많이 나오는데 이런 그림이 이토록 많은 것부터가 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한다.


00now2.jpg » 뇌를 기계처럼 표현한 이미지들. 출처/ pixabay.com, flickr.com


를 기계처럼 인식하는 경향은 근대 유럽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1596-1650)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1] 데카르트는 몸과 마음을 분리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마음과 달리 몸은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그 뒤 과학이 발전하여 마음의 작용을 몸의 일부인 뇌의 작용으로 이해하게 되자, 뇌와 마음을 기계처럼 대하는 태도가 생겨났다.


몸이 기계라는 생각은 낯설고 불편하다. 뇌와 마음을 기계처럼 인식하는 태도는 여러가지 현실적,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2]  데카르트 시대의 유럽인들은 어떻게 몸이 기계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걸까?


데카르트가 살던 무렵, 유럽에는 정교한 자동 인형이 등장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아래 동영상). 그 시대에 만들어진 자동 인형을 박물관에서 실제로 본 적이 있는데 현대를 사는 내가 보기에도 대단히 정교하고,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이러니 16-17세기 사람들이 보기엔 어땠겠는가! 르네상스와 신대륙의 발견, 과학 혁명으로 자신감에 차 있던 당대 유럽인들이라면 인체도 정교한 기계이며 조만간 사람과 꼭 같은 자동 인형도 만들 수 있으리란 포부를 가졌을 법하다. 실제로 그들은 인체와 자연의 ‘메커니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다.


동영상 https://youtu.be/14y_7yNEnG8


그런데 고체 부품들로 만들어진 자동 인형을 통해 상상할 수 있는 작동 방식은 대단히 좁고 단순하다. 반면에 뇌 안팎에서는 분자, 세포, 조직, 신체, 환경 등 여러 층위의 네트워크들 간에 역동적이고도 복합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이는 복잡성의 양적 증가뿐 아니라 작동 방식의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 그래서 고체 기계로부터 상상할 수 있는 복잡성을 단순히 외삽하는 방식으로는 뇌 작용의 질적인 차이를 이해하기 어렵다.[3]


흔히 보는 기계와 뇌는 어떻게 다른 걸까?



유일한 지금: 시시각각 변하는 기능적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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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우리가 멍하니 있는 동안에도 활발히 동작한다. 가만히 쉬는 동안 뇌의 에너지 소모는, 뇌가 정신적인 작업을 열심히 할 때 에너지 소모량의 90-95%나 된다.[4] 이처럼 에너지 소모가 크다는 사실은 쉬는 동안의 뇌 활동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뇌는 수동적으로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상황을 적극적으로 예측하여 대비하며, 이미 일어난 일들은 학습한다. 쉬는 동안 일어나는 뇌의 이런 자발적인 활동은 뇌의 기능적 연결(functional connectivity)을 반영한다고 여겨진다.[5]


‘기능적 연결’은 대체로 정적이라고 여겨지는 뇌의 ‘구조적 연결(structural connectivity)’과는 다르다. 아래 그림에서 보여주듯이, 네트워크의 구조가 고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시점1에는 네트워크의 부위 (A)와 (C)의 상호 작용이 활발한 반면, 시점2에는 네트워크의 부위 (B), (C), (D)들의 상호작용이 더 활발할 수 있다. 이처럼 뇌의 활동과 상태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하는 뇌 부위들 간의 상호작용을 ‘기능적 연결’이라고 부른다.


00now3.jpg » 기능적 연결과 구조적 연결: A: 기능적 연결. 시점1에서, 부위 (A)의 활동변화와 부위 (C)의 활동변화 간에는 시간 간격이 짧을 것이다. (A)와 (C) 활동의 시간적 연관성(temporal correlation)으로 인해 시점1에서는 (A)와 (C)가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같은 뇌에서 서로 다른 두 시점의 기능적 연결은 다를 수 있다. B: 구조적 연결. 지난 연재 글(http://scienceon.hani.co.kr/425649)에서 뇌의 활동은 구조적인 변화를 동반하며 뇌 구조는 의외로 상당히 가변적임을 보였다. 구조적 연결은 기능적 연결에 비해서는 더 느리게 변한다. 출처/ wikipedia.org C: 얼굴-꽃병 착시. 출처/ wikimedia.org


그때그때 달라지는 기능적 연결 때문에 뇌는 같은 자극을 접하고도 다른 반응을 하게 된다. 예컨대, 마주보는 두 사람의 얼굴인지, 컵인지가 애매한 위 그림 C가 주어질 때, 피험자가 그림을 무엇으로 인식하는지는 그림을 보기 전의 뇌 활동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외부의 환경 조건이 모두 같더라도, 내 상태가 다르면 내가 경험하는 지금이 달라지는 것이다.[6]


뇌의 구조적 연결 ( 지난 연재 글 “나이 들면 머리 굳는다? 아니, 뇌는 변화한다 -가소성” 참고)과 기능적 연결은 시시각각 변하고, 내가 경험하는 지금은 그런 뇌 상태에 따라 달라지기에, 나의 지금은 다시 없을 유일한 것이 된다. 그러니 나중에 같은 영화를 다시 보더라도, 나중에 같은 사람과 같은 장소를 다시 찾더라도, 그 때의 경험은 지금의 경험과는 어딘지 다를 수 밖에 없다.



풍성한 지금: 기능적 연결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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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변하는 기능적 연결은 지나온 삶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수만의 사람을 만나 수천 시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수백의 장소에서 수백 가지 음식을 먹고, 수천의 음악을 듣고, 온갖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다. 이 무수한 경험을 통해 시각, 청각, 촉각 등 감각과 경험적 사건, 지식, 감정 등 온갖 정보들이 연결된 패턴이 뇌 신경망 속에 만들어져 간다 ( 세 번째 연재 글 “인공지능과 우리뇌에서, 구별하기와 표상하기” 참고)


개는 내 안에 이토록 많은 기억들, 패턴들이 있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패턴들의 일부가 지금 나의 오감으로 전해지는 자극들을 통해 건드려지고 깨어나곤 한다. 패턴 속의 일부 정보만으로 패턴 전체에 있는 정보들을 활성화시키는 이런 과정을 ‘패턴 완성(pattern completion)’이라고 한다.[7][8] 예컨대 아래 그림과 같은 패턴을 가진 사람이 마당에서 주인과 신나게 놀고 있는 요크셔테리어를 우연히 봤다고 하자. 그러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친척집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놀았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를 수 있다. 또 의식적으로 지각하지는 못하더라도  늑대, 꼬리치기, 충성심, 애완동물 등의 정보가 평소보다는 떠올리기 쉬운,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쉬운 상태가 된다.


00now4.jpg » 패턴 완성. 위 그림의 동그라미들은 어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자주 연관시킨 경험적 사건, 지식, 감정, 감각의 패턴을 보여준다. 외부의 자극이나 정신적 활동을 통해 패턴의 일부(채색된 동그라미)만 활성화시켜도 패턴의 대부분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패턴 완성은 기억 연상의 원리이다.


‘패턴 완성’이 지난 삶 속의 다양한 것들을 일깨우는 덕분에 지금은 지금 마주친 자극들 이상의 풍성한 순간이 된다. 지금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과, 패턴 완성을 통해 활성화된 정보들은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며 독특한 기능적 연결을 만든다.[9]


뇌의 패턴 완성과 기능적 연결은 감정 상태에 따라서도 달라진다.[10] “도파민은 행복 호르몬”, “편도체는 공포의 중추” 식으로 단순화된 표현들은 도파민과 편도체가 마치 뇌 속의 스위치처럼 작동해서 도파민이 분비되면 행복해지고,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공포를 느끼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지만 감정은 훨씬 더 풍부하고 미묘하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불쾌한 동영상으로 피험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가 증가하면서 뇌 전반의 기능적 연결이 재편된다.[11] 감정이 뇌 전반의 기능적 연결을 재편한다는 사실은, 감정이 뇌가 특정한 반응을 하도록 만든다기보다는, 뇌의 전체적인 반응 패턴을 조율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뇌는 컴퓨터처럼 논리에 따라 순차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여러 부위가 동시다발로 동작하므로  상충하는 여러 감정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기 안에서 어떤 감정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감정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때가 많다.[12] 1990년대 이전까지 월스트리트 증권 거래의 상당 부분은 뉴욕에 살고 있는 전문가들을 통해 이뤄졌다. 그런데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훈련받은 이 전문가들조차 감정의 영향을 받은 탓에 뉴욕의 날씨가 좋을 때엔 일일 지수가 오르고, 뉴욕 날씨가 흐릴 때엔 지수가 내리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뇌, 혹은 마음이 몸의 주인이라는 통념과 달리, 뇌는 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뇌는 고작해야 1.4 kg이지만 몸이 소비하는 전체 에너지의 무려 20%를 소비하며 물질대사를 전적으로 몸에 의지하고 있다.[13] 술이나 커피 등 음식물의 섭취는 뇌 활동에 영향을 주며, 술에 취하면 평소와 다른 말과 행동을 하게 되곤 한다. 배가 고플 때와 부를 때, 졸려서 정신이 아득할 때와 정신을 차렸을 때 뇌의 기능적 연결은 다르며 그에 따라 우리의 행동도 달라진다.[14][15]


히 몸이 감정에 끼치는 영향은 워낙 커서, 오죽했으면 심장의 두근거림, 눈물 같은 신체적 상태의 자각이 감정이라는 이론(제임스-랑게 이론: James-Lange theory)이 나왔을까 할 정도다.[16] ‘슬프기 때문에 우는 게 아니라 울기 때문에 슬프다’는 식이다. 하지만 상황에 대응하여 일어나는 몸과 뇌의 풍부한 반응은 이 반응들에 대한 의식적인 해석과는 다를 수 있다. 그렇다보니 높은 곳에 있는 것이 무서워서 심장이 두근거리는데도 눈 앞에 있는 이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두근거린다는 착각(흔들다리 효과)을 하게 되곤 한다.


환경이 뇌의 지금에 끼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배경 음악과 조명, 주변 사람들, 커피 향기, 화면에 보이는 글자, 화려한 색채, 선선한 기온 등의 정보는 감각기관을 통해 뇌에 전해져 온갖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시대와 문화처럼 거시적인 환경 또한 개개인이 접하는 것들과 살아가는 방식, 기회를 통해 세계관과 사고방식에 폭넓은 영향을 끼친다.[3][17] 지금 중국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아마 모차르트도 그와는 다른 음악을 작곡하고, 데카르트도 그때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처럼 지금 나의 오감을 통해 전해지는 자극, 얼마 전에 경험한 자극과 패턴 완성을 통해 활성화된 정보들, 지금 나의 감정, 나의 몸 상태, 환경이 동시다발로 작용하여, 독특한 기능적 연결이 매순간 생겨난다. 이 모든 것들이 작용해서 얻어진 기능적 연결은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행동과 정서에 영향을 미치며 지금을 대단히 풍성한 순간으로 만든다. 이런 나의 지금은 다른 누구와도 다른 유일한 것이다. 그래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100명이 있으면, 거기에는 100개의 지금이 있다.


뇌의 기능적 연결이 내 의지가 아닌 많은 것들의 영향을 받기에 나의 지금은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주어지는 지금 덕분에, 마음에 오래 품어온 어떤 것이, 내가 준비되고, 적절한 상황과 마주쳤을 때, 해결하려고 의식적으로 애쓰고 있지 않는데도 타다닥 맞춰지곤 한다. 예컨대 아르키메데스가 머리 싸매고 고민했던 왕관 문제는, 쉬려고 찾은 목욕탕에서 이미 수십 번은 봐왔을 물이 넘치는 장면을 통해 불현듯 해결되었다.



완성되지 않은 매순간, 변화무쌍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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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내가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다. 뇌의 기능적 연결에는 지금 나의 오감을 통해 전해지는 자극, 얼마 전에 경험한 자극과 패턴 완성을 통해 활성화된 정보들, 지금 나의 감정, 나의 몸 상태 등 온갖 것들이 작용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중에 일부에만 초점을 두고 지금의 경험을 만들어낸다.


‘흔들다리 효과’를 생각해보자. 심장이 두근거리는 상황과 눈앞의 이성에게 초점을 두면 ‘꺅~ 나  이 사람 좋아하나봐!’가 될 수 있지만, 눈앞의 이성 대신에 까마득한 아래에 초점을 두면 ‘높은 곳은 끔찍해!’가 된다. 한편, 심장이 두근거리는 상황과 흔들다리 효과에 대한 지식에 초점을 두면 ‘두근거리지만 좋아하는 건 아니야’가 된다. 같은 상황에서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내가 경험하는 지금이 달라지는 것이다. 아래 상황을 통해 좀더 살펴보자.


“최근에 힘든 상황에 처한 직장 동료가 있다. 상황을 듣고보니 안쓰러워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덕분에 그날 일이 밀렸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이 동료가 매일 나를 찾아와서 1시간이 넘게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동료가 처한 상황은 안타깝지만 허둥지둥 서두르다 기어코 야근을 하는 상황이 반복되니 부담스럽고 짜증도 난다. 거절을 잘 못하는 편이라 오늘은 바쁘다는 말을 하리라고 굳게 다짐을 해봐도 결국은 붙들리고 만다. 오늘이 일주일째인데 또 저기 동료가 오는 게 보인다…”


참 오만가지 감정이 다 일어날 것이다 (아래 그림). 힘든 상황에 처한 동료에 대해서는 안쓰럽지만 짜증도 나고, 동료 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지만 부담스럽고, 자꾸 찾아오는 걸 보면 내가 어지간히도 잘 들어줬나보다 싶어 뿌듯하기도 할 것이다. 한편, 일이 자꾸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초조하고, 불안하고, 제때 잘 끝내고 싶고, 그래도 이 와중에 꼬박꼬박 할일을 다한 것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할 것이다. 또 매번 거절을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는 답답하고 한심한 한편으로 6일이나 들어준 자신의 인내심과 따뜻함이 기특할지도 모른다.


00now5.jpg » 생각이 아닌 감정을 중점적으로 찾아보는 것은 나의 감정이 나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학습과 의사 결정에서 매우 중요하므로, 이성과 감정의 연결이 손상되면 아침으로 뭘 먹을지와 같은 단순한 선택조차 대단히 어려워진다.[18]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감정을 찾는데 익숙하지 않으므로, 눈앞에 감정 단어들이 적힌 종이를 펼쳐두면, 자기 감정을 찾기가 더 수월하다.


처럼 한 순간에도 여러 감정이 일어나지만, 대개는 감정들을 조목조목 찾아보지 않고 몇 가지 감정만을 습관적으로 인식한다. 인식한 감정이 “짜증난다”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아래 그림). 신경망에서는 짜증이라는 감정 하나만 달랑 활성화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사람의 신경망에서 짜증과 연관된 감정들, 생각들까지 패턴 완성을 통해 줄줄이 활성화된다. 그러다가 ‘동료가 밉고 화나고, 거절도 못하는 한심한 나는 답답하기 짝이 없다’까지 가면 기분은 엉망이 될 것이다. 이런 기분으로 들어준들, 잘 들릴 리가 없고, 용케 거절을 한들, 부드럽게 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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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6일이나 들어줬으니 난 참 따듯하고 인내심 넘치는 사람이다”에 초점을 둔 경우를 생각해보자 (아래 그림). 그러면 신경망에서는 그 생각 하나만 달랑 활성화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이만큼 했으면 충분하니 거절해보자, 거절도 좀 잘하고 싶다’ 같은 긍정적인 방향의 물꼬가 터지기 쉽다. 패턴 완성을 이쪽으로 이끌면 아마 거절하기도 수월해질 것이고, 오랜만에 일찍 퇴근할 생각에 들뜨기도 할 것이고, 어떻게 거절할지 살펴볼 여유도 생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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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 상황이 동일하더라도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내가 경험하는 지금이 달라진다. 이는 자동 인형 같은 기계와 크게 다른 점이다. 기계에서 상상할 수 있는 매순간은 모든 것이 꽉 짜여 완결된 순간이다.[19] 어떤 순간을 고르든, 모든 부품들의 위치와 운동이 모두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계의 시간은 하나의 완결된 시점에서 다음 완결된 시점으로 흐르고, 그래서 자동 인형의 지금 상태를 알면 다음의 상태를 예측할 수 있다.


반면에 뇌의 기능적 연결에서는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지금이 이런 상태이거나 저런 상태가 된다. 기계에서 보듯이 완결된 상태들이 순서대로 차곡차곡 변해가는 게 아니라, 초점 이동을 통해 신경망의 한 패턴에서 다른 패턴으로 확 건너뛰는 것이다. 과거에 만들어진 패턴들의 일부가 현재 주어지는 자극을 통해 활성화되고, 활성화된 패턴들 사이로 초점이 이동하며 다시 변해가니, 뇌의 지금은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들어 있는 역동적인 순간이다. 그래서 기능적 연결의 많은 부분이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것들로 인해 주어지더라도, 그 풍성한 기능적 연결 안에서 내가 의식적으로 초점을 이동함으로써 나의 지금을 선택할 수 있는 상당한 여지가 있다.



나의 지금을 선택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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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어진 기능적 연결에서 내 선택의 여지를 넓히려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유리하다. 우리 대부분은 몇 가지 감정만을 습관적으로 인식하지만, 수십년치 인생을 살아낸 신경망, 사람은 워낙에 풍성한 존재라, 격한 감정이 휘몰아칠 때조차도 한번에 두어 가지 감정에만 잠식당하기에는 너무 크다. 위 사례에서 동료, 자신, 일이라는 측면으로 나누어 살폈듯이, 상황을 여러 측면에서 돌려보고 뒤집어보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들을 폭넓게 찾기가 좀더 수월할 것이다.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찾다 보면 긍정적인 감정보다 화처럼 부정적인 감정들이 더 강하게 지각되곤 하는데, 부정적인 감정은 대개 버겁고 불편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정 감정의 원인을 찾아 고치기 위해 부정 감정을 파고들며 분석하곤 한다.[20] 이래서야 부정 감정의 패턴 완성만 왕성하게 일어나고, 부정 감정만 더 많이 연습되기 쉽다.


차라리 부정 감정 이면의 긍정 감정을 찾아 초점을 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긍정 감정과 부정 감정은 빛과 그림자와 같아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가 짙게 마련이다.[21] 예컨대 위 사례에서, 거절하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하고 한심한 것은, 힘든 것들은 잘 거절해서 자신을 챙기고픈 마음이 자신에게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이때 ‘나는 왜 한심하게 거절도 못하나’보다는 ‘힘든 일은 거절해서 나를 잘 챙기고 싶다’ 쪽에 초점을 두면 거절할 방법을 찾아내고, 거절할 용기를 얻기가 더 수월할 것이다. 그러니 다양한 감정을 반듯하게 보되, 되도록이면 부정 감정 이면의 긍정 감정을 선택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지금을 누리기에 더 유리하다.


선택한 생각과 감정에 초점을 싣는 유용한 수단은 말이다.[21] 내 말을 가장 열심히 듣는 것은 나 자신이며, 말은 의식적으로 조절하기도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지금 일어나는 온갖 생각과 감정 중에서 일부만이 입이든, 생각이든, 손이든 무엇을 통하여 말해질 수 있고, 이렇게 여러 뇌 부위를 활성화시키며 말해진 것은 말해지지 않은 것보다 강한 패턴 완성을 일으키며 나의 지금을 바꿔나간다. 그래서 말은 반드시 작용을 일으킨다. 말이 본인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서 말의 패턴을 분석하면 3년 뒤에 정신분열증에 걸릴지 여부를 100%에 가까운 확률로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동영상 https://youtu.be/uTL9tm7S1Io



나의 지금과 타인의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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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기능적 연결 속에서 나의 지금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수단으로서 말을 설명했지만, 말은 타인과 함께 있을 때에도 자주 쓰인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 그러하듯이, 타인에게 말한 것이나 타인에게서 들은 것도 나와 타인의 뇌에서 각각 패턴 완성이라는 작용을 일으킨다. “네가 성실하다”고 할 때는 성실함을, “네가 이기적이다”고 할 때면 이기심을 나와 상대의 지금 속에 초대하게 되고, 그 결과 대화의 흐름이 달라진다.


히 “네가 성실하다”는 말은 상대가 성실하다는 사실을 진술할 뿐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온갖 특징을 가진 상대에게서 특별히 성실함을 인식하고, 하필이면 성실함을 말한다는 것은 내 안에 성실함이라는 표상이 있고, 내가 성실함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드러낸다.[21] 그러니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그를 통하여 내 안에 있는 나를 만난다는 것이기도 하다.


대화 속에는 이처럼 나의 역동성과 타인의 역동성이 함께 있어서 대화를 잘 하기가 쉽지 않다. 흘러흘러 가다보면 대화의 원래 목적과는 다른 한담이나 자존심 싸움으로 새기도 하고, 이해 관계가 얽혀 있다면 반대를 위한 반대에 끌려다니게도 된다.


논리가 정연하면 대화가 통해야 된다고들 생각하지만 그렇지도 않다.[22] 논리는 바탕에 깔린 가정이 동일할 때만 통용되기 때문이다. 지나온 내 삶의 시간, 방금 전에 경험한 자극, 나의 감정, 나의 몸 상태가 만드는 뇌의 기능적 연결은 다른 누구와도 다른 유일한 것이고 이는 상대도 마찬가지다. 나의 지금에 통용되는 논리는 상대의 지금에는 비논리적일 수 있고, 그렇게 다른 두 지금이 각자 자기 논리를 이야기하면 대화가 통할 리 없다. 우선은 말빨에 밀려서 물러나는 척하더라도, 진정으로 마음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러니 상대의 지금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손 잡고 같이 나와야 한다. 나의 지금을 주도적으로 선택하기 위해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하듯이, 상대에게서 일어나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에 폭넓게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상대가 느끼는 여러 감정과 생각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꺼낼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상대의 지금에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끌어내더라도 상대가 응하지 않는다면, 다른 것을 꺼내거나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서로 다른 지금에 서서 서로 다른 논리만 주장할 때보다야 통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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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지금은 데카르트 시절의 자동 인형에서 상상할 수 있는 지금과 크게 다르다. 뇌는 의식적인 작업을 하지 않을 때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으며, 지금 오감으로 전해지는 자극, 지나온 내 삶의 시간, 나의 감정, 나의 몸 상태, 시대와 문화 등 많은 것들이 동시다발로 작용해서 뇌의 지금이 생겨난다. 무수한 삶의 기억들 속에서 지금의 자극과 관련된 것들이 패턴 완성을 통해 일깨워지며, 지금을 지금 주어지는 자극들 이상의 풍성한 순간으로 만든다.[23]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무수한 패턴들이 지금을 통해 일깨워지니, 지금은 세상을 만나는 순간인 동시에 나를 만나는 순간이 된다.


모든 부품들의 위치와 운동이 결정된 상태들을 순차적으로 이동하는 자동 인형과 달리, 뇌는 초점 이동을 통해 한 패턴에서 다른 패턴으로 건너뛴다. 과거에 형성된 패턴이 현재를 만나 일깨워지고, 그 중의 일부가 선택되어 다시 변해가니, 뇌의 지금에는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들어 있다. 이 역동적인 순간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들을 살피고 의식적으로 선택하면 내가 원하는 지금으로 이끌어가는 여지를 넓힐 수 있다. 그렇게 이성만도 아니고, 자기 자신만도 아닌 지금에 감정과, 신체와과, 환경과, 시대가 주는 풍성한 지금을 온전하게 느끼고, 반듯하게 보며, 매순간을 채워가기를.



[출처와 각주]



[1] https://en.wikipedia.org/wiki/Automaton

[2] 닐레비 (2011) 신경윤리학이란 무엇인가. 바다출판사

[3] 리처드 니스벳 (2004) 생각의 지도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김영사

    직선적으로 무한히 외삽하는 것은 개체 분절적 사고에 익숙한 서구적 사고의 특징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러 요소들의 작용이 연관되어 있는 네트워크에서는 이런 식의 직선적 외삽을 따르지 않는다.

[4] Smith K (2012) Idle minds. Nature 489:356-358

[5] Hutchison RM et al. (2013) Dynamic functional connectivity: promise, issues, and interpretations. Neuroimage 15:360-378.

    이런 뇌 활동을 (1)특별한 외부 입력이 주어지거나 의식적인 작업을 하지 않는 동안에 저절로 일어난다는 측면에서 자발적 뇌 활동(spontaneous brain activity)이라고도 하고, (2)별다른 작업을 하지 않고 쉬는 동안에 일어난다는 측면에서 쉬는 상태에서의 뇌 활동 (resting state brain activity)이라고도 한다. 미국 정부에서 추진하는 커넥톰 프로젝트 (Connectome Project)에 힘입어 fMRI를 이용한 자발적인 뇌 활동 연구(resting-state fMRI)가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 연구가 활발해진지 20년도 안 된 탓에 여러 용어가 혼용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쉬는 동안에 활발해지는 뇌 부위들의 일부 (default mode network 혹은 task negative network라 불리는 영역들)는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과 무관한 작업을 할 때는 오히려 억제된다고 한다. 우리는 항상 바쁘게 뭔가를 하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비로소 할 수 있게 되는 일들도 있는 모양이다.

[6] Hesselmann G et al. (2008) Spontaneous local variations in ongoing neural activity bias perceptual decisions. PNAS 105: 10984?10989

[7] Horner AJ et al. (2015) Evidence for holistic episodic recollection via hippocampal pattern completion. Nature Communications 6:1-11

[8] RC O‘Reilly & Y Munakata. Computational explorations in cognitive neuroscience. MIT Press (2000).

[9] https://en.wikipedia.org/wiki/Priming_(psychology)

    얼마전에 들어온 자극이 한동안 뇌 속을 맴돌며 지금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 봄 유행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는 “오늘부터 1일”이라는 동료들의 놀림을 무릅쓰고 공지사항을 전달하려던 송혜교씨가 실수로 “오늘부터 1일인 귀국팀들은…”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동영상 링크). 조금 전에 들은 “오늘부터 1일”이 지금 공지를 전달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처럼 특정 자극에 대한 얼마전의 경험이 비슷한 맥락에 있는 다른 자극에 대한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점화(priming)라고 한다.

    더 복잡한 형태의 점화도 가능하다. 사람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하고 자기 점수를 속일 수 있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속인다고 한다. 하지만 모세의 십계처럼 도덕에 관계된 것을 시험 전에 떠올리게 하면, 점수를 속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이지 않는다고 한다. 십계가 도덕을 점화시켜, 행동에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 댄 애리얼리의 <상식밖의 경제학> 참고

[10] Wimmer GE & Shohamy D (2012) Preference by Association: How Memory Mechanisms in the Hippocampus Bias Decisions. Science 338:270-273

[11] Hermans EJ et al. (2011) Stress-related noradrenergic activity prompts large-scale neural network reconfiguration. Science 334: 1151-3.

    감정이 뇌의 한두 영역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뇌 전반의 기능적 연결을 재편한다는 사실은 뇌 속에서 이성과 감정이 구분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의사 결정과 미래 계획처럼 이성적인 작업에 관여하는 전두엽의 활동은 동기 부여와 보상 등 감정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중뇌의 도파민 신경 세포들의 조절을 받는다. 또, 주의 (attention)는 이성적인 활동으로 여겨지지만, 감정과 관련된 핵심 부위인 편도체의 주된 기능 중 하나이다.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에 따라야 한다는 통념과 달리, 이성과 감정은 뇌 속에서 긴밀하게 상호작용할 뿐만 아니라 구획을 나누어 구분할 수조차 없다.

[12]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2013) “새로운” 무의식 ? 정신 분석에서 뇌과학으로. 까치.

[13] http://www.brainfacts.org/about-neuroscience/ask-an-expert/articles/2012/how-does-the-brain-use-food-as-energy/

[14] Wright H et al. (2016) Differential effects of hunger and satiety on insular cortex and hypothalamic functional connectivity. Eur J Neurosci. 43: 1181-9

[15] Wang C et al. (2016) Spontaneous eyelid closures link vigilance fluctuation with fMRI dynamic connectivity states. PNAS 113: 9653-8.

[16] 조지프 르두 (2006) 느끼는 뇌. 학지사

[17] 말콤 글래드웰 (2009) 아웃라이어. 김영사

[18] The Brain with David Eagleman (2015) - Part 4 How Do I Decide  

     https://www.youtube.com/watch?v=JZ0ZLlPTdrQ

[19] RK Logan (2012) Review and Precis of Terrence Deacon’s Incomplete Nature: How Mind Emerged from Matter. Information 3: 290-306.

[20] 이처럼 부정 감정의 원인을 파고들어 고치려는 접근 방식은 기계가 잘 동작하지 않을 때 고장난 부분을 고치는 것과 비슷하다. 이번 연재에서 살펴본 것처럼 뇌는 기계와 다르고, 지난 연재 글(http://scienceon.hani.co.kr/425649)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주 사용할수록 더 숙달된다. 원인을 통찰하는 것도 필요는 하겠지만, 기계와 뇌가 이토록 다르니 기계를 고치는 방법과 마음을 다루는 방법은 달라야 할 듯 싶다.

[21] 유동수 (2012) 감수성 훈련. 학지사

[22] TEDxKAIST 2014 송민령: 네트워크를 켜다: Pattern completion과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만남에 대하여

[23] 환경과 몸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역이용하여 지금을 구성하는 방법도 있다. 직원들끼리 자주 마주치게 하여, 직원들간의 협력을 돕도록 설계된 구글의 신사옥이나, 경미한 우울증은 약 대신 운동으로 치료하려는 최근의 경향이 여기에 해당한다. 환경이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작용점을 파악한다면 의외로 간접적이고 사소한 것들을 수정하여 높은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예컨대 1980년대 범람하던 뉴욕시의 지하철 강력 범죄는 깨진 창문, 낙서, 무임승차처럼 비교적 사소한 문제들을 수정함으로써75%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 말콤 글래드웰의 <티핑 포인트> 참고.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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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빗소리를 좋아하고, 푸름이 터져나오는 여름을 좋아합니다. 도파민과 학습 및 감정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뇌과학이 나를 이해하고, 너를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 되기를, 우리가 이런 존재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문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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