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의 "남극의 과학자, 남극의 동물"

까치를 연구하던 젊은 동물행동학자가 우연한 기회에 찾아간 새로운 생태계 연구 현장인 남극. 극지연구소의 이원영 박사가 남극에서 겪은 연구자의 삶, 그리고 거기에서 경험한 다양한 동물과 자연 생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펭귄과 조용한 눈맞춤, 잊히지 않는 느낌의 긴 여운

[6] 인간과 동물의 교감


00rapport1.jpg » 남극 세종기지 인근 펭귄마을의 턱끈펭귄 번식지는 주로 바위가 많은 경사진 곳에 있습니다. / 출처: 이원영

 


난 1월에 남극세종기지 인근 펭귄마을에서 야외조사를 하던 중에 바위 틈에 빠져 있는 턱끈펭귄 한 마리를 발견했던 적이 있습니다. 턱끈펭귄의 번식지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많은데 그 바위들을 지나던 펭귄 한 마리가 틈에 빠지는 사고를 당한 모양이었습니다. 검은 바위의 틈 사이로 분홍빛 펭귄의 다리가 하늘로 향한 채 거꾸로 처박힌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죠. 처음엔 ‘펭귄이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감’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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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펭귄은 대개 물속에서 생활을 하지만 번식기에는 육지로 올라와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키웁니다. 뭍에서 걷는 모습을 보면 뒤뚱거리는 게 어딘가 불안해 보이지만 능수능란하게 잘 뛰어다니는 편이죠. 바위를 통통 뛰어다니는 모습 때문에 턱끈펭귄의 친척 중에는 ‘바위뛰기펭귄(Rock-hopper penguin)’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녀석도 있습니다. 가끔 미끄러운 눈 위를 뛰어다니다가 미끄러지며 넘어지는 모습을 본 적은 있어도, 이처럼 돌 틈에 빠져 있는 걸 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조심스레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가슴 부위가 규칙적으로 움직이면서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빨리 펭귄의 다리를 두 손으로 잡고 바위 틈에서 꺼내 땅 위로 올려주었습니다. 보통 야외조사를 위해 야생의 턱끈펭귄을 잡으면 날개를 퍼덕이며 엄청난 힘으로 몸부림을 치면서 부리를 이용해 공격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래서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있어도 연구자의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생길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습니다. 마치 제가 구해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가만히 저에게 몸을 맡기고는 제가 꺼내어 일으켜 세워줄 때까지 얌전히 있었습니다. 그렇게 눈 위에 바로 선 펭귄은 가만히 서서 저를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다행히도 몸이 다치거나 탈진을 한 것 같진 않았습니다. 대략 이삼 분 정도를 선 채로 저를 보다가, 인사를 하듯 저와 눈을 맞추고 뒤돌아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펭귄은 건강한 모습으로 무리 속으로 사라졌고 한동안 저는 멍하니 펭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저에겐 그 일이 긴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뭐라 정확히 표현하긴 힘들지만, 펭귄과 마음을 나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펭귄을 떠올리면 전에 없던 ‘특별함‘이 제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2016년 3월 해외 뉴스에서는 브라질 해변 마을에 주앙이라는 이름의 할아버지와 마젤란펭귄의 사연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5년 전인 2011년, 기름에 덮인 채 해변에서 굶주리고 있는 펭귄 한 마리를 본 할아버지가 이 펭귄을 데려다가 닦이고 먹이며 한 동안 돌봐주었는데 그 이후로 해마다 이 펭귄이 할아버지를 찾아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무리 생활을 하는 마젤란펭귄이 사람 가까이 온다는 점도 특별했지만, 특정 사람과 장소를 기억하고 매번 찾아온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주앙 할아버지는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와준 펭귄에게 ‘딘딤(Dindim)’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인간과 펭귄이 어느 정도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일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00rapport2.jpg » 브라질에 사는 주앙(Joao) 할아버지와 딘딤(Dindim)이란 이름의 마젤란 펭귄 / 출처: 월스트리트저널(WSJ) 비디오



은혜 갚은 동물과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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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엔 ‘은혜 갚은 동물’ 이야기들이 전해내려 옵니다. 새끼들의 목숨을 구해준 선비를 구해준 ‘까치’, 목에 걸린 동물 뼈를 빼준 나무꾼을 도와준 ‘호랑이’, 부러진 다리를 고쳐준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 준 ‘제비’, 술 취한 주인을 구한 오수의 ‘개‘ 이야기까지, 언뜻 떠오르는 이야기만 해도 꽤 많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을 통해 전래되는 이야기엔 분명 픽션이 더해지기 마련이지만, 인간과 동물이 맺어온 관계가 바탕이 되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딘딤 펭귄과 주앙 할아버지의 이야기’처럼, 최근 인터넷을 통해 영상과 사진으로 뒷받침 되는 은혜 갚은 동물에 관한 일화들이 꽤 많습니다. 2016년 8월 영국 매체 <미러(Mirror)>의 기사를 통해 멕시코의 동물보호소에서 한 호랑이가 사육사를 구하기 위해 그에게 돌진하는 표범을 저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평소 자신을 돌봐주었던 사육사가 위기에 처하자 그를 도우려 했던 것이었죠. 이외에도, 바다에서 그물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한 돌고래가 자신을 구해준 어부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도 유튜브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 https://youtu.be/9KPFARUundw]


또한 2004년 영국 매체 <가디언(The Guardian)>의 기사에 따르면, 뉴질랜드에서 수영을 하던 사람들이 백상아리의 공격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돌고래 무리가 와서 지켜줬다는 이야기가 보도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들 역시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정확히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이런 소식들이 세계 곳곳에서 꾸준히 전해지고 관심을 끈다는 것은 사람과 동물의 교감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00rapport3.jpg » 사육사에게 달려드는 표범을 막으려 뒤에서 쫓아오는 호랑이 사진 / 출처: Black-Jaguar-White Tiger Foundation


을 뛰어 넘어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일은 동물의 세계에서 흔한 일입니다. 포식자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흰눈썹굴뚝새(white-browed scrubwren)과 요정굴뚝새 (superb fairy-wren)는 포식자의 등장을 먼저 발견하는 쪽이 내는 경고음을 듣고 위험을 감지한다고 합니다.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영장류인 여우원숭이(lemur)와 시파카(sifaka) 역시 서로 경고음을 공유하며 포식자를 피한다고 합니다.


먹이를 찾기 위해 여러 종이 모여 함께 다니는 일도 자주 관찰됩니다. 영국 위덤숲(Wytham wood)에 사는 박새(great tit), 쇠박새(marsh tit), 푸른박새(blue tit)들은 비번식기엔 서로 사회적 관계망(social network)을 형성하면서 먹이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는다고 합니다. 겨울철엔 먹이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여러 종이 모여 무리를 형성하고 먹이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죠. 같은 공간에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은 이렇듯 종에 구분 없이 서로 도와가며 살아갑니다.


인간과 개의 관계도 이처럼 호혜적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만 4000년 전, 석기시대에 이미 개는 인간과 함께 살았습니다. 처음엔 인간이 모여 사는 곳 주변을 맴돌며 먹을 것을 구했던 야생 늑대의 무리 중 일부가 사람과 함께 살게 되면서, 현재 개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인간 역시 그들과 함께 지내며 주거지의 안전도 도모하고 필요시 사냥에도 이용하며 개를 친구로 삼기 시작했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후각과 청각을 가진 개들은 인간의 삶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특히 알래스카와 같은 극한 환경에 사는 원주민들에게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반려동물이었습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개는 단순한 사육동물이 아니라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로서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호모 사피언스와 다른 동물들 사이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끈끈하고 돈독한 교감이 이뤄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참고 문헌]


[1] Clutton-Brock J (1995) Origins of the dog: domestication and early history. In: The domestic dog (ed) Serpell J. Cambridge University Press.

[2] Fallow PM, Magrath RD (2010) Eavesdropping on other species: mutual interspecific understanding of urgency information in avian alarm calls. Anim Behav 79: 411-417.

[3] Farine DR, Aplin LM, Sheldon BC, Hoppitt W (2015) Interspecific social networks promote information transmission win wild songbirds. Proc Biol Sci B 282: 20142804.

[4] Oda R (1998) The responses of Verreaux’s sifakas to anti-predator alarm calls given by sympatric ring-tailed lemurs. Folia Primatol 69: 357-360.

[5] 헬무트 브라케르트, 코라 판 클레펜스 (2002) 개와 인간의 문화사. 최상안, 김정희 옮김. 백의. P. 368.


이원영 극지연구소 생태과학연구실 선임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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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극지연구소 극지생명과학연구부 선임연구원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연구자입니다. 지금은 남극에서 펭귄을 비롯한 극지의 해양조류들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원영의 새, 동물, 생태 이야기’라는 과학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메일 : wonyounglee@kop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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