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킹의 40년전 이론 마침내 입증될까?

※ 이 글은 한겨레 8월31일치 ‘사이언스온’ 지면에 실렸습니다. 온라인 사이언스온에도 함께 싣습니다. 온라인의 이전 기사를 바탕으로 다시 작성했습니다. 박성찬 교수의 이메일 도움말을 뒤에 덧붙입니다.





랙홀은 모든 것을 빨아들여 빛조차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블랙홀은 늘 ‘완벽히 검은 구멍’이었다. 이런 생각을 바꾼 건 40년 전 30대 청년이던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었다. 1970년대 호킹은 잘 어울리지 못하던 두 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함께 구사해 블랙홀에서도 미량의 에너지가 새어나온다는, 당시로선 대담한 ‘블랙홀 복사(radiation)’ 이론을 발표했다.


Hawking_AFP_YonhapNews.jpg »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AFP/연합뉴스 블랙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던져준 호킹의 이론 혁신은 학계와 대중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호킹 복사’ 현상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우주 저 먼 블랙홀의 가장자리에서 일어날 희미한 빛인 ‘호킹 복사’를 관측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호킹 이론은 혁신적이었지만 40여년 동안 입증하긴 어려웠다.


호킹의 이론이 마침내 실험실에서 입증될 수 있을까? 최근 제프 슈타인하우어라는 이스라엘 물리학자가 실험실에서 호킹의 블랙홀을 흉내낸 실험장치를 만들고 거기에서 호킹이 예측한 ‘블랙홀 복사’ 현상을 관측해냈다는 연구논문을 <네이처 피직스>에 발표했다. 많은 매체들이 큰 관심을 나타냈다. 힉스 이론이 그 입자의 발견으로 49년 만에 노벨상을 수상했듯이, 호킹 이론이 마침내 입증돼 노벨상을 받을 날이 올지 모른다는 기대마저 나왔다.


대체 어떤 실험이었을까? 슈타인하우어는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주 블랙홀 대신에 소리가 빠져나오지 못하는 극저온의 특별한 물질 상태(‘보즈-아인슈타인 상태’)에 있는 음향 블랙홀을 구현했다. 그는 아무런 잡음신호도 생길 수 없을 만한, 절대온도 0도(영하 273.15도)에 가까운 극저온 물질 상태를 만들었다. 또 소리의 전파 속도보다 더 빠르게 반대쪽으로 흐르는 매질의 운동을 구현했다. 비유하면, 폭포 쪽으로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가려는 배가 빠른 물살 탓에 폭포 쪽으로 밀려만 가는 상황을 모사한 것이다. 1981년 캐나다 물리학자가 제안한 구상이었는데, 이번에 음향 블랙홀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스라엘 물리학자는 호킹의 블랙홀 이론에서 예측되는 양자현상을 보여줄 만한 미세한 신호를 음향 블랙홀 장치에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기대와 흥분은 크지만 아직 ‘호킹 이론의 입증’을 선언하기에 갈 길은 멀다. 실험실의 음향 블랙홀과 호킹의 우주 블랙홀을 동일하게 여길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는 시선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박성찬 연세대 교수(물리학)는 “실험장치가 배경 잡음을 완벽히 없앨 수 있었는지 등을 더 따져봐야 한다”며 “모든 것이 확인되더라도 음향 블랙홀을 통해 우주 블랙홀을 말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검증할 수 없었던 호킹 이론에 접근하는 실험 자체가 흥미롭고, 또 앞으로 여러 후속 연구들이 나오리라 기대된다”고 말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음향 블랙홀 실험연구에 대한 견해

박성찬 연세대 교수(물리학)의 이메일 답장



1.

어쿠스틱 블랙홀은 음향학적 지평선을 가지 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음향 시스템으로 이 지평선을 기준으로 더 이상 소리(phonon)가 돌아 올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지평선(horizon)’이라고 불리지만, 중력적 블랙홀과 달리 소리 이외의 매질(예를 들어 빛)에 대해서는 지평선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블랙홀의 물리학의 일부를 시늉하는 유비적 시스템(analogous system)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2.

이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 초유체(superfluidity)의 보즈-아인슈타인 응축 상태(BEC)에서 음향학적 지평선 양쪽에서 연관된 신호(entangled signal)를 포착하였다는 것이 이번 실험의 핵심인데, 완전한 BEC 상태가 되었는지가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불완전하게 BEC 상태가 되었다면 실험에서 주장한 신호와 유사하게 보일 수 있는 배경 신호(background signal)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더하여 만약 호킹 복사가 실현되었다면 당연히 그러할 것으로 생각되는 연관(correlation)이 모든 진동수 대역(frequency range)에서 증명되어야 하는데 본 실험에서는 (아마도 높은 진동수 신호가 관측에 유리하기 때문에) 비교적 높은 진동수 대역에서만 확인된 상황입니다. 따라서 낮은 진동수 대역에서 추가 실험을 통한 검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하여 열적 복사의 특징적인 스펙트럼 패턴이 확인 되지 않는다면 호킹 복사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겠습니다.


4.

설사 이 모든 것이 다 확인된다고 해도, 블랙홀의 정보 소실이나 양자 중력 현상에 대해 추가적인 단서를 줄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상 과장이 섞인 수사로 평가합니다. 그 이유는 블랙홀과 달리 어쿠스틱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은 유비 실험 자체의 한계로 호킹 복사 과정을 통한 붕괴 과정을 보여줄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력적 블랙홀 만이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호킹 복사 현상이 보다 일반적인 양자 현상임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 실험의 의미는 대단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저온 물리학과 BEC 현상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이 수행되고 있는데, 양자역학의 근본 원리를 보여 줄 수 있는 어쿠스틱 블랙홀(acoustic black hole) 물리학 등 입자물리학과 직 간접적으로 관련된 분야에서 선도적인 기여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박성찬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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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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