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은의 "심리실험 톺아보기"

심리학은 대중매체와 서적에 단골 메뉴처럼 실린다. 그런데 통제된 실험 조건과 제한된 환경에서 이뤄지는 심리실험 결과는 종종 단순화하고 과장되기도 한다. 심리학 연구자인 이고은 님이 심리학을 올바로 보는 방법을 전한다.

좋은 이별이 가능할까?

[19] 사랑을 말하는 심리학, 다섯 번째 이야기


00parting4.jpg » 출처 / http://pixabay.com


 

랑의 끝을 계획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헤어짐을 염두에 둔다면 그 관계는 이미 정리되었거나 애초에 지속될 수 없는 사이였으리라. 사실, 아무리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 이별은 만남 만큼이나 흔한 사건이다. 그런데도 평소에 죽음을 생각하며 살지 않듯이 우리는 사랑이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별의 동기를 따지다보면 그것은 점점 너무나 불분명해서 이성적으로 다 설명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것처럼 이별의 이유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랑 만큼이나 중요할지 모르는, 그런 이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이별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좋은 이별은 있기나 한 걸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했거나 언젠가 이별할 운명을 지닌 우리가 꼭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사랑과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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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동화가 ‘주인공들이 역경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끝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은 분명 재미가 없을 뿐더러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을 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을 원하지 않을 수 없다.


랑 이 평생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야 맞겠다. 오래도록 사랑하여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성공적인 인생에 도달할 만큼 훌륭히 살아낸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사랑은 물론 숱한 이별을 경험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1]


이별 후의 고통은 주체하기 힘든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그래서 이후에 있을 새로운 만남을 저해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심하게는 여러 정신적 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별을 겪고 난 이후에 갖는 심리적인 경험과 그 결과는 개인에 따라 그 차이가 크다고 한다.[2]


사람들 간에 사랑하는 방식과 삶이 다르듯이 이별의 방식과 그에 따른 심리적 경험이 다른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렇지만, 고통도 역시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별이 곧 지나온 사랑의 실패를 말해주는 것도 아니고, 사랑의 실패가 곧 인생의 실패를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긋난 사랑에 대해 우리는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00parting5.jpg » 출처 / 영화, <브레이크업-이별후애 (The Break-up, 2006)>



이별과 직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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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는 우리 삶에 들어올 때뿐만 아니라 떠날 때에도 그 삶에 변화를 일으킨다. 떠나간 연인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니어도 우리 인생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연인의 상실이 언제나 관계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리 루티(Mari Ruti) 박사는 ‘이별에 대한 슬픔’은 역설적인 과정이라 말한다.[3] 상실한 것에 집착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인생에 큰 의미였던 그 사람 없이도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옛 연인에 대한 완고한 집착을 내려놓게 하고, 다시 사랑할 수 있게 한다.


이뿐 아니라, 연인과 헤어짐의 경험이 자신에게 오히려 성장을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다.[4] 이별 후의 성장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사람에 대한 자신감과 독립심이 증가했고 자기 감정을 더 잘 조절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인간관계에 대한 안목이 넓어지는, 이별 후의 결과를 우리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슬퍼하는 마음은 그저 상실 이후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고통에 직면하는 커다란 난관을 겪어야 한다. 별일 아닌 듯이 상실을 회피하면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을 찾은 듯도 하지만, 그런 고통의 회피에서는 이별이라는 여행이 평생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통과 함께 찾아오는 많은 부정적인 결과들은 사실상 고통을 피하려는 노력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고통과 스트레스에 관한 연구들에 따르면, 고통을 무작정 회피하려 노력하다 보면 삶의 만족감과 행복감이 줄어들 뿐 아니라 자신을 고립시키는 행위를 하게 된다고 한다.[5] 고통의 회피는 불쾌한 무엇인가를 피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와 동시에 의미 있는 많은 것들도 함께 없애버리는 셈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악순환을 ‘스트레스 유발(stress generation)’이라고 부른다.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노력하다 생기는 결과는 매우 역설적이다. 다시 말해 고통의 원천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또한 용기를 북돋아줄 만한 자원은 고갈시킨다. 스트레스 회피에 더욱 단호하게 몰입할수록 이런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은 더 커진다.[6]


우리가 갑작스런 이별과 마주할 때 상대방을 떠나보내려면, 그 사람을 마음속 깊이 간직해야만 비로소 보낼 수 있다. 이별과 상실은 의지와 상관없이 불쑥 다가오기도 하지만, 상실의 슬픔을 이겨내는 힘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 사람과 함께한 소중한 기억에서 나온다. 우리는 떠나간 그 사람을 보내고 기억을 묻어둘 용기가 필요하다. 묻어둔 추억이 성숙해져 소중한 무언가를 얻게 해줄 것이다.



뜨거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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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parting2.jpg » 출처 / http://unsplash.com 프랑스 정신의학자 프랑수아즈 돌토(Francoise Dolto)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삶을 이루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실패했던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상처받았던 일까지 모두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7]


문가들은 이별 후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변인으로 ‘자아탄력성’을 꼽는다.[8] 자아탄력성(self elasticity)이란, 스트레스 사건이나 위협적인 환경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긴장감이 마음이나 행동에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탄력적으로 견디는 힘을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 삶이 주는 어려움 앞에서 인내하는 능력과 더불어 환경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적응하는 내적 능력을 말한다.


심리학자 밴시몬(Moshe Bensimon) 박사는 개인이 극심한 스트레스 사건을 경험하고도 정신적 장애로 나아가지 않으면서 그 상황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은 이런 자아탄력성 덕분이며, 그 자아탄력성의 근원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한다.[9]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을 리 없다.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공감 능력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실패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떠나보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하지만 사랑은 본래 ‘한시적’이라는 특성을 받아들인다면, 이별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수 있다. 이별의 원인이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고, 어떤 잘못이 없더라도 소멸할 수 있다는 사랑의 특성을 받아들여야 하겠다.


젠가는 사랑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지금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엄연한 이면이다. 사랑은 또한 오래 지속되지 않아도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삶의 경험이 많은 어른이 현명한 이유는 더 오래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이 잃어봤기 때문일 것이다. 가수 김민우는 ‘그대를 만나기 위해, 많은 이별을 했는지 모른다’고 노래하지 않던가.[10] ◑


[주]


[1] Ruti, M. (2011). The Case for Falling in Love: Why We Can‘t Master the Madness of Love--and why That’s the Best Part. Sourcebooks, Inc..

[2] Perilloux, C., & Buss, D. M. (2008). Breaking up Romantic Relationships: Costs Experienced and Coping Strategies Deployed. Evolutionary Psychology, 6(1).

[3] Ruti, M. (2011). The Case for Falling in Love: Why We Can‘t Master the Madness of Love--and why That’s the Best Part. Sourcebooks, Inc..

[4] Tashiro, T. Y., & Frazier, P. (2003). “I’ll never be in a relationship like that again”: Personal growth following romantic relationship breakups. Personal Relationships, 10(1), 113-128.

[5] Elliot, A. J., Sedikides, C., Murayama, K., Tanaka, A., Thrash, T. M., & Mapes, R. R. (2012). Cross-cultural generality and specificity in self-regulation: Avoidance personal goals and multiple aspects of well-being in the United States and Japan. Emotion, 12(5), 1031.

[6] Ryan, R. M., Huta, V., & Deci, E. L. (2013). Living well: A self-determination theory perspective on eudaimonia. In The Exploration of Happiness (pp. 117-139). Springer Netherlands.

[7] 양창순. (2012).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상처받지 않고 사람을 움직이는 관계의 심리학). 센추리원.

[8] 김은미, 이종연. (2015). 연인과의 이별을 경험한 대학생의 애착과 자아탄력성이 이별 후 성장에 미치는 영향: 의도적 반추와 문제중심대처를 매개변인으로. 상담학연구, 16(1), 147-174.

[9] Bensimon, M. (2012). Elaboration on the association between trauma, PTSD and posttraumatic growth: The role of trait resilience.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52(7), 782-787.

[10] 김민우(박주연 작사, 하광훈 작곡). (1990). 사랑일뿐야.


이고은 부산대 인지심리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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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부산대학교 심리학과 연구원, 인지 및 발달심리학 박사과정
‘한국인의 행복심리 연구단’ 소속 연구원이다. 인간의 시간지각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고, 훗날 세상과 심리학을 연결해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심리학자를 꿈꾼다.
이메일 : forgive2020@naver.com       트위터 : @leegon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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