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부족, 신경흥분 늘고 새 기억 여력 줄고”

독 연구진, 20명 실험참가자 뇌파와 기억력 비교 연구
“잠은 이전 기억 저장하며 다음 새기억 준비하는 과정”


00openclipart_sleep.jpg » openclipart.org즘처럼 열대야로 밤잠을 설친 날에는 일하거나 공부할 때 집중도나 기억력이 평소만 못하게 마련이다. 충분한 잠은 기억을 저장하는 데에도 중요하지만 다음날 새로운 기억을 생성하도록 돕는 데에도 중요하다. 잠은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집안 정리 과정’임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병원 소속 연구진은 실험참가자 20명한테 충분한 잠을 자게 한 뒤, 그리고 잠을 못 자게 한 뒤에 이들의 뇌파와 신경세포 활성 정도를 측정, 분석하고 기억력 테스트 등을 벌여 이런 결론을 얻었다고 최근 밝혔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됐다.


영국 <와이어드><뉴사이언티스트>의 보도를 보면, 24시간 동안 잠을 못 잔 실험참가자들의 뇌에선 신경세포 간 연결(시냅스)의 세기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일종의 포화 상태에 이르러, 잠을 충분히 잔 경우와 비교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새로운 기억을 생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깨어 있는 동안에 뇌 흥분성, 즉 신경세포 간 연결의 세기가 더 커지다보면 그런 상태가 어느 정도 이후에는 새로운 기억 생성에 장애가 됨을 의미한다. [ 신경세포, 시냅스, 흥분 등 용어 해설, 아래 상자글 참조]


이런 연구는 수면이 뇌가 깨어 있을 때의 ‘뇌 흥분성’을 줄이고 신경세포 연결의 규모를 줄여, 이후에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일 수 있게 준비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사람한테 잠이 필요한 이유가 뇌 기능을 재조정(recalibrate) 하기 위한 것임을 말해준다. 기억 능력을 증대하고 우리 시냅스를 재조정 하기 위해 뇌가 시냅스 세기의 활성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뉴사이언티스트> 보도)


이와 비슷하게, 잠이 아무일도 하지 않은 채 쉬는 게 아니라 뇌가 휴식 이후를 준비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청소 또는 정비 활동이라는 즉, ‘적극적인 기능’의 휴식임을 보여주는 여러 연구가 나온 바 있다.


일례로 <뉴사이언티스트>를 보면, 7월에는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학 연구진이 잠을 자는 상태의 쥐 뇌에서 신경세포 연결의 규모를 세밀히 측정했더니 깨어 있을 때의 뇌에 비해서 잠 자는 뇌에서는 신경세포 연결의 규모가 18퍼센트나 작았다는 연구결과를 유럽 신경과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이런 결과는 잠 자는 동안에 뇌에서는 불필요한 신경세포 연결을 정리하는 과정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는 <뉴사이언티스트>의 뉴스에서 “잠은 학습을 위해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이라며 “잠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매우 적극적인 뇌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잠 연구를 다룬 사이언스온의 글들]


▒ 최근 연구로 보는 ‘잠의 생물학’   [최명규, 2014. 10. 15]

 -뇌 노폐물 치우고 기억 저장하고…벗겨지는 잠의 비밀

 http://scienceon.hani.co.kr/201788


“잠은 뇌에 쌓인 노폐물을 씻는 과정” -쥐실험  [2013. 10. 22]

 -미 로체스터대 연구팀, 살아있는 쥐 뇌의 수면-각성 상태 비교

 -“수면 동안 뇌 신경세포 간 틈새공간 넓어져 노폐물 쉽게 씻겨”

 http://scienceon.hani.co.kr/126206


“나이든 어른 6~8시간 수면이 뇌건강에 적정”  [2014. 07. 02]

 -영국 연구팀, 50~89세 8700여 명 조사

 http://scienceon.hani.co.kr/174472


‘어릴적 충분한 잠이 뇌 발달 단계에 중요’ -초파리 실험  (2014. 04. 23)

 -미 연구팀 “어릴적 잠 부족, 어른된 뒤 행동능력과 연관”

 -“수면신경회로 활성 억제하는 도파민 분비 적어 많은 잠”

 http://scienceon.hani.co.kr/161901


이런 수면 연구들은 뇌의 휴식인 잠이 깬 이후의 경험과 기억을 예비하는 과정이며 잠이 못 잘 때에 멍한 상태에 빠지고 기억력이 떨어지는 이유를 신경과학으로 설명해줄 수는 있지만, 개개인이 얼마나 잠을 자는 게 충분한지 일일이 말해줄 수 있는 건 아니다. 50세 이상 성인 남녀 8700명의 사례를 조사했더니 대체로 하루 6-8시간의 수면이 노화에 따른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조사결과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여전히 충분한 잠의 질과 양에는 사람마다 다른 개인차가 있기 때문이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기억의 과학, 기본 개념들
( 출처: http://scienceon.hani.co.kr/423178 )

1000억개 뉴런, 100조개 시냅스
이들은 기억에서 무슨일을 할까?


00neuron.jpg
기억에 관한 연구결과가 곧잘 뉴스로 보도됩니다. 기억을 다룬 과학 뉴스를 좀더 흥미롭게 보려면, 신경과학의 몇 가지 용어에 익숙해지는 게 좋습니다. 기억은 뇌 신경세포와 시냅스에 저장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뇌에는 엄청나게 많은 신경세포(뉴런)가 있죠. 그 수를 실제로 센다는 건 어렵기에 어림짐작으로 추산합니다. 널리 인용되는 뇌 신경세포의 수는 대략 1000억 개이지만 최근엔 860억 개라는 좀 더 정밀해 보이는 수치도 제시되네요. 다른 체세포와 달리 신경세포엔 매우 많은 가지(가지돌기와 축삭)들이 뻗어나와 서로 연결되는데, 신경세포 하나에 무려 수천, 수만 가지가 나 있다고 합니다. 신경세포들의 가지와 가지를 이어주어 신호를 주고받는 부위가 바로 시냅스입니다. 그러니 사람 뇌엔 무려 수십 조 내지 100조 개의 시냅스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신경세포, 그리고 이들을 잇는 어마어마한 수의 연결 패턴은 우리가 뇌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신경세포들은 기본적으로 전기적 방법으로 소통하지만, 세포들끼리 신호 전달은 주로 시냅스에서 물질을 교환해 이뤄집니다. 글루타민산염, 도파민, 세로토닌 물질이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알려져 있죠. 간단히 말하면, 신호를 보내려는 신경세포에서 분비된 신경전달물질은 신호를 받아들이는 신경세포의 활성을 흥분하게 하거나 억제합니다.

흥분’과 ‘억제’는 매우 중요한 열쇳말입니다. 스위치를 켜고(+, 흥분성) 끄는(-, 억제성) 것에 비유해 상상하셔도 됩니다. 어떤 신경세포는 주로 흥분성 물질을 내는 흥분성 신경세포이며, 어떤 것은 반대로 억제성 신경세포입니다. 억제성 신경세포가 억제성 신경세포를 억제하기도 합니다. 탈억제 신경세포의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흥분성 물질이 파도타기를 하듯이 여러 흥분성 신경세포를 거쳐 먼 거리에 있는 신경세포를 흥분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흥분과 억제는 수십조 개의 시냅스를 통해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를 깨우거나 잠재우는 뇌의 협주에서, 기본적인 작동 기제가 됩니다.

기억의 메커니즘은 이런 신경세포와 시냅스의 작용을 통해 일어납니다. 그것은 신경세포와 시냅스의 분자들에 나타나는 변화이기도 하며, 또한 세포들 간 연결 패턴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기억이 어떤 생물학적 현상인지를 말해주는 단 하나의 답은 아직 없다고 합니다. 기억을 일으키는 여러 현상의 여러 측면이 지금 막 밝혀지고 있으니까요. 기억이 저장된 분자, 세포, 연결망 수준의 흔적, 즉 ‘기억 흔적’ 또는 ‘기억 장소’를 일컬어 과학자들은 엔그램(engram)이라 부릅니다. 박형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겸무교수는 “예전엔 모호한 개념이었지만 점차 기억과 관련한 신경세포들과 그 연결 패턴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엔그램도 점차 생물학적인 실체로 구체화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철우 기자]

00neuronnet.jpg » 기억 형성에 중요한 해마 영역의 3차원 신경망. 3차원 전자현미경(SEM)'으로 관측. 한국뇌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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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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