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령의 "뇌과학/인공지능과 우리"

인간의 과학과 기술인 뇌과학과 인공지능은 다시 ‘나, 너,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뇌과학 박사과정 송민령 님이 생명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의 모습을 전하면서 나, 너,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의 이야기를 독자와 나눈다.

나이 들면 머리 굳는다? 아니, 뇌는 변화한다 -가소성

[5] 뇌의 ‘가소성’이라 쓰고 ‘가능성’이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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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남도 끝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모르면, 자신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모른 채 흘러흘러 떠내려가기 쉽다. 그러다보면 지키고 싶었던 것을 놓치기도 하고, 되고 싶지 않았던 모습으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변화의 방향을 주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뇌 가소성의 원리들은 변화의 방향을 주도하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준다. 사용하지 않는 시냅스들을 없애는 과정인 시냅스 가치치기에서 알 수 있듯, 뇌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부분은 약해진다(“Use it or Lose it”).

그래서 변하고 싶을 때는 문제보다는 목표하는 상태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자기를 바로 알기 위한 통찰은 필요하지만, ‘또 못했어, 매번 이 모양이야’처럼 지나친 반성이나 ‘나는 이게 문제야. 왜 이럴까’처럼 문제에만 집중하는 방식은 부족한 행동을 일으킨 영역을 한번 더 연습시키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니 “늦잠 자지 말아야지”보다는 “일찍 일어나야지”가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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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brain_plasticity1.jpg » 공초점형(confocal) 현미경으로 촬영한 마우스 해마. 출처/ flickr.com



리는 “역시 사람은 안 변해~”라는 한탄에 익숙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20여 년 전에는 뇌과학자들도 사람 뇌의 구조는 대체로 20세를 지나면서 완성돼 이후에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통념을 믿었다. 이 통념은 최근의 연구성과로 인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신경계의 구조는 환경, 경험, 신체상태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계의 이런 유연한 성질을 가소성(plasticity)’이라고 부른다. 가소성(可塑性, 塑= 빚을 소)은 신경계의 가장 놀랍고도 두드러진 특징이며, 신경계는 죽을 때까지 유연한 변화를 계속한다.



청소년기 이후의 뇌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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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아보기 전에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뇌는 태어나 경험할 법한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잠재력을 품은 상태로, 하지만 특정한 개체가 경험하게 될 특정한 상황에 특화되지는 않은 상태로 태어난다.


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풍부한 잠재력을 우선 갖추었다가 점차 필요한 능력만 남기는 뇌의 발달 전략은 시냅스 가지치기(synaptic pruning)에서 드러난다. 뇌는 우선 많은 시냅스(synapse)를 만들어 두었다가, 사용하지 않는 시냅스를 없애고 사용하는 시냅스의 효율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발달한다. 실제로 시냅스를 구성하는 부위인 스파인(spine)은 아동기에 성인의 2-3배 가량 많다 ( 시냅스, 스파인 아래 그림 설명 참조). 사용하지 않는 시냅스를 가지치기 하는 과정은 사춘기 무렵에 시작되며 40대 초반까지 활발하게 일어난다.[1]


00brain_plasticity2.jpg » A: 시냅스는 두 신경세포가 연접하여 신호를 주고받는 부위다. B: 시냅스의 구조. ‘시냅스 전(前) 신경세포’(신호를 보내는 시냅스 앞쪽 세포)의 축삭돌기 말단으로 전기신호가 도달하면, 시냅스 소포에 있던 신경전달물질이 시냅스 틈으로 분비된다. 분비된 신경전달물질은 ‘시냅스 후(後) 신경세포’(신호를 받는 시냅스 뒤쪽 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하여 전기신호를 일으킨다. 시냅스를 구성하는 시냅스 후 신경세포의 구조물은 많은 경우 스파인(spine)이다. C: 현미경으로 본 스파인의 모습. 스파인은 수상돌기에서 튀어나온 노란 부분이다. 시냅스가 클수록 두 신경세포 간의 연결 세기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인공신경망의 학습이란 결국 연결 세기들을 조절하는 것이었음을 떠올려보면, 시냅스를 없애는 것은 나중에 연결 세기를 바꿀 여지까지 없애는 것을 뜻한다. 출처/ wikipedia.org


긴 축삭돌기를 가진 신경세포에는 수초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위 그림 A). 지방질로 이뤄진 수초는 전선의 피복처럼 축삭돌기를 둘러싸서, 활동전위의 전달 속도와 효율을 높여준다( ‘활동전위’ 아래 그림 설명 참고).[2] 축삭돌기를 수초로 둘러싸는 과정은 생후 6개월 경부터 시작되며, 20대 후반까지 계속된다. 효율을 높여주는 과정이 이처럼 늦게 일어나는 것은 무턱대고 모든 정보의 처리 효율을 높이기 이전에, 무엇을 자주 사용하고, 무엇에 대한 효율을 높여야 할지부터 배워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00brain_plasticity3.jpg » A: 수초가 없는 축삭돌기는 축삭돌기 전체를 따라 활동전위가 흐르므로 전기신호의 전달 속도가 느리다. ‘활동전위’란 신경세포의 세포체 쯤에서 시작해서 축삭돌기 끝까지 이동하는(‘활동/action’ 하는) 전기신호(‘전위/potential’)인데, 이 전기 신호가 축삭돌기 끝에 도달하면 신경전달물질이 시냅스로 분비된다. 들어온 자극 총합이 클수록 활동전위 빈도가 커지고, 더 많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므로, 다음 신경세포에 전달하는 신호가 강해진다. 이때 두 신경세포 간의 시냅스 효율이 좋으면 좋을수록, 시냅스후 신경세포는 시냅스전 신경세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B: 수초는 절연체이다. 수초로 감싸인 축삭돌기는 수초로 감싸지 않은 부분인 ‘랑비에 결절’(Node of Ranvier)에서만 활동전위가 생기므로 전기신호의 전달 속도가 빠르다. C. 수초가 생기는 과정. 위 그림 A에 있는 희소돌기 신경교세포(oligodendrocyte)가 축삭돌기를 감싸는 수초를 만든다. D. 현미경으로 본 수초의 모습. 짙고 검은 도넛 모양의 부분이 수초. 출처/ wikipedia.org


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사회적 능력은 중앙 전두엽(medial prefrontal cortex)과 측두엽-두정엽 연접부위(Temporoparietal Junction, TPJ)라는 영역과 관련되는데, 이 영역의 발달은 사춘기부터 활발해져 20대 후반까지 계속된다.[3]


목표의 추구, 미래 계획, 감정 조절 및 의사 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부위인 전두엽은 20대 중반이 되어야 어느 정도 성숙되며 30대 후반까지 계속해서 발달한다.[4]


이처럼 뇌 발달은 30대 후반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왜 평생 발달 과정을 계속 이어가지 않을까? 왜 아동기나 청소년기 만큼의 가소성이 평생 유지되지 않을까?


가소성은 양날의 칼이다. 학습한 결과(가소성의 성과)를 기억하고 사용하려면 뇌 회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데 가소성은 필연적으로 안정성을 해치기 때문이다.[5] 그래서 무엇이든 빨리 학습하는 극도로 유연한 뇌는 아무것도 오래 기억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뇌가 된다. 인공신경망에서 학습률(learning rate)를 높게 설정해두면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학습률이 높은 인공신경망은 최근에 입력된 자료의 영향을 너무 크게 받은 나머지, 이전에 학습한 것들은 죄다 잊어버린다. 세심하게 안배된 뇌의 발달 단계를 보노라면, 다 살라고 만들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성인 뇌의 가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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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성인의 뇌에서는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겨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건 기억과 공간 탐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인 해마(hippocampus)와, 연합학습(associative learning)과 습관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줄무늬체(striatum), 후각 망울(olfactory bulb) 등에서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겨난다(아래 그림). 새로운 신경세포의 형성은 신체적인 운동을 할 때, 다양한 자극들로 환경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을 때 활발해진다.[6][7]


00brain_plasticity4.jpg » 해마, 줄무늬체, 후각망울, 시교차상핵의 위치. A: 측면에서 본 뇌. B: 정면에서 본 모습. 시교차상핵은 뇌하수체의 위쪽, ‘*’으로 표시한 부분에 위치한다. 망막으로부터 빛의 양에 대한 정보를 받아 낮과 밤의 생체리듬을 조절한다. C: 후각망울의 위치. 출처/ wikipedia.org


정적 시기(critical period) 동안에 이미 만들어진 회로가 바뀌기도 한다. 결정적 시기란, 발달 단계에서 특정한 능력을 습득하기에 대단히 중요한 시기를 뜻한다. 예컨대 언어의 결정적 시기 동안, 뇌는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언어에 관련된 뇌 회로의 가소성이 증가해서 언어 습득에 유리한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면 언어에 관련된 뇌 회로들이 안정화되면서 언어 습득이 어려워진다.


과거에는 결정적 시기가 끝나면 뇌 회로를 더이상 바꿀 수 없다고 여겼다. 해당 뇌 부위의 가소성은 결정적 시기가 끝남과 함께 끝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 시기가 지난 뒤에도 경험에 따라 뇌 회로가 바뀌는 사례들이 보고되면서 이런 생각이 변하고 있다. 이미 닫힌 결정적 시기를 재개하는 방법을 찾는 연구도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요즘에는 결정적 시기라는 강한 표현 대신에 민감한 시기(sensitive period)라는 표현을 사용한다.[2][8]


존에 있던 신경세포의 종류가 바뀌기도 한다. 20여 년 전 교과서에는 하나의 신경세포는 한 종류의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만을 분비한다는 ‘데일의 원리’(Dale’s principle)가 자주 실리곤 했다. 한때는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이 주장은 하나의 신경세포가 한 가지 이상의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할 뿐만 아니라 분비하는 신경전달물질의 종류를 바꾸기도 한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폐기되었다.[9]


예컨대 시교차 상핵(suprachiasmatic nucleus)의 신경세포들은 망막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으로 낮인지 밤인지를 알아내고, 이에 따라 매일의 생체리듬(circadian rhythm)을 조절한다 (위 그림). 이 신경세포의 일부는 낮 길이가 짧을 때에는 도파민을 분비하는 도파민 신경세포가 되었다가, 낮 길이가 길어지면 도파민 대신 소마토스타틴(somatostatin)을 분비하는 소마토스타틴 신경세포가 된다고 한다.


이밖에 신경세포의 유전자 발현 패턴이 달라지기도 하며 세포 모양이 바뀌기도 한다.[10][11] 뇌는 성장기 동안에 만들어져 20살 무렵에 완성된 다음에는 그대로 계속 사용되는 정교한 기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성인의 뇌도 환경 변화에 따라, 그리고 사용하기 나름으로 계속 변해간다.



가소성의 크기와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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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변하는가? 많은 사람이 “뇌는 하드웨어, 마음은 소프트웨어”라는 비유에 익숙하다. 하지만 뇌에서 구조와 동작은 분리하기 어렵다. 뇌의 활동은 구조적인 변화를 동반하며, 구조의 변화는 동작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니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거나 경험과 연습을 통해 뇌의 작동 방식이 변하면 구조도 함께 변한다.


화의 속도는 예상 외로 빠르다. 신경세포의 종류와 뇌 부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앞에서 말한 스파인(spine)의 모양은 고작 몇 초 사이에도 달라진다.[12] 시냅스를 구성하는 구조물인 스파인의 모양 변화는 시냅스 세기의 변화를 일으킨다. 인공신경망의 학습이 연결 세기를 바꾸는 과정이었음을 떠올리면, 스파인 모양이 바뀌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알 수 있다.


뇌 속에는 86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고, 신경세포 하나당 평균 7000개의 시냅스를 가지고 있으니[13], 일부 시냅스의 모양이 바뀌는 정도야 사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 해상도가 1mm³인 자기공명영상 기기로 측정 가능한 규모의 구조적 변화라면 어떤가?


고작 2시간의 연습만으로도 이런 규모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14] 최근의 한 연구에서는 피험자들에게 ‘니드 포 스피드’(Need for speed)라는 자동차 경주 게임을 하면서 경주 트랙을 기억하게 했다. 2시간의 학습 전후에 자기공명영상으로 피험자들의 뇌를 살펴봤더니 공간 탐색에 관련된 뇌 부위인 해마(hippocampus)와 부해마(parahippocampus)에서 구조적인 변화가 관찰되었다. 고작 2시간의 연습으로, 이 연구에서 사용한 자기공명영상의 해상도 1mm³로 관찰 가능한 크기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런 변화가 오래 누적되면 뇌 구조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된다.[15] 영국 런던에서 택시 운전 자격을 얻으려면 25000개나 되는 미로 같은 도로들을 돌아다니며 외워야 한다. 런던 택시 운전기사들의 뇌를 관찰해 보면, 공간 탐색에 기여하는 해마 뒷부분(posterior hippocampus)은 일반인보다 큰 대신에 해마 앞부분(anterior hippocampus)는 일반인보다 작다고 한다. 그 정도는 택시 운전 경력이 길수록 더 크게 나타났다.


00brain_plasticity5.jpg » 런던 택시 운전기사의 해마. A: 런던 택시 운전기사의 해마 뒷부분은 일반인보다 크고 해마 앞부분은 일반인보다 작다. B: 런던 택시 운전 경력이 길수록 해마 뒷부분이 더 크다. 출처/ [15]에서 수정


이런 변화는 해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프로 음악가는 일반인이나 아마추어 음악가에 비해 시각, 청각, 움직임 조절에 관련된 뇌 영역이 더 크다고 한다.[16] 연구자들은 시각에 관련된 뇌 부위는 음악가가 악보를 볼 때, 청각에 관련된 부위는 음악을 들을 때, 움직임 조절에 관련된 부위는 악기 연주에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더 커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왜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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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데도 왜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까? 좀 달라지고 싶은데 나는 왜 이렇게 변하지 않는 것 같고, 저 사람은 철 좀 들면 좋겠는데 왜 변하질 않아서 나를 힘들게 하는 걸까?


선, 변하는 부분이 있어도 관심을 두지 않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처칠 수상이 영국 지도자라는 건 상식 수준의 지식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지도자의 이름을 단 하나라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질문을 던지는 나조차 아는 이름이 하나도 없다. 이건 당연한 걸까?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2억 5천만 명으로 세계 5위이고, 영국의 4배에 달한다. 국토 면적도 영국의 7-8배이며, 거리로도 영국보다 훨씬 더 우리나라에 가깝다. 그런데도 우리는 멀리 있는 작은 나라 영국은 알고, 가까이 있는 큰 나라 인도네시아를 모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골라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변한 부분을 모르는 것은 당연시하면서 변하지 않는 작은 부분만 유심히 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둘째, 나 자신이나 타인의 바뀐 측면을 뻔히 보고서도 기존의 편견에 맞게 왜곡해서 해석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아래 그림과 같은 실험을 보자.[17] 각기 다른 승률을 지닌 3쌍의 기호들을 피험자들에게 보여주면서, 둘 중에 더 높은 승률을 가진 기호를 고르게 한다. 피험자들은 6개 기호들의 승률을 모르는 상태로 실험을 시작하지만 곧 어떤 기호가 더 높은 승률을 지녔는지를 학습하게 된다.


00brain_plasticity6.jpg » 피험자들에게 매회 위 세 쌍 중 한 쌍의 기호들을 보여준다. 피험자들은 매번 두 기호 중 더 높은 승률을 가진다고 여겨지는 기호를 골라야 한다. 출처/ [17]에서 수정


그런데 실험 시작 전에 Ŀ 기호가 ц 기호보다 더 높은 승률을 가지고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주면, 학습에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린다. Ŀ 기호의 승률이 더 높다는 실험자의 말을 믿고, 이 믿음에 어긋나는 경우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기 때문이다. 사전 믿음(혹은 편견)에 어긋나는 정보는 쉽게 무시되거나 잊혀지는 반면, 사전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는 기억되기 쉽다.


셋째, 나 자신이나 타인의 과거 모습에 대한 기억이 바뀌었을 수 있다. 기억은 의외로 대단히 쉽게 바뀐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 떠올린 기억은 약 5시간 동안 변형되기 쉬운 상태가 된다. 이 상태에서 어떤 표현을 쓰느냐, 어떤 정보가 제시되느냐에 따라 기억은 왜곡되곤 한다. 예컨대, 자동차 사고 영상을 보여준 뒤 “자동차들이 부딪힐 때 속도가 어땠느냐?”라고 묻는 대신 “자동차들이 박살날 때 속도가 어땠느냐?”라고 강한 표현을 써서 물으면 사람들은 더 높은 속도로 회상한다. 심지어 후자의 경우에는 깨진 유리 등 동영상에는 있지도 않던 세부사항을 ‘기억’하기도 했다.(아래 동영상)


[ 동영상 https://youtu.be/PB2OegI6wvI ]


억의 이런 특성은 저장된 기억을 상황 변화에 맞게 수정하는 데 유용한 반면에, 과거 사건을 확인하는 데에는 불리하다. 예컨대 반복되는 증인 심문 과정에서 기억이 왜곡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디엔에이(DNA) 검사법 덕분에 뒤늦게 무죄가 확인된 수감자들의 75%가 잘못된 기억에 의한 증언 때문에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기억은 이처럼 쉽게 변질되고, 기억의 주체인 내가 변하면서 덩달아 변해가기도 한다.


이래서야 사람이 변해도 변하는 줄 알기가 어렵다. 하지만 변하지 않기가 변하기보다 더 어렵다. 취직, 이직, 승진, 결혼, 자녀의 성장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을 만나며 이전과는 다른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든다. 스마트폰, 카카오톡, 페이스북은 10년 전만 해도 흔하지 않았으니 세상도 변하고 있다. 내 몸도 변해간다. 온 세상이 변하는데 홀로 변하지 않기가 변하기보다 더 어렵다.
  


변화의 방향을 주도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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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남도 끝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모르면, 자신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모른 채 흘러흘러 떠내려가기 쉽다. 그러다보면 지키고 싶었던 것을 놓치기도 하고, 되고 싶지 않았던 모습으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변화의 방향을 주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가소성’의 원리들은 변화의 방향을 주도하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준다. 사용하지 않는 시냅스들을 없애는 과정인 시냅스 가치치기에서 알 수 있듯, 뇌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부분은 약해진다(“Use it or Lose it”). 반면에 연습은 뇌의 구조를 바꾸어 점점 더 능숙해지도록 만든다. 우리는 앞에서 2시간의 자동차 게임 전후의 뇌와, 런던 택시 운전기사의 뇌를 통해 연습이 실제로 뇌의 구조를 바꾼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변하고 싶을 때는 문제보다는 목표하는 상태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자기를 바로 알기 위한 통찰은 필요하지만, ‘또 못했어, 매번 이 모양이야’처럼 지나친 반성이나 ‘나는 이게 문제야. 왜 이럴까’처럼 문제에만 집중하는 방식은 부족한 행동을 일으킨 영역을 한번 더 연습시키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니 “늦잠 자지 말아야지”보다는 “일찍 일어나야지”가 더 낫다.


작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정말 효과가 있을까? 운동을 계획하는 전운동 영역(premotor area)을 비롯해 뇌의 많은 부분은 어떤 동작을 실제로 할 때나 그 동작을 상상할 때나 거의 동일하게 작동한다. 따라서 상상을 통해 동작을 계획하는 뇌 영역을 연습시켜두면, 계획된 운동을 실행에 옮기기가 좀더 수월해진다. 실제로 운동 선수들은, 이미지 트레이닝(상상 연습)을 신체 훈련에 병행하기도 한다. 세계 신기록을 세운 역도 선수 장미란은 시합을 하는 무대에 올라가서 몇 kg짜리 역도를 들어올리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훈련을 정기적으로 했다고 한다.


뇌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각으로 뇌를 바꾸어 치료하거나 훈련하는 사례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예컨대 만성 통증 환자들에게 통증에 관련된 뇌 부의의 활동 크기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면서 활동 크기를 줄이도록 훈련시키면, 해당 영역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통증도 줄어든다고 한다.[18] 혹은 실시간의 기능성 자기공명영상(real-time fMRI)으로 피험자의 뇌 상태를 보여주며 훈련시켜 집중력을 개선할 수 있다.[19]


00brain_plasticity7.jpg » A: 피험자들에게 통증의 경험에 관련된 영역인 등쪽 전측 대상회(dACC; 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의 활동 정도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며 어떻게든 줄여보라고 하였다. B: 훈련 단계가 진행되면서 등쪽 전측 대상회의 활동 정도가 줄어든 정도를 보여준다. C: 훈련 단계가 진행되면서 통증이 줄어드는 정도를 보여준다. 출처/[18] 에서 수정


각을 바꾸는 것에 효과가 있다면 실제로 한번 해보는 것에는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행동하는 것은 상상만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뇌 영역을 더 오래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과거에 이걸 잘못했구나, 앞으로는 저렇게 행동해야지’ 하고 생각할 시간에, ‘이제 알았으니 바로 해봐야지’ 하고 앞으로 하려는 그 행동을 지금 당장 한번이라도 해 보는 게 낫다. 그런 ‘지금들’이 꾸준히 쌓이다보면 원하는 모습에 점점 더 가까워질 것이다.


이 다음에 어디로 갈 것인가는, 가능성(가소성)을 가진 지금의 뇌를 지금 어떻게 쓸 것인가에 달려 있다. 뇌는 끊임없이 변하고, 지금 나의 행동, 생각, 느낌은 다음 순간 나의 뇌가 어디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론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고, 타고난 유전적 제약, 환경적 제약도 분명히 존재한다. 개인이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라는 잘못된 가정에서,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고 사회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태도는 옳지 않다.[20][21] 그러나 변화의 방향을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나에게 주도권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는 주도권을 쓰는 요령도 몰라서 못 쓴다는 건 너무 아깝지 않을까. 실제로 자신의 능력이 자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환경적 조건이 불리하더라도 같은 조건의 다른 사람들보다 학업 성취도가 높아진다고 한다.[22]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사람은 변하고, 변할 수 있으며, 그 변화의 방향을 주도할 수 있는 생각보다 큰 여지가 있다. 뇌는 뛰어난 변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평생 변화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원하는 방향으로 변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올바른 방법을 안다면 또 그렇게 어렵기만 한 건 아닐 것이다.


[출처와 각주]



[1] Petanjek Z et al (2011). Extraordinary neoteny of synaptic spines in the human prefrontal cortex. PNAS 108:13281-13286.

[2] Hatley CA & Lee FS (2015). Sensitive Periods in Affective Development: Nonlinear Maturation of Fear Learning. Neuropsychopharmacology 40: 50-60.

[3] Blakemore SJ (2010). The Developing Social Brain: Implications for Education. Neuron 65: 744-7

 친구끼리 모여 앉아 각자 핸드폰을 보고 있는 장면을 요즘에는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요즘의 청소년들은 온라인 교류를 즐긴다. 표정과 목소리 등 다른 정보가 배재된 온라인 소통 환경이 청소년의 사회성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늘어나는 온라인 교육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교육과정이 어떻게 되어야 할지에 대해서 최근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4] Steinberg L (2013). The influence of neuroscience on US Supreme Court decisions about adolescents’ criminal culpability. Nat Rev Neuro 14: 513-518.

 미국에서는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범죄자들에게 성인만큼 강도높은 형량을 부과해 왔으나, 이 연령대의 전두엽 발달이 미숙하다는 발견이 늘어남에 따라 형량을 완화시키고 있다.

[5] Miller G (2010). Can We Make Our Brains More Plastic? Science 338: 36-39.

[6] Opendak M & Gould E (2015). Adult neurogenesis: a substrate for experience-dependent change.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19: 151-161.

[7] Ernst A et al (2014). Neurogenesis in the Striatum of the Adult Human Brain. Cell 156: 1072-1083.

[8] Hubener M & Bonhoeffer T (2014). Neuronal Plasticity: Beyond the Critical Period. Cell 159: 727-737.

[9] Spitzer NC (2012). Activity-dependent neurotransmitter respecification. Nat Rev Neuro 13: 94-106.

[10] Roth TL & Sweatt JD (2009). Regulation of chromatin structure in memory formation. Current Opinion in Neurobiology 19: 336-342.

[11] Grubb MS & Burrone J (2010). Activity-dependent relocation of the axon initial segment fine-tunes neuronal excitability. Nature 465: 1070-1074.

[12] Fischer M et al (1998). Rapid Actin-Based Plasticity in Dendritic Spines. Neuron 20: 847-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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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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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빗소리를 좋아하고, 푸름이 터져나오는 여름을 좋아합니다. 도파민과 학습 및 감정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뇌과학이 나를 이해하고, 너를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 되기를, 우리가 이런 존재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문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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