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망히 떠나신 정혁 박사를 추도하며

사이언스온 2012. 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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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인공씨감자에 매달린 성실했던 연구자" 당신을 떠나보내며


00JH4.jpg » 자신의 평생 연구 주제였던 인공씨감자를 살펴보는 정혁 박사. 사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그제(10일) 우리는 평생을 인공 씨감자 연구에 몰두해오신 식물생명공학계의 거목 정혁 박사를 떠나 보냈습니다. 당신을 떠나 보내기 싫어 울부짓는 두 딸과 사모님, 가족 그리고 언제나 언덕이 되어 준 선배를 보내는 안타까움에 흐느껴 우는 후배들을 뒤로 하고서 당신은 말없이 떠나가셨습니다. 박사님께서 그렇게도 끝을 보고 싶어 하셨던 인공 씨감자 실용화와 식량 문제 해결이라는 꿈이 무르익는데, 그동안 자식처럼 아끼던 여러 감자 품종들, 동생처럼 아끼던 실험실 후배들, 정든 실험실, 감자 농사 짓던 비닐하우스, 이 모든 것들을 남기고 어찌 그리 야속하게 떠나가셨는지요?
 
1986년 제가 대학원에서 학문의 길에 들어설 때 처음으로 정혁 박사를 만났습니다. 당시 정혁 박사는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유학을 마치고 막 귀국해 키스트(KIST) 유전공학센터에서 과학자로서 첫 발을 내딛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로서는 첨단 학문이었던 식물 조직 배양학 과목을 강의하기 위해 출강하셔서 저는 학생 신분으로 박사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첫 인상에 매우 강직하고 곧은 성품을 지니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처음으로 식물 조직 배양을 이용한 인공 씨감자 이야기를 들었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인공 씨감자가 정혁 박사 인생의 전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돌이키게 됩니다.
 
박사님을 다시 만난 것은 1994년 제가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 첫 번째 직장으로 당시의 생명공학연구소에서 일하기 시작하던 때였고, 정 박사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신뢰를 갖고 지켜봐 주신 든든한 선배이자 동료이셨습니다. 그즈음에 인공 씨감자 기술은 이미 궤도에 올라 있었습니다. 마이크로 튜버는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농민들의 재배 편의 때문에 미니 튜버를 촉성 재배하여 시제품도 생산하며 농가 실증 실험도 하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씨감자를 실용화하기 위한 정혁 박사의 노력은 여러 가지 난관을 거쳐야 했습니다. 참여 기업도 여러 번 바뀌었고 정부 기관을 비롯해 주변에서는 인공 씨감자 기술의 가치를 낮춰 보는 눈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정혁 박사는 한번도 좌절하거나 당신이 개발한 기술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강직함을 보였습니다. 연구개발 예산이 충분치 않았던 시절이었고 연구비 확보 때문에 수시로 자신의 연구 분야를 바꾸어야만 생존할 수 있던 시절이었지만, 정 박사는 한 번도 인공 씨감자 기술을 포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00JH3.jpg » 사진 / 한국생명공학연구원 1999년 당시 과학기술부가 주관하는 ‘21세기 프론티어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의 단장에 선임되셨습니다. 그러면서 정혁 박사는 이제까지 해오던 연구 업무와는 다른 국책연구개발의 관리책임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정혁 박사의 강직성과 성실성이 높게 평가되어 이런 막중한 책임도 주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때부터 저는 본격적으로 정 박사님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연구개발 사업이 지니는, 작지만 산적한 문제들을 자생식물사업단을 운영하며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를 두고서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던 시절에 제게는 소중한 많은 추억이 쌓였습니다. 사업단 책임자로서 정혁 박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실질적인 연구과제 다년도 협약과 잔여예산 이월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되풀이되는 연말 예산 낭비를 줄여 연구예산 활용도를 높였고 전문평가 제도를 도입해 연구과제를 선정한 평가자가 끝까지 과제를 추적하며 평가하도록 하여 연구개발 사업 평가의 공정성과 평가의 질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셨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서 이런 시스템이 활용되고 있으니, 이 또한 정 박사님이 남기신 흔적입니다.
 
정혁 박사는 부드럽지만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으로 자생식물 이용 기술개발 사업단을 이끄셨으며, 사업이 끝난 지금도 우리나라 연구개발사업 중 우수했던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정 박사는 “신의성실”과 “실사구시”를 인생 철학으로 여기며 사신 분으로 기억합니다. 연구과정에서 생기는 작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 얼마나 성실하게 접근하고 있는가를 당신의 연구 과정에서도 보여주려 노력하며 실천하셨고, 당신이 관리 책임을 맡은 사업의 연구책임자를 평가하고 독려할 때도 같은 판단 기준을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자생식물 이용 기술개발 사업의 관리자로서 정혁 박사는 생물자원, 특히 식물자원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시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강조하셨습니다. 또 생물자원의 빈국인 우리나라가 그 한계를 벗어나려면 해외의 생물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각고의 노력과 수년 간에 걸친 정부 관계자 설득을 통해 결국에는 “해외생물소재센터” 설립을 추진할 예산을 확보하였고 생명공학연구원 안에 그 기구의 설립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남미의 코스타리카, 중국 곤명, 그리고 인도네시아에 마련된 현지 연구협력센터는 아프리카, 베트남 등으로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생물산업에서는 자원 확보와 활용이 가장 주된 요건이기에, 이제는 고인이 되신 정혁 박사님의 혜안이 훗날 어떤 성공작을 이끌어낼지 기대됩니다.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을 마친 정혁 박사는 다시 실험실로 복귀했습니다. 그동안 몰두하지 못했던 인공 씨감자 연구에 다시 몰두하기 시작 했습니다. 현재 세계 식량 생산량, 재고량이 위기의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고 보이기에, 정혁 박사의 연구는 더욱 중요하게 부각 되었습니다. 당신이 개발한 인공 씨감자를 세계 농가에서 재배하게 하여 제2의 녹색혁명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보여주셨던 정혁 박사님…. 생명공학연구원 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으면서도 고인이 되시기 얼마 전까지도 당신은 새벽녘에 실험실에 나와 일하고 근무시간에는 기관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열정을 보이셨습니다.
 
정혁 박사님! 박사님은 평생 감자라는 하나의 주제에 몰두해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실용화하고자 갖가지 난관을 헤치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성실한 과학자이셨습니다. 박사님은 연구개발사업 관리책임자로서 우리나라 연구개발 사업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의 모델을 보여주신 훌륭한 관리자이셨습니다. 박사님은 세계 생물자원 확보와 활용이 생물산업 발전의 근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혜안을 보여주셨습니다.


00JH2.jpg » 사진 /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정 박사님, 그동안 정말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이루어 놓으신 일, 그리고 우리나라 과학 발전을 위해 기여하신 일도 많지만, 아직 아쉬운 것도 많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모든 아쉬움을 이승에 내려놓으시고 훌훌 털고 마음 편히 떠나십시요. 박사님을 존경하고 따르던 후배들이 박사님께서 꾸시던 꿈, 그리고 그보다 더 낳은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모두 노력할 것입니다.
 
당신이 떠나시고 난 뒤에 하루 종일 비가 내립니다. 
의지하고 기댈 곳을 잃어버린 후배가 비통하고 애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최도일 서울대학교 식물생산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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