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3차원 구조, 생명비밀 푸는 새로운 창

※ 이 글은 한겨레 6월29일치 ‘사이언스온’ 지면(22면)에 실렸습니다. 온라인 사이언스온에도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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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3차원 지도가

생명의 생로병사

비밀 푸는 새로운 창



“디엔에이(DNA), 유전자 염기서열 정보만으로 실제의 생명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정보는 1차원의 목록들인데, 성장, 건강, 질병, 노화 같은 생명 현상은 세포 안에서 그 정보가 놓인 3차원 공간에서 일어나니까요. 그래서 생명 정보를 담은 디엔에이가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세포 안에 들어 있는지는 새로운 관심사가 되고 있는 거죠.”


김영준 연세대 교수(생화학)는 2000년대 초 인간 유전체(게놈)의 30억쌍 염기서열 정보를 모두 해독한 이후에 이처럼 유전자 정보는 같더라도 발현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게 하는 후성유전학의 주제들이 새로운 물음이 되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디엔에이는 세포 안의 3차원 공간에서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존재할까?


“테니스 공에 3200㎞ 길이 들어 있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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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디엔에이입니다. 저를 소개할게요. 제가 실제로 사는 세포핵 안의 작은 공간으로 들어와 보세요. 저는 네 가지 염기 화합물(아데닌, 티민, 구아닌, 시토신)이 쌍(염기쌍)을 이뤄 이어진 긴 정보의 선이죠. 0과 1의 디지털 신호가 컴퓨터를 작동하고 문서도 만들고 소리나 동영상도 만들듯이, 세포 안에서 네 가지 염기 정보가 생명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물질을 만들어내지요.

 그런데 제 몸의 길이를 알면 놀라실 거예요. 사람 디엔에이는 30억쌍 염기로 이뤄져 있어요. 사람 세포 하나에 있는 제 몸의 길이가 얼마나 될까요? 세포 하나의 디엔에이를 풀어 쫙 펴서 이으면 대략 2m나 된답니다. 세포 하나의 디엔에이가 사람 키보다 긴 거죠. 사람 몸의 모든 세포 수가 수십조 개나 될 테니 그걸 다 이으면 어마어마하겠지요. 물론 사람 머리카락 두께보다 무려 수십만분의 1 정도나 더 가느다란 디엔에이 가닥을 실제로 펴서 잇는다는 건 상상 불가이겠지만요.

 아무튼 2m나 되는 디엔에이는 세포 핵이라는 작디작은 공간에 다 들어가 있어요. 핵의 지름이 몇 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m) 수준이라 하니, 공간은 넉넉하지 않겠지요? 설재홍 서울대 교수(생명과학)가 실감하기 어려운 이런 상황을 계산해 친절한 설명을 전해주네요.’


“세포핵이 테니스 공 크기로 커진다고 생각해봅시다. 같은 배율로 늘리면 사람 세포핵 하나에 든 디엔에이는 아프리카 대륙의 횡단 거리인 3200㎞ 정도 될 겁니다. 그런 길이가 테니스 공 안에 들어가 있는 거죠.”


이처럼 긴 정보의 선이 그토록 작은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이런 당연한 궁금증을 풀려는 여러 연구들이 이뤄져 왔다. 그동안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 비결은 디엔에이 가닥을 감고, 접고, 꼬아 촘촘하게 보관하는 데 있다. 여기에서 ‘히스톤’이라는 단백질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 실이 헝클어지지 않게 잘 정리해 두려면 먼저 실을 감을 실패가 필요하듯이, 히스톤은 디엔에이 가닥을 팽팽하게 감을 때 쓰는 실패의 구실을 한다.


히스톤 여덟 개가 한 짝이 되어 디엔에이를 팽팽하게 감고 꼬고, 다시 꼬인 구조는 여러 차례 접힌다. 가는 실 가닥을 꼬아 좀더 굵은 가닥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감기, 접기, 꼬기는 디엔에이라는 거대 정보 건축물을 만드는 기본양식인 셈이다.



촘촘하게, 헐렁하게…유전자 발현 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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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에이의 3차원 건축물 구조에서, 과학자들은 더 흥미롭고 중요한 물음을 떠올렸다. 이렇게 촘촘하게 감기고 접히고 꼬인 디엔에이 구조에서, 어떻게 생명 현상을 빚는 아르엔에이(RNA)와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안쪽에 숨은 디엔에이 정보엔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00DNA3D_title.jpg “저 안쪽에 촘촘하게 감겨 들어 있는 유전자 정보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겠지요.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생화학 반응을 일으켜 유전자를 발현시킬 방법이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유전자 스위치 켜기는 촘촘하게 감긴 구조를 풀어 헐렁하게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가능해지는 거죠.” 김 교수는 “감긴 유전자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촘촘한 건축 구조를 풀어주는, 문을 열어주는 작용을 하는 세포 내 시스템에 관한 연구가 요즘 새로운 연구 주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유전체를 ‘3차원’으로 이해하려는 새로운 접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디엔에이의 유전자 정보는 길고 긴 1차원의 선에 나열되어 기록된 정보의 목록들이다. 그 정보의 목록이 실제로 3차원 구조와 환경에서 어떻게 다른 생화학 신호들과 상호작용하는지는 세포, 생명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창이 되고 있다.


사람 몸엔 대략 200여종의 세포들이 있다. 뼈, 뇌, 피부처럼 서로 다른 세포들도 모두 다 똑같은 30억쌍 디엔에이 정보의 목록을 핵 안에 저장하지만, 세포 종류별로 주로 쓰는 유전자들은 서로 다르다. 세포마다 다르게, 주로 쓰는 유전자 정보는 쉽게 풀어 쓰고, 쓰지 않는 유전자 정보는 팽팽하게 감아 접근하기 어렵게 저장해둔다. 뼈가 되고 피부가 되는 세포의 분화는 곧 ‘3차원 게놈’을 어떻게 저장해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설 교수는 “배아세포에서 말단세포로 분화해가는 과정은 자주 쓰는 유전자와 쓰지 않는 유전자 정보를 다르게 다루는 구조와 환경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노화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며 “젊을 때나 늙을 때나 유전자 정보는 똑같더라도 그 정보를 촘촘하게 또는 느슨하게 하는 구조의 유연성이 떨어져 생길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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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발견들…“3차원 게놈 시각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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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에이의 존재 양식에 관한 관심이 늘면서, 미국국립보건원(NIH)은 지난해부터 세포핵 안의 3차원 공간에다 시간 차원을 보탠 4차원(4D)에서 디엔에이가 어떻게 놓이며 변해가는지를 밝히려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4D 크로마틴’ 프로그램이다. 이런 관심을 반영하듯이, 이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베일러의대 등 연구진은 인간 게놈에서 한번 감기고 꼬인 디엔에이 줄이 신발끈의 매듭처럼 고리(루프) 모양을 이루는 1만곳을 찾아 이른바 ‘디엔에이 고리 지도’를 작성해 생물학저널 <셀>에 보고했으며, 뒤이어 최근엔 특정 단백질이 ‘매듭’ 구실을 해 디엔에이 고리를 만드는 과정을 시뮬레이션으로 규명해 <미국과학아카데미 회보>(PNAS)에 발표했다. 김 교수는 “1차원의 선에서는 멀리 떨어진 두 유전자를 고리 모양으로 매듭을 짓는다면 3차원에선 가까운 거리에 놓이고, 그러면서 두 유전자가 협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발끈에서 먼 두 점이 매듭을 짓고 나면 맞닿는 것과 같은 이치다.


최근엔 네덜란드 레이던대학의 물리학자들이 효모의 게놈 전체를 대상으로 한 시뮬레이션 모형을 만들고서 디엔에이가 접히는 방식이 달라질 때 유전자 발현도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 과학저널 <플로스 원>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디엔에이의 염기 정보 못지않게 이런 디엔에이 접힘의 방식도 유전자 발현과 생물 진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주영 고등과학원 교수(물리학)는 “3차원 게놈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지도가 만들어진다면, 생명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이해와 설명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디엔에이 접힘 구조보다 훨씬 더 복잡한 ‘단백질의 3차원 접힘 구조’를 예측하는 연구를 오랫동안 해왔다. 실험에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계산하고 해석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기법을 개발해, 이 분야의 세계 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3차원 게놈은 그의 새로운 관심사가 됐다. 이주영 교수는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연구하며 쌓은 기법과 경험을 3차원 게놈에 적용하는 연구를 막 시작한 단계”라고 말했다.


생물학은 더욱 복잡해졌다. 단지 염기서열 정보와 유전자만으로 풍부하게 설명되지 못한다. 그 유전자가 발현할 조건과 환경, 그리고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관한 이해가 더욱더 중요해졌다. 설 교수는 “생물학에서는 이제 수학, 물리, 화학 지식과도 협업해야 하는 일이 잦아짐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생물학이 복잡해질수록 생명의 복잡성에 더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도움말: 김영준 연세대 교수, 설재홍 서울대 교수, 이주영 고등과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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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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