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접힘의 역학이 중요한 이유’ -시뮬레이션 연구
물리학 연구진, 효모 게놈 시뮬레이션 연구
“접힘 방식도 염기서열 정보 못지않게 중요”
[ 긴 DNA 가닥이 어떻게 촘촘하게 접히고 말려서 세포핵 염색체 안의 작은 공간에 저장되는지를
보여주는 동영상, https://youtu.be/bwVjYxcDQ5I ]
디엔에이(DNA)는 긴 이중나선 두 가닥에 염기쌍 서열로 이뤄진 유전 정보를 담고 있다. 생명현상을 빚어내는 단위인 유전자는 수많은 종류의 단백질을 만들어 생명체의 몸을 만들고 생리대사를 일으키는 생명의 청사진이다. 아데닌, 티민, 구아닌, 시토신, 즉 A, T, G, C 염기로 이뤄진 DNA 염기서열이 곧 생명의 기본 정보인 셈이다.
그런데 생명 정보는 ATGC 문자에만 담겨 있지 않다. DNA의 긴 가닥은 작은 세포핵 안 유전체에 촘촘히 접히고 감겨 저장되는데 이런 접힘의 구조도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몸의 모든 세포는 다 같은 DNA 염기서열 정보를 지니지만 위장과 피부처럼 서로 다른 곳의 서로 다른 세포들에서 DNA 접힘 구조는 세포 기능에 맞는 특정 유전자들이 잘 발현되도록 바깥쪽에, 다른 유전자들은 발현되지 않도록 안쪽에 둔다. 접힘의 방식 또는 구조 자체가 또 하나의 생명 정보인 셈이다. 이런 점은 후성유전체학이나 줄기세포 연구 등 분야에서 주요한 관심사로 다뤄지고 있다.
DNA가 어떻게 접히느냐 하는 그 접힘의 구조 또는 방식도 DNA 염기서열 정보만큼이나 중요한 생명 정보임이, 유전체(게놈) 전체를 대상으로 한 시뮬레이션 모형 연구에서 다시 확인했다. 네덜란드 레이던대학교(Leiden University)의 이론물리학 연구진(책임저자 Helmut Schiessel)은 DNA의 접힘 구조가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끼치는 정보임을 빵 효모와 분열 효모의 유전체 전체를 모사하는 시뮬레이션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며 최근 과학저널 <플로스원(PLoS ONE)>에 논문을 발표했다.
비록 시뮬레이션 연구이지만 전장 유전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이런 점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연구진은 두 효모 종의 유전체 전체를 모사했으며 여기에다 무작위로 역학적 변화를 일으킬 단서들(mechanical cues)를 무작위로 부여했다. 이런 모형 시뮬레이션에서 연구진은 이런 단서 요인들이 DNA가 접히는 방식, 그리고 유전자의 발현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런 접힘의 방식이 그저 DNA 염기서열 정보, 즉 유전자 발현의 결과물일 뿐인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런 DNA 접힘 구조가 생명 진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연구진은 이를 “(DNA의) 이차적인 정보”라고 불렸다.[참조: <사이언스 얼러트> 보도]
“레이덴대학교 물리학 연구진(Helmut Schiessel 등)은 이번에 처음으로 이런 이차적인 정보(second level of information)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강한 증거를 제시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사용해, 연구진은 역학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단서를 무작위로 부여함으로써 DNA 가닥의 접힘을 시뮬레이션 했다. 이 연구에서 DNA 분자들이 뉴클레오좀 안으로 접혀들어가는 방식을 이런 단서들이 사실상 결정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연구진은 두 생물종인 빵 효모와 분열 효모의 유전체를 대상으로 연구해 그 역학(mechanics)과 실제 접힘 구조 간에 상관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런 발견을 바탕으로, 우리는 DNA 내의 진화론적 변화(변이)가 서로 다른 두 가지 효과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하나로는 특정 단백질 생성의 암호를 담은 염기서열 문자가 그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DNA 구조의 역학도 변화하여 DNA 꾸러미와 접근성에서 서로 다른 차이를 만들어내고 결국에 해당 단백질 생산의 빈도에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레이덴대학교 보도자료에서)
DNA 접힘 구조와 유전자 조절의 관계는 후성유전체학을 비롯해 생물학 분야에서 이미 알려져 왔지만, 이번 연구는 그것을 생물학자가 아니라 이론물리학자가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구를 통해서 거대 규모인 유전체 차원에서 다시 확인해주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또한 DNA 접힘 방식 자체도 생명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가설적인 제안도 흥미롭게 받아들여진다. 이번 연구는 DNA 염기서열 정보만이 아니라 그 접힘 구조의 역학(mechanics)도 생명 현상 연구에서 살펴볼 만한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다시 부각해 보여준다. ◑
» DNA 가닥(맨 왼쪽)이 접히고 말려 기본 단위인 '뉴클레오좀' 구조를 이룬 뒤, 이어 접힘을 계속해 염색체(맨 오른쪽)에 저장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 출처/ Wikimedia Commons
[참조]
DNA 꾸러미의 고리 구조 어떻게 만들어지나? [2015.10.22]
http://scienceon.hani.co.kr/331957
■ 논문 초록
진핵세포의 DNA는 기본적인 꾸러미 단위들, 즉 뉴클레어좀 내부에서 심하게 굴곡되어 있다. 이런 자리매김은 기저에 있는 DNA 염기서열의 역학적 속성에 의해 강한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이번에 우리 연구진은 이런 역학적 속성들,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뉴클레오좀 자리매김이 단지 기존의 DNA 염기서열들, 즉 유전자들의 결산물일 뿐인 것은 아닐 가능성을 논한다. 우리 연구진은 DNA 분자들에서 역학적 진화(mechanical evolution)가 발생하고 있을 가능성을 논한다. 우리는 처음으로 컴퓨터로 구현한 뉴클레오좀 모형을 사용해, 고전적이며 역학적인 다중적 유전 정보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두번째 단계로, 우리는 두 효모 종(Saccharomyces cerevisiae와 Schizosacharomyces pombe)에 나타나는 유전체(genome) 전체 차원의 다중성을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한다. 이는 뉴클레오좀의 정확한 자리가 크로마틴(chromatin)의 기능에서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사이언스온의 길목]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