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연구요원 제도, 대안 없는 폐지 위험하다”

‘연구현장 인력유출’ 고려한다면 전면폐지는 시기상조…현행 제도 개선 논의 계기로


00mil_service1.jpg » 국방부가 현역 입영 대상자가 '전문연구요원'으로 근무하는 대체복무제도를 폐지할 방침을 밝히면서, 이공계 대학과 대학원에서 적극적인 반발 움직임이 일어났다. 지난 16일 곧바로 이공계 대학 학생회들이 연대체를 구성했다. 현재 10개 대학에서 29개 학생회가 참여한 ‘전국 이공계 학생 전문연구요원 특별대책위원회’는 1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문미옥 국회의원당선자(더불어민주당)와 함께 제도 폐지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진/ 오철우


2012년, 서울의 한 수의과대학에 다니는 ㄱ(현 29살)씨는 본과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동물도 생각을 하는지, 동물 뇌는 인간 뇌와 무엇이 다른지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꼈다. 졸업하기에는 아직 아쉬운 것이 많았다. 친구들은 외국으로 떠났지만 그는 대학의 생리학 실험실에 남았다. 공부를 계속하려니 군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는 석·박통합과정에 입학해 지도교수의 도움으로 ‘전문연구요원’에 편입되는 것을 계획으로 삼았다. 매일 9시에 출근해 9시에 퇴근하던 대학원 생활은 고달팠다. 하지만 공부는 계속 하고 싶었다. 틈틈이 영어(TEPS) 공부를 하고 한국사 자격증을 취득해 전문연구요원에 합격했다.


2016년, ㄱ씨는 전문연구요원 3년차가 되었다. 연구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다른 연구실과 협업을 하거나 교수의 잔심부름을 돕기도 한다. 자기 실험을 하기 위해 12시를 넘어 퇴근하는 게 예사가 됐다. 잠을 무리하게 줄여야 했다. 전문연구요원 신분이기 때문이다. 오전 9시를 1분이라도 넘기면 지각으로 처리된다. 못 채운 시각만큼 3년 만기 전역 시계는 뒤로 늦춰진다.


전문연구요원 출석부를 위조하면서 경력 쌓기를 한다는 기사를 보면 남의 나라 이야기 같다. 석·박사 과정에는 연구실 단위로 학술대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국제 학술대회를 가고 싶어도 놓치는 일이 허다하다. 적어도 두 달 전에 지도교수의 승인을 받은 뒤, 병무청과 협의가 이뤄져 여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같은 나라 다른 지역의 연구실을 갈 때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 서명을 해주어야 하는 지도교수가 항상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차라리 수의장교로 갔더라면, 공중방역수의사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요즘은 차라리 군대를 갔어야 했다는 생각을 한다. 학위를 받아서 1년은 더 빨리 자신의 실적을 쌓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방부의 전문연구요원(전문연) 폐지 방침에 과학계가 들끓고 있다.


지난 16일 국방부가 다른 정부 부처들에 ‘산업 분야 대체복무 배정 인원 추진 계획안’을 발송하였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병역 대체복무제도인 산업기능요원과 전문연구요원의 배정 인원을 매년 단계적으로 줄여 폐지한다는 것이 요지다. 이 계획에 따르면 박사과정에 대한 전문연 제도는 2019년에, 정부출연연구소 및 기업체 전문연 제도는 단계적으로 축소해 2023년에 전면 폐지된다.


며칠 뒤인 19일 국방부가 “확정된 안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번 발표로 직접 타격을 입는 이공계 대학생들은 집단행동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학기술원, 포항공대, 서울대 등 전국 10개 대학의 학생들은 전문연구요원 특별대책위원회(아래 전문연 특대위)를 꾸리고 대응에 나섰다.


일부 누리꾼들은 “병역 특혜를 폐지하는 건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병역 ‘특혜’인 것은 아니다. 법이 보장하는 합법적인 병역 이행 특례에 해당한다. 이런 특례를 반대하는 이들은 전문연구요원들의 출결 장부 관리가 부실하고 이들이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부실한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인식도 전문연구요원 복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이들의 세상에서 보면 사실과 다르거나 일부 사례가 상당히 과장된 것이다.


전문연을 관리하는 주체는 지방병무청이다. 근태는 병무청의 전자 출퇴근 시스템에 기록된다. 병무청은 연 1회 전문연 지정 업체 또는 연구기관을 방문해, △해당 분야 종사 여부 △지정 업체장의 관리 실태 등을 조사하고 평가한다. 낮은 평가를 받을 경우 다음 해에 인원 배정에서 불이익을 준다. 문제가 발견될 경우 지정 업체에는 고발, 경고, 주의를, 해당 전문연 대상자는 편입 취소, 복무기간 연장 등의 처분을 내린다.


2014년 병무청은 제도를 강화하여 8일 이상 무단 결근시 해당 전문연 대상자의 편입을 취소하고 형사 고발하는 방침을 정했다. 지각자의 경우도 지각 시간을 합산해 복무 기간이 연장된다. 병역법도 강화되어 적발시 대학원장 등 책임자에게 20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석사과정의 ㄴ(26) 연구원은 “전문연구요원 선배들은 정맥을 인식하는 기계에다 출퇴근을 기록한다. 9시에 출근하는 경우, 9시 정각 이전에 ‘출근’을 찍어야 하고, 6시 정각 이후에 ‘퇴근’을 찍어야 한다. 하루 9시간 근무 조건 안에서 출근 시간을 정할 순 있지만, 바꾸려면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1분이라도 늦으면 지각으로 간주되어 보고된다”고 설명했다. 제도가 부실하게 운영된다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다. 일부의 일탈을 이유로 전체 전문연구요원을 불성실자 또는 탈법자로 간주할 수는 없다.


재 주요한 논란의 뿌리에는 ‘형평성’이 있다. 짧게는 21개월, 길게는 36개월 간 군입대 결격 사유가 없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신체의 자유를 구속받으면서 총을 드는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가, 거기에 예외가 있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전문연인 ㄱ씨는 “형평성 문제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치 특혜를 받는 것인 양 생각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한다.


오로지 전문연 편입을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한다면, 그래서 득실을 따진다면, 사실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보다는 군 입대를 하는 게 차라리 이득일 수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2013년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과 <사이언스온>이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적인 이공계 대학원생이 한 달에 받는 급여는 학비를 포함해 70만~100만원(24%)이며, 4대 보험 등의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하루 13시간을 일한다. 2012년 국세청이 조사한 20대 남성의 평균 월급은 세전 165만 원이다. 동갑내기가 전부 취업할 때 석사 2년, 그리고 다시 짧게는 3년에서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전문연은 대학원 지도교수나 연구소, 중소기업에 채용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해고되거나 편입이 취소될 경우 즉시 입대해야 한다. 본래는 병역 면탈을 방지하기 위함이나, 이 때문에 전문연이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와 고충에 노출되기 쉽다는 부작용도 있다. 그래서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나 하이브레인넷(Hibrain.net)의 일부 누리꾼들은 오히려 “전문연 제도가 이공계 처우 개선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하는 상황이다.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해도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8월 내놓은 <대학 및 전문대학 졸업자의 직종별 수요 추정> 보고서는 현재 석·박사 인력 과잉이 87만 7000여 명에 달한다고 밝힌다(석·박사 수요 인력 25만 2901명, 실제 공급 인력 113만 589명).


대학원생 ㄴ씨는 “그렇지만 정말 계속 공부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그런 전문연 제도가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게 하는 중요한 유인책이 된다. 이런 제도가 없었으면 장차 이공계 연구자가 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큰 고민 없이 현역 복무를 일찍 마치고 훨씬 더 좋은 여건인 외국의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연 제도를 고민하고 그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박사학위를 받고서 평생 연구자가 되고자 하는, 연구가 좋아 공부를 업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병역 대체복무 자체가 목표가 되기에는 그 길이 순탄치 않기 때문이다.


방부에서 전문연 제도 폐지를 고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병역자원 고갈이다. 국방부가 전문연, 산업기능요원 등의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1970년대에 남은 인력을 국가 산업 발전에 활용하면서다. 출산율 저하 등으로 병역 자원이 부족해진 지금에는 제도를 폐지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2007년 병무청의 용역으로 수행된 <전환/대체복무자 등 병역자원리 일원화 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국방부는 전문연 제도를 폐지하고 “과학기술군 지향이라는 목표 아래 우수한 인력을 군에서 활용”하려는 생각이다.


하지만 전문연 제도가 폐지되면 우수 인력의 유출이 가속화할 우려가 높다. 이공계 대학원생과 연구생들은 과학기술과 국가경쟁력의 초석이다. 대가나 교수가 있더라도 혼자서 실험실을 꾸려나갈 수 없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조사 결과, 이공계 박사의 해외 유출은 매년 증가하여 2013년 약 8000명에 달했다. 미국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이 박사학위 수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2013년 한국 국적의 박사학위자 중 미국에 잔류하겠다고 답한 비율은 59.1%에 이른다. 전문연 편입 정원은 올해 기준으로 2500여 명이다. 수도권에서는 경쟁률도 치열해 커트라인도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


   선발 시기  

 TEPS 

 대학원 학점

 합계

 2013년 전기

 650.15

 95.5

 485.01

 2013년 후기

 694.74

 95.3

 496.54

 2014년 전기

 676.91

 94.7

 491.70

 2014년 후기

 745.18

 94.8

 510.60

 2015년 전기

 750.34

 95.37

 513.58

 2015년 후기

 794

 95.01

 525.98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전문연구요원 커트라인 자료(2015)]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부정적이다. 2004년 산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전문연 제도로 인한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 효과는 총 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3년부터는 제도의 본래 취지를 고려하여 대기업 배정 인원을 취소하고 중소기업 정원으로 총 1400명(56%)을 배정했다. 이마저도 전공과 맞지 않는 기업이 많고, 처우가 좋지 않아 지원을 꺼리는 상황이다. 2010년 기준으로 중소기업 전문연 충원율은 53.7%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대기업은 100%, 대학 및 연구소는 95.5%였다. 전문연 제도가 전면폐지 될 경우 산업계도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안 없는 전면폐지는 위험하다. 기존 전문연 제도도 연구현장 처우 문제로 대학원, 수도권 편중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전문연 제도를 떠나서 이공계 전반의 고질적인 처우 문제로 한국을 떠나는 연구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병역자원 감소를 걱정하는 정책 연구자들도 전면폐지보다는 축소, 보완, 개선을 주장하는 게 현실이다. 과학기술은 안보와도 무관하지 않은데, 사람 2000명 당장 더 징병하기 위해 백년대계를 포기하는 꼴이다.


전문연 제도 폐지 논란은 사실 ‘오래된 문제’다. 국방부는 인구 감소가 처음 논의된 2000년대 중반부터 종종 제도 폐지를 제기해 왔다. 향후 국방부가 불가피하게 ‘소탐대실’을 범하지 않으려면, 전문연 제도는 국방부만의 관심사를 넘어 범정부 차원에서 이공계 연구인력 육성과 수급 정책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김정현 건국대 생명과학특성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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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건국대학교 생명과학부 학부생
2009년 건국대 생명과학과에 입학해, 한때 연구자를 꿈꿨습니다. 지금은 진로를 바꾸어 군 복무를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과학기술계에 보탬이 될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ddobaginote.tistory.com 또는 이 지면을 통해 의견을 주고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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