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연구자 대신 극한 물리실험 수행

복잡한 매개변수 제어, 극저온 물질상태 구현

“기계학습으로 최적화의 최선 방법 찾아나가”


00BEC_AI1.jpg » 사진 가운데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붉은 점이 극저온 기체에 나타난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의 물질 상태이다. 출처/ Stuart Hay, ANU


‘연구자가 하던 복잡한 실험을 대신 수행하는 인공지능형 알고리즘의 등장?’ 작은 변화에 민감하고 역동적으로 반응하기에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극한 물리 실험을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고 연구자들이 보고했다.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ANU) 등 소속 연구진은 과학저녈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낸 논문에서, 자신들이 개발한 기계학습 알고리즘(과제를 수행하는 명령어들의 조합)이 절대온도 0도(섭씨 영하 273.15도)에 가까운 극저온에서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이라는 물질 상태를 구현하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보고했다.


보스-아인슈타인 응축(BEC)은 고체, 액체, 기체나 플라스마와는 또 다른 물질 상태로, 절대온도 0도 부근의 극저온에서 초유체 같은 새로운 성질을 나타내는 물질 상태를 말한다. 1920년대에 이런 물질 상태를 예견하는 이론이 발표됐으며 1990년대 이후에 실제로 그런 물질 상태가 실험실에서 구현돼 과학자 3명이 2001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은 미세한 외부 환경의 변화에 쉽게 간섭을 받기에 자기장, 중력장의 미세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도구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이번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진은 인공지능형 알고리즘의 도움을 받아 이처럼 정밀 측정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의 구현 기술을 연구했다.


00BEC_AI2.jpg » 연구진과 실험장치. 출처/ Stuart Hay, ANU 이런 물질 상태는 극저온에서 구현되는데, 극저온은 원자 기체를 레이저 빔에 가두어 조절하여 구현된다. 연구진은 먼저 수동으로 기체를 세 줄기 레이저 빔에 가두어 절대온도 0보다 100만 분의 1도 가량 높을 뿐인 마이크로켈빈(microkelvin) 수준의 극저온을 만든 다음에, 레이저 빔들의 제어 권한을 인공지능형 알고리즘에 넘겨주었다. 연구진은 인공지능형 알고리즘이 매개변수 제어와 실험 결과물 간의 관계를 통계적 모델로 분석하는 방식으로 물질 상태를 더욱 낮은 온도인 나노켈빈(nanokelvin, 나노는 10억 분의 1)까지 구현해 양질의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을 최적화 해냈다고 밝혔다.


다음은 연구진이 논문에서 사람을 대신해 극한 미세실험을 자동화한 인공지능형 기계학습 알고리즘과 관련해 설명한 대목이다.


“우리는 이런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구현의 최적화를 찾아가는) 발견의 프로세스를 ‘기계학습 온라인 최적화(MLOO)’ 기법으로 자동화하고자 한다. 최적화의 기존 기법과 우리 기법이 다른 점은 우리가 매개변수들과 실험결과물 간의 관계를 다루는 통계적 모델을 개발하고자 한 데 있다. 우리는 기계학습 기법이 다른 최적화 기법에 비해 더 적은 실험 횟수를 통해 응축 최적화를 찾아나갈 수 있음을 입증한다. 이는 응축을 구현하는 데 어떤 매개변수들이 중요한지를 살필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해준다.”


연구진은 미세한 환경 변화에 쉽게 영향을 받는 극한적인 물질 상태를 여러 가지 복잡한 매개변수들을 제어함으로써 구현하는 최선의 방법을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비교적 빠르게 스스로 학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보고했다. 다음은 연구진(Paul Wigley)의 설명을 전하는 보도자료의 일부이다.


“나는 기계가 한 시간도 안 걸려 실험을 수행하는 법을 배울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인공지능형 알고리즘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들을 해냈다. 레이저 빔 하나의 파워를 올리고 내리고, 또 다른 레이저 빔의 파워를 보정하고 하는 일 말이다. … 실험에서 더 낮은 온도를 만들고 측정을 더 정밀화하는 데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복잡한 방식의 작업도 해낼 수 있는 것 같다.”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 보도자료에서)


이번 연구성과를 전하는 대학쪽의 보도자료와 해외매체의 여러 뉴스는 ‘인공지능이 물리학자를 대신하다’ ‘인공지능이 노벨상 수상 실험을 재현하다’와 같은 제목을 달았다. 이런 표현들은 앞으로 인공지능형 알고리즘이 인간 연구자가 수행하기에 까다롭거나 복잡한 변수들을 제어해야 하는 극한 실험들을 대신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까 하는 점도 관심사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실험 자동화 프로그램들이 점점 더 지능화한다면, 인간 연구자는 더 새롭고 혁신적인 실험을 구상하고 기획하거나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짜는 분야에서 더 큰 역할과 역량을 발휘하게 될까? 이런 점도 궁금하고 또 기대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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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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