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째로 논문 복제…철회’ 뒤늦게 알려져 시끌시끌

해외 2006년 ‘어류면역’ 논문을 2008년 베껴 둔갑

2011년 자진 논문 철회…연구부정 후속 조처 없어


00plagiarism2.jpg » 표절(plagiarism) 금지. 출처 / plagerismchecker.net, webspier.com  


“요즘 연구진실성이 강조되다 보니 논문의 표절 여부를 검사하는 여러 프로그램도 나와 있고, 주요 보직교수 후보 심사 같은 데에도 실제로 사용되죠. 가장 쉽게는 구글 스칼라(scholar.google.com)에서 검사 대상 논문의 몇 문장을 넣어 검색하면 쉽게 중복 또는 표절 여부를 알 수 있고, 더 나아가 전문 프로그램들도 국내 대학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문구를 바꿔도 찾아내는 표절 프로그램도 있고요. 그렇지만 이런 표절 프로그램이 있다 해도 여전히 한계는 있게 마련입니다.”(경상대 어느 교수의 말)


00immuneNet1.jpg » 대한면역학회 학술지 <이뮨 네트워크>의 최근호. 출처/ Immune Network 지식정보를 보고하고 비평하는 학술 논문에서 남의 것을 베끼는 표절 부정행위를 막으려는 여러 노력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사실 수많은 논문들 사이에서 표절을 적발하고 판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최근 다른 외국 연구진의 논문을 국내 저자가 통째로 베껴 자기 논문으로 발표했다가 철회한 이른바 ‘논문 복제’ 사례가 뒤늦게 알려져 연구자들 사이에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의생명과학 연구자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생물학연구정보센터(브릭, BRIC)의 게시판에서, 지난 5월12일 어느 익명의 연구자는 군산대학교 ㄱ 교수 등 저자 2명이 2008년 대한면역학회(KAI)의 학술저널 <이뮨 네트워크(Immune Network)>에 낸 논문(영문)이 2006년 스페인 연구진이 다른 국제 학술지 <어류 및 갑각류 면역학(Fish & Shellfish Immunology)>에 낸 실험연구 논문과 사실상 동일한 것임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게시판은 금세 시끌시끌해졌다.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두 논문이 제목, 저자명, 감사의 글 등 일부를 빼고는 사실상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두 논문의 파일을 찾아 비교해보니, ‘도미(Gilthead seabream)’를 대상으로 한 스페인 연구진의 면역효과 실험 논문에서 ‘도미’를 ‘무지개 송어(Rainbow Trout)’로 바꾸고 극히 일부의 표현과 주석을 바꾼 것 외에 서론, 방법, 결과, 토론과 참고문헌 부분까지 사실상 복제되다시피해 국내 저자의 발표 논문으로 둔갑했다.


문제의 논문은 2008년 <이뮨 네트워크>에 발표됐다가 3년 뒤인 2011년 10월 논문 저자의 요청에 의해 철회됐다. 당시 책임저자는 학술지 편집위원에 보낸 논문 철회 요청에서, 논문 표절을 깊게 사과하며 논문 철회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논문 철회 요청과 관련해 저자 ㄱ 교수는 한겨레 <사이언스온>에 ‘스스로 윤리적 양심에 가책을 느껴 학회에 논문 철회를 뒤늦게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논문 표절은] 온전한 책임저자의 순간적 욕심으로 연구윤리를 위반하는 도덕적 해이에 의한 것’이라며 ‘공저자는 어떠한 과오도 없으며 책임저자가 [그를] 공저자로 올렸다’라며 괴로운 심경을 전했다. 논문에선 이 연구가 정부(해양수산부) 과제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고 표기됐으나 ㄱ 교수는 ‘해양수산부의 연구비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어떻게 그런 내용이 들어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부인했다. 공저자인 ㄴ 교수는 <사이언스온>에 따로 보내온 이메일에서 ‘공저자가 된 걸 나중에 전해들었고 논문 철회도 며칠 전에야 알았다’며 당황스럽다는 취지로 말했다.


논문은 2011년 저자 자진 철회로 일단락되었으나, 사실 문제는 후속처리 과정에도 이어졌다. ‘복제’ 수준의 표절 연구부정이 행해졌지만, 논문 철회 외에 별다른 후속조처가 없었다. ㄱ 교수는 현재 대학에서 보직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ㄱ 교수는 2011년 이후 ‘너무 뻔한 잘못을 알리는 게 두려워’ 논문 표절과 철회 사실을 학교 쪽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학술지 쪽에는 논문 철회를 저자 소속 기관에 통보할 의무가 없었다. 대학교 쪽은 이런 사실을 인지하거나 연구윤리 관련 제보를 받지 못했다(군산대 관계자는 ‘연구진실성 조사요건이 되면 조사하겠으나 현재 제보를 받거나 관련 자료를 갖고 있지 않아 조사를 진행하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구부정 사례는 이후에 묻히고 말았다. 다른 연구진의 논문을 사실상 그대로 가져다 쓴 ‘논문 복제’의 연구부정이 있었으나 논문 저자들은 연구진실성과 관련해 아무런 조사나 제재도 받지 않았다. 논문 철회 뒤 5년 만에 브릭 게시판에서 익명 연구자에 의해 뒤늦게 알려진 ‘복제 논문’ 사례는 학술출판 검증과 사후처리의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사례로 지적될 만하다.


경상대의 한 교수는 “그리 주목할 만한 논문 내용이나 학술지는 아니더라도 ‘복제’ 수준의 논문이 동료심사 체제를 갖춘 학술지에 발표됐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라며 “눈에 띄지 않으면 표절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분명한 사후처리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엔 표절 검사 프로그램을 이용해 검증하는 체제를 갖춘 곳도 많지만 한계가 있다”며 “연구자 자신의 연구윤리 의식이 가장 중요하며 각 기관마다 연구윤리 전문기구를 상설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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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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