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연재] 자연과학을 열공하는, 과학 안과 밖의 사람들
한정규의 “자연과학 공부의 안과 밖” (1)
연재를 시작하며
학교 울타리 밖에서 지적 갈증을 달래는 공부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모인 사람들. 책상이 부족할 때도 있다. 사진/ 한정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간단한 퀴즈를 하나 풀어보자. 여기 두 집단이 있다. 각 집단에는 어떤 사람들이 속해 있을까?
[집단A] 책 읽기를 좋아한다. 주로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제이 굴드, 브라이언 그린처럼 과학자이자 과학저술가로서 대중에 다가간 사람들의 책을 즐겨 읽는다. 또, 이들은 생물 교과서를 읽는 것도 좋아하고, 대립하는 과학 이론에 대해 오랜 동안 토론 벌이기를 좋아한다. 최신 과학 이론에 관심이 많다.
[집단B] 매일 글을 읽는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경우가 많다. 최신 과학 이론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관심도 많다. 바쁘게 살고 있으며, 스트레스 때문인지 가끔 과음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 역시 어떤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질문하기를 좋아한다.
집단A와 B에는 각각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을까? 짐작컨대 대중 과학 교양서를 즐겨 읽는 집단A는 동호회 수준의 독서모임일 것 같고, 글쓰기가 일이라는 집단 B는 뭔가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 같다. 집단B는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과학저술가? 과학기자? 단정할 수는 없다. 최신 과학 이론을 잘 알고 있고 토론하고 질문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집단A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도대체 잘 모르겠다. 이 한 문장을 보태보자.
"집단 B 사람들은 밤낮 없이 실험실에 틀어박혀 연구를 한다."
이제 집단B가 어떤 사람들인지 좀 더 분명해진다. 집단B는 연구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나중에 한 문장을 보태기 전에는 집단B의 사람들을 직업적인 저술가일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위 한 문장을 넣은 뒤에는 연구생 혹은 연구자일 거라고 좀 더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두 집단의 차이가 어찌 보면 별로 없음을 극대화해서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두 집단의 특징을 맨앞에 제시한 문장들처럼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정적인 힌트로 끼워 넣어 두 집단의 구분이 분명해지도록 했다. 자연과학을 직업으로 택했는지 아닌지만 제외하면, 두 집단은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다는 점에서는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닮아 있다.
지식의 프로와 아마추어: 주목할 점은 차이일까 공통점일까
사실, 나는 집단A에 대해서는 ‘독서모임’을 염두에 두고 설명했고, 집단B에 대해서는 ‘연구자 집단’을 고려해 설명했다. 두 집단이 모두 책을 좋아하고, 의무적으로든 취미로든 책을 읽어야 한다. 또한 두 집단이 모두 교과서나 논문을 읽고, 세미나나 토론을 통해 소통한다. 모임 뒤에는 글쓰기로 마무리하곤 한다. 그러나 보통은 두 집단을 ‘아마추어/프로페셔널(이하 프로)’로 이분법적으로 설명하곤 한다. 아마추어는 전문적 지식을 배우지도 훈련받지도 못했기에 당연히 전문가의 언어로 소통하기 힘들다. 반면, 프로는 전문가로서 책임감을 지니며, 적어도 한 분야에서 인정을 받는다. ‘차이’에 집중하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하지만 앞의 퀴즈를 통해 언급했듯이, 두 집단한테는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는 공통된 속성들도 있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전문가와 아마추어 사이에서 주목할 점은 과연 차이점일까, 공통점일까?
집단A는 생명 현상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생명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생물에 관심을 갖는다. 유기체인 생물은 물질을 기반으로 하며, 이는 화학 분야에 대한 관심을 유도한다. 그리고 결국은 기본적인 작동원리를 설명해주는 물리학에 당도한다. 그들은 살아가는 동안 이런 생명의 흐름을 반드시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이 이 모든 생명 현상을 이해한다 한들, 그것을 증명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기 어려운 것은 각 분야를 전공한 박사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생명 현상의 원리를 깨우치는 일을 반드시 박사학위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한 번 정도 깨우칠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앎의 길은 관성의 법칙처럼 한 번만 깨우치면 그 다음부터는 굉장히 쉬워진다.
집단B도 생명 현상에 대한 무한한 경외를 갖고 있다. 오죽하면, 그것을 밥벌이로 선택했으랴. 맛보기로 2년, 죽기 살기로 5년 이상은 고생해야 생명 현상을 이해하고 새로운 것을 밝혀냈다고 인정을 받는다. 이들이 생명 현상을 밝혀내는 작업은 결코 혼자 할 수 없다. 선배 과학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세금이 지속적으로 충당되는 연구비가 필요하다. 극단적으로 말해 혼자 고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 앞으로 계속 연구를 해나갈 수 있다. 또한,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다. 머리를 싸매고 있는 순간 만큼은 허허벌판에 혼자 있는 느낌이다. 누가 말했듯이 이 집단에 속하는 사람은 찰나의 쾌락을 기다리는 우직한 일꾼이다. 깨달음!
백북스 학습독서공동체에서 만난 탐구 열정
나는 최근에 집단A와 B에 편중되지 않게 몸담았고, 그런 상황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집단A는 ‘백북스’라는 학습독서공동체이다 (이 모임에 관한 이야기는 이종필 박사님께서 쓰신 사이언스온 연재 글들에 잘 나와 있다). 백북스 회원들은 자신이 평생 몰두해온 분야가 아닌 미지의 분야를 새롭게 공부하고 싶어서, 혹은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에 꼭 풀고 말겠다는 어떤 물음을 좇아 모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함께 공부하고 서로 생각을 나누면서, 새로운 지식을 얻고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 지식이 부족하다면 쌓고, 배우며 터득하는 것이 목적이며, 동시에 사람 사귐도 함께 한다.
나는 대학을 갓 졸업했을 때, 누군가와 함께 책을 읽을 수 없을까 여기저기 알아보던 차에 이 모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백북스에는 인문고전, 수학아카데미, 경영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독서모임이 있으며, 서울, 대전, 인천 등 지역별로 매달 한 번씩 정기 강연회가 열린다. 그렇게 여러 독서모임과 강연회에 참석하면서 함께 공부하고 밥을 먹으며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고, 늦은 시간까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세가 지긋하신 한 분이 내게 생물교양서 다섯 권을 꺼내 보이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생물에 대해 알고 싶어 도서관에서 책을 몇 권 빌렸는데, 도무지 이해가 잘 안 되고 어디 가서 배우려고 해도 마땅한 곳이 없더라는 것이었다. 생물학 전공자인 나는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머릿속이 ‘반짝거림’을 느꼈다.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사회가 학습의 기회를 이토록 제공하지 않는구나, 그리고 내가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공부를 할 거면 제대로 하는 게 좋다. 교과서로 하자! 내가 계획을 세워 계획서를 만들겠다. 한 달에 한 번씩 1년 동안 생물 공부를 해보자고 말이다.
그날 밤 1학년 때 공부했던 일반생물학 책의 목차를 유심히 살폈다. ‘어떻게 하면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공부하게 할 수 있을까?’ 물론 열정과 열의가 있는 분들이기에 의심의 여지는 작았지만, 쉬운 작업은 아니라 판단되었다. 최대한 간단하게, 큰 줄기만 잡아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교과서의 딱딱한 내용을 보완하고자 각 파트마다 생물교양도서를 참고서적으로 제시했다. 피디에프(PDF) 파일로 계획서를 작성한 뒤 한 달에 한 번씩 1년 동안 공부하자는 제안과 함께 백북스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생물 교과서로 진행하는 딱딱한 공부모임에 누가 관심이 있을까, 혼자만의 고요 속 외침이 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글을 올렸다. 기우였다. 메일을 통해 많은 분들이 문의를 했고 적극성을 보이는 백북스 회원들이 참여의사를 밝히셨다. 그렇게 해서 집단B에 있던 내가 집단A의 일원이 된 것이다.
과학을 공부한다는 것, 사이언스를 한다는 것은...
나는 대학원에서 신경과학을 공부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통해 시냅스의 기작을 연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신경과학 연구를 하는 집단B에 속해 있다. 내 궁극적인 목표는 의식의 생물학적 기반을 찾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말하기에는 겁 없는 소리라 하겠지만, 힘들 때마다 이런 목표를 생각하면 도움과 힘을 다시 얻곤 한다. 연구를 하다 지쳐서 방향을 잃고 헤맬 때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이른바 ‘자연과학을 한다’. 흔히 말하기를 ‘사이언스를 한다’고 한다. 경험이 미천한 까닭에 이 말의 의미가 충분히 와 닿지는 않는다. 개념적으로 생각만 해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아직 경험하기 전이다. 추측하건대 ‘사이언스를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한 뒤에 아주 작은 실마리가 찾아오는 그 순간, 그 느낌을 말하는 게 아닐까?
집단A와 B는 바탕이 약간 달랐던 것이지 모두 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응집된 덩어리다. 자연과학 공부를 하기 위한 집단. 단, 방법에서는 차이가 있다. 두 집단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어떤 집단이 정말 순수하게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있는가.
앞으로 이 연재를 통해 자연과학 안과 밖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 보일 계획이다. 자연과학 밖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생물학을 진정 즐기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지만, 생물학의 특성상 실험적인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까지 얻기는 어렵다. 이들이 이런 한계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또한 자연과학 안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실험과학의 특성에 충실하지만 생물학의 역사를 논하거나 철학적 함의를 생각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 실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다보면 곰곰이 되짚어볼 수 있는 여유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을 공부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두 집단, 그들이 서로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각자의 한계점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두 집단을 모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계속 고민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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