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들의 "아줌마들의 과학수다"

이공계 출신의 아줌마들이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모여 과학기술에 관해 친절한 수다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T)와 사이언스온 공동기획

[연재] 펄프종이 '오래된 첨단', 전자종이 '새로운 일상'?

아줌마들의 과학 수다

쉰세 번째 이야기- 전자종이


10년 전쯤 영화 <해리포터>에서 기사와 함께 동영상을 담은 ‘마법사 신문’를 보면서 굉장한 아이디어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의 ‘참, 센스 있는 상상이다’라고 생각했던 장면이 이젠 현실이 되었다. 오랜 동안, 식물의 순수한 섬유 부분을 원료로 삼아 편평하면서 얇게 서로 엉기게 만든 ‘종이’에 쓰인 글자를 읽으며 살아왔던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종이’라는 틀 안에 사고를 가두어서는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종이를 넘어선 다음 세대의 종이인 ‘전자종이’는 어떤 모습일까?

/ 수다꾼: 박문영, 신지원, 이인숙, 최동수 (정리: 신지원)






00epaper1국내 업체에서 개발한 전자책 단말기(오른쪽).  한겨레 자료사진(2010년)




기록 문명을 발전시킨 대단한 발명, 종이



동수 :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할 대책을 마련하기 힘들다는 기사를 봤어요. 선사시대의 암각화를 보면 당시의 상황과 생각을 기록해왔던 오래 전 인류의 위대함이 느껴졌는데 … 사람들은 벽, 무덤, 동물의 뼈, 나뭇잎, 돌판, 동물의 가죽, 대나무를 비롯한 나무 등등, 참 다양하게 기록을 남기네요. 그런 기록 덕분에 인류의 발전은 훨씬 더 빨라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숙 : 가공하지 않은 자연물을 이용한 기록과 비교하면, 여러 과정을 거쳐 만든 종이를 사용한 기록은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나 보관의 편리함으로 볼 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지요. 후대에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전할 수 있게 한 것도,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도록 활자의 발명을 이끈 것도 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종이의 발명은 활자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어요. 오늘날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처럼 말이에요.

 

SO_JW지원: 종이가 처음에는 기록을 위해 생겨났다고 해도 나중에는 별의별 역할을 다 했어요. 벽지가 되기도 했고 가구나 물건의 재료가 되기도 했고요. 예전에는 우리의 한지가 그 역할을 다 했다면 지금은 신문지만 봐도 그 역할이 적지 않아요. 요즘 신문을 보지 않는 집이 많은데, 기사는 다른 경로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데 ‘신문지’라는 종이가 필요한 경우가 너무 많다고 하더군요.

 

문영 : 우리에게 ‘종이’란 부담 없이 다가가기 쉬운 생필품이자 장난감(?)이란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이 선 긋고, 그림 그리고, 접고, 구기고, 찢고, 만들 때, 주부들은 행주로, 튀김받이로, 식기로도 사용하지요. 안 그래도 이렇게 쓰임이 많은데 컴퓨터와 복사기 덕분에 종이 사용은 더 급격히 늘어나 지구의 나무가 남아나기 어려운 상태잖아요.

 

 

종이로봇의 등장...다양하게 활용되는 종이


 

인숙 : 재료로서 종이가 지닌 장점은 휴대하기 가볍고,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으며, 쓰고난 뒤에 처리가 쉽고,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종이 위에 적당한 물질을 도포하거나 다른 물질과 결합해 포탄을 싸는 껍질로도, 방화벽으로도, 이동식저장장치(USB)로도, 비행기 날개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요. 적은 가격에 단기간 사용할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런 면에서 물건의 사용기간이 짧은 현대인들에게 더 활용도가 높은 것이 종이가 아닐까 생각해요.

 

SO_DS동수 : 맞아요. 종이로 만든 작고 가벼운 로봇에 얇은 안테나를 붙여서 전파를 쏘면 종이가 진동하면서 약한 전력을 만들고 이 전력으로 날거나 기어 다닐 수 있다는 군요. 이런 종이로봇은 군사실험이나 우주실험에 쓰인다니, 싼 값의 종이라는 소재로 첨단 소재를 대신할 수 있으니, 종이의 가능성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어요.

 

지원 : 결국 디지털 시대에 종이는 기록의 역할을 잃고, 종이의 장점에 첨단기술을 융합해 소재의 역할을 한다는 말이군요. 사실 다방면에 쓸 수 있는 굉장한 소재는 맞지요. 하지만 종이를 많이 사용하면 숲을 없애야 하고 이는 탄소 절감에 위배되는 일이라 종이를 아끼자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일부에서는 오히려 디지털 기기를 만드느라 배출되는 탄소가 더 많다는 의견도 있더라고요.

 

문영 : 우리나라의 한 기업이 바다 속 홍조류를 이용해 종이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45개국에서 특허출원을 내고 2015년 상용화를 내다보고 있다는 기사를 봤어요. 홍조류의 성장도 빠르고 펄프로 종이를 만드는 것보다 공정도 3분의 1 정도로 간단하고, 형광 표백 과정도 필요 없어서 환경적인 면에서도 긍정적이라는 내용이더군요.

 

00paper1김재환 인하대 교수는 2000년 종이에 전기를 흘리면 파르르 떠는 운동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국제 학계에 처음으로 정식 보고해 주목을 받았다. 그의 연구팀은 2009년 또다른 종이 발명품을 내놓았다. 이번엔 ‘종이 트랜지스터’다. 한겨레 자료사진(2009년)

 

 

아마존닷컴에서 종이책보다 더 많이 팔린 전자책


 

지원 : 1975년 쯤에 "미래에는 종이 없는 사무실이 가능할 것이다"라는 예측이 나왔어요. 그 당시에는 정보와 지식을 만들고 공유하고 편집하는 데 종이가 필요 없는 시스템과 효율성이 미래에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거죠. 사실 그런 시스템은 너무 훌륭히, 어쩌면 생각보다 더 앞서 나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종이’가 지닌 기록의 역할을 대신할 새로운 ‘전자종이’가 이젠 성큼 우리 앞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록을 하고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종이와 전자종이를 비교해 이야기해 보면 좋겠어요.

 

동수 : 전자종이는 액정디스플레이(LCD)와는 좀 구별해서 생각해야 해요. 딱딱하고 스스로 빛을 내서 내용을 볼 수 있는 액정디스플레이와는 다르게, 전자종이는 영화 <마이너리포트>에서 시민들이 지하철에서 둘둘 말아 가지고 있다가 읽던 신문처럼 유연성도 있고 진짜 종이처럼 빛의 반사를 통해 내용을 보는 방식이에요.

 

인숙 : 휘어지고 투명한 전자종이는 <마이너리포트>에서 '2054년의 장면'으로 보여준 거였는데 지금 많은 부분이 구현되고 있다니 대단하네요. 전자종이는 양전하를 띠는 흰색 입자와 음전하를 띠는 검정색 입자 수백만 개가 마이크로 캡슐 형태로 들어 있어 기록 내용을 표시한다고 해요. 그래서 흑백으로만 표현할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컬러로 표현되는 전자종이도 등장하고 있대요.

 

SO_MY문영 : 전자종이를 가장 잘 상품화한 것이 '전자책 리더기'이지요. 2011년 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에서는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더 많이 팔렸다고 발표했어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좀 현실감 없는 발표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전자종이로 읽는 것을 일상화한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여도 되겠죠.

 

지원 :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전자종이로 되어 있는 리더기가 장점이 많더라고요. 가볍고 얇아서 가지고 다니기에 정말 편리하고 16단계의 회색 명암을 이용해 화면도 선명하고 이동통신망으로 언제 어디서나 책을 내려받을 수 있다는 군요. 그것도 책 한권 내려받는 데 1분 정도 밖에는 걸리지 않는다고 해요. 아마존에는 일반책만큼 전자책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고 값도 채 10달러가 안되니 보급이 빨랐죠.

 

동수 :  이동통신망을 이용하는 것은 책을 내려받을 때에만 가능한데 그런 점이 오히려 문자나 다른 유혹으로부터 책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후기도 읽은 기억이 있어요. 액정디스플레이는 오래 보고 있으면 눈이 쉽게 피로해 책을 읽는 데에는 정말 적합하지가 않은데 전자종이는 종이처럼 조명이나 태양빛에 의해 반사되는 글자나 그림을 보는 거라 눈의 피로가 적다네요. 종이 느낌과 꽤 비슷하다는 거죠.

 

인숙 : 전자종이는 페이지를 넘길 때만 전력을 쓰기 때문에 전자책 리더기는 한번 충전하면  며칠 동안 사용할 만큼 배터리도 오래 가고 1000여 권을 저장할 정도로 저장 용량도 커요. 게다가 글자를 음성으로 바꿔주는 기능도 있어서 시력이 안 좋은 사람들한테는 매우 유용하겠더라고요.

 

 

전자종이를 받아들이는 것 =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


 

지원 :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전자책이 아직 전체 출판시장의 10% 정도만을 차지하고 있던데 이유가 뭘까요 ?

 

문영 :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대형서점을 중심으로 전자책 리더기를 보급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전자책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것도 큰 장애가 아닌가 싶어요. 게다가 왠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이책을 소장하고 싶어하잖아요. 그래서인지 출판사들도 전자책 출간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하더군요.

 

인숙 : 하지만 우리나라도 전자책의 매출이 급속히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해요. 해마다 증가하는 비율이 가히 기하급수적이고 5년 이내에 50% 이상을 차지할 거란 예상도 있어요. 로봇에게 책 읽어주기를 시키고 학습도우미를 시키는 요즘의 육아를 보면 전자책으로 나아가는 변화는 시대의 흐름인 것 같아요.

 

동수 : 초등학생을 둔 30대 정도의 부모를 대상으로 한 어떤 조사 결과를 보니, 전자책으로 옮겨가지 않는 이유를 종이책이 사용하기 익숙하고 편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60%가 넘더군요. 그리고 전자책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 이용 여부에 대해서도 소극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결과였어요. 나이가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요.

 

SO_LIS인숙 : 30대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귀찮은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시대가 빠르게 변하니 나이도 빠르게 먹나 봐요. 요즘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을 디지털-네이티브(Digital-native)라고 부른대요. 태어나서 보고 들은 것의 대부분이 디지털기기를 통한 것이니, 디지털 기기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사용하는데 어려움도 없으며 자연스러우니 디지털 원주민이라 할만 해요. 그들에게 종이는 불편한 옛날 물건일지도 모르겠어요.

 

문영 : 전자책이나 전자종이가 점점 늘어날 거란 사실은 틀림없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 손자 시대 쯤 가야 더 이상 종이가 기록용으로 사용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우리 같은 기성세대(?)의 시대에는 기록을 위한 종이가 쉽게 자취를 감추지 않는다'에 한 표 던질래요. 전자책에 익숙한 요즘 대학생들 중에서도 시험 때에는 그동안의 자료들을 모두 종이에 인쇄해 공부한다고 하는 학생이 있더라고요.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리 손자 시대 쯤 가야 할 것 같아요.

 

지원 : 한 회사에서 자료를 읽고 수정하는 작업을 종이와 전자종이를 통해 시켜봤더니 확실히 종이를 가지고 일하는 경우에 일의 능률이 더 높았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전자종이나 전자책의 장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종이가 전자종이로 바뀐다는 것은 결국 문화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동수 : 장시간 복잡한 지하철에서 출퇴근을 하다 보니 손에 딱 잡히는 핸드폰에 자료를 저장하고 읽는 게 점점 편해져요. 작은 액정으로 들여다보면 눈이 피로할 때도 있는데 전자종이를 이용한 리더기라면 더 편할 수도 있을 거 같네요. 결국 또 한 번의 지출 때문에 많이 망설여지지만요. 이렇게 가면 결국 종이는 전자종이의 보조수단 정도로 위치가 강등될 수도 있을 듯해요. 새로운 문화도 써보고 편리하면 빨리 받아들이는 것도 현명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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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의 과학 수다’ 연재를 마칩니다

00suda한겨레 사이언스온과 함께 시작한 연재물 ‘아줌마의 과학 수다’가 2년 남짓만에 수다 무대의 막을 내립니다. 평범한 시민에서 과학 이야기꾼으로 멋지게 변신한 네 명의 이야기꾼들이 그동안 2주마다 들려준 정감 있고 따뜻한 과학과 사람의 이야기에 감사드립니다. 다음 편에는 과학 수다를 마치며 나누는 아줌마들의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독자를 찾아갑니다. 좋은 소식도 들려옵니다. 사이언스온에 연재된 수다 글은 곧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아줌마 수다팀의 활약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사진 왼쪽부터 박문영, 신지원, 최동수, 이인숙 님/한겨레 자료사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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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다팀
머릿속 과학을 쉽게, 편안하게, 재밌게 생활에서 끌어안다.” 못생긴 평 발의 등번호 21번 수다꾼(박문영), 뾰족코에 둥근 안경 수다꾼(신지원), 살포 시 웃음 짓는 빼빼 수다꾼(최동수), 볶음밥 위의 노른자 수다꾼(이인숙)이 수 다 팀을 꾸렸다.
이메일 : science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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