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엔 국경 없다…협력이 퇴치의 최선전략
[2] 4월25일은 세계 말라리아의 날
‘25년여 만에 0건’ 선언 유럽 사례가 ‘말라리아 유행국’ 한국에 주는 교훈
[ 말라리아 퇴치 노력의 성과와 현황, 대응전략을 담은 세계보건기구(WHO)의 동영상 ]
4월 25일, 오늘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세계 말라리아의 날’이다. 한국은 여전히 말라리아 유행 국가이지만, 말라리아의 날에 대해서만큼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2016년 4월 25일 세계 말라리아의 날이 많은 관심을 받은 이유는 바로 세계보건기구 유럽 지부가 며칠 전인 4월 20일에 발표한 내용 때문이었다. 즉, 역사상 최초로 유럽 지역에서 토착 말라리아 감염이 0건에 도달했다는 소식이었다.[1] 상대적으로 고소득 국가가 밀집해 있는 유럽에 말라리아라니? 얼핏 질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분명 유럽은 한국처럼 말라리아 유행 지역이다. 그리고 이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반으로 이어지는 유럽의 말라리아 유행과 박멸의 사례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 1924-1926년 유럽의 말라리아 유행 지도. 출처/ copyrights to Wellcome Library
2차 대전을 전후하여 유럽은 극심한 말라리아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전쟁의 타격이 극심했던 이탈리아를 포함해 남부 유럽 지역은 전세계에서 말라리아 감염이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로 남아 있었다. 여기에는 발칸 반도와 그리스, 포르투갈이 포함된다. 그리고 1955년 세계보건기구 8차 총회에서 말라리아 박멸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결의안이 채택되면서 유럽도 말라리아 박멸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지역 개발과 약품 보급을 포함한 다양한 접근을 통해 유럽 지역에서 말라리아는 점차 자취를 감추어갔고, 1974년 마케도니아에서 발생한 토착 말라리아 감염을 마지막으로 말라리아는 유럽에서 사라졌다. 덕분에 1975년 유럽 지역은 말라리아 박멸 지역으로 선언되었다.
사라졌다 돌아온 말라리아, 유럽의 오랜 ‘박멸’ 노력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동부 유럽은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1985년 소비에트 연방 내에서 대대적인 경제 및 조직 개편이 있었고, 광범위한 개혁이 진행되었다. 1986년부터는 중앙아시아 지역 공화국들의 봉기가 시작되고, 1988년에 이르러서는 소비에트 연방 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당시 주변 공화국과 연방 정부의 충돌은 내부적 혼란과 대량 학살을 낳았고, 이는 곧 사회 불안으로 이어졌다. 또한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이어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주변 지역의 불안정을 확대시키고 내부적으로는 보건의료 체계를 붕괴시켰다.
정확한 재유입 경로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코카서스와 중앙아시아의 공화국들을 중심으로 토착 말라리아가 돌아왔다는 보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중동에서 시작된 1차 걸프 전쟁은 막대한 이라크 난민을 터키로 유입시켰다. 아직 이라크 지역은 말라리아가 박멸되지 않은 지역이었으며, 이에 따라 터키과 주변 유럽 지역에도 말라리아 감염이 늘기 시작했다.[1]
공식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90년에는 8,884건의 말라리아 감염이 보고되었고, 1992년에는 19,102명, 그리고 유행이 정점에 달했던 1995년에는 무려 90,712건의 말라리아 감염이 보고되었다. 정치적 혼란, 사회경제적 곤궁, 대규모 난민 발생과 의료보건체계의 붕괴는 말라리아 유행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이제 유럽에 말라리아가 다시 터전을 잡았다는 데 이견은 없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유럽 국가들은 말라리아 박멸에 힘을 모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매개체 관리와 감염자 치료를 중심으로 한 사업은, 2000년에 말라리아 유행을 8개국에서 약 32,000건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고, 2005년에는 그것을 약 5,000여 건으로 줄였다.
지속적인 개입으로 2010년에는 6개국에서 179건의 말라리아 사례가 등장하는 데 그쳤다. 마침내 유럽 지역의 말라리아 재박멸이 손에 잡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바로 극심한 경제난이었다. 특히 심대한 타격을 받은 그리스는 2011년 극단적인 긴축 정책을 시행하는데, 이에 따라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공공의료 예산이 삭감되었다. 병원 지원 예산은 40%가 삭감되었지만, 동시에 경제난으로 공공의료 수요는 24%가 늘었다. 기존에 시행되던 모기 방제 사업은 대부분 중단되었고, 해외 말라리아 유입을 감시할 수 있는 공중보건 체계도 정지했다. 그리스는 해외 유입건을 포함해 2010년 44건, 2011년 96건, 2012년 93건의 말라리아가 발생했다. 이 중 절반은 토착 감염이었다.
말라리아를 박멸하고 잘 통제하던 그리스 같은 국가도 긴축 정책 아래 공중보건 예산을 극단적으로 삭감하자 말라리아가 되돌아온 것이다.[2] 경제위기가 완화되고 주변 지역의 지원을 통해 마침내 2014년 그리스도 토착 말라리아 감염을 다시 0건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유럽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토착 말라리아가 유행하던 타지키스탄 역시 2015년에는 토착 말라리아 감염 0건에 성공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성공의 의미를 복합적인 관리 정책, 철저한 말라리아 사례,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참여와 국경을 넘어선 초국가적 협력에서 찾았다. 그리고 이런 노력 덕분에 25년여 만에 유럽에서 말라리아가 다시 박멸되는 순간이었다.
» 유럽 지역 말라리아 유행의 변화. 출처/ copyrights to WHO
‘말라리아 유행국가’ 한국도 비슷한 경험, 국경 없는 협력 필요
지금 이 시점에서 유럽 말라리아 박멸의 역사가 흥미로운 점은 한국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말라리아는 1960년대까지 극심한 피해를 입하고 있었지만, 세계보건기구와 정부가 1959~1969년 기간에 힘을 합쳐 그 기세를 수그러뜨릴 수 있었다. 1970년대에는 한국에서도 자취를 감추었고, 1979년에는 세계보건기구를 통해 완전 토치 지역으로 선언되었다. 그렇게 안도하고 있던 때, 말라리아는 벼락처럼 다시 찾아왔다. 1993년, 국군수도병원에 고열 증상을 보이는 군인 한 명이 찾아왔다. 진단 결과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바로 원인이 말라리아였기 때문이다. 감염 환자는 휴전선 인근에서 복무하던 군인이었다. 해외 방문 경험도 없고 수혈을 받은 적도 없었다. 결국 한반도 내에서 말라리아에 감염되었다는 의미였다.[3]
그렇게 휴전선 인근에 다시 출현한 말라리아는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지역으로 퍼져나가 최대 연간 4,000건의 감염 사례를 발생시켰다. 휴전선 인근의 말라리아 재토착화에는 여러가지 가설들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을 얻는 가설은 바로 북한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1990년대 극심한 자연재해와 기근, 경제난을 겪어 보건의료체계가 붕괴한 북한에서 말라리아가 재유행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감염된 모기가 휴전선을 넘어 남한의 군인을 감염시켰다는 가설이었다. 북한측의 정확한 통계를 얻기는 힘들지만, 세계보건기구를 통한 집계를 보면 1998년 1,100건이 확진되었고, 2001년에는 115,615명이 확진을 받아 최대 감염규모는 약 300,000건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북한은 당시 이미 심각한 말라리아 유행 지역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이는 남한에도 영향을 미쳐, 2000년대 중반까지 남한 역시 꾸준히 말라리아 감염환자가 증가해왔다. 그리고 2014년 기준으로 해외 유입 감염건을 포함해 총 558명이 감염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1980년대 후반 유럽의 말라리아 재유행 양상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유럽도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극도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난을 겪었다. 2011년을 전후한 그리스도 마찬가지다. 수년간 이어진 경제난과 긴축, 그리고 사회 불안은 말라리아의 씨앗을 제공해 주었다. 한국 역시 극심한 사회 불안과 빈곤을 겪고 있는 북한에서 말라리아가 유입되었다. 그렇게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고 보건의료체계가 무너지면서 말라리아 유입을 막을 수 있는 여력이 사라졌다. 한번 자리잡기 시작한 말라리아는 빠른 속도로 지역 사회 내에 퍼져나간다. 그리고 한번 자리잡은 말라리아는 다시 몰아내기 힘들다. 감염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하고, 추가 전파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동시에, 말라리아 매개 모기의 개체수를 줄여 전파 가능성을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멸에는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돌아오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다.
감염성 질환은 특정 국가 내에서 박멸되었다고 하여 해당 국경 내에 거주하는 국민을 완벽히 지켜낼 수 없다. 로버트 데소비츠가 말했듯 “감염병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모기 같은 매개체에 의해 전파되는 질병은 더욱 그렇다. 이들에게는 국경을 넘어갈 때 비자가 필요 없다. 국경을 통제해 사람의 이동을 막아도 모기는 언제든 그런 추상적인 개념을 뛰어 넘을 수 있다.
즉 감염성 질환의 관리와 통제를 위해서는 국경을 넘어선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유럽연합이라는 공동체가 있지만, 주변 국가들의 협력을 통해 말라리아 재박멸을 일궈낸 유럽의 사례에서도 이런 협력의 의미가 잘 드러난다. 반대로 한국의 말라리아 감염은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이제는 더 이상 낮아지지 않고 있다. 한국의 말라리아 방제 노력이 남한의 국경 내에만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질병의 위협에서 보호하기 위해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주변 지역과 상관 없이 한 국가만 감염병 통제에 성공한다고 질병을 몰아낼 수 있을까. 추가적인 유입을 통제할 수 있을까. 이번 4월 25일 세계 말라리아의 날에는 감염병의 눈을 통해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참고문헌]
[1] WHO. History of malaria elimination in the European Region. 2016.(http://www.euro.who.int/__data/assets/pdf_file/0003/307272/Facsheet-malaria-elimination.pdf?ua=1)
[2] Kentikelenis A, Karanikolos M, Reeves A, McKee M, Stuckler D. Greece‘s health crisis: from austerity to denialism. The Lancet. 2014 Feb 28;383(9918):748-53.[3] 고원규. “국내 말라리아의 재유행.” 대한의사협회지 50.11 (2007): 959-966.
정준호/ 기생충 독립연구자, 과학저술가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사이언스온의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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