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숱한 과제에 시달리고 퀴즈에 쫓기고 실험실에서 죽치는 생활엔 힘겨움과 고민도 숨어 있지만 이공계의 젊음은 여전히 팔팔하고 꿈도 많다. 다양한 갈래의 이공학도들이 그 희노애락의 이야기를 전한다.

[연재] 2011 이공대생의 '진짜 고민' 들어보실래요?

:::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25)


::: 안과 바깥의 우리들 속이야기를 들어보니...

00job서울 시내의 한 대학에서 열린 채용설명회 때 내걸린 채용 게시판. 한겨레 자료사진(2004년)




들었다. <사이언스온>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코너에 그동안 쓴 글에서 이공학도 생활을 여러 주제로 거의 다 다뤘다고 생각해 이번엔 뭘 쓸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자 어느 지인도 이렇게 말했다. “그래. 솔직히 너나 나 같이 다른 쪽에 많은 관심을 두는 이공계생이 특이한 거지. 보통은 ‘집-학교-학생식당-도서관-집’이잖아.”

 

‘더 무엇을 쓸 수 있을까’에 관한 고민으로 며칠을 보냈다. 개인적으로는 연재 1년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부담감도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이공학도 이야기’로 의 한 구석을 채우면서 내가 보여준 것은 무엇이며 남은 것은 무엇인지 오래도록 생각했다. 최대한 내가 속한 ‘이공계’라는 집단을 낯설게 보고자 노력했다.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간 한 가지, ‘여태껏 너무 이공학도들의 겉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우리가 진짜 솔직하게 할 이야기가 있지는 않았던가?’. 내 글로 작게나마 이공계 학생의 ‘지금’을 대변할 수 있다면, 내가 알려야 할 것은 현재 우리의 고민이었다.

 

 

 


바깥에서 본 이공계: ‘취업 걱정 덜하니 부러워요’


 

00job2저학년 때에는 들리지 않던 부러움과 탄식이 들려왔다. 비이공학도들의 취업 걱정이었다. 전에는 생각지도 않던 대학원을 이제 고려하는 이도 적지 않았고, 그러다가도 갑자기 ‘대학원 가면 그 다음엔…?’ 하며 걱정하는 이도 많았다. 동시에 들리는 말, “그래도 너희 이공계생은 취업 잘 돼서 좋겠다.” 물론 일반화하기에는 다소 위험한 명제이긴 하지만 이공계에서 학부 생활을 하는 나의 체감 취업난과 그들 비이공계생의 체감 취업난은 다소 차이가 있는 듯 했다.

 

평균적으로 이공계 학부 졸업예정자가 공채 지원을 하는 곳은 적으면 3곳, 많으면 10곳 정도다 (물론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서울·경기권 이공계의 경우가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이런 숫자도 전공에 따라 다른데 기계공학이나 전자공학, 산업공학처럼 여러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전공일 경우에는 더 많은 곳에 공채 지원을 하는 편이고, 다소 특성화된 전공일 경우에는 적중률 높은 ‘몇 방’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한편 비이공학도들(일반적으로 법학·금융 계열을 제외한 이들)의 경우에는 이의 2~3배나 이력서를 작성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원하는 분야도 다양했다.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도 많았고, 기업의 규모에 연연하지 않고 ‘무조건’ 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이공계에게 부러운 시선을 보냈는지 모른다.

 

“학부 저학년 때에는 이공계 친구들이 불쌍하기만 했어요. 문화생활도 못 즐기고, 학교 다니는 것에 재미도 못 느끼는 것 같아 보이고, 책도 몇 배나 무겁죠. 게다가 시험기간 아닌데도 계속 시험을 보더라고요. 고등학생 같기도 하고…. 그런데 취업할 때가 되니까 그 친구들이 고생한 결과가 이제 보이는구나 싶은 거죠. 주변에서 봐도 대기업은 거의 이공계 친구들이 가고, 취업 재수하는 친구들을 우리 쪽에서 그런 것만큼 많이는 못 본 것 같아요.”(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전공, ㅂ아무개씨)

“전 취업난을 겪고 힘들게 취업을 했는데, 지금 직장이 대외적으로 좋은 직장이긴 하지만 정말 들어오기 힘들었거든요. 그 때 결심했어요. ‘난 자식 낳으면 꼭 이공계 보내야겠다.’ 솔직히 저희는 2학년 전공 듣고 바로 4학년 전공 들어도 무리가 없어요. 좋게 말하면 적성만 맞으면 공부하기 쉬운 건데,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전문성이 별로 없는 거죠. 다른 과에서 그 수업을 들어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갈 수 있는 직장엔 다른 전공에서 해도 무리가 없고, 그렇다 보니 취업이 힘들어질 수밖에요. 이공계는 배운 것 자체가 전문적이라 그런지 그런 고민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 같아요.” (관광학 전공, 직장인 ,ㅈ아무개씨)

“최근에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했어요. 취업 앞두고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이공계 친구들이 이른바 ‘대기업’에 많이 간다는 걸 수치로 느꼈어요. 이공계 공채 인원이 더 많더라고요. 그리고 저희 쪽은 전공이라고 공부해봐야 전문적이지 않으니까 다들 자격증 시험 보거나 고시로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건데, 이공계는 학부 전공과 관련된 분야로 많이들 가더라고요. 또 대학원 진학할 때 등록금을 연구비로 지원받는다는 것이 부러웠어요. 공부 오래해도 되겠더라고요.” (경영학 전공, ㄱ아무개씨)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이 쪽은 프로젝트 한 번 맡아서 끝내면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주기가 짧다보니 일이 좀 다채로운 편인데 이공계는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좀 단조로워 보이기도 해요. 다만 주변에서 보면 사회 초년생의 초봉이 차이가 꽤 나더라고요. 직종마다 다르겠지만, 그런 면에서 좀 부럽죠.” (의상디자인 전공, ㅈ아무개씨)

 

최대한 전공이 겹치지 않도록 여러 분들의 의견을 들어봤으나, 나오는 대답은 대체로 비슷했다.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이공계생의 이미지는 대략 △ 학부생활은 힘들어 보인다, △ 일찍 정한 진로로 밀고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처럼 보인다, △ 진로 고민이나 취업난에서 자유로워 보인다 △ 공부를 하고자 하면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 학부만 나와도 뭘 좀 아는 것 같다, 정도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공학도들, 터놓고 이야기해보자. 어디 그런가? 밖에서 보는 이런 이미지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상당한 오해가 있기도 하다. 그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내부의 고민을 밖에서는 정말 모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11년 이공학도들의 진짜 고민은 무엇일까, 또 그걸 왜 우리밖에 모르는 것일까.

 

 



우리 고민은요 (1): ‘이공계 전문성’ 학부공부론 턱 없어요, 그렇다고…


 

00univ신기했다. 한 쪽에서는 ‘이공계는 학부 공부만 해도 좀 전문적이다보니’라는 이공계에 대한 외부의 시선을 말해주는 순간에 이공계 석사 출신 취재원은 ‘솔직히 우리는 석사까지 해도 뭐 전문적으로 안다고 안 하지 않냐’고 말했다. 어느 교수님께 들었던 이야기도 떠올랐다. “난 뭐 좀 알 때까지만 공부해보자고 하다 보니 박사까지 했다”고.

 

이공대 안의 우스갯소리 중에 ‘학사는 내가 뭘 모르는 지도 모르고, 석사는 이제야 뭘 모르는 지 알고, 박사는 나만 모르는 줄 알았더니 다들 모른다는 걸 알고, 교수는 어차피 다들 모르니까 내가 맞다고 우긴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왜 밖에선 우리를 ‘뭘 좀 아는 집단’으로 생각하고 그 전문성을 부러워할까.

 

듣자하니 그렇다. 밖에서 본 ‘이공계의 전문성’에 대한 기준은 ‘다른 전공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공학도의 진로가 되는 공정제어나 다른 여러 연구개발 분야에 비이공학도가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공에 비교적 무관하게 다양한 계열로 나아갈 수 있는 비이공계와는 판이해 보인다. 하지만 이공계 내부에서 느끼는 생각은 이와 다르다. 이공학도의 기준은 ‘내가 배운 것으로 내 스스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전문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전문성’ 때문에 이공학도들은 적잖은 고민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기업에서 인턴을 하면서 공부와 취업을 두고 고민을 가장 많이 했고 결국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더 하는 길을 선택했어요. 연구개발 분야로 나아가고 싶지만 학부 수준의 지식으로는 어림도 없고, 기업에서 일하면서 보니 학사와 석사, 석사와 박사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배운 것으로 연구개발에 직접 참여하고 싶었고, 주도적으로 하고 싶었거든요.” (물리학·전자공학 전공, ㅈ아무개씨)

“저 같은 경우에는 순수하게 학문에 대한 열망으로 공부를 더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요. 학부에서 배운 것으로는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만한 수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니까 당연히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수학·물리학 전공, ㄱ아무개씨)

 

그런 고민 끝에 나온 ‘가방 끈을 늘리자’는 결론, 그 때에 봉착한 이들의 실질적인 고민은 따로 있었다. 바로 ‘정보의 부족과 멘토의 부재’다. 대학원에 가겠다고 마음은 먹었다면 주어지는 보기는 세 가지다. 같은 학교의 대학원 진학, 다른 학교의 대학원 진학, 해외 대학원 진학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주위에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먼저 간 선배가 턱없이 부족할 경우, 세분화된 전공과 연구실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없는 경우, 전공을 바꾸어 상위 학위로 진학하려 할 때 공통 분모를 지닌 사람이 주변에 없을 경우에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는 점이다.

 

다소 외곬이 많은 집단의 특성상, 학부 때 생활만큼이나 이후의 유대나 진로에 관한 도움을 얻기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또 연구실이나 각 학교의 환경, 입학 전형 등은 너무나 달라서 마음이 있더라도 정보 부족으로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모든 연구실의 홈페이지가 친절한 것도 아니다. ‘알음알음’ 알아서 해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다니고 있는 학교에 없는 세부 전공으로 대학원을 가고 싶은데 선배 중에 그 쪽 진로를 택했던 분이 아무도 없어서 혼자 조사를 해야 했어요. 만약 취업센터처럼 대학원 진학 관련 스터디나 도움을 주는 그룹이 학부 안에 있고, 그 그룹을 지도하고 중간 과정을 도와주는 지도 교수가 있다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가이드를 잘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수학·물리학 전공, ㄱ아무개씨)

“각 과마다 오프라인 커뮤니티처럼 대학원 진학을 위한 진로반을 만들어서 주 1회 정도 모임을 갖고 교수님과 선배들이 멘토링을 해주면 좋겠어요. 학점이 다 비슷하다는 전제 하에 3학년 후반부터는 정보 싸움이니까, 게다가 나이 차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시선 때문에 마음도 힘들고 그런 고민 끝에 결론을 낸 거잖아요. 그런데 함께 공감하고 위로해주고 이끌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좀 어렵죠. 취업은 그런 커뮤니티나 멘토링이 잘 되는 데 너무 아쉬워요. 또 가방 끈이 길어지면 전문성이 너무 생겨서 취업이 안 될까봐 걱정하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이런 건 직종마다 다르니까 정말 가고자 하는 곳의 선배들이 해주는 조언이 절실한데 물어볼 곳이 없는 게 안타깝죠.” (물리학·전자공학 전공, ㅈ아무개씨)

 

 


우리 고민은요 (2): ‘코딩 막히면 치킨집 간다’ 우스갯소리의 비애 아세요?


 

00job3그렇게 일부는 대학원에 갔고 일부는 취업을 선택했다. 대기업의 문턱이 비교적 높지 않은 이공계에서는 실제로 취업난은 있지만 하계·동계 인턴 이후에 혜택을 받고서 학기 중에 합격하는 사례가 많은 편이다. 기업에 대한 가치관은 개인에 따라 다르니 넘기기로 하고, 상대적으로 ‘좋은 직장’, ‘괜찮은 초봉’으로 시작하는 그들의 진짜 고민은 무엇일까.

 

“동계 인턴을 하고서 4학년 1학기에 대기업에 취업했으니 1학기 수시 합격자 같은 기분이었죠. 초봉 생각하면 ‘돈은 진짜 많이 버는구나’ 싶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는요? 학부 졸업하고 좋은 회사 취업해서 돈 벌지만 그 다음은 잘 모르겠어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라서 잘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빨리 새 직장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 온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꿈이 없어졌다고나 할까. 취업 잘 하려고 그 힘든 공부 했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학부만 나왔으니 내 손으로 뭘 할 수가 없잖아요. 다시 대학원을 간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고. 그래서 후배들한테는 웬만하면 석사 이상하고 취업하라고 권하기도 하는데 그게 옳은 건지는 또 모르겠어요.” (전자회사 재직, ㅈ아무개씨)

“결국 임원진은 ‘경영인’이잖아요. ‘이공계 학부생은 갈아 쓰기만 하면 도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요. 그런 얘기들 많이 하잖아요. 이공대생 취직만 잘 되지 일찍 잘려서 치킨집 차린다는 이야기... 그 이후가 걱정인 거죠.” (화학공학 전공, ㅈ아무개씨)

 

실제로 컴퓨터공학 전공 학생들은 ‘코딩 막히면 치킨집 가서 사장님께 여쭤보면 된다’는 농담을 자주 한다. 정보기술(IT) 붐이 일었을 때 호황을 누리던 업계에서 붐이 사그러들자 젊은 나이에 회사를 나와 대부분 치킨집을 차렸다는 자조적인 농담이다 (특정 업종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이러니 주위에서 ‘취직 잘 되어 좋겠다’,‘초봉이 세서 좋겠다’는 부러움을 들어도 속내는 씁쓸한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이들은 대학원 준비생의 고민처럼 고민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고민이 아니라는 점이 더 답답하다고 말했다. 듣는 나도 답답해졌다.

 

“취업동아리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얻기 쉬워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진짜 알고 싶은 건 입사해서 해야 할 업무인데, 취업이 확정되어도 그 때부터 또 걱정인 거예요. 내가 가서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내가 여태 배운 것이 실무에 어떻게 쓰일지 모르고, 안 쓰일지도 모르고요. 그렇게 모르는 채로 입사하면 먼저 도태될 것 같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아무래도 특수한 기능을 많이 요구하는 직종이라서 걱정이 더 한 것 같아요.”(산업공학 전공, ㅂ아무개씨)

 

습득 속도의 경쟁.... 학부를 아무리 고되게 다니고 치열하게 공부했어도 스스로 결과를 낼 수 없는 ‘학사’로는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지식의 습득과 기능의 응용이 필요하고, 이에 도태되고 꿈까지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2011년 취업 잘 되는 이공학도의 마음이다.(이어짐)

(이어짐)

00univ2축제조차 사치인 청춘. 늦은 밤 축제 행사가 한창인 지난 5월의 어느날 서울시내 한 대학교의 도서관 유리창에 야외무대에서 벌어지는 연예인의 화려한 공연 모습이 반사된다. 홀로 도서관에 앉아 공부하는 한 대학생의 뒷모습은 스펙쌓기·경쟁·취업난 따위에 짓눌린 우리네 청춘의 초상이다. 한겨레 자료사진(2011)

 

 

 


우리 고민은요 (3): 더 넓은 세상, 왜 우리는 모르고 살아야 하죠?


 

00social취업 시즌이 되니 이상하게 날 찾는 사람이 많아짐을 느꼈다. 연일 쇄도하는 문의 전화(?) 때문이다. 사실 나도 뭘 잘 알거나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같이 공부하면서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고 듣는 것도 많아 보이니 물어보고 싶었나보다. ‘자기소개서는 이렇게 쓰면 어때? (글 쓰니까 잘 알겠지?)’, ‘요즘 시사 이슈는 어떻게 공부해? 어느 정도로 알면 될까? (언론사 준비하니까 잘 알겠지?)’, ‘나도 신문도 좀 보고 문화생활도 좀 할 걸…. 내가 이렇게 무식한 줄 몰랐어.’

 

비이공계인들이 보는 이공계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예외인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이공학도들이 ‘내 공부’ 바깥에서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새나 기타 분야에 대해 문외한인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 여태 왜 그렇게 모르고 지냈냐고 물으니 “바빠서”라는 대답이 지배적이다. 당장 과제 있고 시험 있고 또 과제 있고 팀 프로젝트 있고 또 시험인데 언제 다른 데 관심을 가지랴! 그리고 유난히 문화에 대한 부담을 표했다. ‘거창한 것’, ‘나처럼 공부하는 애들이 알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럼 이 악순환을 끊을 수는 없는 건가?

 

“이공계 온 것은 후회가 없는데 이런 생활 때문에 생기는 아쉬움은 있죠. 나름대로는 다른 이공대생들에 비해 많이 세상을 즐기는 편인데도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으니까.” (컴퓨터공학 전공, ㄱ아무개씨)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공연이나 영화, 읽고 싶은 책 있어도 실컷 ‘위시 리스트’에 적다가 자조적으로 읊어요. ‘그런데 다음 주에 시험이지? 내일까지 과제 있지? 안 될거야, 아마….’ 자꾸 포기하게 되는 거예요. 이 걸 참아야 내가 해야 할 분량의 공부를, 시험 준비를, 과제를 해내고 그래야만 하니까. 그런데 이게 ‘학점의 노예’ 뭐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게 보통의 이공대생들이 공부하는 양이니까 그런 거예요. 여기서 학점까지 잘 받으려면 개인 생활은 거의 다 포기해야죠. 그런 괴물들이 많아요.” (전자공학 전공, ㄱ아무개씨)

 

혹자는 이러한 악순환이 이공학도들을 자꾸 ‘혼자 노는 문화’로 빠뜨릴 수밖에 없다고도 말한다. 뭔가로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하는데 내 시간은 물론이고 친구 시간도 없다. 그러니 혼자 방 안에서, 혼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틈틈이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에 빠지게 되고, 이 때 찾게 되는 것이 스포츠 중계, 게임, 아이돌, 애니메이션 등이 주를 이루는 것이 사실이다 (방향은 좀 다르지만 비슷한 소재를 공동필진 이은지 님이 다른 글에서 다룬 적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마니아적 성향’, ‘오덕후’로 이들의 문화를 규정하기는 무리가 있다. 이러한 문화를 향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이공학도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졸업반이 되니, 사회나 문화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고 자꾸 안으로 파고드는 성향에 대해 많은 반성을 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문화라는 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곳의 다양한 사건들이 모두 문화인데 이전에는 ‘문화생활은 사치’ ‘영화라도 보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그래도 이러한 문제가 이공계 전체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인데, 좀 학교 측에서 신경 써주면 안 될까 싶기도 해요. 공부는 알아서 하니까 이런 거라도. 주변에서 보면 공부 성향 때문인지 시사나 문화도 공대 공부처럼 하려는 애들이 많거든요.(웃음)” (기계공학 전공, ㅂ아무개씨)

“우리도 혼자만 즐기고 만족하는 것이 아닌데다, 다른 분야에 대한 욕구가 항상 있지만 못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를 보고 ‘무식하다’, ‘세상 물정 모른다’, ‘오덕후다’라고 칭하는 게 사실 인정하면서도 속이 많이 상해요. 문제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문제라고 생각해도 해결이 될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화학공학 전공, ㄱ아무개씨)

 

우리가 문외한이라는 사실을 아는데, 우리도 다른 세상을 알고 싶은데, 그 갈증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또 참아야 하는 이공학도들.... 그들은 오늘도 빠듯한 수업 일정을 소화하고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도서관을 찾아야만 한다. 이렇게 가을 날씨가 좋은데 말이다.

 

 

 


이공계생의 속이야기를 함께 고민해줄 곳은?


 

00bicycle이공학도들의 고민을 듣고 같이 고민했다. ‘그럼 우리 어떻게 해야 할까? 뭐가 제일 필요할까?’를 놓고 토론 아닌 토론도 했다. 밖에서 보는 이공계라는 집단의 겉모습과 너무 다른 그들의 내부적 고민을 보면서 마치 이공학도들이 가슴앓이만 하던 조선시대 며느리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왜 우리의 이런 고민들을 밖에서는 모르는 걸까?

 

밖에서 보는 이공계라는 만들어진 이미지! 어쩌면 이 이미지는 ‘이공계 기피 현상’, ‘이공계 지원 사업’, ‘이공계 꿈나무’ 등등 이공계를 뭔가 특별한 집단으로 거듭 정의한 사회가 한 일이다. 속사정을 솔직하게 알지 못한 채 ‘이공계는 이러니까 분명히 이럴 것’이라고 수박 겉핥듯 이공계를 대해온 사회와 그런 기대를 한 몸에 받기 때문에 진짜 속이야기를 내놓지 못한 이공계가 동시에 가진 오랜 염증이 아닐까. 또 이공학도들이 인정하듯 사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스스로의 생각과 목소리를 낼 기회도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양한 활동들이 이공학도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부분은 이공학도를 사회 문제로 끌어들이고 같이 생각해볼 시간을 가지려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일부는 그러한 활동들에서 ‘나도 사회 구성원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껴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더 큰 갈증이 내부에 생겼다. 여태 그런 활동을 하지 못했던 그들 자신을 되새기고 성찰하는 시간은 정작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양한 고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원래 이렇지. 이공계니까’ 라고 틀 안으로만 고민을 삭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우선되지 않은 그 어떤 분출도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는 없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 이 글이 또 새로운 고민과 논의(어쩌면 악플)의 시발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고민과 논의가 이공계를 깨우고 염증을 터뜨리는 바늘이 될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다소 위험할 수 있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불편해서 자꾸 피했던 집단 스스로에 대한 성찰, 그로부터 시작해서 고민을 자꾸 꺼내보자.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진짜 목 마른 것은 무엇일까? 이것이야말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과학기술인이 되기 위해 가장 우선해야 할 ‘젊음의 특권’이 아닐까.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최근기사 목록

  • 망망대해에서 나의 진로 방향 찾기, 연구 분야에 대한 고민망망대해에서 나의 진로 방향 찾기, 연구 분야에 대한 고민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상엽 | 2017. 05. 30

    이상엽의 “로봇공학도, 대학원 입시 앞에서” 로봇공학자를 꿈꾸는 이상엽 님이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며 겪는 경험과 고민을 독자들과 나눈다. 도움 되는 진학 정보와 더불어, 자신을 돌아보며 삶의 길을 선택하는 문제, 학문을 대하는 태도의...

  • “한편으론 억울했다, 왜 이공계에선 인문학을 배울 수 없었나”“한편으론 억울했다, 왜 이공계에선 인문학을 배울 수 없었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윤기성 | 2017. 04. 18

    윤기성의 “이공계 대학생, 우리 삶의 이야기” 고등학교 이과를 졸업하고 대학 화공과에 들어와 어느덧 졸업학년을 맞이한 윤기성 님이 이공계 대학생들이 흔히 겪는 삶의 경험과 고민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1] 이공...

  • 로봇공학 배움의 길에서 마주친, ‘나’에 관한 물음들로봇공학 배움의 길에서 마주친, ‘나’에 관한 물음들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상엽 | 2017. 04. 13

    이상엽의 “로봇공학도, 대학원 입시 앞에서” 로봇공학자를 꿈꾸는 이상엽 님이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며 겪는 경험과 고민을 독자들과 나눈다. 도움 되는 진학 정보와 더불어, 자신을 돌아보며 삶의 길을 선택하는 문제, 학문을 대하는 태도의...

  • “과학자는 과학-사회 상호작용도 고민하는 사람”“과학자는 과학-사회 상호작용도 고민하는 사람”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박나영 | 2017. 04. 11

    박나영의 “과학을 공부하며, 과학과 사회를 고민하며” 이공계 대학생들의 연합동아리인 큐브(CUBE)는 인간, 사회, 자연을 생각하는 ‘이공계 3차원 지식공동체’를 슬로건으로 내건다. 큐브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과학과 사회에 관해 새로운 생각...

  • 요리하는 마음, 실험하는 마음요리하는 마음, 실험하는 마음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조범식 | 2016. 09. 02

    조범식의 ‘후배에게 들려주고픈 실험실 이야기’  “이 글을 통해 학부생연구원으로 살았고 2016년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나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고, 그래서 후배 아닌 자연과학 학부생들이 이 글을 통해 실험실을 선택하거나 ...

자유게시판 너른마당

인기글

최근댓글

트위터 팔로우

sub2 untit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