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숱한 과제에 시달리고 퀴즈에 쫓기고 실험실에서 죽치는 생활엔 힘겨움과 고민도 숨어 있지만 이공계의 젊음은 여전히 팔팔하고 꿈도 많다. 다양한 갈래의 이공학도들이 그 희노애락의 이야기를 전한다.

[연재] 감성 메마른 이공학도? 편견이죠, 표현이 다를뿐!

:::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24)


--- 감성 또는 감수성에 관해

00wearablecomputer » 카이스트에서 개최되는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 경진대회. 사진/ 카이스트, http://newspr.kaist.ac.kr/

 



성 또는 감수성..., ‘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성질’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이는 사전적인 의미이고, 실제로 우리가 일상의 대화에서 감성이나 감수성이라는 말을 쓸 때 그것은 아마도 다소 ‘풍부한 감정을 느끼며 표현하는’ 무언가를 추상적으로 의미하는 것 같다. 흔히 “이공학도는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감수성이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후자의 의미로 생각하기에 이공학도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그런 것은 아닐까?

 

희한하게도 이공학도들은 외부에서 자신들을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하는 줄 거의 모르고 있다. 안다 한들 “그건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고 웃고 넘기고 만다. 그래서 한 번쯤 터놓고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많은 이공학도들한테서 그들의 감수성에 대해 듣고 싶었다. 정말 그들은 메마른 사람들일까.

 

한 동안 이공학도들 사이에 유행하던 우스개 이야기인 ‘공대남과 사귈 때 여성이 숙지해야 할 매뉴얼’에서는 공대남이 여자 친구를 대하는 태도가 마치 ‘문제를 해결하는 엔지니어’ 같이 그려져 이공학도들에게 큰 재미를 선사했다. 많은 공대남들과 그들의 애인들로부터 공감을 끌어냈지만, 어딘가 모르게 씁쓸함이 남았다. 정말 이공학도들은 감수성의 가뭄을 겪고 있는 것일까?

 

 

 


감수성을 키울 수 없는 교육과정의 특성?


 

00kaistcomputer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 밖으로 다양했다. ‘사실 그렇다’고 인정하는 이공학도부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인문학도까지. 이공학도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이들이 지닌 공통된 의견은 ‘학문의 특성이 그러하고, 교육과정이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그들의 감수성 퇴화는 만들어진 것일까?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이공학도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해요. 저는 신문방송학을 공부하는 인문사회학도이고, 그래서 사람을 많이 만나고 관찰해요. 그런데 이공학도들에게는 감성적인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껴져요. 전공에 따라 그렇게 다른 성향을 나타내는 것을 두고 생각해보면 공부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공계생은 아무래도 공부의 방향이 이해력을 키우고 이해한 것을 응용하는 데에 맞춰져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감성적이던 사람들도 그런 방향으로 오래 공부하다 보니 감성이 퇴화하는 것이 아닐까요. 또 공부에 들이는 시간이 많아서 외골수의 성향이 깊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고은경,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학생)

“모든 이공학도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교육 환경의 탓으로 사고가 좀 기계화되었다는 생각은 들어요. 단적인 예이지만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아주 감성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공계 친구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더라고요. 이공계 교육 자체가 학생들에게 ‘X를 넣으면 Y가 나와야 한다’고 가르치고, 그 방법으로만 생각하도록 끌어 가잖아요. Y가 안 나오면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고치게 말이에요. 사실 X도, Y도, Z도 나올 수 있는 게 감정이고 사람 사는 세상인데 말이에요. 이공학도들이 대체로 그걸 인정하지 않고 오류로 받아들이는 건 사실이에요.” (이승재, 신문방송학 전공자, SNS 매거진 종사)

 

부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의 이야기를 들어보다가, 나의, 우리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같은 언어 영역을 공부해도 문과 친구들과 이과 친구들은 달랐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이과 친구들은 문학보다 비문학에 강했다. 서술이 완결적이고 원인과 결과가 확연해야지 쉽게 이해했다. 문과생에 비해 이과생은 수학을 두 과목이나 더 공부해야 해서 사회에 눈을 돌릴 겨를이 별로 없었다. 또 서술형 문제에는 약했다.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답이 나오는 공부를 하고 있으니 시험을 보는 그 순간에 내 학점을 예측할 수 있다. 그래서 인문사회계열 친구들에게 “시험지를 보자마자 재수강해야겠다고 생각했어”라고 말하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관점도 다양하고 답이 다양할 수밖에 없어서, 교수님이 주시는 점수가 내 점수야.”

 

그렇다. 이공계의 공부는 ‘설령 모르더라도 내 생각을 답으로 쓰고, 그것의 타당성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이 명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에 맞는 답’을 내지 못한다. 창의성과는 별개의 문제로 학문을 다루고 접근하는 방법이 빠른 이해와 응용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감성’이라는 애매모호한, 스스로도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은 어쩌면 이공학도의 사고 알고리즘에 없는 항목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공학도는 감수성이 메말랐다고 보이는 것이 아닐까.

 

“봄에 개나리꽃을 교탁에 올려놓았더니 교수님이 휴강을 해주시면서 ‘오늘 과제는 그리운 사람에게 메시지 보내는 거다’ 하셨어요. 우리는 모두 ‘소름 돋을 정도로 감동’이라는 반응이었는데 이공계 친구들에게 물으니 반응이 싸 하더라고요.” (김민채,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학생)

 

 



"감수성이 아닌 표현력의 문제"


 

00ballet이는 감수성보다는 표현력의 차이에서 오는 편견이라는 이공학도들의 반응도 있었다. 그들의 공통된 의견은 ‘이공학도들은 그들의 감성을 잘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어휘를 통해 그들이 느끼는 바를 설명하고 누군가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기보다는 맞는 답을 알려주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데에는 앞서 이야기해준 인문사회학도들의 의견에도 공감하는 눈치였다.

 

“이공학도들이 감수성이 메말랐다고요? 천만에요. 만취하면 공돌이(공학을 공부하는 남학생들을 일컫는 말)들이 시를 얼마나 잘 읊어대는데요. 늘 그렇지 않으니 감수성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거죠. 아무래도 이성적인 사고를 많이 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모양인데, 사람이 생각을 이성적인 생각과 감성적인 생각으로 나눠놓고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제 생각엔 감성이나 추상적인 느낌을 표현하는 데에 이공학도들이 미숙한 부분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공계에서도 전공 외의 책을 많이 읽으면 표현력이 좋아지니까요. 그리고 좀 더 현실 분석적인 시선을 택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생각의 흐름을 현실적인 방향으로 잡고 그러한 생각들을 하고 의견을 내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죠. 감수성이 메말랐다는 건 편견일 뿐이에요.” (김솔,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학생)

“감수성의 범위를 어디까지 잡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편적인 범위에서 ‘감수성’이라면 이공학도들이 감수성이 없다고 보일 수도 있겠네요. 사전적으로 감수성이 자극을 받아들이는 민감도 정도라고 하는데, 인간은 자극에 대해 반응을 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이공학도들은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적은 게 문제인 거죠. 이공학도들이 그런 표현의 기회에 늘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니까 어떠한 자극을 받아도 그것을 표현할 방법의 가짓수가 인문사회학도들에 비해 적다는 거죠. 또 감성을 억제하고 이성을 앞세워 현실을 파악하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자극을 받아들이는 정도(역치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네요)가 인문사회학도보다 높을 수도 있고요.” (하세용, 서울대 인지과학통합과정 대학원)

“누구나 새벽에 혼자서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에 잠길 때는 감수성이 폭발할 거예요. 누구나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거라는데, 이공학도들은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이태호, 한양대 전자공학과)

 

에서도 말했듯 많은 이공학도들이 문학보다는 비문학을 쉽게 공부했다. 주기율표는 잘 외우면서도 등장 인물이 많은 소설은 읽기 어렵다는 친구들도 여럿 봤다. 대부분 이공학도들이 문학 작품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를 통해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거나 함축적 의미를 전달하며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수식어를 잔뜩 곁들인 서술을 읽기보다는 문제 해결 방법을 도식화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공학도들의 현실 분석적 사고가 이들을 감수성 없는 집단으로 보이도록 하기에 충분했다는 이야기도 일리가 있다. 인문사회학도들이 현실 감각 없는 이상주의자라는 것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에너지에 관해 토론을 하면서도 ‘물론 좋지만 현재 기술 수준과 국내 상황을 미루어볼 때’ 라는 말로 의견을 말하는 이공학도들은 아름다운 것, 행복한 것, 따뜻한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상황을 개선해야 하는 이공학만의 접근 방식으로 상황을 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를 ‘좋게’ 변화시키려는 공학, 이공학도 나름의 감성 표현 방법


 

00iphone이공학도와 감수성의 관계를 생각하며 많은 이들과 대화를 해보다가, 아주 멋진 말을 들었다. “꽃의 향기가 어떻게 나는지 공부한다고 해서 그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앞서 들은 모든 이야기들과 그를 통해 내린 결론들을 모두 한 문장으로 정리한 것만 같은 명쾌한 문장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다. 많은 이공학도들은 아름다움을 분석해서 그 아름다움을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설명하는 또 다른 방법을 찾는 일을 할 뿐이다.

 

혹자는 이런 이공학도들의 사회 접근 방법이 ‘그들 나름의 감성 표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공학도들은 시각장애인 영화를 보고 ‘마음도 아프지만 내가 공부한 것으로 상황을 개선시켜주겠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가장 불편하고, 가장 힘든 일들을 바꿔보려는 노력이 그들 나름의 표현이자 감수성의 표출이라는 것이다.

 

티브 잡스도 우리나라에서 공부했다면 이공학도로 불렸을 테다. 하지만 그의 애플은 ‘감성 공학’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의 모바일 기기를 주름잡았다. 그 누구도 “잡스에게 당신은 이공학도이고, 감성적이지 못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전부터 있었던 휴대용 음악 재생 기술에 문화적 욕구를 덧붙인 것이 그 성공 요인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물론 그에게는 우리나라 이공학도들과는 조금 다른 개인사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의 제품들은 또한 이공학도인 잡스 나름의 감성 표현 방법은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감수성이라는 의미의 범위를 지극히 문학적이고, 인문학적인 것으로 제한해서 보았다면 이제는 이 범위를 좀 더 확장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공학도들의 감성 영역에서 그들만의 방법으로 자유롭게 감성을 표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이것이야말로 감성적인 이공학도를 키우고 ‘과학적 감성’이 태동하는 미래를 꿈꾸는 출발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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