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줄기세포, 만능이 될까?
아줌마들의 과학 수다
마흔한 번째 이야기- 줄기세포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요즘 내 간이 영 시원치 않네. 그래서 돼지 몸에서 내 간을 키우고 있는 중이야.’, ‘지난 해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는데 줄기세포로 꾸준히 치료하고 있어서 이젠 휠체어가 필요 없을 것 같아, 내 복부에서 지방을 떼어내 줄기세포를 추출했더니 덕분에 배도 좀 날씬해진 것 같군.’, ‘우리 집 애완견을 복제해서 딸 결혼할 때 한 마리 주려고 해.’, ‘지금 내 머리카락은 더 이상 대머리용 가발이 아니야. 머리 색깔까지 생각해서 줄기세포를 이식했다니까.’ 이런 대화가 더 이상 완전한 상상만은 아닐 수 있다. 현재 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구성과의 속도를 보면, 몇 년 또는 몇 십 년 내에 이루어질 수도 있는 일들이다. 이런 일이 현실이 된다고 해도 반갑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세포를 재생하는 우리몸의 줄기세포들
지원 : ‘줄기세포’라는 단어가 워낙 친숙해서 ‘내가 뭔가 좀 알고 있나?’ 하는 착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번 기회에 꼼꼼히 알아보니 줄기세포에 대해 완전 무식하더라고요. 사실은 전문적인 학술용어인데 내가 안다고 착각했던 것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줄기세포가 무엇인가부터 얘기하는 게 좋겠어요.
문영 : 줄기세포는 아직 특정 조직의 세포로 분화되지 않은, 그렇지만 모든 또는 어떤 세포나 조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본이 되는 세포를 말하는 거예요. 매번 때를 밀어 피부세포를 벗겨내도 새로운 피부세포가 만들어지고, 몸의 어디가 병이 들어도 어느 정도는 스스로 알아서 치료가 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간의 반을 떼어줘도 또 원래 크기만한 간이 만들어지는 것도 내 몸 안의 줄기세포가 열심히 일하고 있기 때문이죠.
인숙 : 우리 몸에서 이미 활동하고 있는 줄기세포를 성체줄기세포라고 해요. 신체의 각 기관별로 고유의 줄기세포가 있는데 골수, 신경세포, 조혈모세포 같은 거죠. 이런 성체줄기세포는 몇 가지 세포로 분화할 수 있어요. 배아줄기세포가 모든 세포로 다 분화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과는 다르지요. 하지만 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오히려 특정 세포로 분화할 수 있어서 암세포로 분화할 위험이 적고 안정성이 높아요. 자기의 줄기세포를 자기가 쓰는 경우가 많아 면역거부반응에 대한 염려도 없고요.
동수 : 제대혈에서 얻을 수 있는 혈액에서도 줄기세포를 찾을 수 있는데 이것도 성체줄기세포에 속해요. 제대혈은 얻는 것이 비교적 쉽고 분화 능력이 성체줄기세포보다 좋다는 장점이 있어요. 게다가 제대혈은행에 보관해두면 자신도 다른 사람도 사용할 수 있어 유용한 방법이에요. 다만 양이 너무 적다는 한계가 있지만요.
문영 : 일단 성체줄기세포는 배아를 파괴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러니까 윤리적인 문제가 없다는 게 안심이에요. 게다가 자기의 세포에서 추출한 것은 면역거부반응도 없고요. 배아줄기세포보다는 분화할 수 있는 세포의 영역이 좁지만 그 점이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조금 줄여주는 장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쨌든 배아줄기세포에서는 배아를 파괴하고 줄기세포를 얻는다는 게 영 편하지가 않아요.
배아줄기세포는 전지전능?
지원 : 난자와 정자가 수정해 세포분열을 시작하고 배아가 되면 여기서도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어요.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데 많이 쓰이고 있는 방법이 시험관아기 같은 불임치료 시술을 위해 수정시킨 수정란 중에서 자궁에 이식하고 남은 나머지 배아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보통 이렇게 남은 배아는 임신에 한번 실패하면 또다시 시도할 때 사용하기 위해 초저온에서 냉동 보관을 해두지요. 부부가 결정하고 동의할 때에만 줄기세포를 얻은 수 있는 건 당연하고요.
인숙 : 수정란을 다음 임신을 위해 저장해두고, 필요에 의해 사용과 폐기를 결정한다는 게 좀 꺼림칙하군요. 생명을 무시하는 느낌이랄까? 무엇이 생명이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생체를 실험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무감각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수 : 그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가 사람마다 어마어마하게 크더라고요. 그 수정란을 생명이라고 인정하는 기준이 나라에 따라, 종교에 따라, 법의 종류에 따라 다 다르더군요.
문영 : 또 한 가지 방법은 여성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에 환자의 체세포를 주입해서 만든 배아에서 복제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것이에요. 황우석 박사가 발표한 방법이지요. 복제양 돌리도 같은 방법으로 태어난 거예요. 자세히 말하면 1번 양의 젖샘 체세포의 핵을 2번 양의 핵을 제거한 난자에 주입해 배아를 만들어요. 이 배아가 세포분열을 계속해 배반포를 형성하면 3번 양에게 착상시켜 임신하도록 했고요. 이렇게 출산한 것이 돌리에요. 세포의 핵에 디엔에이(DNA)가 들어 있기 때문에 돌리는 1번 양의 복제인 거에요.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복제소 영롱이가 태어났고 복제개 스너피도 태어났어요. 이 결과도 황 박사 팀에서 이룬 결과이고요.
동수 : 복제배아줄기세포를 만들 때나 복제동물을 만들 때나 마찬가지로 핵을 제거한 난자에다 다른 개체의 체세포의 핵을 융합해 수정란을 만드는 방법은 모두 같아요. 다만 복제동물을 얻기 위해서는 동물의 자궁에 착상시키고, 배아줄기세포를 얻기 위해서는 실험실에서 배양시킨다는 거죠. 황우석 박사에 대한 불신은 아직도 팽배하지만 복제수정란을 만드는 기술 부분에서는 노하우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은...
인숙: 우리나라 사람들의 줄기세포에 대한 관심은 연구 자체에 관한 것보다 우리나라가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연구결과에 대한 기대는 과대 포장되었고 한 연구자를 나라의 대들보인 양 치켜세우게 되었지요. 결국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게 돌아왔지만 투자된 연구비만큼 줄기세포 연구의 발전도 있었다는 평가도 있더라고요. 연구자의 획기적인 연구결과에 대한 평가는 비슷한 연구를 진행하는 동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그 부분이 민감하지요. 경제적 이득과 선점기술이라는 측면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되면, 황우석 사건에서 우리가 익히 들었던 근거 없는 많은 말들이 실제인 양 떠돌게 되고, 무엇이 진실인지 대중을 혼란에 빠트리고 과학이라는 논리와 합리에 불신을 갖게 하는 벽을 만들게 되지요.
지원 : 황우석 사건에서 문제가 됐던 2004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 속의 인간 복제배아줄기세포 1번에 대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특허 등록을 받았어요. 이건 인간 복제줄기세포를 이용해 난치병 치료나 신약을 개발하면서 생기는 이익이나 기술료를 받는 권한을 가졌다는 의미에요. ‘특허와 논문은 다르다’는 것이 학계의 분위기라고는 하던데, 저는 잘 몰라서 그런지 줄기세포 2~12번은 조작이지만 1번 줄기세포는 복제한 것이 맞다는 것이 왜 이해가 안 되지요? 특허권을 가지는 데도 역할이 컸겠지만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문제를 토론의 장에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요. 게다가 연구자들이 과학의 발전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연구윤리를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됐을 거예요.
문영 : 냉동 배아줄기세포는 해동 과정에서 손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고 줄기세포를 이식했을 때 면역거부의 가능성도 있어요. 복제배아줄기세포는 이런 문제를 극복했을지 모르겠지만 배아를 파괴한다거나 인간을 복제한다거나 하는 윤리적 문제를 피해갈 수 없어요. 게다가 배아줄기세포는 모든 세포로 분화할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곳에서 세포분화가 활발히 이루어져 암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동수 : 간간히 언론을 통해 들리는 줄기세포에 대한 기사들은 정말 희망적이게도 생각되고 기이하게도 생각돼요. 지난 6월 줄기세포를 활용해 인간 장기와 크기와 성질이 가장 비슷한 돼지의 몸에서 인간 장기를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봤어요. 역분화 줄기세포를 이용해 동물의 몸에서 인간의 장기를 생산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하더군요. 이 연구팀은 인간 혈액을 생성하는 돼지를 만드는 것은 이미 성공했다고 했어요.
지원 : 실용화되기까진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왜 기쁘게만 들리지가 않죠? 하지만 만약 내가 환자의 입장이라면 돼지의 장기든 소의 장기든 치료가 절실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게다가 이번 성과는 배아줄기세포가 지닌 윤리적 한계와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역분화 줄기세포를 이용한 것이어서 더 의미 있기도 하고요.
인숙 : 배아줄기세포에서는 항상 윤리라는 문제가 붙어 다녀요. 사람의 난자 사용을 규제하니 미국과 한국의 연구자들은 소의 난자에 인간의 체세포를 결합시키는 실험을 시도했다고 하더라고요. 보통 세포는 핵과 세포질로 이루어져 있고 핵이 99%의 유전 물질을 가지고 있고 세포질 속의 미토콘드리아에 1%의 유전물질이 있다고 해요. 성공하지 못했다니 사람과 소의 유전자 조합으로 만들어질 괴물의 탄생이 막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많은 안타까운 환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서 불행이라고 해야 하나? 생명의 윤리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네요.
문영 : 사람을 납치하거나 미성년을 통해 강제로 임신하게 해 장기를 얻는 잔혹한 상황이 지구 한켠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더 윤리적이고 인간적인 것인지, 돼지나 소의 장기를 얻어 회복하는 것이 더 윤리적이고 인간적인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기대와 희망에 섞여 있는 복잡한 문제들
지원 :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가 주는 희망은 너무 찬란해요.
동수 :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줄기세포 치료제가 얼마 전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품목허가 심사를 통과해 9월쯤 시판된다는 기사도 봤어요.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세계적으로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치료제가 상용화되는 것은 세계에서 첫 번째라고 하네요. 우리나라에서 허가 바로 전 단계인 임상시험 단계에 있는 줄기세포치료제도 22개 제품이 있다는 군요.
지원 : 이번에 심사를 통과한 치료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논란이 있어요. 이 의약품의 안전성과 검증이 미흡하다는 거죠. 이 치료제가 어떤 장기나 세포를 새로 분화시켜주기보다는 심장세포의 활동을 촉진시켜주는 정도의 효능만 있다는 것과 임상실험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 부작용에 대한 검증이 미흡하다는 것에 대한 지적과 논란이 있었어요.
동수 : 어쨌든 줄기세포로 가장 기대하는 분야는 난치병을 치료하는 분야일 거예요. 실제로 도파민 조절이 관건이 파킨슨병은 상당히 진척이 있다고 해요. 앞으로는 치매까지 치료하는 것도 연구하고 있고요.
문영 : 많은 환자들이 중국과 일본에서 자가줄기세포 치료를 받고 있더군요. 우리나라에서 환자에게서 세포를 채취해 줄기세포를 배양하고, 이 줄기세포를 해외로 보내 시술은 해외에서 한다는 거예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줄기세포 치료가 임상시험 중이라서 법제화되기 전이기 때문이라고 해요. 안전성을 꼼꼼하게 검증하는 것도 필요해 보이고, 이웃 나라처럼 절차를 간소화해서라도 줄기세포 치료를 받도록 해서 환자의 절박함과 세계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는 것도 필요해 보이고, 아~ 이 결정도 어렵네요.
인숙 : 하지만 줄기세포의 양을 늘리는 ‘배양’ 같은 과정이 없는 줄기세포의 이용은 합법이라고 하더라고요. 주로 탈모 치료, 피부 세포 재생, 가슴성형 같은 분야의 광고나 홍보물에서 줄기세포 치료라는 단어를 본 기억이 나요. 문제를 만족할 만큼 해결해줄까 라는 의심이 먼저 들지만 그래도 다른 방법에 비해 자신의 세포를 재이용하는 것이니까 시도해볼 만한다는 생각도 들기도 해요.
동수 : 식물도 씨눈이나 뿌리 끝에 줄기세포가 존재해서 이 부분의 체세포 복제로 증식이 가능하다고 해요. 그러면 멸종 동식물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문영 : 살아가면서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줄기세포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수록 줄기세포가 가져다줄 미래는 정말 양면이 공존한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뭔가 성과가 나고 이루어지면 좋은 것 같은데 그 안에 복잡한 문제가 너무 많이 숨어 있어 판단이 어렵네요.
지원 : 우리가 이야기한 많은 일들이 현실이 된다면,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싸우는 두 엄마 앞에서 미래의 솔로몬은 이런 판결을 내리겠네요. ‘이 아이를 복제해 나누어 가지도록 판결한다. 쾅쾅쾅’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