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숱한 과제에 시달리고 퀴즈에 쫓기고 실험실에서 죽치는 생활엔 힘겨움과 고민도 숨어 있지만 이공계의 젊음은 여전히 팔팔하고 꿈도 많다. 다양한 갈래의 이공학도들이 그 희노애락의 이야기를 전한다.

[연재] 미드 '빅뱅이론'의 괴짜, 우리 이공계생의 자화상?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16)


00bigbang2 »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은 괴짜스러운 공대생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공학도, 그들이 ‘공대스러운’ 이유


00test2 » 문과와 이과 판별 테스트(?). 맨 오른쪽 줄의 단어를 보면 당신은 어떤 의미가 먼저 떠오르는가? 당신은 문과 성향인가, 이과 성향인가? (▶ 리튬 철 인산염 LiFePO4은 존재하지만 LiFe(철화리튬 또는 리튬철)이라는 화합물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곳에 나오는 LiFe, 리튬철은 유머의 하나로 읽어주세요)

‘공대스럽다’, 또는 ‘공대 냄새 난다’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 이 말은 꼭 공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라 그와 비슷한 특징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종종 통용되는 형용사이다. 하나의 관용어로 자리 잡았을 정도로 ‘공대’라는 말은 강렬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전공이 국어국문학이든 사회학이든 기계공학이든, 전공 과목을 많이 듣고 과제에 찌들어 사는 건 모두가 매한가지인데 왜 이공계, 그것도 공대에만 ‘너드(nerd, 괴짜, 얼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공대생 이미지가 괴짜인 이유(혹은 진짜 공대생이 괴짜인 이유!)를 탐구해보았다.




드라마 '빅뱅이론'으로 본 ‘공대생 스타일’


일반적으로 ‘공대생’이라 하면 어떠한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외모에는 신경쓰지 않은 꾀죄죄한 옷차림으로 실험실에서 밤을 새고, 사회에는 무관심하며 오로지 자기 관심사에 몰두하는 사람이 연상된다. 이런 모습은 흔히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매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 대표격은 인기를 누리는 미국 드라마 <빅뱅 이론(The Big Bang Theory)>이다.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의 주인공은 칼텍(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천재들이다. 이 드라마는 공대생의 이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그런 이미지의 재생산에도 크게 일조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포인트는 아마도 등장인물들 사이의 대화가 사회적, 상식적 맥락을 벗어나 오로지 이·공학적 지식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모습일 것이다. 그들은 “이 음식 참 맛있다”는 말에 그 음식의 분자 구조를 설명해버린다. 당연히 자기들끼리만 몰려다닌다.


00bigbang » 드라마 `빅뱅이론'.

그들에게 과학이란 그들의 삶이다. 그들은 자기 분야를 너무 사랑하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생기면 몇날 며칠을 그것에만 몰두한다(그 모습 또한 웃음을 자아낸다). 예컨대 입자의 운동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식사 중에 콩을 다 쏟아 부어버리기도 한다. 게다가 '판타지 오타쿠'(오타쿠는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라 날마다 게임과 만화책에 묻혀서 살기도 하며, 좋아하는 장난감을 갖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목숨을 건다. 그외의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들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로 ‘외부’ 사람들과 대화할 주제가 없다.


너드(nerd)는 사회에서 동떨어져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추구하는 사람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을 너드(nerd)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싫어한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빅뱅이론’은 공대생 아닌 이들에게도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생각하고 행동하나 하며 신기해한다나. 반면에 공대생들 사이에서는 ‘공감 드라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대 깊숙한 곳에는 정말 이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도 있던데…. 어찌 되었건, 이제 이공계 사람들은 왜 이런지 생각해보자.




학문 접근법의 차이, 이공계 ‘오타쿠’가 많은 이유?


00nerd » ‘빅뱅 이론’ 시즌3의 한 장면.

처음 인문학 교양 수업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떠오른다. 수업 말미의 질의응답 시간에,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선생님께서 제시한 이론이나 의견에 이견을 나타내는 이 광경은 전에 겪어본 적 없는 이색풍경이었다. 어떻게 주어진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단 말인가? 나의 지식이 충분하지 못하여 문제제기가 쉽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읽기, 말하기의 패러다임이 나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인문학은 흔히 ‘비판적 자기 성찰을 하는 학문’으로 여겨진다. 인문학을 공부할 때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왜 그러한가? 또한 인간이란 무엇이며 사회적이라 함은 무엇인가?’와 같이 가장 근본적인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하다. 반면, 과학은 모든 것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 자체는 동일하다. 그러나 ‘지구의 자전 때문에 편서풍이 분다. 왜 지구는 하필 그 방향으로 도는가?’ 따위의 질문은 성립 불가능하다. 물리학 교실에서 ‘왜 E = mc2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대안을 턱하니 제시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있을 수도 있지만). 이·공학에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최소한의 선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 ‘최소한의 선’이지, 배우는 이론들 자체가 너무 어렵고 학사 일정이 빡빡하기 때문에 시험을 치고 점수를 받으려면 일단 모든 것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건 내 머리가 나쁜 탓이지 이론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무엇인가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공학도들은 인문학 수업과 글쓰기를 괴로워한다. 그 내용에 관심이 없고 어려움을 느껴서가 아니라, 아예 사고회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공학도들은 인문계열 학생들에 비해 주어진 정보를 분석하고 비판하고 재해석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이들은 보고 이해하고 그것을 응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익숙하다. 또한 ‘A는 B이고, C는 D이다’ 식으로 하나와 하나를 정확히 대응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옳다고 여겨지는 것 안에서 사고하는 습관, 이것이 그들을 단순해 보이게 하는 것 같다.


또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 학문은 ‘그래서 그 다음은? 그 다음은?’을 되뇌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인문학과 이공학은 여기서도 방향이 다르다. 인문학은 좀 더 넒은 곳을 향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에서 ‘인간’만을 탐구해서는 저 명제를 설명해낼 수 없으며, 인간을 설명하는 방식에도 수만 가지가 있으므로 진리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것을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공학은 조금 더 세부적인 것을 향한다. 기본적으로 한 분야를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분야의 기초 지식들이 필요하지만, 기본적인 이해가 끝난 뒤에는 좀 더 작고 구체적인 것을 파고든다. 이공계 교수들은 자기 옆방에 있는 교수의 논문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좀 더 작은 것, 좀 더 자세한 것에 집중하는 버릇은 일상생활에서도 드러난다. 아마도 이공계에 유난히 ‘오타쿠’들이 많은 것은 이 영향 때문이지 않을까?


00kaist01 » 프라모델은 ‘오타쿠’의 상징 중 하나이다. 카이스트 구내 서점에서 프라모델을 팔고 있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교양 없음'의 이중잣대에 대하여


이공학도들은 그 누구 못지않게 전공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한다. 그런데도 왜 ‘무식’하다는 말을 들어야 할까? 이 점에서는 외부의 시선만 그런 게 아니라 본인들 스스로도 자신이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00snu » 서울대학교 신공학관. 아주 외딴 곳에 고립되어 있다. 출처/ snulife.com

이 무식하다 함은 아마도 교양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런데 교양은 무엇인가? ‘교양’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보통 인문학, 사회학 분야에만 쏠려 있다. 이에 따르면 이·공학 전공자들은 자연히 ‘교양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술자리에서 국어국문학 전공자가 한시를 읊으면 ‘멋있다’. 식품영양학 전공자가 해당 과정(glycolysis) 전 과정을 읊으면 ‘기괴하다’. 이 차이이다. 인문계열 전공자들은 전공 지식이 곧 교양으로 이어지지만, 이공계는 아니다. 똑같은 시간을 전공 공부에 할애해도 사회에서 봐 주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또 하나, 이공학도들은 ‘사회에 관심이 없고 남의 분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구석진 실험실에 틀어 박혀 공부만 하는 이미지는 아마도 여기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학을 하나도 모르는 인문계열 학생은 타 분야에 관심을 좀 가지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왜 이런 이중 잣대가 생겨났을까?


이공계열 전공은 그 내용이 현실 사회와 동떨어져 있다. 인문학이 기계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을 탐구한다면, 공학은 기계의 구조를 구석구석 분석하고 만든다. 공학도에게 요구되는 소양은 기계를 뜯어보는 것이고 그것을 충족하기에 바쁘기 때문에, 그들은 기계가 인간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생각할 여력이 없다. 자연히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이공학도들은 어떤 현상을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바라보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다. 학문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인문학도보다 이공학도가 더 괴짜 같아 보이는 이유는 인간이 아닌 것에 집착(?)하기 때문이 아닐까.


고로 당신들은 무식하지 않다! 단, 지금 이것이 사회나 다른 분야에 관심이 없는 것을 편들어주는 건 아니다.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사이언스 온'(!)의 글들을 읽으며 균형 잡힌 시각을 스스로 길러내기를 바란다.




괴짜라도 괜찮아


무더운 여름, 일정 온도 이하로 내려가면 온도 감지 센서에 의해 에어컨이 자동으로 꺼진다. 이럴 때 인문계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옷을 벗는다. 그러나 공학도들은 온도 감지 센서를 마비시켜 에어컨이 꺼지지 않게 한다고 한다. 인문계 학생들은 외장 하드를 그때그때 연결해서 쓰지만, 공학도들은 아예 납땜을 해서 컴퓨터에 붙여 버린다. 이런 부분들이 그들을 괴짜로 보이게 하지만, 이는 단지 그들 간 사고 회로가 달라서일 뿐이다. 다소 이상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들은 자신의 분야 안에서는 무한한 창의력을 가지고 있다. 좀 ‘너드(nerd)’여도 된다. 그게 나쁜가.


그래도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런 말이 있다. 공대생들은 늘 힘들다고 징징거리지만 사실은 그렇게 힘든 것이 아니라 한다. 정말 무지막지 엄청나게 힘든데 언어 구사력이 좋지 않아 그 정도밖에 표현을 못 하는 거라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 힘들어 하는 것이 무언지 알게 하기 위해서는 ‘이공계 외부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또한 재미있는 생각들을 내부에서만 공유하지 말고 ‘바깥’과 공유한다면 그 생각이 더욱 풍부하고 재밌어진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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