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숱한 과제에 시달리고 퀴즈에 쫓기고 실험실에서 죽치는 생활엔 힘겨움과 고민도 숨어 있지만 이공계의 젊음은 여전히 팔팔하고 꿈도 많다. 다양한 갈래의 이공학도들이 그 희노애락의 이야기를 전한다.

[연재] 이공계 새내기들을 위한 선배들의 진한 도움말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7)





00fresh1 »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학교에서 동아리연합 주최로 열린 2008 새내기 공개모집 행사에서 재학생들이 별모양으로 대형을 만들어 신입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김진수 기자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 무렵까지 대학가에는 연일 생기가 넘친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신입생들의 함성, 시간·장소 불문하는 음주가무... 칙칙하기로 소문난 이공계에도 새내기들의 모습은 비슷하다. 앞으로 다가올 시련과 고통(?)은 먼 나라 이야기이고, 그저 신나고 즐겁다.

 

덩달아 신이 난 선배라고 해봐야 대개 2학년생들이고, 흔히 ‘사망년’(이공계 3학년이 학부 과정에서 최대의 고비라는 뜻에서 ’3학년’을 발음대로 읽어 사망년이라고 부르는 은어)이라고 불리는 3학년생들과 진로 문제로 갈팡질팡하는 4학년생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그러다 후회하지”라고 말한다. “1학년 땐 놀아야 한다”고 부추기는 분위기와 “이제야 깨달은 것을 그때에 일찍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선배들 사이에서 새내기 이공학도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공계에 발을 들인 후배들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준비했다. 선배들이 말하는 ‘신입생에게 추천하는 해야 할 일, 아니 내가 다시 신입생으로 돌아간다면 꼭 미리 준비해두고 싶은 일’이다.




뻔한, 그러나 이유 있는 뻔한 도움말들


이공계 대학생이 된 지 4년 째, 막 입학했을 때 새내기인 내가 참석하는 학과별 술자리에서 선배들이 한 잔 걸치면 늘 넋두리처럼 많은 얘기를 쏟아낸 것처럼 이제는 내게도 새내기들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졌다. 그런데 막상 이런 주제의 글을 준비하며 생각하니 내가 해줄 말도, 내가 인터뷰한 사람들이 해주는 도움말도 다들 비슷하다. (솔직히 뻔하다.) 하지만 뻔한 조언에는 이유가 있는 법! 몇 년 먼저 그 시기를 겪어본 선배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꼼꼼히 읽어주길 바란다.




‘전공바보’ 안 되려면 견문을 넓혀라


전 정말 많은 경험을 했어요. 특히 2010년에 열심히 계획해서 8개월 가량 배낭여행을 다녀왔죠. 남들이 가지 않는 특별한 여행, 특별한 장소를 택했어요(그의 특별한 여행기는 그의 블로그 http://www.cyworld.com/yongsilver1에서 볼 수 있다). 이런 구상은 모두 군대에서 읽은 100여 권의 책들 덕분이에요. 전공 이외의 책을 접하면 사고의 균형이 맞춰져요. 그릇도 커지고요.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사회에 던져지고 나니 전공보다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일찍부터 공부만 바라보고 또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런 친구들은 많은 경험을 해보지 못한 걸 후회하긴 하지만, 학업을 더 큰 가치로 여겼던 거죠. 저의 경우에는 남들처럼 떠밀려 사는 것보다 내 선택으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고 독서는 그런 기회를 잡게 해줬죠. 신입생 때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 잘 모를거예요. 그러니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는 ‘어릴 때’에 많은 걸 겪어보는 게 좋아요. ‘어릴 때 다 해!’ 이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에요.(김용성, 한양대 화학공학과 졸업)


나도 이공계 학생치고는 많은 경험을 했다고 자부하는 편이고 그런 면에서 주변의 부러움도 사지만, 상대적으로 학점에서 손해를 보는 상황도 겪어봤다. 그래서 학업과 경험, 두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이를 인터뷰하고자 했으나 역시나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채로운 경험을 해보라’. 이것이 많은 선배들이 추천하고 싶어하는 도움말로 꼽히고 또 안 하면 후회할 일로 꼽힌다.

 

주변에서 보면 이공계에 입학하는 이들은 대부분 입학 당시에는 전공 공부를 착실히 쌓아 학계로 진출하거나 전공 관련 분야에 취업하기를 꿈꾼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공을 살리지 않거나 전공과 다른 학문을 융합해 새로운 길을 걷는 이들도 많다(생각지도 못한 학문들의 조화가 큰 성공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자신의 길’은 누가 열어주는 게 아니다.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청춘의 경험이 제시해주는 것들이다. 그걸 겪어보지 못한 이들은 전공밖에 모르는 ‘전공바보’가 되기 쉽다고 한다.


00fresh2 »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내몽고에서 사막화 방지를 위해 나무를 심는 환경보호 활동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2009년)


대외활동, 동아리 활동도 마찬가지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바빠지고 다른 취미 생활이 어려워지니 전공 공부와 관계없이 ‘배우고 싶은 것’을 동아리에서 해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새로운 활동과 관련해 자격증 등을 따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또 점점 다른 전공 분야, 다른 학교 학생들을 만나기 힘들어지는 이공계는 저학년 때에 다양한 경험으로 넓은 세상을 겪어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는 게 좋다.


입학할 때에는 들뜨지만 곧 꿈꾸던 대학생활과 다른 현실 때문에 속이 상할 거예요. 특히 인문계 친구들과 대화할 때면, 왜 우리는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와 춤’이나 ‘영화 감상의 이해’가 아닌 ‘일반화학’, ‘수학 및 연습’을 의무로 들어야 하지 하고 답답해지기도 하고요. 이런 필수 과목을 들으며 학점을 잘 받으려면 교양 과목을 듣기 어려워지니까요. 전 편향된 수업만 듣다가 졸업할 제 모습을 상상하며 답답한 마음으로 한 학기를 보낸 뒤에 2학기 때에는 하나의 규칙을 정했습니다. ‘일 주일에 한 명씩 새로운 사람 만나기’. 이런 원칙을 세우고 선배, 교수님, 다른 전공 친구들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선배들에게는 여러 전공의 현재 상황, 그들만이 알고 있는 커리큘럼 등을 개괄적으로 들을 수 있었고 교수님들께는 진로 상담이나 개인적인 고민을 의논했어요. 진로를 정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죠.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문을 두드리면 신입생에게는 공짜 점심과 함께 더욱 값진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요. 그러니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길 바라요. 다만 사람들을 만나는 이유가 나라는 존재를 바로 세우는 ‘아립(我立)’의 과정이라는 것은 잊지 말아야겠지요. (윤태준, 서울대 생명공학과)




다양한 경험 위해! 학교 공지 잘 확인하라

 

좀 더 부지런한 친구들은 갖가지 활동을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이용하는데, 잘 모른다면 우선 학교 홈페이지를 자주 확인하는 것을 추천해요. 학생들에게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지만 정작 학생들이 잘 몰라 지나치고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리고 이공계 친구들이 그런 부분에 관심이 없다보니 상대적으로 인문계 학생들이 잘 챙기기도 하고요. 이공계 학생들도 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잘 확인하고 많은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아, 혜택을 받기 위해서 외국어 점수가 필요한 것이 많으니 저학년 때부터 준비해두길 추천해요.(장성규, 성균관대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00fresh3 » 웹사이트에서 대학생들의 갖가지 활동을 위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대외활동, 연합동아리, 해외 봉사활동, 공모전 등 정보가 많은 곳

스펙업 : http://cafe.naver.com/specup

대티즌닷컴 : http://www.detizen.net

씽굿 : http://www.thinkcontest.com

전대모 : http://cafe.naver.com/goondae




‘언어’로 표현하는 습관을 들여라

 

‘견문을 넓히라’는 앞의 조언에서 잠깐 얘기했던 책읽기에 관한 도움말을 좀 더 들어보자. ‘1·2학년 때 책 좀 많이 읽어둘 걸’ 하는 후회를 둘에 하나는 한다. 이른바 ‘전공바보’가 자신이라고 느끼는 이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이공계를 전공하면서 따로 시간을 내어 전공 분야 이외의 책을 읽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전에 쓴 연재 글(퀴즈, 과제, 실험 시달려도 남다른 ‘우린 이공계’)에서 얘기했듯이, 많은 이공학도들은 수많은 과제와 퀴즈에 정신이 없어서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전공의 것’이 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기껏 책을 읽는다 해도 레포트를 쓰기 위한 전공 관련 서적이 고작이다.

 

그렇게 4년을 보내고 나니 졸업할 때 되면 분명 똑똑하고 공부도 잘했는데 시사 상식이 모자라 대화할 때 무식해보이고, 어휘력이 부족해 자기 소개서 쓸 때에 눈앞이 캄캄해지고, 자산 관리를 하자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는 상황을 겪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남 얘기나 특별한 얘기가 아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이공계 학생들이 워낙 많다보니 여러 단체와 각 대학에서 해마다 이공학도를 위한 추천도서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뿐 아니라, 우리 글 바로 쓰기, 논리적 사고, 삶의 지혜, 경영·경제 등을 포괄하는 주제 목록이니 참고해보는 게 좋겠다.

 

독서와 관련해 꼭 추천하고 싶은 일은 ‘언어로 표현하는 습관을 들이기’다. 이것은 취업 시즌이 되어 이공학도들이 가장 후회하는 부분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독서도 어려운 데 무슨 글쓰기냐고 하겠지만, 그래서 조금만 강해져도 가장 크게 빛을 발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공계의 특성상 의미 파악만 되면 해결되는 전공 서적 읽기와 수학을 도구로 하는 쓰기에 길들여지다보면 가장 필요한 시기에 언어 표현에 어려움을 겪어 힘들어진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번 연재 글에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이공계 입시에서 국어·사회가 빠진 뒤에, 이공계 수험생들 사이에서 이제 그런 과목은 필요 없다는 그런 생각이 퍼지지게 된 것에서 문제가 시작된 것 같아요. 대학에 들어와서 겨우 제출하는 글이 실험 레포트인데 그마저 글짓기와 크게 상관이 없죠. 그런 생각과 교육과정 때문에 이공계 학생들이 글쓰는 걸 잘 못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후회하는 시기가 일차적으로는 대학원 진학 또는 취업을 앞두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죠. 정말 많이 고민해도 글이 안 나와요. 안 써봤으니까요.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입사를 해서 보고서를 쓸 때, 대학원에서 논문을 쓸 때죠. 특히 대학원에서는 이공학도들이 너무 글을 못 써서 내용이 좋아도 다 돌려보내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넓게 보면 이런 악순환이 원인이 되어 이공학도들의 사회 기여도에 비해 대접을 못받는 거죠.(임승혁, 카이스트 물리학과 석·박사 통합과정)

 

틈틈이 자신이 읽은 글에 관한 자기 생각을 정리하거나 기억해둘만한 부분을 따로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글 쓰는 경험을 자주 갖기 힘든 이공학도들에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힘든 전공 공부를 위한 '전공기초'만은 단단히

 

전공공부 외에 다른 분야의 경험을 강조하는 도움말을 얘기하다가 역시 뻔한 공부 얘기를 갑자기 하니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전공 공부는 나도 가장 후회하는 부분이고 많은 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얘기하면서도 그 ‘전제 조건’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공부를 아예 놓지는 말 것’.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전공의 기초가 중요함은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전 학기의 수강과목이 다음 학기, 다음 학년의 수강과목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이공계에서는 그 중요성을 더욱 더 강조된다.

 

기본적으로 이공계 공부는 1학년 때 배우는 미분적분학과 일반물리학에 기초를 둔다고 생각해요. 고등학교 때와 다르게 미리 듣고 계속 복습하는 과목이 아니라 처음 본 과목을 한 학기에 끝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확실하게 알고 넘어가는 게 중요해요. 이 때 기초 공부를 잘 해두지 않으면 이를 바탕으로 한 전공 공부까지 흔들리게 됩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뼈대부터 부실공사를 하는 셈이기 때문에 그 이후에도 전공을 겉핥기처럼 공부하게 되고 학부 4년을 교양 수업만 잘 따라가는 쭉정이 학생이 될 수 있어요. 1학년 때 하고 싶은 일, 공부 외에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러면서도 전공 공부의 중심을 잃지 않길 바라요. (김명현, 한양대 전기공학과)


나도 진작 전공 공부의 기초를 닦아두지 않은 것에 대해 크게 후회하는 사람의 한 명으로서, 이 부분은 특히 권하고 싶다. ‘이번 학기 정도는 괜찮겠지, 아직 저학년이니까 전공이 심화되면 그때에 열심히 해야지’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기초가 부실하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고학년 과정을 따라가기는 어렵다. 학점과 맞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일들을 했다면 개인의 선택이지만 되도록 기초 필수과목 정도는 중심을 잃지 않고 해두며 놀길 권장한다.


00fresh4 » 대학의 강의 모습. 사진/ 국민대 제공

 


글을 준비하면서 참 어려웠다. 후배들에게 너무 해주고 싶은 말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역시 그 ‘뻔한 소리를 하는 선배’가 된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더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이 글을 쓸 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앞에서 윤태준 님이 전해준 말처럼, 이미 그 시간을 겪어 여러 경험을 쌓은 연장자들한테 조언을 듣는 건 자신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좋은 도움이 된다. 이 글이 뻔한 도움말을 담았지만 신입생 독자들의 시행착오 단계를 줄이는 데 실제적인 도움이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 이공계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환영한다.

 

이밖에 새내기 시절의 여러 경험들을 들려주었지만 글의 구성과 분량 때문에 여러 분들의 이야기를 여기에 다 담지 못했다. 역시 그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여담이지만 복학생 형들이 가장 추천하는 ‘새내기 때에 해야 할 일’ 목록에는 ‘연애’도 있었다는 점도 덧붙이고 싶다.


이번에 쓴 '새내기 도움말' 때문에 미뤄진 다음 번 주제는 ‘이공계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와 관련한 경험이나 의견을 들려주실 분들은 stella.pisces.lee@gmail.com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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