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들의 "아줌마들의 과학수다"

이공계 출신의 아줌마들이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모여 과학기술에 관해 친절한 수다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T)와 사이언스온 공동기획

[연재] 우린 이미 파이보그..사이보그도 진짜 괜찮겠니?

아줌마들의 과학 수다 (28)


휴대폰 알람으로 눈을 뜨고, 전동 칫솔로 양치하고, '볼 일'을 본 뒤에는 비데에게 뒤처리를 맡긴다. 이제 우리는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일들도 기계의 도움을 받는다. 휴대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정말로 생각나지 않을 때면 우리 몸의 눈, 코, 입, 귀, 피부 외에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제6의 감각 기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혹시 전파를 수신해 뇌로 보내는 칩이 나오면 이식수술에 한 번 도전해볼까? /수다꾼: 박문영, 신지원, 이인숙, 최동수 (정리: 박문영)



00cyborg » 사이보그를 소재로 한 일본 에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한 장면.

 



기술을 누리며 사는 우리는 이미 '파이보그'

 

SO_MY문영:    인간의 진화 방향은 사이보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학자 케빈 워릭(Kevin Warwick)을 아세요? 케빈 워릭은 기계가 인간의 지능과 힘을 넘어서는 존재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로봇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면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해 능력의 한계를 없애야 한대요. 사이보그의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직접 자신의 몸에 컴퓨터 칩을 삽입하기도 했어요. 자신의 신경신호를 컴퓨터로 전송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고요.

 

00kevinwarick » 케빈 워릭 교수가 왼팔에 장착된 이식장치를 통해 로봇 팔을 움직이고 있다. 워릭 교수가 손을 움직일 때 신경계에서 흐르는 신호를 통해 로봇팔이 손 동작을 복제한다. 출처/ http://www.kevinwarwick.com

동수:  자신의 몸을 실험도구로 쓰다니... 워릭 교수는 어찌 보면 과학자의 임무에 참 충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호기심이 많고 호기심을 풀어내기 위해 뭐든 하려고 하니까요. 허구이지만 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이 스승의 시신을 해부하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과학자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허준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지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과학자의 연구와 별도로 연구결과가 사회에 적용될 때에는 이익의 논리가 아니라 부작용을 포함해 철학적, 윤리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겠지요.

 

인숙:    '육백만 불의 사나이'나 '소머즈' 같이 기계와 생물체의 결합을 한 사람을 사이보그라 하고, 사람의 모습을 닮아 팔다리, 머리, 몸통이 있고 움직일 수 있게 만든 기계를 휴머노이드, 피부와 장기조직 등을 인간의 것과 거의 구별할 수 없는 인조인간을 안드로이드라고 구분하는 거 맞죠? 생물체의 고유기능을 확장하거나 보충하는 사이보그(functional cyborg)를 의미하는 파이보그(fyborg)라는 말도 있다지요. 넓은 의미에서 기계문명을 누리며 사는 우리 모두는 파이보그라 할 수 있어요. 눈의 기능을 도와주는 안경, 눈의 기능을 확장하는 적외선 투시기, 귀의 기능을 보조하는 보청기, 의족을 착용한 개처럼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고 편리한 기계들을 부착하고 사는 현대인과 생물체들은 기능적 사이보그, 즉 파이보그라 할 수 있지요.

 

지원: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서부터가 사이보그인지는 생각하기 나름일 거예요.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거죠. 저는 안경 없으면 생활이 곤란하고 휴대폰이 없으면 1년이면 바뀌는 아들의 전화번호도 헷갈리거든요. 각종 인공 장기나 보조 장치를 몸 안에 지니고 사는 사람들을 로봇으로 볼 수는 없고요. 서서히 제품화되고 있는 '입는 컴퓨터'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고, 로봇은 더욱 지능화된다면 그 때엔 정말 로봇과 인간의 정의를 법으로 내려줘야 할 것 같아요.

 

동수:    케빈 워릭은 사이버네틱스라고도 부르는 인공두뇌학 분야의 교수예요. 그가 한 실험들은 생명체, 기계, 조직 사이의 통신과 제어를 연구하는 분야에 속해요. 그분은 특히 기계를 활용한, 사람들 사이의 소통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아니, 기계를 활용한다고 말하면 안 되겠네요. 지금도 이미 우리는 핸드폰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신경의 전기신호를 통한, 좀 더 정확하고 빠른 의사소통을 연구한다고 말해야 할까요?

 

인숙:    말이 필요 없으면서 오류 없이 이뤄지는 소통이라... 그야말로 텔레파시네요.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유도하거나 지배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많은데. 워릭 교수는 신경에 가하는 전기적인 자극만으로 사고과정을 촉진하고 지식을 저장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가능하다면 앞으로 정말 시험공부가 필요 없어지겠네요. 인터넷 같은 네트워크를 이용해 공부 열심히 한 친구의 뇌 상태로 나의 뇌를 동기화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내가 필요한 부분만 동기화가 가능한가는 또 다른 문제이겠네요.

 

지원:    워릭 교수의 연구는 뇌와 마음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인간의 수행 능력을 향상하고자 하는 뇌인지 융합기술과도 관련이 있어요. 현재는 뇌-신경 보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억력 향상 인공물, 인지기능 향상 기술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요. 미국 과학재단(NSF)이나 우리나라 교육과학기술부가 NBIC(나노, 바이오, 정보, 인지) 융합기술을 미래의 과학기술해결책으로 제시한 것도 이런 방향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전기 자극이 만병통치약이 되는 날이 올지도

 

문영:    관련 분야에서 다양하고 많은 연구를 하고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인공청각, 인공시각에 관한 기술 정도가 와 닿지 않나요? 달팽이관(와우)의 능력이 없거나 떨어질 경우에 인공와우를 이식하면 소리를 들을 수 있잖아요. 인공와우는 소리를 전기 자극으로 바꾸어 청신경에 전달해 주니까요.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받은 환자가 지난해에 서울대병원에서만 1000명을 넘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나네요.

 

인숙:    인공시각은 아직 실험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망막세포가 파괴되어 볼 수 없더라도 망막이나 시신경계에 남아 있는 신경세포에 직접 전기 자극을 주면 환자가 빛을 느낄 수 있어요. 망막에 감광성 세라믹 필름을 이식하거나 전기 자극을 가할 수 있도록 수천 개의 미세 광다이오드를 담은 마이크로칩의 이식 방법을 비롯해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지요.

 

00A_retina » 미국에너지부가 추진하는 '인공망막(Artificial Retina) 프로젝트'가 제시하는 인공망막의 개념도. 출처/ http://artificialretina.energy.gov/howartificialretinaworks.shtml

 

SO_DS동수:    직접 전기 자극을 가한다니까 생각나는데요... 치매 다음으로 흔한 뇌질환이 파킨스씨 병이라고 해요. 도파민이 고갈되어 걸린다고 하는데 심뇌자극기(DBS, Deep Brain Stimulation)를 이식한 환자는 증세가 많이 호전된대요. 시상하핵에 전극을 꽂아 전기 자극을 가하면 운동능력이 좋아진다는 동물실험 결과들도 보고되었고요. 케빈 워릭 교수의 <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가>라는 책에 ‘카페인의 효과는 정신작용을 화학적이라기보다 전기적으로 자극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대목이 나오잖아요. 그렇다면, 시간이 많이 지나면 모든 화학작용을 전기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지원:    뇌신경 퇴행성 질환을 연구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는 광자극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어요. 뇌와 말초신경을 광으로 자극하고 이를 알아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에요. 아직은 쥐에 한정된 시스템이지만 뇌의 비밀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겠죠. 뇌의 적당한 부분에 직접 자극을 주어 치료를 할 날이 멀지 않아 보이네요. 아니 ‘요즘 기억력이 부쩍 떨어졌는데 뇌의 어느 부위에 전기 자극이 부족한지 몰라서 검사하러 가야 하니까 오늘 약속에는 못 나가'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네요. 때론 '나 요즘 너무 우울해서 뇌에 전기 자극 좀 해야겠어'라는 대화가 옷 하나 사야 한다는 대화처럼 일상이 될 수도 있고요.

 

 

 

인간미 넘치는 사이보그 사회도 가능할까요?

 

문영:    실제 크기의 인간 복제품을 만들려는 시도는 2000년 전 고대 문명 때부터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어요. 15세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중세 기사의 겉모습을 한 기계 장치를 설계했다는 얘기도 있지요. 기계인간을 만들려는 행동이나 기계처럼 튼튼해지기 위해 하는 여러 가지 시도는 인간의 본능 같기도 해요. 프랑켄슈타인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이보그도 역시 좀 더 강해지고 싶고 좀 더 자유롭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지 않을까요?

 

동수: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식한 인간이 신처럼 완벽해지고 싶어 하는 욕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완전을 완전으로 바꾸어 보겠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죠. 물론 완벽의 모습이란 것이 인간의 한정된 생각 안에서 이뤄진다는 한계를 지니지만요.

 

SO_JW지원:    사람들이 정말 내 맘 같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저는 망각 같은 인간의 불완전함이 신의 선물이란 말에 공감하거든요. '시간이 약'이란 말도 있잖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좋았던 감정, 싫었던 감정이 모두 흐릿해지면 사람들은 자기 식으로 기억을 재구성하잖아요. 물론 왜곡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은 성공과 실패를 계속 경험하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류 없는 소통이라니 효율적이긴 하겠지만 살벌하고 빈틈없이 빡빡한 삶이 떠올라요.

 

인숙:    사이보그는 지금까지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관점을 생각하게 하네요. 안락사나 배아연구에 관한 논의들을 뛰어넘어 어디까지를 인간이라고 할 것인지, 어떤 모습의 인간이 인간인지 묻게 하고요. 물질과 생명을 나누어 생각하는 것마저 옳은 분류인지 의심하게 해요.

 

문영: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하네요. 모든 신체 조직을 기계로 바꾸더라도 뇌만 있으면 나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기계 팔, 기계 다리로 대체한 사이보그가 많아지면 인간과 같은 피부조직과 장기를 가진 안드로이드가 더 인간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좀 더 지능적이기 위해 뇌의 명령 없이 미각과 촉각을 느끼며 어느 정도 독자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문어다리 같은 팔, 다리를 가지고 싶어 할 지도 모르죠. 욕구가 극대화되어 약간은 괴물 같은 인간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SO_LIS인숙:    감성형 로봇으로 심리치료를 하는 경우도 있다죠. 학습로봇의 경우에 ‘땡! 틀렸습니다', '딩동댕! 맞았습니다’를 반복적으로 외치지 않고 상대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을 읽어 ‘네가 오늘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조금 쉬었다가 공부할까’ 하고 말할 수 있는 로봇이요. 그런데 정작 인간에게는 효율성을 강조해 로봇이 되기를 강요하고, 로봇에게는 감성을 요구하니, 참 아이러니해요.

 

동수:    사이보그라고 하면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 혜택을 누리게 되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받아들이게 될 것 같아요. 특히, 나이가 들어 몸을 가누는 것이 힘들어지고 통증으로 곳곳에 몸의 이상 신호를 받게 되면, 남의 도움을 덜 받기 위해서, 좀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해서 부분적으로 내 몸을 인공물로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어르신들이 백내장 수술로 인공수정체를 삽입하거나 인공관절을 삽입하는 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죠.

 

문영:    사이보그든 로봇이든 사람들이 겁을 내는 이유 중에는 '기계에 대한 인간의 통제권'에 대한 염려도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이야 청소기나 세탁기의 전원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통제권이 모두 나에게 있지만 발달된 지능형 로봇이나 기계들은 뭐든 알아서 할 테고, 그러면서 학습효과가 생겨 예상을 벗어나는 일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2002년 영국 마그나 과학 어드벤처 센터(Magna Science Adventure Center)에서는 빛을 받아 에너지를 생산하는 먹이로봇과 이들을 잡아 에너지를 빼앗는 포식로봇을 풀어놓아 간단한 인공 로봇 생태계를 만들어두고는 로봇들의 학습과 진화를 살피는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지요. 그런데 어느 날 포식로봇 중 하나가 인공 생태계의 울타리에서 나와 건물 밖까지 나가는 이른바 '탈출 사건'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거죠.

 

지원:    육백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즈가 아직까지 저의 기억에 남는 이유는 둘의 엄청난 기계적 능력과 파워가 아니었어요. 같은 처지에 있는 두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며 안쓰러워 해주고 사랑하는, 그 절절했던 관계 때문이었지요. 물론 저의 아들은 엄청난 힘과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초능력에 관심을 가졌을 테지만요. 더욱 인간미 넘치는 사이보그 사회도 가능할까요?

 

00600man » 추억의 미국 드라마에 사이보그로 등장했던 주인공인 육백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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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다팀
머릿속 과학을 쉽게, 편안하게, 재밌게 생활에서 끌어안다.” 못생긴 평 발의 등번호 21번 수다꾼(박문영), 뾰족코에 둥근 안경 수다꾼(신지원), 살포 시 웃음 짓는 빼빼 수다꾼(최동수), 볶음밥 위의 노른자 수다꾼(이인숙)이 수 다 팀을 꾸렸다.
이메일 : science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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