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존중 사회를 생각하며

 기 고 

글쓴이: 임종관 이탈리아 트렌토대학교 박사후연구원(로봇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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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인공지능 로봇 기술은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요구를 바탕으로 발전해왔다.

인공지능 로봇 연구의 토양에는 오히려 인간적인 삶에 대한 갈구도 놓여 있다.

인간 노동력에 대한 처우가 낮고 인간 존엄성이 자주 경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인공지능 기술은 어디에서 그 사회적 토양을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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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AI_pixabaycom.jpg » 출처 / pixabay.com

 


파고와 대결한 이세돌 9단의 분전 덕분에 인공지능, 그리고 그것을 탑재한 로봇에 대한 온 대한민국의 관심이 뜨겁다. 반대 급부로, 인간보다 더 똑똑해진 인공지능이 불러올 부정적인 미래에 대한 시름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 글을 통해 인공지능 혹은 로봇 관련 종사자로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갖는 공포가 비약적임을 보이고 우리에게 닥칠 부정적인 미래가 과연 인공지능 혹은 그것을 탑재한 로봇에게서 비롯되는지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지나친 광풍, 기대…그리고 곧 닥칠 낙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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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불어닥친 딥러닝 열풍과 알파고 행사 이후,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비전문가들의 공포와는 사뭇 다른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사실 알파고라는 바둑에 특화된 전문가 시스템에 채택된 방법론들은 학계에서는 고전적인 알고리즘들의 조합에 불과하다. 인공신경망의 다층 배열을 통해 더 똑똑해진 딥러닝조차, 이미 20여 년 전에 그 능력에 대한 검증이 끝난 알고리즘이다.[1] (지난 20년 동안 누적되어온 점진적인 개선과 성과물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님을 밝힌다.)


공지능 혹은 로봇 연구자로서 나의 두려움은 알파고로 표출된 파편화된 지식들의 결합이 우리 사회에 불러일으키는 것이 공포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공포의 이면에는 똑똑해진 기계지능에 거는 더 큰 기대감이 존재한다.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딥러닝…, 이런 키워드가 몰고올 광풍이 지나간 뒤에 다가올 실망과 낙담, 그로 인해 야기될지 모를 황폐한 겨울이 걱정된다. 우리는 현 기술의 한계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실례로 스마트폰이 일반화하던 1990년대 말, 스마트폰 사용자가 운전하면서 “우리집”이라는 음성 키워드로 전화를 거는 장면을 어느 기업 광고에서 연출했다. 당시 음성인식은 정점을 찍는 기술로 인식되었으며 한동안 대한민국 대부분의 전자통신 관련 기업이 음성인식에 많은 투자를 했다. 그러나 5년 후 대한민국에서 음성인식 연구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할 수준으로 지리멸렬한다. 광고영상이 보여주었던 음성인식에 대한 기대치를, 잡음 가득찬 실제 환경 속에서 현실의 음성인식 기술은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행중 발생하는 각종 잡음 속에서 인식률을 제고하는 음성인식 방법론은 현재도 도전 과제이다.)



지적 호기심과 사회적 요구 사이에 놓인 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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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과학자가 강에서 빨래를 하는 사람을 보았다면, 강에 다가가 옷을 문지를 수 있는 휴머노이드(humanoid)를 만들려 할 겁니다. 그러나 기술자가 보았다면 단순한 회전통을 가진 세탁기를 만들 겁니다.” [2]


지금은 은퇴한 일본의 저명한 로봇학자인 히로세 시게오가 어느 저널리스트에게 건넨 답변은, 과학과 공학의 간격, 그들의 필요성, 이상적인 로봇과 현실적인 ‘고정된 자동화(fixed automation)’의 차이, 현 기술의 한계, 로봇 학자가 사회에 제공할 수 있는 기여, 그리고 그에 대한 자부심을 물씬 느끼게 한다.


신을 닮은 존재를 창조하고 싶어하는 열망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이며 더불어 인간 자신을 이해하려는 지적 호기심이 오늘날 인공지능이라 소개되는 기술을 창출하는 데 가장 근본적인 동력이다.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을 비롯해 수인화된 각종 애니메이션의 피조물들이 그 예이며, 자신의 2세를 출산하고 교육하는 과정도 역시 넓게 보아 자신을 닮은 존재를 창조하려는 욕구의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그러나 원초적이고 순수한 욕구가 제4의 산업혁명[3]이라 일컫어지는 사회적인 변혁을 유발하기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인간 두뇌만큼이나 복잡하다.


인간의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다루던 과학이 사회적 요구 사항에 직면할 때, 여러 가지 상황적 제약에서 최적해를 찾는 공학적인 과정으로 돌변하고 이후 폭발적인 영향력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결과물은 이를 후원하는 사회적 토양 없이 생존할 수 없다. 이 영향력의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과연 공학적인 접근방식에게만 돌려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인공지능 그리고 그것을 탑재한 로봇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기술자들도 인간의 미래를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 사회의 발전과 행복를 위해 존재한다는 정당성을 부여한다. 현 상황은 우리에게 왜 인공지능과 로봇 연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가 ?

00Industry_4.0_wiki.jpg » 지금 시기를 "제4차 산업혁명" 또는 "산업 4.0 (Industry 4.0)"으로 명명하는 관점에서 보면, 수력과 증기력을 이용한 제1차 산업혁명,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의 제2차 산업혁명, 그리고 컴퓨터 자동화의 혁신을 이룬 제3차 산업혁명에 이어, 지금은 인터넷, 인공지능, 사이버 기술 등이 접목해 이전과 다른 단계인 제4차 산업혁명으로 진입하는 중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제4차 산업혁명’을 낳는 사회적 수요의 성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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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4의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서구 각국이 겪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고찰해보자.


업 활동을 통해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최소 투입으로 최대 효과를 누리려는 경영학점 관점이 반영된 지극히 고전적인 주제이며 경영의 논리가 결국 현 세계를 움직이는 중요한 축임은 부정할 수 없다. 높은 인건비의 인력을 대체하는 자동화가 앞으로 5년간 선진국과 신흥시장을 포함한 15개국에서 일자리 710만 개의 소실과 21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발표가 있었다.[4] 산술적으로만 봐도 인류에 비관적으로 보이는 이 움직임을 가속화하는 주 원인은 세계적으로 경제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데에 있다.


자본주의에서 소비만한 미덕이 존재하던가?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으며 그들의 구매를 끌어낼 방법이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결국 소비자를 유혹하는 마지막 무기가 저렴한 가격이 되면서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 만이 고소득을 창출할 뿐, 구미 각국은 저성장 상태에 허덕이고 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자동화 기술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서 대두되는 원인이다.


위 문제와 관련해,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수월치 않다. 대개 고용주보다는 피고용인이 많게 마련인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고민은 아니니까. 그러나 일본과 유럽의 다수 국가가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14% 이상)를 넘어서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 이상) 진입을 눈앞에 두면서 경제 규모를 감당할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사회적 문제는 파급 효과면에서 사뭇 심각하다. 노동인구의 건전한 노동력이야말로 현 사회 제도의 건강한 근간이기에 노동인구의 감소는 결국 현 사회 체계의 붕괴를 의미한다. 일본이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을 빠르게 늘려가고,[5] 독일이 이미 다양한 인종에게 기술이민을 허가하고 뒤늦게 프랑스마저 이를 따라가는 흐름은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6] 한 곳에서 부족한 인력을 다른 곳의 인력으로 대체한다는 면에서 최근 중동사태를 통해 발생한 난민을 유럽의 새로운 기회로 인식하는 시각도 존재한다.[7]


그러나 외국인 노동인구의 유입을 도모하는 이런 접근법에는 또 다른 장애가 존재한다. 현 유럽연합의 경계가 기원전 아우구스투스의 로마제국 시대 이후로, 중세 기독교 문화를  통해 더욱 강화되어온 문화적인 그리고 정서적인 장벽이라는 점.


지난달 새벽에 같은 기차표를 들고 있던 한 사내에게, 화장실을 다녀올 동안 내 가방을 지켜봐 줄 수 있냐는 부탁을 한 적이 있다. “이거 혹시 폭탄은 아니지?”라는 그의 응답에 웃음이 폭발한 나는 그의 눈에 서린 공포를 읽고서야 정중히 사과를 해야 했다. 내 신분증을 건네주며 10분 후에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경찰서에 신고해도 좋다는 허락과 함께 짐을 맡겼다. 극단적인 일화일 수 있으나, 타문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정서적인 거부감이 훗날 폭탄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는 현실적인 공포와 맞물려 반이민 정서를 생성하고, 부족한 노동력의 대안으로서 인공지능을 통한 자동화를  견인하는 또하나의 사회적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막으로 더욱 근원적인 사회적 요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땅이 넓은 미국의 경우 화물 운송을 트럭, 비행기, 기차, 배 등으로 해결하고 있으나 무게 기준으로 약 70%의 운송량이 트럭에 의존하고 있다.[8] 그런데  미국트럭킹협회(ATA)에 따르면 2013년 이후 2년 동안 트럭운전사의 연봉은 최고 17% 올라 현재 평균 5만7000 달러에 달하는 데 여전히 4만8000여 명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높은 이직률과 신규 운전자 유입 감소의 주원인은 하루 평균 11시간 이상의 근무 여건과 빈번한 장기 출장근무로 인해 원만한 가정생활을 영위하기 힘들다는 것. “나와 트럭 중 하나만 선택해.” 그래서 직장을 옮기거나 단거리 운전으로 일자리를 옮기는 경향이 뚜렷하다.[9] 미국이 주도하는 무인자동차의 이면에는 이러한 인간적인 삶에 대한 갈구가 존재한다.



노동력 낮은 처우와 인간존엄 경시 사회에서 인공지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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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져가는 인건비, 차세대 성장동력의 고갈,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 증가하는 반이민 정서, 인간적인 삶에 대한 열망은 서구 각국 인공지능 연구의 사회적 토양이 되고 있다. 그럼 이제부터 대한민국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실상 대한민국은 앞서 소개한 구미 각국과 같이 인공지능을 통한 자동화가 사회적 지지를 받기에 빈약한 토양을 갖췄다. 즉, 우리 사회의 내재적인 요청에 의해 인공지능이 자리잡을 가능성은 낮고 기여도 또한 크지 않으리라 전망한다. 국방부 주관 연구 과제에 ‘영상기반 특이행동 자동 검출’이라는 제안서를 제출코자 군 고위 장교의 검토를 받은 적이 있다. 출입 관리가 엄격해야 할 장소를 자동 모니터링 함으로써 군 인력의 효율적 활용이 가능하다는 내 연구 제안서는 “그런 경우에 보초 두세 명 더 배치하면 된다”는 지적을 받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참고로 2015년 기준 대한민국 육군 병장 연봉은 보너스 포함 178만원으로 가장 성능 좋은 노트북보다 저렴했다.


사실 노동력에 대한 낮은 처우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인간 존엄에 대한 만연한 경시이다. 인간적인 삶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마저 ‘노오력’이 부족한 자들의 하소연으로 치부하는[11] 우리 사회가 인공지능을 통한 자동화가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할 리가 없다. 더불어 우리에게도 곧 닥쳐올 저출산, 고령사회에 따른 노동력의 부족을 ‘조선족’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분이 차기 대선의 유력한 후보인 나라에서 인공지능은 뭘 할 것이며 자동화가 왜 필요한가? 사실상 우리나라는 현 세계를 주도하는 이른바 선진국의 일반적인 추세와는 괴리가 존재하는 갈라파고스 화 된 섬에 가깝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제4의 산업혁명의 파급효과에서 비교적 안전할까? 전혀 안전하지 못하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불안전한 미래를 초래하기보다는 인공지능이 일으킬 사회 변화에 역행하는 반동력이 결과적으로 더 큰 피해를 초래하리라 예상한다.


령, 미래고용보고서는 줄어드는 일자리가 남성보다 여성에 더 치명적이라 경고하는데,[4] 인공지능이라는 외부 충격이 없는 와중에도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 일상적이었으며, 도리어 인공지능에 대한 안일한 대응이 결국 현 상황을 악화시키리라 본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서,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례를 들고 싶다.개인적으로 평가하건대, 우리는 점진적인 혁신을 이끄는 내재적인 역량보다 주로 외부에서 주어진 충격이 변화를 견인해 왔다. 또한, 외부에서 주어진 충격에 대한 반동으로서, 충격에 대응하지 못한 기존 사회적 질서를 개선하는 방향이 아니라 도리어 강화시켜나가는 과정에서 민초들의 고통이 확대되었음에 주목한다. 조선왕조 500년 중 가장 큰 환란이라 불리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왕조가 명분과 기능을 상실한 성리학적 신분질서를 도리어 강화함으로써 민초들은 전근대적 모순과 부패에 고통받았고, 서구 열강의 이양선 출몰 후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으로 갈라파고스화를 자초함으로써 근대화의 기회를 놓쳐 국권 상실에 이르렀다.


우리 역사의 점진적인 진화에 지나치게 냉소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으니, 멀리 볼 것도 없이 1990년대 제3의 산업혁명이라 불리던 정보기술(IT)이 불러온 우리 사회의 변화를 돌이켜보자.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두 번 지나는 동안에, 경제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세상은 인터넷을 사용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양분되었다. 유교적 봉건적인 위계질서, 온정주의, 그리고 비합리주의는 여전하고, 성과 지상주의,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군림하는 갑을관계, 이기주의, 황금만능주의, 기회주의가 강화되었으며, 편법·탈법·불법에 조롱당하며 원칙과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정보기술(IT)의 역동성에 기인했다기보다는 정보기술(IT)를 지배하는 창의력이 주는 역동성을 사회 안정성을 해치는 사회 불안 요소로 간주하고 이를 끝없이 제거하며 기존 질서를 강화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급증했다는 점이다. 제4의 혁명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예상한다.



우리 미래를 좌우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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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미래 사회는 우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우울한 미래를 야기하는 원인이 인공지능은 아니리라 장담한다. 과거 경험에 기반한 학습을 통해 구현되는 현 알파고를 상대로 우리 인류가 거둔 유일한 승리에서 이세돌 9단은 현 인공지능의 한계 중 하나를 정확히 지적했다. “생각하지 못한 수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진다.” 인간의 선험적 지식을 인공적으로 구현할 방법을 우리 관련 종사자들은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계기반 기계학습의 첫 장에 소개되는 ‘베이지안 정리’는 위 선험적 지식과 경험의 곱으로 주관적 예측값을 계산한다. 따라서 이미 벌어진 동일한 경험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주관적 평가가 곱해질 경우 최종적인 확률예측값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주관적 평가를 희망으로 품을지 절망으로 채울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달렸다.



[주]


[1] Christopher M. Bishop. Neural Networks for Pattern Recognition.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UK, 1995

[2] Peter Menzel and Faith d‘Aluisio. Robo sapiens: Evolution of a new species. Mit Press, 2001.

[3] Davos-Klosters, Mastering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 2016, Jan. 2016

[4] World Economic Forum, The Future of Jobs Employment, Skills and Workforce Strategy for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 2016, Jan. 2016

[5]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630298.html

[6] http://magazine.hankyung.com/business/apps/news?popup=0&nid=01&c1=1001&nkey=2015070901023000241&mode=sub_view

[7]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9/07/0200000000AKR20150907016800009.HTML

[8] http://www.c2es.org/technology/factsheet/FreightTransportation

[9] http://www.wsj.com/articles/trucking-comes-up-short-in-search-for-young-drivers-1432071355

[10] http://blogs.wsj.com/economics/2015/04/01/why-china-may-have-the-most-factory-robots-in-the-world-by-2017/

[1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9042059215


임종관 이탈리아 트렌토대학교 박사후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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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종관은…

이탈리아 트렌토 대학교(Università degli Studi di Trento)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로봇공학을 연구하고 있다. 통계적 패턴 인식과 신호 처리에 기반한 인간과 로봇간 상호작용이 주관심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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